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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Dec 06. 2021

[쿠바 #4] Vaya! Havana

아바나 신시가지에서 출발해서 아바나 구도심까지 마음대로 걷다.


쿠바에서 맞이한 첫 아침

   시공간의 개념을 뛰어넘은 2016년 1월 23일. 호텔에서의 첫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7시쯤 잠을 깨보니 룸메이트 대박님은 이미 아침 일찍 주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직진님과 반전님, 유쾌님도 아침 산책에 나섰다고 한다. 대충 씻고 호텔 조식을 먹으러 7시 30분쯤 내려가기 위해 방키를 챙겨 들었다. 

   그런데!! 방 카드키에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문구가 있었다. 어제는 못 봤는데 아침에 보니 여러 언어들 중에 한글로, 그것도 한 가운데에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쿠바에서 한글을 보게 될 줄이야... 우리나라와 교류가 거의 없는 쿠바 땅에서 한글을 만난다는 건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이 나라는 오랜 기간 북한과는 꽤 가까운 사이였으니 그것 때문인가 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환영합니다' 이 한마디가 반가우면서 또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신도시에 있는 5성급 호텔이라 그런지 호텔 조식 뷔페는 꽤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서 일행들과 9시에 길을 나서기로 약속해두고 남는 시간에 호텔 주변을 둘러봤다. 여유로우면서도 깔끔하게 정비된 주변 풍경이 아름다웠다. 여행 떠나기 전에 미리 호텔 위치를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면서 이곳이 신도시임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괜찮은 풍경이었다.

호텔 주변의 풍경. 여유롭고 아름답다. 왼쪽은 호텔 수영장, 오른쪽은 천주교 성당(Iglesia de Jesús de Miramar)이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걷다가 만난 뜻밖의 공간

   9시. 일행들과 함께 아바나의 첫 날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구글 지도에 미리 찾아 종이 지도에 표시해둔 호텔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서(지금 다시 찾아보니 정확하게 나온다) 이동 경로가 살짝 꼬이긴 했지만 자유여행인데 뭐... 대충 우리끼리 알아서 가면 될 일이다 싶었다. 일단 걸었다. 도로 중앙선이 있을 자리에 꽤 넓은 산책로(?)가 있어서 그곳으로 여유롭게 걷기 시작했다. 휘익 하고 우리를 앞질러 가며 조깅을 하는 청년도 보였다.

도로 중앙의 산책로를 걷는 일행들(왼쪽). 이때만 해도 조깅을 하는 청년(오른쪽 사진)만큼은 아니어도 발걸음에 힘이 있었다.

  신도시라 그런지 깨끗하고 양쪽으로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이 즐비했다. VEDADO라 불리는 이곳은 아바나 중심에서 서쪽에 위치한 신도시로 구도심에 비해 도시 정비가 꽤 잘 되어 있다. 그래서 각종 호텔과 대사관 등 크고 정갈한 건물들이 꽤 많은 모습이었다. 2015년에 미국의 새 대사관도 이 베다도 지역에 생겼다고 했다. 쿠바의 중산층들이 이곳에 많이 산다고 한다. 물론 우리의 신도시를 떠올리면 안된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여전히 허름해 보이고 낙후된 모습들이 꽤 발견되지만 이곳 기준으로는 괜찮다는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올드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형 고급 승용차들도 많이 보였다. 

  도로 중심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 지 10분이 채 안되어 하늘로 탑이 솟은 것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러시아 대사관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그 규모가 주변의 다른 나라 대사관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다만 특이한 점은 대사관 주변 경계가 우리나라와는 현저히 달랐다. 우리나라의 미국 대사관 주변에 깔려있는 경찰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적은 인원이 주변에 배치되어 있었다. 열 명도 안 되는 듯 싶었다. 쿠바여행을 하면서 계속 느낀 일이지만 생각보다 치안이 굉장히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굳이 많은 경비 인력을 들여 보호할 만큼 이곳 주위가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쿠바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위용. 경비병은 안 보여도 이미 그 위용에 압도 당할 만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성당처럼 보이는(거의 버려져 있는 건물이나 폐건물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주변엔 철조망도 쳐 있고 바깥 유리창 일부는 깨져 있는 상태 그대로이고.... 계속 기웃거리며 이 건물은 어떤 곳이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건물일까를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을 눈여겨보았던 한 아저씨(관리인? 아니면 신부님?)가 내부 구경을 시켜준단다~! 이런 우연이~!! 덕분에 잠겨 있던 자물쇠를 열고 내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Santuario Nacional de San Antonio de Padua 성당의 외관. 올드카에서 내린 아저씨가 친절하게 내부 구경을 시켜 주었다.

