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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Dec 09. 2021

[쿠바 #5] 쿠바 역사의 흔적을 걷다

역사와 혁명의 장소들을 만나다.

길을 따라 걷다가 만나게 되는 신기한 인연들

  배도 부르겠다... 이제 다시 길을 나섰다. 까마라 오스꾸라 전망대(Camara Oscura) 옆으로 난 작은 길을 택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미용실 앞 유리창에 익숙한 얼굴 사진이 붙어 있었다. 반기문 UN사무총장! 금발의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다소곳이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기해하며 왁자지껄하는 우리 일행을 본 미용실 직원 하나가 나왔다. 꽤나 기대하는 표정으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대답했더니 바로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물어 왔다(여기선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자동으로 남인지 북인지를 물었다. 아마도 이 시기에만 해도 남한에서 온 사람을 거의 보기 어려웠으리라.). 그러더니 밝은 목소리로 2년 전(그러니까 2014년 즈음일 게다.)에  당시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쿠바를 방문했을 때 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을 하며 무척 뿌듯해했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익숙한 얼굴이 이곳에 있고 이곳 사람들이 엄지를 척하고 추켜세우니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반기문을 뒤로 하고 조금 걷다가 코너를 돌았더니 웬 동상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뜬금없기도 하고 해서 사진을 찰칵하고 찍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동상이 움직였다. 깜짝 놀랐다. 그리곤 앞에 돈통에 돈을 넣으라는 제스처를 했다. 놀라기도 했고 어이없기도 해서 후다닥 자리를 떴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넣고 올 걸 하는 후회도 살짝 들었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머리를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붙여놓은 미용실(왼쪽), 동상 아님 주의!!(오른쪽)

  길을 걷고 걷다보니 또 다른 광장이 나왔다. 산 프란시스꼬 광장(Plaza de Sán Francisco de Asís)이다.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우측에 딱 보기에도 오래 되어 보이는 산 프란시스꼬 수도원(1730년대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이 보이고 맞은 편으로는 상공회의소(Lonja del Comercio) 건물이 보인다. 앞에 보았던 다른 광장들과는 달리 두 건물로 인해 이 광장은 무언가 고풍스럽고 무게감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선 광장과는 달리 이곳은 일상을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번잡함은 없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광장 주변 건물들을 눈으로만 감상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산 프란시스꼬 수도원(왼쪽)과 상공회의소(오른쪽)을 품고 있는 광장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에 담긴 식민 역사

  광장을 가로질러 걸으니 도로가 나왔고 도로 건너편에는 바로 바다가 나타난다. 건너편 사진을 찍으려고 횡단보도 앞에 섰더니 도로를 오가는 차들이 그 앞에 모두 줄지어 섰다. 신호등이 없는 거리라 자동차들이 마구 질주할 줄 알았지만 이곳은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 서면 차들은 일단 정지하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은 듯하다. 그러고보니 어제 오늘 모든 차들이 교차로마다 일단 정지하는 모습을 쉽게 보았던 것 같다.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가 많기는 하지만(도심에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경적소리가 많다.) 그 소리들은 자기가 먼저 가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 길을 건너 바다를 만나니 가슴이 확 트였다. 오전 내내 시내의 여러곳을 걷다가 탁 트인 풍경에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그만이었다. 바다색과 하늘색이 비슷하게 서로 청량감을 뽐내는 듯했다.

산 프란시스꼬 광장을 빠져나와 만난 바다. 시~원하다~!!

  길을 건너 바다를 끼고 걷다보니 왼쪽으로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곳은 군대의 광장이라 할 만 했다. 이 곳은 18세기 말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바나에 도착해 건설한 통치를 위한 첫 번째 광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예술가들이 많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광장 중앙 정원의 저 끝으로 한 눈에 보기에도 단단하게 지은 건물이 먼저 눈에 띄었다.

아바나 국왕군 성(Castillo de la Real Fuerza de la Habana). 언뜻 보기에도 요새처럼 단단해 보인다. 광장엔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많다.

