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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Dec 20. 2021

[쿠바 #7] 카리브해의 휴양지, 그리고 사람들

앙꽁 해변에서의 휴양, 그리고 뜨리니다드의 사람들~


카리브해의 일출은 어떤 모습일까

   어제의 피곤함도 잊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시간은 6시. 창 밖을 보니 하늘이 괜찮았다. 일출 사진을 찍어 보겠다며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들고 방을 나섰다. 아직은 깜깜한 하늘에서 일출 사진 촬영 준비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호텔 근처 선착장은 이미 불을 켜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너머 지평선과 수평선을 따라 짙은 구름이 남아 있었다. 역시 지평선이나 수평선에서 해가 바로 떠오르는 일출 사진을 얻는다는 것은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었다.

호텔 북쪽 선착장은 새벽부터 불을켜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7층 옥상에서 저 멀리 동쪽 하늘을 바라보는데 한쪽부터 서서히 푸르고 붉은 빛들이 솟아나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구름들이 뚜렷이 드러났다. 이내 어둠에 쌓였던 호텔 주변의 건물과 나무들이 빛을 받아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해가 뜨려는 듯 동쪽 하늘은 상서로운 기운에 휩싸이게 되었다. 잠시 후 수평선 위 짙은 구름 사이로 해의 모습이 살짝 보이더니 이내 구름 위로 쑤욱 올라왔다. 그게 어디든, 언제든 일출 장면을 맞이한다는 건 무언가 경이롭고 엄숙한 기운이 가슴 속을 채우는 느낌이 든다.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대던 나는 해가 구름 밖으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세상이 완전히 밝아지자 그제서야 새벽 추위(암만 적도 부근의 나라지만 새벽엔 춥다.)를 느끼고 카메라들을 챙겨 내려왔다.

앙꽁의 일출.  바다와 호수에 비친 아침 태양이 아름답다.


카리브해의 아침 해변 즐기기

    어느덧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고 일행들은 어제 저녁을 먹었던 뷔페 식당에서 조식을 먹으며 일정을 조정했다. 원래의 일정은 아침을 먹고 리나다드로 나가는 것이었는데 오전에 이곳 해변을 좀 즐기고 점심까지 먹은 후에 나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유는 딱 하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카리브해가 눈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프론트에 가서 물어보니 매 시간 정각에 있다고 했다. 12시쯤 점심을 먹고 1시 버스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자유여행이니 일정 수정을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여기서 또 나타났다. 조식을 먹은 후 잠시 쉬었다가 앙꽁 해변을 한 번 쭈욱 걸어보기로 했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길을 나섰다. 렌즈를 챙기기 위해 방에 잠시 되돌아 갔다 온 사이에 나머지 일행들은 저 앞에서 걷고 있었다. 다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 사장에 신발을 벗고 발끝으로 이따금씩 적셔오는 파도의 물결을 느끼며 걸었다. 곱고 하얀 모래와 곧게 뻗은 야자수, 야자수 잎으로 만든 파라솔과 그 밑의 하얀 비치의자들이 카리브해의 해변 풍경을 완성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비닐이나 천으로 만든 파라솔을 펼쳐 놓은 한국의 여타 해변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이었고 그 느낌이 훨씬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백사장이 끝나는 지점까지 꽤 걸었다.