  스페인어를 잘 모르는 우리를 위해 아저씨는 잘 안 통하는 영어로 설명을 하였고 우리 일행은 어렴풋하게나마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1950년 즈음에 만들어진 건물인데 아바나에서 최초로 에어컨 시스템을 구축한 성당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Santuario Nacional de San Antonio de Padua이라는 이름의 성당이었다. 한쪽 옆으로 마리아 상이 서 있었다. 20대의 마리아 테레사의 성모상이라고 했다. 성모상 아래에 글씨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중 MCML이라는 글자는 1950년을 말하는 것이라고 아저씨가 친절하게 종이에 써가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성당의 내부와 마리아 테레사 성모상. 단 밑에 1950을 뜻하는 MCML이 새겨져 있다
쪽지 손으로 직접 써가며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마음을 한껏 푸근하게 했다.

  우연한 인연을 만나 구경도 하고 설명도 듣고... 아저씨가 고마워 볼펜 선물을 드렸더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셨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센트로 아바나로 가는 길을 물었다. 버스를 탈 것이라고 했더니 정류장 위치와 버스비가 얼마인지 알려주었다.

버스 정류장의 모습. 구도심으로 가기 위해서는 P1버스를 타야한다.


시내버스를 타고 센트로아바나로 찾아가기

   아저씨가 알려준 길을 따라 갔더니 정류장이 나왔다. 우리의 정류장처럼 버스 운행사항을 알려주는 전광판은 고사하고 버스 노선표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표지판에 버스 번호만 쓰여 있을 뿐. 한참을 기다려 P1버스를 탔다. 차량 2대를 연결한 버스이다.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나 동전이 모자라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동네 사람이 1쿡짜리 동전을 집더니 다 타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쓰윽 탔다. 아마도 자기가 우리 일행을 인솔하는 사람인 척하며 자기 버스비까지 함께 계산한 듯 싶었다. ㅎㅎ 덕분에 긴 고민 없이 버스를 무사히(?) 탔다.

  오기 전 책을 볼 때 이곳 사람들이 타는 버스는 매우 붐빈다고 했다.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난 뒤라 처음 탈 때는 뭐 괜찮네 했지만 잠시 뒤 역시 버스는 콩나물시루가 되어 갔다. 들고 온 책자들을 통해 버스 노선을 알아 내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사님이 챙겨 온 ‘이지 남미’라는 책에서 버스 노선을 발견했는데... 문제는 정확하게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갈아타야 되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고 있었고, 버스가 좌회전 우회전을 거듭하면서 대략적인 길을 지도에서 맞춰보고 대충 여기다 싶은 곳에서 직진님의 외침이 들렸다. “내리세요~!” 후다닥 내렸다. 내려서 길을 찾아가려는데 방금 내린 버스에 있던 한 아저씨가 걸어가려는 우리를 보고 다시 타라고 외친다... 얼떨결에 다시 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까 그 버스를 다시 탄 것인지 순간적으로 다른 버스를 갈아탄 것인지 헷갈렸다. 그러면서 버스 요금만 이상하게 내고 말았다. 정보가 부족하고 휴대폰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어리바리할 수밖에... 하여튼 그 버스를 타고 좀 더 얼마간을 간 후에 역시 직진님의 지시(?)에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고 보니 어느덧 아바나의 구도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베다도 지역에 비해 낡은 건물이 많았고 그 건물들의 외벽은 페인트 색이 원래 무슨 색깔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벗겨져 있었다. 미국의 오랜 봉쇄 정책 탓에 물자가 부족해진 현재 쿠바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거리를 다니는 자동차들도 대부분 올드카들이었다. 1950년대쯤에 멈춰 서서 60여 년 세월을 버텨온 모습이었다.