  처음에는 우리가 걸어서 찾아갈 요새의 일부분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보니 그것은 ‘아바나 국왕군 성(Castillo de la Real Fuerza de la Habana)’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부대 주둔지로 쓰이던 성이라고 한다. 단단한 석벽으로 성을 쌓고 주변에 해자(垓字)를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함으로써 외부의 침입을 방지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다리 앞에는 당시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거대하고 다양한 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희한한 것은 그 포들이 모두 성을 향해 있었다는 점이다. 왜 이런 배치를 해놓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다리를 건너 성 안으로 들어가보려 했는데 이미 이곳은 항해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주변을 돌며 성 외곽을 둘러보았는데 바다(강인가...?) 건너 모로성과 싼 까를로스 요새가 보였다. 바다로 들어와 물 양쪽으로 이런 성과 요새를 만들어 침략의 전초 기지로 만들었을 당시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성의 오른쪽이자 광장 정원 맞은 편에는 이 곳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작고 우아한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1519년 아바나의 첫번째 미사가 진행되었던 장소에 1828년에 건립되었다는 사원(El Templete)이다. 엄중한 분위기를 다소 완화시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어쩌면 아바나의 식민지 시절의 첫 시작점을 알리는 곳이고, 식민지 역사를 품고 있는 광장이고 사원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국왕군 성과 광장 공원을 끼고 들어가면 구 스페인 총독관저(Palacio de los Capitanes Generales, 직역하면 '장군의 궁전')가 나온다. 1792년에 지어진 이 곳은 스페인 정권의 소재지이자 60명이 넘는 총독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독립 후엔 한때 대통령궁으로도 쓰였고 지금은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250년 가까이 된 건물인데 그 규모와 풍채가 사람을 압도할 만하다. 나는 오히려 앞서 보았던 국왕군 성보다 이곳이 더 위압감이 느껴졌다. 분명 외관에 있는 여러 조각품(내부에는 정원 등 화려함이 더하다고 한다)이나 현무암 석재 이런 것들이 '궁전'이라 할 만큼 꽤나 화려함을 자랑하는 건물이었지만 이런 모습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해석되면서 오히려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큰 위축감을 들게 하기에 충분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앞에 펼쳐진 평화로운 광장의 모습, 그리고 사원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대비되면서 더욱 그래 보였다.

사원(El Templete)(왼쪽)과 총독 관저(오른쪽). 건물의 쓰임새만큼이나 외관도 사람에게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자유여행의 참맛은 에피소드?

  구 스페인 총독관저의 옆길을 통해 아르마스 광장을 빠져나와 다시 골목길에 나섰다. 대성당 광장으로 가기 위함이다. 가는 길에는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듬성듬성 늘어서 있고 몇몇 사람들은 길가에 나와 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다. 한 가게에 엄마와 함께 나와 있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아주 예쁘게 생긴 아이였는데 앞서 가던 일행 중 누군가가 준비해갔던 노트와 수첩을 건네 주었다. 엄마도 아이도 무척 좋아했다. 행복해 하는 소녀의 미소가 바라보는 이마저 행복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예쁜 손을 가볍게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골목길을 자유롭게 걷다가 만나는 이런 우연같은 인연이 여행의 기억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 같다. 소소한 에피소드가 가득한 여행길~ 기대와 설렘이 더욱 차올랐다.

  어린 소녀를 사진에 담고 계속 길을 걷다가 쿠바의 모습을 담은 티셔츠와 앞치마 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가 있길래 거기에 들어갔다. 나는 앞치마 하나(아내가 여행지에서 앞치마 사는 걸 좋아한다)와 티 한 장을 샀다. 역시 흥정은 해야 제맛이다. 15쿡을 달라는 티셔츠를 앞치마랑 같이 사면서 10쿡으로 흥정에 성공했다. 그랬더니 총무님도 도사님도 티셔츠를 사기 시작했다. 내일 일정에 딱 맞는, 쿠바를 생각하면 처음으로 떠올리게 되는 체 게바라가 도안되어 있는 티셔츠이다. 정신없이 일행들이 물건을 고르고 사고.... 하다가 어느 정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왔는데... 

  어랏~! 대박님이 멀찍이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안에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밖에서, 그것도 저어~쪽에서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니... 사연을 들어보니 셀카놀이에 열중하고 있던 대박님은 앞서 가던 우리가 가게로 모두 들어온 것을 보지 못했고, 뒤늦게서야 사라진 우리를 찾기 위해 비슷해보이는 사람을 좇아가기를 몇 번 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고, 우리 일행은 당연히 대박님이 뒤에서 쫓아 와서 가게에서 함께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 줄만 알았지, 일행에서 떨어져 나가 길을 헤매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하마터면 순식간에 국제 미아(?)가 될 뻔한 대박님! 정말 타이밍 기가 막히게 만났길 망정이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대박사건 하나 또 만들었다며 함께 웃으며 여정을 계속했다. 소소한 에피소드 얘기하다가 대박 에피소드 때문에 다들 깔깔대며 웃었다. 만났으니 웃었지, 못 찾았다면? ㅎㄷㄷ...