이른 아침의 앙꽁 해변. 카리브해의 바다색과 백사장, 야자수와 파라솔이 최고의 휴양지임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다시 호텔 쪽으로 되돌아 천천히 걸으며 오는데 아까보다는 꽤 많은 사람들이 비치타올을 들고 파라솔 밑 비치의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까지 흐렸던 날씨가 오늘 아침이 되면서 활짝 개어 이제는 오히려 따가운 햇살이 카리브 해에 풍성히도 내리쬐고 있었다.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조깅을 하는 사람, 비치 의자에 기대 앉아 책과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는 사람, 백사장을 뛰어다니다가 물가로 달려드는 아이들, 푸른 파도를 가르며 달려나가는 하얀 보트들이 이곳이 휴양지임을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아침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물 속에서 노는 사람보다 해변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게 오히려 한결 더 여유로워 보여 카리브해와 어울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앙꽁 비치를 즐기는 사람들. 바다에 뛰어들어가 노는 것보다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일행도 카리브 해를 즐겨보기로 했다. 우리 일행 중 일부는 호텔로 들어가 수영복을 갈아 입고 나와 바다로 들어갔다. 햇살을 받아 눈부신 에메랄드빛 바다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도사님은 파라솔 밑 비치의자에 앉았다. 비치의자가 무색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마치 폭포를 맞으며 도를 닦는 도사님처럼 비치의자 위에 두둥~하는 효과음이 날 정도로 정좌를 하고 있었다. 이건 뭐 카리브 해를 바라보며 세상의 온갖 유혹을 참아내며 도를 닦는 쿠바도사님이라고나 할까?ㅋㅋ  나는 이런 환상적인 해변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다며(내 고향은 제주도이다. 훗~) 도사님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즐기는 우리 일행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12시 정도까지 그렇게 우리 일행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해변을 즐기며 앙꽁의 참맛을 느끼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뜨리니다드로~ 그런데 이런?!

   12시에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이런~! 식당 오픈이 12시 30분이었다. 30분만에 후딱 점심을 먹고 가보자고 얘기는 했지만 오전에 해변에서 신나게 놀고 온 터라 생각보다 많이 먹게 되었고, 그보다는 이 여행의 즐거움과 앞으로 남은 일정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인한 수다가 너무 길어져 시간은 1시를 넘기고 말았다. 결국 1시 버스를 타지 못했고 근처에서 대기하던 꼴렉띠보 택시를 흥정해서 타보기로 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은 1인당 2쿡을 달라며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괜히 우리를 이상한 듯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기사들 말에 의하면 트리니다드 가는 버스가 1인당 2쿡이기 때문에 그 이하로는 안된다는 것 같았다. 우리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관광지라 해도 너무 비쌌다. 게다가 버스비가 2쿡이라니! 우린 아바나에서 시내버스를 1쿡 내고 7명 전부 다 탔던 경험이 있는데 이건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고 택시 안 탄다며 살짝 물러서 있었다. 이쯤되면 저쪽에서 다시 흥정이 들어와야 하는데 기사들 역시 시큰둥했다.

택시를 흥정하는 우리 일행. 택시기사들은 너무도 태연하게 우리의 흥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세와 표정이 증명하고 있다.

   아무래도 무언가 심상치 않아 프론트에 가서 버스 시간과 요금을 묻기로 했다. 물어보니 버스는 2시에는 없고 3시에 오며 버스비는 1인당 2쿡이라고 호텔직원이 알려주었다. 머쓱한 표정을 하고 돌아온 나는 조용히 일행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우리는 결국 7명인데도 16쿡을 주고 택시 두대에 나눠타고 트리나다드 시내로 갔다. 2쿡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자하니 하필이면 버스가 2시 정각에는 없고, 택시는 손님을 꽉 채워 가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유령인간 1인분 2쿡을 더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8명 분의 요금을 내며 30분 가량을 달렸고 뜨리니다드의 중심지로 달려 갔다.


작고 예쁜, 그리고 여유로운 마요르 광장

   우여곡절 끝에 2시경 우리는 뜨리니다드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아바나 중심지와 눈에 띠게 달랐던 점은 그래도 이곳의 거리는 건물들의 크기는 작지만 집마다 색깔들이 알록달록 잘 칠해져 있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여행자들도 많았지만 현지인들도 밝은 표정으로 거리에 많이 나와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며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 마요르 광장을 찾아갔다.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은 정원과 혼합된 형태의 모습이다. 주변에 의자들이 놓여있어 거기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며 게으름을 피우기에도 좋다.

