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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Jan 03. 2022

[쿠바 #9] '노인과 바다'를 만나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마을, 꼬히마르(Cojimar)


헤밍웨이가 사랑한 그곳, 전망 좋은 곳 ‘꼬히마르(Cojimar)’

   씨엔푸에고스에서 꼬히마르까지는 세 시간이 걸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의 배경지이기도 하며 소설에 등장하는 노인 산티아고의 모델이 되었던 그레고리오 푸엔떼스(Gregorio Fuentes)가 살았던 마을, ‘꼬히마르(Cojimar)’~! 꼬히마르라는 말의 뜻이 ‘전망 좋은 곳’이라고 하던데, 이곳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책자에서 보던 그 익숙한 풍경이 정말 낯설게도 좋게 다가왔다. 적당하게 잔잔한 파도와 그 한쪽에 우뚝 서있는 모로 성, 그리고 그 가까운 곳에서 잔잔한 바다를 향해 뻗어있는 작은 데크(?)가 있고 그 위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냥 자연스럽고 익숙한 동네 풍경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마치 우리의 도착에 맞추어 최고의 아름다운 전망을 만들기 위해 미리 세팅을 해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한 모습이었다.

꼬히마르의 바다 풍경. 흐린 저녁 날씨가 어촌 풍경을 더욱 맛나게 해주었다.

   우선 차에서 내려 저녁이 다가오는 어촌 마을의 풍경을 느긋하게 눈에 담으며 모로 성으로 향했다. 역시 스페인 점령기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쿠바 독립 이후에도 군사시설로 사용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지금은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 당시에는 그런 것은 없었다) 성으로 오르면서 보니 바다와 맞닿은 성벽 한쪽에서는 두 청년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일상의 모습이 풍경이 되는 순간이었다. 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요새라고 할 만큼 튼튼하고 단단하게 지어졌다. 두꺼운 석재들을 많이 사용하여 지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그 위용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물론 관광지로서의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성 위에 오르면 호세 마르티의 동상과 벽화가 전부이다. 군사시설로 쓰인 곳에서 볼거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에 올라 성 밖으로 바라보는 바다는 일품이었다. 성 밖에서 바라보는 성을 포함한 꼬히마르의 전경도 작품이지만 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마을 쪽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헤밍웨이는 아마도 이런 매력을 지닌 한적한 이 시골 어촌 마을을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한 눈에도 단단하고 굳건해보이는 모로 성(왼쪽), 성 위에서 바라본 꼬히마르 마을 풍경(오른쪽)

   그리고 성 너머 고즈넉한 저녁 무렵의 어촌마을 풍경은 한편 익숙하기도 한 모습이었다. 가로등 한 두 개가 밝혀져 있고 슬슬 집 안에서 저녁 준비에 들어갔을 아낙들과 고된 바닷일을 마치고 술 몇 잔에 피로를 녹이며 집으로 방금 들어왔을 사내들, 그리고 방파제 주변에서 바다를 향해 괜한 돌팔매질을 하며 언젠가 그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고픈 꿈을 꾸는 아이들... 이런저런 익숙한 상상들을 펼치기에 그 풍경은 충분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성 위에서 반대쪽으로 바라본 꼬히마르 마을 풍경. 한 소년이 바다를 향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정겨운 모습이다.

   성을 돌아보고 내려오면 성 뒤편 마을 입구 쪽으로는 작은 광장(?) 중심에 헤밍웨이의 흉상이 바다를 보며 서 있다. 말년에 미국으로 강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뒤 무척이나 그리워했을 꼬히마르의 그 바다를 흉상은 지긋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리스 신전처럼~ 그리고 그 안에는 헤밍웨이가 미소를 지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꼬히마르, 그곳 어촌 마을 사람들~

   그곳을 돌아 나와 성 옆에 있는 데크로 갔다. 돌로 기둥을 세우고 나무로 가로로 판을 덧대어 만든 그 데크는 사실 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중간중간 나무가 부서져 그 아래로 바닷물이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소년과 청년, 장년 등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들 몇몇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내려가 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미 도사님은 데크 끝까지 먼저 가 있었고 한껏 상념에 빠져 있었다. 누구든 충분히 그런 감성과 생각에 잠기게끔 하는 풍경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장면이었다.