엄숙함보다 자유로움이 빛나는 대성당 광장

    10분 정도 걸었으려나? ‘대성당 광장(Plaza de la Catedral)’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일행 중 누구도 와본 적이 없는 길인데 도사님과 직진님의 길잡이는 틀림이 없었다. 진짜 도사가 될 만큼 열심히 사전 준비한 도사님, 막강 추진력과 결단력을 보이는 직진님의 통찰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정을 깔끔하게 책임져 주었다.

아바나 싼 끄리스또발 대성당(Catedral de San Cristóbal de La Habana)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대성당 광장은 나이 지긋이 먹은 듯한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어 시간을 되돌아 온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쿠바라는 나라 자체가 50~60년 전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 광장은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되돌리는 듯하다.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아바나 싼 끄리스또발 대성당(Catedral de San Cristóbal de La Habana)’은 아메리가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한다. 건축기간도 약 40년이 걸려 1787년에야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성당 양 옆으로 종이 있는 타워가 있는데 1인당  1CUC을 내면 타워의 계단을 올라 종도 보고 성당 광장과 주변 도시를 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우리 일행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너무 많이 걸은 탓에 타워 끝까지 걸어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광장 주변에 앉아 그윽히 바라보는 데 만족했다.

  하지만 총무님의 설명을 듣고 찬찬히 성당을 바라보니 설명에 비하면 대성당이라고 하기에는 성당의 규모가 유럽의 웬만한 대성당들과 비교했을 때 무척 소박한 모습이었다. 그 소박함이 신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친근함을 유발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성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자유롭고 스스럼없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화려함으로 무장하고 기념품 좌판을 펼쳐놓고 뜨게질을 하는 아주머니나 성당 앞에서 음악에 맞춰 살사를 추고 있는 사람들, 한 쪽 옆에서 뜨거운 입맞춤을 하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 심지어는 뜨거운 햇살에 지친 개 한 마리가 그늘 바닥에 제멋대로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들, 이 모든 것은 성스러운 성당 앞의 풍경과는 다소 멀어 보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편안함으로 대성당 광장의 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의 종교는 왠지 이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우리 일행도 이곳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사진찍기 놀이를 조금 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다는 듯 뜨개질에 몰두하는 한 아주머니(왼쪽), 연인들의 애정 표현도 이곳에선 자유롭다(오른쪽)

   다시 길을 나섰다. 시간은 오후 네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걷기 시작해서 이 날의 모든 일정은 거의 다 걸어서 소화하고 있었다. 바다 쪽으로 나가는 길 한 쪽에서 아이들 넷이 조그만 테니스 공 하나를 갖고 놀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곳 학교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있을 것 같은 운동장이 거의 없다. 학교 두 곳을 방문해 보았지만 어느 곳도 운동장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을 주변 공터만 있으면 그곳에서 끼리끼리 어울려 놀곤 했다. 우리의 예전 모습도 그렇게 골목에서 아이들은 크지 않았나 싶었다.

공 하나를 갖고 또래들과 어울리는 아이들. 사뭇 진지한 표정이 보는 이의 미소를 자아낸다.

 

쿠바의 바다를 끼고 걷는 길 ; 군사시설과 아이들...

  이제 남은 일정은 바다 쪽을 향해 걸으며 요새 하나와 그 유명하다는 말레꽁을 보는 것이었다. 다시 바다를 만나 산 살바도르 요새를 향해 걷는데 바람이 무척 거셌다. 그새 날씨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물결이 무섭도록 넘실대서 물 건너편 산 까를로스 요새는 범접할 수 없는 곳처럼 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람을 타고 물새들은 이따금씩 날고 있었고 방파제를 때리는 격렬한 파도처럼 연인들의 사랑도 곳곳에서 뜨거웠다.

바다는 무척 거친 모습으로 얼굴을 바꿨다.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은 막지 못한다.