   드디어 ‘마요르 광장(Plaza Mayor)’에 도착했다. 광장 중심에는 작은 공원이 있고 공원 중심에는 야자수 몇 그루가 매끈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그 아래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뮤즈 여신상이 있다. 공원 둘레로는 하얀 칠이 되어 있는 철제 벤치들이 있고 그 벤치에는 관광객이라기보다는 현지인들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휴식을 하고 있었다. 광장 둘레에는 새로 색을 칠한 듯한 새로 정비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전면에 보이는 ‘성 트리니다드 교회(Iglesia Parroquial de la Santisma Trinidad)’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박물관이다. 교회 바로 옆으로는 19세기 고급 생활용품을 모아두었다는 ‘로만틱 박물관(Museo Romántico)’이 있고, 이 외에도 단층 또는 이층으로 된 나즈막한 건물들이 모두 박물관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 일행은 전파송출탑으로 길을 잡아 나섰다. 여행책자에서 트리니다드 전경을 살펴볼 수 있으며 우선 이곳부터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고 추천했던 곳이기 때문에 주저없이 20여분간의 산행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마요르 광장의 풍경.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여유롭게 벤치에서 책을 읽는 사람만큼이나 그 앞에서 여유롭게 졸고 있는 개 한 마리였다. 북적거림보다 여유가 넘치는 광장이었다.


전파송출탑으로 가며 만난 사람과 풍경들

    마요르 광장을 벗어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었다. 마차를 타고 일을 나서는 사람, 새롭게 건물을 짓는지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 여행객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작은 물건들을 내놓고 팔고 있는 사람, 아이들이 뛰어놀 것 같은 작은 유치원(?, 확실하지는 않다.) 등... 동양인들이 이곳에 나타나니 그들도 우리가 신기했는지 간단한 인사도 하고 웃으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보다는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즐겁게 대답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와중에도 직진님은 그들에게 송출탑으로 가는 길을 묻곤 했다.

산길을 찾아가는 중에 만난 사람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다를 바 없었다. 조금더 표정에 여유가 있긴 하다.

   마을 길과 현지인들을 다 지나치고, 돌을 깔아 도로를 만든 작은 길들을 다 빠져나가니 드디어 산길이 앞에 섰다. 작은 정자가 보였고 그 우측으로 산길이 이어져 있었다. 일행들은 슬슬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쯤 올랐을까? 산불이 났었는지 새카만 숯과 재로 변해버린 숲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간쯤에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벙커가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꽤 올라왔는지 트리니다드 전체의 모습이 슬슬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벙커 위로 올라가면 잘 보일 것 같다며 그쪽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일행들은 송출탑을 향해 묵묵히 걸었다. 벙커 위에서 내려다보니 가려지는 것 없이 트리니다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산길을 조금만 올랐는데도 뜨리니다드 전경이 확 트였다. 멀리 카리브해를 바탕으로 오밀조밀한 모습이었다. 멀리서 볼 때가 역시 아름답다!


   카메라에 풍경을 담고 벙커를 내려와 다시 길에 서니 뒤늦게 대박님이 올라오고 있었다. 둘은 그곳에서 만나 길 중간에 퍼져 앉았다. 그리고는 나머지 다섯 명에게 끝까지 갔다오라고 보냈다. 앉아서 맞이하는 산바람은 시원했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모자도 벗고 물을 꺼내 목을 축이니 그 시원함에 몇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대박님과 내가 그곳에서 담소를 나누는데 현지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힘차게 올라오고 있었다. 앉아있는 우리를 보더니 송출탑까지 꼭 올라가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이 남자는 영어를 사용했다. 물론 이상한 발음과 억양이었지만~) 뜨리니다드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펼쳐질 것이며 송출탑 뒤로는 국립공원의 모습이 멋있게 보일 것이라고 했다. 알겠다고 고맙다고만 하고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 우리를 보더니 다시 또 씩씩하게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 남자보다 더 먼 곳에 우리 일행이 보였다. 송출탑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그것과 반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오는 캐나다 여행자 두 명도 보였다. 역시 송출탑까지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너머의 풍경도 꽤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우리가 꼼짝할 기미를 안 보이자 쿨하게 돌아서서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서도 등산을 싫러하는 나의 기질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래도 그 언덕길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뜨리니다드를 내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이 즐거웠다.