센트로 아바나의 거리 풍경.오래된 서양식 건물을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길 가던 아주머니에게 까삐똘리오 가는 길을 물었다. 영어가 안 되기 때문에 스페인어 통역 담당인 직진님이 묻고 길잡이를 했다. 오래된 듯한 건물들을 끼고 걸었다. 아바나 도심에는 건물들이 도로와 거의 붙어서 지어져 있고 1층은 그 건물들의 기둥 안쪽으로 한 칸 정도씩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내부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 있다. 마치 오래되고 쇠락한 궁전의 회랑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센트로 아바나를 걷다가 만난 성당의 모습. 성당의 이름도 위치도 모른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걷다 만났고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을 뿐~

  꽤 걷다가 성당 하나를 또 발견했다. 더운 날씨에 땀흘리며 걷던 우리 눈을 확 잡아 끌 만큼 수려한 외관이었다. 앞서의 경험도 있고 해서 고민할 것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까 보았던 성당보다는 더 성당다운(?) 느낌이 들었다. 가톨릭 국가답게 성당은 곳곳에 많이 있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대한 안좋은 인식 탓에 사회주의 국가에는 종교 허용이 안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쿠바는 가톨릭 국가라고 할 만큼 신자도 많고, 성당도 그만큼 많다. 총무님은 사진에 성당 내부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고 반전님과 유쾌님은 의자에 앉아 찬찬히 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야 외지에서 찾아온(그것도 동양에서! 실상 쿠바여행 내내 동양인의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여행객이지만 우리는 마치 현지인들인 것마냥 그저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 살펴보고 또 걷고 적당한 곳에서 쉬고 하면서 자유여행의 묘미를 이미 만끽하고 있었다.


드디어 프라떼르니다드 공원(Parque de Fraternidad)를 찾고 쿠바의 시가를 만나러~

칠레의 독립 주역이자 남아메리카의 혁명 지도자 오이긴스(Bernardo O'Higgins)의 동상(왼쪽),  중국인을 볼 수 없었던 차이나타운의 입구(오른쪽)

   다시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책에서 보았던 까삐똘리오 근처의 공원이 보였다. 프라떼르니다드 공원(Parque de Fraternidad), 그리고 오이긴스 장군의 동상! 이제 다 왔다 싶었다.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공부하고 갔지만 이미 우리에겐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이상하게 내리는 바람에 센트로아바나의 여러 곳을 도보로 걸으며 이미 꽤 지쳐 있었기에 우리의 1차 목적지를 발견했다는 기쁨이 컸기 때문이었다. 트로 아바나의 중심부를 여행하려면 이곳 프라떼르니다드 공원(Parque de Fraternidad)을 기준점으로 잡고 여행하는 것이 좋다. 공원과 광장 주변으로 볼거리도 많고 택시도 많기 때문이다.(언뜻 보면 택시가 안 보인다. 대부분의 올드카 택시에는 택시 표지가 없다. 광장 한켠에 줄지어 서 있는 차량들이 택시이고 기사와 택시비를 흥정하여 타면 된다) 그래서 우리도 아바나 투어의 1차 목적지를 여기로 잡고 여기로 오기 위해 그렇게 버스를 타고 또 그렇게 무작정 걸었던 것이었다. 하여튼 우리 일행은 동상에게는 눈길을 제대로 주지 않고 공원 벤치에서 다리를 좀 쉬었다. 둘러보니 근처에는 차이나타운임을 알리는 동양식 문도 보였다. 어딜 가나 중국인들이 진출하지 않은 곳은 없다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국인은커녕 동양인의 모습은 우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2016년 1월 아직은 쿠바가 우리에게 생소한 여행지임은 틀림없었다.