  방파제를 맞닿은 곳에 또 작은 공원이 보였다. 동상 아래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올라가 놀고 있었고 한 옆으로는 마차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탕이나 초코바를 무척 좋아함을 이미 경험한지라 이번에는 도사님이 가지고 갔던 초코바를 동상 앞 아이들 앞에서 오픈하였다. 아이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고 초코바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뒤늦게 마차 근처에서 놀다 뛰어온 아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도사님만 쳐다보고 있었다. 안타까움이 반, 약간의 두려움이 반이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무섭게 몰려들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암만 훌륭한 사람의 동상일지라도 아이들에겐 그저 놀이터일 뿐.

   바람과 아이들의 거센 저항(?)을 뚫고 멀리 보이는 산 살바도르 요새가 가까워질 무렵 길 건너편 바다와 강이 맞닿는 그 곳에 서 있는 모로 요새의 등대로 부딪치는 바다의 파도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쿠바로 떠나기 전 쿠바는 겨울에는 건기이고 여름 날씨처럼 덥다는 정보를 알고 왔는데 정작 이 날은 날이 흐리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길 좌측으로는 쿠바 독립전쟁의 영웅 막시모 고메스의 동상이 말을 탄 채 바다를 바라보는 멋진 모습으로 서있고 그 뒤편으로 혁명박물관과 스페인 대사관이 보였다. 말을 타고 바다 쪽을 바라보는 쿠바 독립 영웅의 동상 뒤로 과거 점령국이었던 스페인의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이 조금은 씁쓸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광장 맨 앞에 바다를 바라보며 늠름하게 서 있는 막시모 고메스의 동상. 뒤편 스페인 국기와 묘하게 대비되었다.

  길을 계속 걸어 ‘산 살바도르 요새(Castillo de San Salvador)’에 도착했다. 요새는 낮고 단단하게 지어져 있었다. 돌벽을 쌓아 올려 외곽벽을 단단히 했고 강 하구와 바다 쪽을 맞닿아 있으며 건너편 모로 요새, 산 까를로스 요새와 함께 만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산 살바도르 요새 앞에는 동상 하나와 포 두 개가 아바나 시내를 바라보며 지키고 서 있었다.

‘산 살바도르 요새(Castillo de San Salvador)’ 흐린 날씨와 방파제를 넘어오는 세찬 파도가 요새의 굳건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런데 그 앞으로 다가서려 하자 지키고 있던 군인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다가오지 못하도록 제지하고 있었다. 요새를 보호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거센 파도 탓에 안전을 위해 그런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긴 파도가 너무 거세 난간 벽돌을 날려버릴 만큼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아쉬움을 남기고 말레꽁을 향해 보려 했으나 그곳 역시 갈 수가 없었다. 거센 바람이 파도를 방파제 너머로 겁이 날 정도로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차량 또한 통제되고 있었다. 아바나의 명물인 말레꽁을 저녁 무렵을 걷고 싶은 희망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거리를 지나던 한 가족이 통제된 도로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었고 즐거운 듯 밝게 뛰노는 네 아이들의 모습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통제된 도로를 맘껏 즐기는 아이들.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일행이었다.

  건너편에 있는 ‘모로 요새(Castillo del Morro)’와 ‘산 까를로스 요새(La Cabaña, Castillo de San Carlos)’, 그리고 길 걸어오며 반대편으로 보였던 거대한 예수상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으나 그곳으로 가려면 지하터널을 지나가야 하는데, 엄청난 매연을 뿜어내는 올드카들이 많은 이 곳에서 지하터널을 걸어서 넘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버스를 타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 방법도 잘 찾지 못해 그냥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폭풍과, 거센 파도와 맞서 싸우는 듯한 모로 요새.


혁명박물관을 찾아 갔으나... 아~ 아쉬워라~

  발길을 돌려 바다를 등지고 시내쪽을 향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혁명박물관(Museo de la Revolucion)’이다. 산 살바도르 요새에서 작은 광장을 지나 혁명박물관 앞 대광장을 지나면 나타난다. 이 혁명박물관 앞 대광장은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10살이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들부터 고등학생도 훌쩍 넘어 보이는 청년들까지 광장 곳곳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니 그 많은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데도 질서가 있었다. 이른바 실력이 좀 되는 1부리그(?ㅋㅋ) 아이들은 가장 넓은 중앙무대를 차지하고 있었고 실력이 부족한 풋내기들은 양 옆쪽 작은 공간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그 어린 풋내기들도 몇 년 뒤면 점점 중앙무대로 나갈 것이고 또 어느 순간이 되면 진짜 축구무대로 나갈 수도 있겠지 싶었다. 야구의 나라 쿠바이지만 축구를 즐기는 모습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축구를 즐기는 여러 무리의 아이들. 나이대별로 수준별로 따로 모여 공을 차는 모습이었다.