산길을 오르는 사람, 그리고 내려가는 사람. 이 자체가 멋진 풍경이었다. 다만, 불타버린 나무 풀 숲이 안타까워 보였다.

   얼마 뒤 올라갔던 일행들이 내려왔다. 거기서 맛난 음료를 마시고 왔다고 했고 트리니다드의 전경을 보았노라고 했다. 뒤쪽으로 가면 국립공원도 보인다는데 보았냐고 물었더니 리둥절해 하면서도 보았다고 농을 쳤다. 힘들게 끝까지 올랐으면서도 거기까지 왜 갔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다. 다시 모두 만나 길을 내려왔다. 올라가면서도 보았던 클럽 표지판 하나가 내려올 때도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이곳 클럽의 양대 산맥 중의 하나인 ‘클럽 아얄라(Club Ayala)’이다. 마치 지하 동굴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여행책자에서 내부 공사중이라며 누군가 방문했을 때는 다시 오픈해 있기를 기원했지만 여전히 문은 닫혀 있었다. 같은 소원(?)을 우리도 남길 수밖에...(이제는 재오픈을 했으려나?)

클럽 아얄라의 입구. 계단을 내려가면 쇠창살로 막혀있는 입구가 있다. 언젠가 저 곳을 통해 흥겨운 음악들이 흘러나오겠지.


뜨리니다드 동네의 일상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마차도 많았고 말을 타고 가는 사람도 많았다. 풍경에 넋을 빼앗겨 길을 걷다 보면 길 바닥에 있는 말똥을 발견하지 못하고 밟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다. 마을 안길이라 그런지 자동차는 거의 없고 주로 말을 타고 다니거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아니면 걷는다. 다만, 걸어가는 속도가 우리보다는 훨씬 느리다. 그렇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은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보는 우리의 걸음이 무언가 바쁜 것에 늘 쫓기는 것 같은 빠름으로 느끼게 하는 정도의 느낌이다. 물론 여기서도 뛰어다는 이들은 있다. 아이들이다. 골목길에는 역시 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기회를 포착(?)한 대박님은 가방에서 먹을거리들 꺼내어 그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치 동네 어른이 아이들 귀엽다며 호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어 주는 듯이~


뜨리니다드 마을의 골목길 풍경. 사람사는 모습이 정겹다. 정은 이 사람들에게서 우리에게로 전염되는 듯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남자의 이끌림에 당해서(?) 높은 첨탑에 올라갈 기회를 얻었다. 별 생각없이(사실은 나중에 얘네들이 돈을 달라고 할 텐데 라는 걱정을 하면서) 계단을 타고 올랐다. 우와~ 그 옥상에서 이곳 마을 풍경이 촤악 내려다 보이는 것이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우선 높이 솟아있는 ‘LCB박물관(Museo Nacional de la Lucha Contra Bandidos)’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대부분 건물의 지붕을 덮고 있는 적갈색 기와가 인상적이었다. 와~ 하는 감탄사 일행들에게서 터져나왔다. 하얀색과 푸른색이 아름다운 곳이 산토리니라면 이곳의 풍경 또한 적갈색의 아름다움이 주변의 산과 흐린 하늘과 제법 잘 어울렸다. 아마 푸른 하늘이었어도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적갈색 기와를 지붕으로 얹은 낮은 집들이 어깨를 맞닿은 채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산토리니와는 달리 눈을 편안하게 하면서 차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도자기 명인의 집이 이곳 트리니다드에 있다고 할 정도니까 이곳의 흙은 도자기 굽기에 안성맞춤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 같은 색 지붕을 한 모습이 눈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드러난 길에는 오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하나씩 하나씩 보였다. 크게 부유해보이지 않는(오히려 가난해 보이는) 이곳 현지인들의 생활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부지런히 담았다. 집에 무언가 고칠 것이 있는지 나무를 싣고 수레를 밀고 가는 건장한 아저씨, 자전거를 끌고 느릿하게 걷는 사람, 무엇에 그리 신이 났는지 까불거리며 쫓아오는 아이를 챙기며 어디론가 가는 엄마, 또 카메라를 짊어지고 이곳으로 여행을 온 외지인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창 밖으로 구경하는 사람들... 아바나가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면 이곳은 어느 잘 정돈된 시골 마을의 정겨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가벼운 미소와 함께 카메라 셔터가 연신 눌려지고 있었다.