역시 전망좋은 곳, '꼬히마르'

   뒤돌아보니 직진님은 이곳 남자들 틈에 섞여 낚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낯선 동양인이 옆에 다가와 구경을 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들의 낚시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경계심 같은 것은 아예 없어 보였다. 총무님은 해안가 방파제에 걸터 앉아 바다 쪽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졌고 나머지 일행들도 각자 나름의 위치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꼬히마르의 저녁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일행들을 모두 모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까부터 딱시부의 선글라스 청년 ㄹ~레이는 모로성에도, 이곳 데크에도 우리와 함께 하며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ㄹ~레이와 모두 함께 이곳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우리 일행도, ㄹ~레이도 모두 이 어촌의 저녁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모습이었다.

   데크를 나와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 이동하는데 방파제에 앉은 한 소녀와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강아지도. 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소녀가 너무 예뻐 유쾌님은 어쩔 줄 몰라 했고 자연스럽게 그 모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서로가 잘 몰랐지만 분위기만큼은 유쾌하고 좋았다. 나는 후딱 차로 뛰어가 캔디 한 줌을 쥐고 와 소녀에게 주었다. 어린아이의 밝은 웃음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었다. 강아지를 포함한 가족의 사진도 한 장 찍었고 유쾌님과 어우러져서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스스럼없이 어울릴 줄 아는 이곳 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이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헤밍웨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그의 단골집, 그리고 모히또 한 잔~

   조용한 저녁 무렵의 바닷가 풍경을 뒤로 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와 ‘라 떼레사(La Terraza)’를 찾아갔다. 헤밍웨이가 자주 들러 모히또 한 잔씩 했었다는 바로 그곳이다. 차를 타고 내려왔던 그 길을 거슬러 조금 걸으면 라 떼레사를 만날 수 있다. 최근에 간판을 새로 달았는지 여행 책자에서 보았던 그 간판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새로이 네모난 간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책에서 본 예전 간판이 더 멋있었던 것 같은데...

‘라 떼레사(La Terraza)’의 새 간판. 어촌 풍경에는 옛 간판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아쉬웠다.
‘라 떼레사(La Terraza)’의 전경. 헤밍웨이가 칵테일을 한 잔씩 즐겼다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바가 보이고 그 위에는 조업을 위해 바다로 떠나고 또 청새치를 가득 싣고 육지로 돌아오는 배가 그려진 그림과 이 레스토랑의 전경을 담은 그림이 크게 걸려 있다.

라 떼레사의 내부. 눈에 가득 담고 온 모로 성과 바다의 풍경이 그림으로 다시 우리를 맞이한다.
라 떼레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바(Bar). 술병 진열장 위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레스토랑 안쪽으로 들어가면 헤밍웨이의 초상화와 함께 그와 관련한 여러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카스트로와 찍은 사진도 있지만 인상적인 것은 헤밍웨이를 그리며 장수하다가 2002년에 결국 세상을 떠난 그레고리오 푸엔떼스의 사진이었다. 또 실제 청새치를 잡아 와 동네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 구경하는 사진도 있었다. 그런 사진들이 이곳 마을의 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헤밍웨이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헤밍웨이의 초상화(왼쪽), 청새치를 잡은 날의 기록을 남긴 사진들(오른쪽)
헤밍웨이의 사진들

  그리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창가에는 헤밍웨이의 작은 동상(...이라기 보다는 작은 조각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이 있었다. 헤밍웨이가 라 떼레사를 찾았을 때 자주 앉았던 자리라고 한다. 그 창 너머로 꼬히마르의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마도 그는 생전에 이곳에서 그 테이블에 비스듬히 앉아 창 밖으로 어촌의 풍경을 바라보며 모히또를 한 잔 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강제 추방된 뒤 이 풍경과 모히또의 맛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헤밍웨이가 자주 앉았다는 창가쪽 좌석에는 그의 모습을 담은 작은 조각상이 있다. 그가 바라보았을 창 밖 풍경을 같이 감상하는 느낌이다.