  광장을 지나자 잊고 있었던 시끄러운 경적소리들이 들리고 그 도로 너머에 혁명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었다. 박물관 바로 앞에는 예전에 지었던 성벽의 모퉁이 첨탑(?)이 하나 덜렁 남아 있었고 그 옆으로는 혁명 당시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탱크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다.

혁명박물관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무너진 성벽의 일부가, 오른쪽에는 전차가 있다.

   박물관 건물은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규모도 꽤 커 보였다. 원래는 대통령궁으로 쓰이던 곳인데 혁명 이후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쿠바 혁명과 관련된 많은 자료가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비싼 입장료 탓이 아니라 이미 입장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박물관 입장 마지막 시간이 오후 4시였고,  우리는 너무도 느긋하게 여기까지 둘러볼 만큼 둘러보며 왔다. 많이 아쉬웠다. 물론 들어갔다고 해도 스페인어 한 글자도 모르는 우리가 그 설명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느긋한 개 한 마리가 입구를 망연스레 쳐다보고 있는 것이 꼭 우리 모습 같은 느낌이었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서 슬슬 배도 고파와서 적당히 저녁 식사를 할 곳도 찾아야 하고 다시 까삐똘리오 근처로 가서 호텔로 돌아가기 위한 택시도 잡아야 했다. 혁명박물관 우측으로 난 대로를 걷다 보니 쿠바 혁명 당시에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비행기와 탱크, 차량 등 여러 전쟁 무기들이 박물관 옆 뜰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박물관 뒤편으로 유리벽으로 보호된 곳에 배 한 척이 보였다. 그란마(Granma)이다. 혁명 당시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그리고 라울 카스트로 등 무려 82명이 타고 1959년 쿠바에 상륙했던 배이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 커보이지 않는 그 배에 82명이 어떻게 탔을까? 이거 마치 경차에 20명이 탄다는 얘기랑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혁명에 대한 강한 열망이 그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걸까...? 의아심과 존경심을 느끼며 국립미술관 쿠바관을 지나 대로를 벗어나기로 했다.

전시된 혁명 당시의 무기들. 유리 안쪽으로 그란마가 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쿠바 사람들

   아바나 시내의 도보 투어의 첫날 목적지는 거의 다 돌아 보았다. 이제 다시 베다도의 숙소로 돌아갈 일이 남았다. 많이 걷긴 했지만 그래도 골목길을 통해 차이나타운 거리를 걸어보기로 다. 골목길을 지나다 보니 도심 뒤편 진짜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이 보였다. 걸으며 만난 쿠바인들은 대체로 흥이 많고 대화를 즐겼다. 높은 목소리톤으로 즐겁게 얘기하고 웃으며 우리를 대해주었다. 주변 물들의 이층, 삼층 발코니에는 많은 빨래들이 여전히 널려 있었고, 일부(까사 주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는 이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작은 시장이 나타났다. 아주 오래된 우리의 전통 재래시장 느낌이었다. 냉장되지 않은 생고기를 뭉텅뭉텅 잘라 종이에 싸서 파는 모습, 몇몇 가지 채소와 과일들을 소박하게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그러다가 작은 리어카처럼 생긴 것에 오렌지를 올려놓고 팔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앞서 가던 일행들이 그 아이들에게서 오렌지를 샀다. 아이들은 즉석에서 껍질을 까는 단순한 기계로 껍질을 벗겨내어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푸른 색이 도는 껍질을 벗겨내어 하얀 속껍질이 남은 채로 반을 잘라서 주었기 때문에 먹기에 편하지도 않았고 맛도 많이 시큼했지만 아이들의 밝은 웃음에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대견해 보였는지 직진님은 아이들에게 노트를 나누어 주었고 아이들은 또 이내 행복한 표정을 보였다. 사진을 찍자는 말에 멋진 포즈를 취해주는 아이들, 함께 사진을 찍은 반전님의 표정에도 해피한 웃음이 피어났다.