뜨리니다드 골목길의 사람들. 차분한 미소가 지어지게 한다.

   구경을 마치고 첨탑에서 내려오는데 역시 1층에서 우리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이럴 땐 또 용감한 우리 대박님이 나서서 일을 해결한다. 돈은 잘 모르겠고 볼펜을 하나 주겠노라고 협상을 걸었고, 그들은 모자도 달라고 요구했지만 좀더 좋은 비싸 보이는 볼펜을 하나 주고 우리의 출입비용을 그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우연히 만난 동네 초등학교

    그곳에서 나와 조금더 이동하다보니 아주 조그만 나무로 된 간판에 학교임을 알리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초등학교인 듯 싶었다.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어린 아이 하나가 선생님 앞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그 장면을 들여다보는 우리를 본 선생님은 우리의 학교 구경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우리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노트와 색연필, 수첩들을 꺼내어 이 학교에 모두 기부를 했다. 준비해왔던 그 물건들이 제대로 주인을 찾은 것 같아 너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 학교의 정문(맨 오른쪽)

   그리고는 학교 구경을 했다. 학교는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운동장은 없었고 교실도 작았다.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 이렇게 세 개의 교실이 있었고 작은 건물에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건물 뒤편으로는 작은 정원 쯤으로 보이는 야외 공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놀기에는 좁은 공간이었고 그곳에는 쿠바의 국기와 함께 혁명 영웅들의 그림과 동상이 서 있었다. 아까 공부하던 그 꼬마가 정원으로 나왔고 직진님과 함께 사진 모델이 되어 주었다. 일행들이 학교 구경을 대략 마치고 나오려는데 아까 그 꼬마가 다시 선생님 앞에서 무언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초코바를 몇 개 주었다. 밝게 웃더니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다시 표정이 굳었다. 귀여웠다 ㅎㅎ.

학교의 운동장(?)이라고 하기에는 정원에 가깝다(왼쪽), 생각보다 작은 교실의 모습(오른쪽)
교실에서 공부하던 아이, 아마도 나머지공부를 하고 있었나보다. ㅎㅎㅎ


살사 음악이 넘쳐나는 여행자들의 클럽

   그렇게 골목길들을 돌아다니다가 작은 광장에서 휴식을 했다. 이 광장은 동네 사람들의 휴식공간인 듯 싶었다.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뛰어다면 놀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이곳에서 다리를 쉬고 나서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마요르 광장 성 뜨리니다드 교회 옆에 있는 ‘까사 데라 무지까(Casa de la Musica)’이다. 앞서 보았던 클럽 아얄라와 함께 아주 유명한 곳이다. 탁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 앞에 다다르면 이곳을 오르는 계단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오가는 여행자들이 계단 어디쯤이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살사 음악 소리! 그리고 위쪽 클럽 바로 앞 계단에 앉아 내려다보는 이른 저녁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까사 데라 무지까(Casa de la Musica)의 모습. 서쪽을 바라보는 계단을 오르면 흥겨운 살사음악과 시원한 맥주를 만날 수 있다.
계단 중간쯤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 카메라에 그 분위기를 다 담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 중간쯤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맥주와 음료를 주문했다. 시간이 4시 30분인데도 사람이 무척 많았다. 더위 속에 걸었던 피로가 서서히 씻겨 내려갈 즈음 무언가 부산스러운 느낌이 들어 위쪽 무대를 바라보았다. 무지까 클럽의 밴드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5시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열정적인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사진을 찍고 음악을 녹음해보았다. 젊은 흑인 가수와 휠체어 앉은 나이든 노인의 음색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클럽밴드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청년들의 재즈 음악 합주와 음색이 저녁 분위기를 한껏 돋워주었다.
다양한 나이대의 세션맨들. 이곳에서 피부색도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음악 하나로 이렇게 조화로울 수 있는 곳이다.