빠르따가스의 외관. 찾는 이가 많아 입구는 어느 정도 정비된 모습. 고개들어 건물 위를 보면 빛바랜 페인트 글씨가 이곳의 역사를 말해준다.

   공원에서 잠시 다리를 쉬고 빠르따가스(Partagas)를 찾아갔다. 쿠바의 명물 시가를 만드는 공장이자 판매소이기도 한 곳이다. 입구 근처에 이르니 꽤 차려입은 젊은 청년이 유쾌하게 뭔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대충 듣자니 여기 시가는 비싸니 자기들이 안내하는 곳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는 명찰을 보여주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어디나 유명지에는 이런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대충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후욱~ 하고 진한 담배향이 코를 찔렀다. 엄청난 시가 향이 온몸에 순식간에 배일 듯했다. 엔틱한 느낌의 진열대에 여러 종류의 시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 보였다. 한쪽에선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미 시가를 물고 피워보고 있었다. 일행 중 몇몇은 이곳에서 시가를 구입했다. 시가의 나라 쿠바를 다녀왔다는 기념 선물로 흡연자들에게는 이만한 게 없지 싶었다.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살포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나는 먼저 나와 공장 바로 옆 공터로 갔다. 증기기관차 하나가 끊긴 철로에 전시(?)되어 있었고 몇몇의 아이들이 그곳에서 놀고 있었다. 어디서나 사내애들은 뛰고 장난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보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깔깔대며 신나게 웃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언가 발견하면 우르르 몰려들어 신기하게 구경에 몰입하는 모습이 우리 어릴 적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아마 다 커서 성인이 된 후에 이 공터를 다시 보게 되면 이렇게 좁은 곳이었나 하고 이 아이들도 의아해하겠지 싶었다. 그런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으려니 일행들이 모두 나왔다.


눈 앞에 나타난 아바나를 상징하는 건물 3대장

까삐똘리오(Capitolio)의 웅장한 모습. 미국 의사당과 비슷한 모습인데 높이가 더 높다고 한다.

   조금 걸어 코너를 돌아서는 순간 ‘까삐똘리오(Capitolio)’가 모습을 드러냈다. 센트로 아바나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건물이라고 할 만큼 웅장한 규모이다. 그런데 공사중이었다. 공사를 위해 차단벽이 세워져 있었고 92미터나 된다는 돔에는 비닐 막이 씌워져 있었다. 1929년에 미국을 의식하여 미국보다 더 큰 규모로 이 건물을 세웠다고 하니 쿠바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0년전 즈음의 쿠바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아쉬움을 남기고 그 앞을 걸어 갔다.

아바나 대극장(Teatro Habana)의 모습은 마치 중세 시대의 건물처럼 화려하다. 옆의 까삐똘리오와는 대비되는 느낌이다.

   까삐똘리오 바로 옆으로 ‘아바나 대극장(Teatro Habana)’이 보였다. 건물 곳곳의 화려하고 풍성한 장식들이 극장의 멋을 더욱 빛내주었다. 기둥 위와 창이 있는 아치 위마다 화려한 조각들이 아름답게 서 있고 건물 양쪽 위에는 작은 첨탑이 있고 그 위에는 금속 조각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전히 웅장하면서도 기품있는 화려함이 쿠바의 문화와 예술을 뽐내기에 충분했다. 이 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을 본다면 그 맛이 더욱 기가 막힐 것같은 느낌었다. 마치 좋은 잔에 담긴 훌륭한 와인 같은 느낌이랄까?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멋있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주차장(아마 이 주차장은 건물에 딸린 주차장이라기보다는 누구나 이용하는 공용주차장인 듯 싶었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올드카들과 여러 종류의 택시들이 늘어서 있었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몇몇 잘 꾸민 올드카들은 건물과 어울려 1950~60년대로 시간을 훌쩍 되돌리는 느낌이었다.