   라 떼레사의 내부를 살펴보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도 그때의 그처럼 모히또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주문을 해놓고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 동네를 살펴보았다. 도사님은 이미 나와 마을의 모습을 찬찬히 눈에 담고 있었다. 아까부터 깊은 사색에 담긴 모습이 왠지 이곳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마을의 모습은 보통의 시골 어촌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과 오래된 자동차들은 여전히 이곳이 쿠바임을 증명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모습은 여유와 미소를 여전히 머금고 있었다. 이제쯤 되니 이런 풍경이 자연스럽게 내 마음 속에 자리잡아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고 지치게만, 정확히는 정신적으로 바쁘고 지치게 살아왔던 나의 일상, 우리의 일상이 무엇이었나, 무엇을 위해 그리 살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라 떼레사(La Terraza) 밖의 풍경. 오래된 건물들이 있고 골목길로 이 곳 사람들의 거주지가 보인다.
꼬히마르의 마을 사람들. 쿠바의 어느 곳에서나 그랬듯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와 느긋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주문했던 모히또가 나왔다. 젊은 바텐더는 부지런히 이런저런 칵테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라 떼레사의 역사만큼이나 저곳에서 일했던 바텐더들도 여럿이었을 텐데 그들은 방금 내가 했던 생각처럼 힘들고 지치게 일하며 괴로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래도 최소한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전망 좋은 곳'에서 일하면 대도시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한결 마음의 여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이렇게 멋드러진 이 풍경의 정점은 바텐더가 만들어준 술 한 잔과 함께 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술을 잘 못하는 나와 유쾌님도 흔쾌히 한 잔씩 했다.(나중에 둘이 똑같이 얘기했지만 이곳의 모히또에는 럼주가 많이 들었는지 오는 차 안에서 술에 취해 혼이 났다고 했다.ㅎㅎ) 이곳에 앉아 역시 이곳에 들러 가길 정말 잘했다는 우리끼리의 자화자찬(?)을 하고 해 지는 쿠바의 저녁 풍경을 이곳에서 마무리했다.

라 떼레사(La Terraza)의 모히또(왼쪽). 쿠바는 모히또의 나라이기도 하다. 거기에 들어가는 럼주(오른쪽, 사실 숙소에서 우리가 마신 럼주이다).

  30분 정도를 달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7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날 저녁 식사는 그동안의 골칫거리(?)를 해결하기로 했다. 여행 시작 전에 먹을거리들은 각자 알아서 조금씩 준비하기로 했는데 모든 멤버가 너무 잘 알아서 준비를 하는 바람에 컵라면은 넘쳐나고 햇반과 각종 통조림 반찬, 견과류, 마른 안주 등이 풍족함을 넘어 트렁크에 넣고 다니기에 벅찬 짐이 될 수준에 이른 것이었다. 1인당 컵라면 두 개씩 먹어야 한다는 집행부의 강력한 지침에 따라 한국에서 싸온 모든 음식물들을 꺼내놓고 먹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직진님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근처에 큰 슈퍼마켓을 발견하고 거기까지 가서 럼주 1리터짜리를 하나 사 왔다. 알코올 도수가 무려 40도에 이르는 그 럼주를 칵테일로 만들지도 않고 깡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갖가지 종류의 컵라면과 뜨거운 물에 잠시 몸만 데운 햇반과 통조림에 담겨 잘 포장되어 온 장조림, 김치(통조림 김치가 있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등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두 개씩 먹는다고 먹었는데도 컵라면 대여섯 개가 남았고 생라면 5개들이 번들도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끝까지 남기지 않고 다 해치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Havana Club’이 선명히 새겨진 1리터 들이 럼주였다. 럼주와 함께 일행 중 몇 분의 정신도 사라져 갔다.


   쿠바의 곳곳에 헤밍웨이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곳 꼬히마르 지역 말고도 아바나 오비스뽀 거리 입구에 있는 라 플로리디따(La Floridita)를 포함해서 그가 자주 묵었다는 암보스문도스 호텔(Hoteol Ambos Mundos), 아바나에서 모히또를 마시러 들렀다는 라 보데기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 아바나에서 30분쯤 거리에 있는, 헤밍웨이가 살았던 곳을 박물관으로 꾸민 헤밍웨이 박물관(Museo Ernest Hemingway) 등 그가 흔적을 남긴 곳은 많다. 물론 실제인지 논란이 있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쿠바에서의 삶을 그리웠다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그곳에서 술을 즐기며 사람들과 흥을 나누는 모습. 이것이 쿠바의 매력이고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쿠바의 모습의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약간의 허무주의 성향(아마도 그의 삶에서 비롯되었겠지만...)을 이런 모습들이 상쇄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닌 그였지만 말년에 끝내 이곳을 다시 오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 그의 삶 또한 더 이상 상쇄해줄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스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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