   그 와중에 일행 중 일부가 근처 공예품시장에 다녀온다고 길을 나섰다. 유쾌님과 총무님, 도사님 등은 시장보기(?)에 나섰고, 나머지 일행들은 슬슬 석양을 향해 가는 하늘과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클럽 아래쪽의 풍광과 흥이 넘쳐나는 쿠바의 라이브 음악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맥주의 맛에 취해가고 있었다. 


시장에서 물물교환을 하다

  한 시간여를 그곳에 흥취에 빠져 있었는데 5시 반이 훌쩍 넘어서야 장보기를 마친 일행들이 돌아왔다. 시장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기념품들도 많다고 했다. 클럽에 앉아 음악과 맥주를 즐기던 일행들의 눈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일행이 함께 다시 공예품 시장으로 갔다.

공예품 시장의 모습. 다양한 기념품들이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클럽 무지까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많은 판매대들이 보였다. 위쪽과 아래쪽으로 난 골목으로 쭈욱 판매대들이 늘어서 있었고 위쪽은 포기하고 아래쪽으로 우리 일행은 길을 잡았다. 다양한 수제 목각 인형과 각종 장신구, 이미 보았던 자석 공예품이나 컵받침 종류도 있었고, 티셔츠나 모자를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기념품들을 구입했다. 

   그런데 총무님은 쓰고 갔던 모자를 물물교환에 성공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쿠바인 만큼 야구모자를 준비해서 쓰고 갔었는데 모자와 기념품을 팔던 한 상인이 그 모자와 자신이 판매하는 기념품과 바꾸자고 했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많은 쿠바에서는 MLB모자가 매우 귀한 모양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반전님이 자신의 모자도 한번 바꿔보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정식 야구모자가 아니라는 점인데.... 물론 'TEXAS'라는 문구가 선명하긴 하지만... 가능할까? 다시 그 상인을 만나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갸우뚱했다. 텍사스라는 문구를 무지하게 강조했더니 바꿔준다고 했다. 단, 아까 총무님의 LA 모자와는 급이 조금 떨어지는 기념품으로 바꿔준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미국 지명이 적힌 모자를 주고 쿠바군의 혁명 모자와 기념품으로 물물교환에 성공했다. 기념품 구입도 재미있었지만 물물교환이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곳 쿠바에서는 야구모자가 대박상품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역시 야구의 나라, Cuba~!!


살사의 나라답게 연주자를 표현한 예쁜 목각인형이 많았다. 총무님은 모자와 기념품을 MLB모자와 물물교환했다.


저녁의 뜨리니다드 골목길

   장터 투어를 마치고 6시 반쯤 ‘까리히요 광장(Plaza Carrillo)’으로 향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집들의 알록달록한 색깔과 한 폭을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쭈욱 늘어선 집들을 물들인 색깔과 하늘을 물들인 노을의 조화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렇게 골목을 걸어가던 중에 어느 집 벽면에 ‘Cuba’라는 문구가 새겨진 벽화가 있었다. 원색 하나로 칠한 다른 집과 달리 CUBA라는 글씨를 한껏 멋들여 색칠해 놓았다. 그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일행들이 모여 들었다. 때마침 길 가던 개 한마리가 너무나도 무심하고 느긋하게 우리 앞을 지나가 한 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집 주인의 정성이 돋보인 벽화. 그 앞을 느긋하게 지나가는 개 한 마리.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다시 광장을 향해 걷다보니 길거리에서 먹을거리를 파는 곳이 눈에 띄었다. 도넛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가느다란 수제 추로스 같기도 했다. 반죽을 쭈욱 길게 짜내서 둥그렇게 말리는 채로 그대로 기름에 튀겨 설탕을 묻혀서 파는 것이었다. 현지인들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맛을 보기로 하고 우리도 구입을 했다. 바삭한 겉면에 부드러운 안쪽 식감에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꼬불꼬불한 추로스라고 해야 할까? 정복을 차려입은 요리사의 포스만큼이나 맛있는 간식이었다.