제임스 딘이 탔을 것만 같은 올드카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왼쪽), 국립미술관 국제관 건물의 회랑(오른쪽)

   대극장 앞에서 길을 건너면 국립미술관 국제관이 있다. 거긴 그냥 겉으로만 한 번 쓱 보고 그 아래 궁전 회랑(?)을 걸어갔다. 도심을 걸을 때 지나쳤던 일반 건물들과는 달리 색깔과 보존상태가 진짜 궁전의 느낌을 내기에 충분했다. 이곳의 대표적인 건물 세 가지는 시간을 멈춘 옛날의 고루한 모습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더욱 뽐내는 고전 예술품이라 할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다른 건물들과 달리 정부에서 잘 신경써서 관리하며 보존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라 플로리디따(La Floridita)에서 헤밍웨이와 칵테일 한 잔~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 칵테일을 즐겼다는 라 플로리다따(La Floridata). 다른 곳과 달리 간판이 큼지막히 있어 비교적 찾기가 쉽다.

   국립미술관을 ㄱ자로 돌아 나가면 오비스뽀 거리 입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라 플로리디따(La Floridita)’가 있다. 헤밍웨이가 자주 들러 칵테일 한 잔씩 했다는 바로 그곳이다. 입구로 들어서니 살사 음악 소리와 함께 엄청난 인파가 우리를 맞이했다. 출입구 바로 옆에서 악단이 약간의 율동(?)을 섞은 흥겨운 쿠바 음악, 살사 연주를 하고 있고 그 옆쪽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헤밍웨이의 동상이 바의 한 구석에 앉아 있었고 관광객들이 헤밍웨이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십년 전 헤밍웨이가 즐겼을 흥을 지금의 사람들도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쿠바의 웬만한 식당에서 항상 만날 수 있는 악단의 살사 연주(왼쪽), 헤밍웨이와의 기념 사진(오른쪽)은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 필수 코스 같았다.

   우리 일행은 안쪽으로 들어가 한쪽에 테이블을 잡았다. 사람이 너무 많고 점심시간 즈음이라 자리가 없었고 혼자 앉은 영어를 쓰는 어떤 아저씨와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너무 무례했을까... 그 아저씨는 직원을 불러 뭐라뭐라 하면서 다른 테이블을 달라고 하는 듯 보였고 결국은 자리를 뜨고 말았다. 살짝 화가 난 듯 보였다. 여행지에서 여유를 느끼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인데 여기는 여유보다는 흥겨움과 북적거림이 가득한 곳이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테이블 하나를 우리 일행이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헤밍웨이가 자주 즐겼다는 칵테일 '다이끼리'(왼쪽), 끊임없이 칵테일을 만들어내는 바텐더의 모습(오른쪽)

   흥겨운 살사 음악과 함께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다이끼리’ 칵테일을 한잔씩 주문했다. 칵테일 바에서는 연신 다이끼리를 만들고 있지만 워낙 손님이 많아 그 속도를 따라잡진 못했다. 그래도 바텐더의 표정은 진지하고 여유로웠다. 살얼음이 하얗게 잔에 가득한 칵테일을 한 모금 했더니 아침에 꽤 걸었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반전님이 좀 전에 샀던 시가를 하나 꺼내 피워보자고 했다. 이곳 쿠바는 식당이라고 해서 실내에 금연인 경우가 거의 없다. 시가의 나라, 흡연자들의 천국~! 결국 일행 모두가 시가를 한 모금씩 피워보았다. 역시 독하다!


흥이 넘치는 오비스뽀 거리(Calle Obispo) 그리고 사람들

   플로리디따를 나와 골목을 향해 걸었다. ‘오비스뽀 거리(Calle Obispo)’이다. 예상했던 대로 거리에는 온갖 사람들이 넘쳐났다. 정말 많은 식당들과 기념품점들이 거리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식당 앞에는 한 사람씩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꽤 규모가 있는 식당부터 작은 식당까지 많았고, 규모가 좀 되는 식당에는 어김없이 쿠바 음악을 하는 악사들이 있어 거리가 끝날 때까지 걸어도 살사 음악이 끊이지 않고 들렸다. 호텔은 물론이고 까사도 많았고 까사 2층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종종 보였다.