   차이나타운에 들어섰지만 중국인을 만날 수는 없었다. 말만 차이나타운이지 사실 여타의 다른 차이나타운처럼 중국풍을 느낄 수는 없었다. 여행책자에는 몇몇 중국음식점이 있다고 하지만 간판이 따로 잘 없기 때문에 찾기는 쉽지 않았고 이곳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과 시장(마트라고 해야 할까? 건물 1층 실내에 있다)이 곳곳에 있었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면서 걷고 있는데 총무님과 도사님이 웬 여인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여인은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좇아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예전에 한국에 다녀왔다면서 영어로 자꾸 “Bulcho”라는 단어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스페인어인가 영어인가 헷갈리고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한국에서 벌초 문화를 인상깊게 보았다고 했다.(그래서 우리는 그 여인을 ‘벌초’라고 불렀다. 마치 산초의 동생인 듯한 그 이름, 벌초! ㅋㅋㅋ) 그러면서... 결국은 신을 믿으라는 얘기로 마무리되었다. 그 얘기를 듣느라고 그 둘은 그렇게 붙잡혀 있었다. 마치 서울 어느 지하철 역 출구에서 붙잡혀서는 “도를 아십니까?”로 시작하는 그 얘기를 듣듯이 말이다. 즐겁고 웃긴 해프닝이었다. 자유여행은 바로 이런 맛!! ㅎㅎ

쿠바의 Bulcho 여인.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었다. 정말 새로운 유형의 사람~ ㅎㅎ

   걷고 또 걸어 아침에 보았던 차이나타운 표지를 거꾸로 나와서 광장에 들어섰고 줄지어 서있는 택시들에 다가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 7명을 태우고 베다도(Vedado) 지역에 있는 우리 호텔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기사는 15쿡을 달라고 했다. 책에 나와있는 대략의 가격보다 비싼 듯하여 흥정을 시작했는데 기사는 도통 가격을 낮추지를 않았다. 이럴 때는 과감이 “나 안해”하고 물러서야 흥정이 되는데... 어떻게든 낮춰보려는 직진님의 애틋함이 안타까웠다. 결국 그 기사를 포기하고 다른 기사를 접촉했는데 그 기사도 15쿡을 불렀다. 지프차를 개조해서 뒤가 뻥 뚫려 있고 문도 없는 그런 꼴렉띠보 택시인데 15쿡이라니... 총무님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암울해 있었다. 알고보니 총무님은 1인당 15쿡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전체가 다 이동하는 데 15쿡이란 걸 안 총무님은 “에이 뭐야? 그냥 타, 타자구~!”를 외쳤다. 한 바탕 웃음이 터지고 우리 일행은 그 택시를 탔다. 그런데... 아... 매연~! 뒤쪽 창이 없기 때문에 차에서 나오는 매연을 맨 뒤쪽에 앉은 총무님, 대박님 등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택시는 거침없이 달렸고 말레꽁 옆 도로로 달려가는 듯 하더니 경찰들의 통제 때문에 방향을 틀어 시내 도로를 가로질러 달렸다. 언뜻 보이는 풍경이 놀라웠다. 파도가 얼마나 거셌는지 말레꽁 가까운 도로 일부가 물에 잠겨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찰이 통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 길을 우리는 걷고 싶어했으니... 어마무시한 날씨에 놀라워하며 택시는 까만 매연과 함께 숙소를 향해 달렸다. 날이 이미 어두워진 오후 7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호텔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온 꼴렉띠보 택시. 매연이 있긴 했지만 흥 넘치는 기사 덕에 즐거운 체험이었다.


  본격적인 쿠바에서의 길고 길었던 첫 날이 이렇게 저물었다.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떠난 길이었는데 정작 하루 종일 아바나 시내를 걸으면서 만난 쿠바는 흥이 넘치고 정이 있는 곳이었다. 자유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져갔고 오히려 자유여행이었기에 얻을 수 있는 색다른 재미와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여행이 박물관 투어와 비슷한 느낌이라면 자유여행은 여행지의 본 모습을 살아있는 채로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첫 시작의 이런 느낌이 이어질 내일, 그리고 그 이후의 여행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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