   날이 이미 어둑어둑해질 즈음에 광장에 도착했고 서쪽 하늘로는 진한 저녁 노을이 가득 차 있었다. 광장 입구 왼편으로는 시 청사가 보였고 광장 중앙에 있는 철제 돔에는 푸른 덩굴이 오르고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마요르 광장에 비하면 한산하고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광장 앞쪽으로는 저녁 노을과 함께 붉은 조명을 밝힌 야외 극장이 보였다. 일행들이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고 있는 사이에 직진님은 택시를 잡으러 광장 일대를 수색(?)하러 떠났다.

까리히요 광장(Plaza Carrillo). 저녁 시간 무렵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 공원의 한적함을 맛볼 수 있었다.
시 청사(왼쪽)와 야외 극장(오른쪽). 적도의 노을은 티없이 아름답다. 미세먼지가 없어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올드카 택시에는 몇 명이나 탈 수 있을까?

   얼마 후 붉은 색 올드카 하나와 함께 직진님이 도착했다. 시간이 좀 흐른 것으로 보아 구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나 보다 싶었다. 5명이 타는 조건으로 8쿡에 섭외를 했다는 것이다. 올 때에 비하면 같은 가격에 한 명이 더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사가 문을 열어 주며 우리 일행을 태우는데 보니까 우리 일행이 7명이었던 것이다. 기사는 한꺼번에 다 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7명 전체를 10쿡에 가능하겠냐고 했더니 오케이를 했다. 그래서 그 차에 모두 다 타보기로 했다. 앞 좌석에 기사 포함해서 3명이 뒷좌석에 5명이 끼어서 탔다. 원래대로 5명이 타면 넉넉할 만큼 내부 면적이 다소 큰 올드카였지만 8명이라니... 당연히 뒷좌석은 비좁았고 몸을 한껏 웅크려서 탔다. 유쾌님은 반전님 무릎에 올랐고 가운데에 앉은 나도 의도하지 않게 수줍은 소녀의 자세가 되었다. 그 상태로 20분 가량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킥킥 대면서 이런 경험도 처음이라며 사진 찍기도 시도하며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뒷좌석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뒷좌석에 앉았던 5명은 저절로 ‘어이쿠’, ‘어후~’하는 감탄사가 나왔고 나는 다리가 저려 힘을 주지 못해 비틀거리며 주저앉을 뻔도 했다. 대박님의 가방에서는 또 수첩이 하나 나왔고(대박님 가방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ㅎㅎ) 그 수첩을 받은 택시기사는 무척이나 좋아하면서 고맙다며 대박님과도, 직진님과도 포옹을 진하게 했다. 유쾌하고 흥 많은 쿠바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기사까지 포함하면 총 8명이 이 올드카에 함께 타고 20여분을 달려 호텔까지 왔다.  기사가 제일 유쾌했는데 운전하는 사람이 제일 편했기 때문은 아닐까 ㅋㅋㅋ


  막판까지 재미있는 추억을 남기고 이날의 자유여행은 막을 내렸다. 여유와 흥이 넘치는 쿠바의 모습을 마음껏 즐긴 하루였다.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휴양지의 맛을 느꼈고 이곳 사람들의 여유로운 일상을 보았다. 그런 흥과 여유는 어느덧 이방인인 우리까지 물들이고 있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고 하던데 그 행복이라는 것은 돈의 문제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곳 쿠바의 사람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느리게 살면서 일상에 쫓기지 않고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하며 음악과 일상을 함께 하는 삶. 쿠바의 행복은 그렇게 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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