오비스뽀 거리는 식당과 호텔, 까사, 기념품 가게 등이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늘 많다

   걷다 보니 작은 공예품 장터가 보였다. 여행 책자에도 소개되어 있는 수공예품 정원(Patio de los artesanos)이다. 그리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다른 여행지를 돌아보며 보았던 수공예품들 중 웬만한 것이 여기에 거의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목공예품, 금속공예품, 프린팅이 되어 있는 티셔츠, 그림(쿠바엔 공예품 매장마다 그림을 판다. 가격은 다른 것들에 비해 조금 나간다), 그리고 자석이 달린 작은 공예품 등을 팔고 있었다. 냉장고나 현관문에 붙이기에 괜찮을 듯싶어서 자석 달린 공예품 네 개를 샀다. 원래 세 개인데 하나를 더 얹어서 샀다. 흥정이 가능하니까~! 기념품 가게는 거리 양쪽으로, 그리고 골목 안쪽으로 여러 곳이 있었다. 쿠바의 국기와 올드카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내걸고 손님의 눈을 끌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오비스뽀 거리 주변의 기념품 가게. 입구에는 주로 국기가 걸려있고 기념품 중에는 그림이 꼭 끼어있다.

   수공예품 정원 바로 근처에는 산초 동상이 있다. 왜 여기에 이 동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인파와 식당마다 흥겹게 흘러나오는 살사 연주 음악과 꽤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기념품을 사고 계속 거리를 걸었다. 음악은 이곳저곳에서 계속 흘러 나왔고 누구든 식당 앞에서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심지어 구걸을 하는 사람도 음악 앞에선 댄싱머신이 되는 풍경이었다. 한참을 걷는데 책에서 봤던 거리 악사가 보였다. 역시 그 옆에는 가방을 어깨에 크로스로 맨 여인이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당장 그 앞으로 와서 팁을 달라고 한다는 바로 그 아줌마이다. 후훗~ 웃으면서 당당히 카메라를 내리고 지나쳤다.

오비스뽀 거리에는 버스킹을 하는 악사들이 꽤 있다. 특히 점심 무렵에는 식사와 함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오른쪽은 산초 동상이다.

   오비스뽀 거리를 거의 다 지나 일행을 기다렸다. 배가 고파 여기서 점심을 해결할까 하다가 비에야 광장에 가서 먹기로 하고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전거 택시들이 꽤 많이 지나다녔다. 중심가 골목을 걷기가 힘들 땐 자전거 택시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골목길에는 현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층 삼층에 사는 사람들은 햇살에 빨래를 말리기 위해 창 밖으로 빨래를 내 걸었고 출입구 근처에는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하고 있었다.

오비스뽀 중심 거리를 약간만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가면 현지인들의 주거지와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발코니에서 빨래를 말리기도 하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하는 사람도 많다


비에야 광장(Plaza Vieja)의 맛과 멋

   골목길 투어 끝에 오후 1시 30분쯤 ‘비에야 광장(Plaza Vieja)’에 도착하였다. 누구나 예상할 것이고, 또 늘 그러려니 하듯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에야 광장은 다른 광장들에 비해 사람이 유독 많은 편이었고 광장다운, 사람사는 맛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책에서 보았던 꾸엔또 호텔(Hotel Cuento) 책에서 말한 대로 여전히 공사중이었고, 맥주로 유명하다는 팍또리아 프라사 비에하(Facrotia Plaza Vieja)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여 한눈에 띌 정도였다.

   이곳에 유명한 햄버거 가게가 있다고 해서 찾기 시작하는데 도통 보이질 않았다. 이곳저곳 둘러보아도 잘 보이지 않고, 심지어 경찰로 보이는 제복입은 여자에게 물어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다시 지도책을 들고 위치를 확인하고 표시된 곳으로 가 보았다. 광장 한 모퉁이 새로운 골목이 시작되는 구석에 그 작은 식당은 있었다. 이름은 ‘Don Julio’였고 건물 외벽에 간판이 없으니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곳 쿠바는 걸어다니면서 아무리 보아도 큰 간판 같은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겉으로 보이는 곳에 간판을 걸어 놓지 않으니 건물 그 자체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간판들 때문에 건물이 잘 안 보일텐데...

Don Julio 식당의 입구(왼쪽). 식당 입구 에서 바라본 광장의 모습(오른쪽). 이렇게 한 구석에 숨어서 이름표도 잘 안 보여주니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었다.

   Don Julio에서 햄버거와 피자, 음료 등을 주문했다. 이곳에서는 CUC이 아니라 MN(Moneda Nacional. CUP이라고도 한다.)으로 계산을 한다. 쿠바의 화폐는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화폐 쿱(CUP), 외국인들 그러니까 주로 관광객들이 사용하는 쿡(CUC)로 나눠져 있다. 현지인들의 화폐로 계산을 한다는 것은 관광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그만큼 저렴한 물가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7인분의 햄버거, 피자, 맥주 및 음료수를 시켰는데도 우리 돈으로 3만원이 안 되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협소한 매장인지라 자리가 없었다. 좌석이라고 해봐야 겨우 7-8명이 앉으면 꽉 차 보이는 곳이다.

Don Julio의 메뉴(왼쪽) 그리고 가게 내부의 모습(오른쪽). 명성에 비해 협소한 가게이다.

   문제는 또 기다림이었다. 이미 경험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다. 나름 패스트푸드라고 생각했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꽤 길었다. 그 시간을 틈타 대박님은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막대풍선을 불어보려 애쓰고 있었고, 그러다 풍선을 잔뜩 들고 광장에 들어서는 현지인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풍선 하나를 불어 와서 그것으로 동물 모양을 만들어내는 신기한 능력을 발휘하셨다. 총무님은 어제 만났던 가이드 필리페와 통화를 하고 내일 산타클라라, 트리니다드 이동 수단으로  미니버스 택시를 예약하였다. 비용이 꼴렉띠보 택시보다 다소 비싸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꼴렉띠보로 가려면 두 팀으로 나누어 따로 이동해야 하고 짐을 모두 싸서 트렁크를 들고 이동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미니버스 택시가 낫겠다고 판단하고 그리 하기로 예약을 하였다.

   나는 배고픔을 참으며 광장으로 다시 나가 보았다. 한쪽에서 인형극을 하고 있었다. 꼬마들이 흥에 겨워 인형극에서 나오는 노래와 대사를 따라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식당 손님들을 위한 음악 연주 소리가 들렸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악사들이 식당 앞 광장에서 몇몇 현악기와 함께 즐거운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요란하기 보다는 감미로운 재즈 음악이 듣기 좋게 연주되고 있었다. 마치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그 주인공들처럼... 쿠바는 역시 음악의 나라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광장은 그렇게 소란스러운 듯한 즐거움과 해피 바이러스가 넘쳐나고 있었다.

광장 한켠에서 공연되는 인형극. 어린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며 재밌게 구경하고 있었고, 목말을 탄  한 꼬마의 모습이 정겨웠다.
비에야 광장의 점심 풍경. 노익장을 과시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이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는데 자리가 한 두개씩 나고 있었고 차례차례 테이블에 다 앉고 나서야 음식이 나왔다. 햄버거는 일단 빵의 크기가 한국에서보다 컸다. 빵 사이에 든 내용물이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빵이 무척 맛있었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인데 피자도 나왔다. 사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2판이었는데 계산할 때 보니까 100MN이 덜 들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주문이 한 판만 들어갔던 것 같다. 하여튼 두 판이었으면 배불러서 남길 뻔했다. 오히려 잘 된 일~! 시원한 병맥주 하나와 햄버거, 피자를 정말 맛나게 먹었다.


   이제 에너지를 보충했으니 아바나의 맛을 느끼러 또 걷기 시작할 타임이었다. 이미 오전 일정만으로도 충분히 쿠바 아바나의 모습에 조금씩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 이 길의 끝마다 어떤 곳이 또 우리를 맞이하고 어떤 에피소드와 감동을 남겨줄지 기대가 되었다. 오랜 시간 여러 사연을 담은 길이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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