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러 산타끌라라로 이동하는 길
쿠바에서의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아침에 일어나 7시 반쯤 출발 전 집행부(?)에서 만들어준 안내 유인물에 적힌 대로 호텔 조식을 ‘최대한 많이’ 배부르게 먹었다. 원래 아침을 잘 안 먹는 나도 이럴 때에는 무지하게 먹어 둔다. 게다가 어제 엄청나게 많이 걷지 않았던가. 많이 먹어둬야할 이유가 또 생긴 것이었다.
어제 필리페를 통해 예약해두었던 노란색 딱시부(Taxi Bus)가 호텔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 일행은 짐을 모두 챙겨 딱시부 뒤편에 싣고, 길잡이를 위해 직진님은 조수석에 타고 나머지는 여유롭게 뒤편 자리에 앉았다. 차 앞에는 벤츠 마크가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유리창에는 ‘한국유리 Made in Korea’가 적혀 있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쌍용자동차가 벤츠 엔진을 가져다가 만들어서 판매했던 이스타나 승합차였다.
이틀 간 우리의 여행을 편하게 해준 딱시부(taxi bus). 지금 생각해봐도 최고의 선택이었다. 반가웠다. 사실 쿠바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산 자동차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리고 택시 기사들도 한국 차들에 대해 엄지를 척 올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래 계획은 꼴렉띠보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가는 일정이었지만 이렇게 택시버스를 빌려 모두 한 차에 같이 타고 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출발부터 들었다. 많은 짐도 문제지만 나눠 타고 갔을 때 도착시간이 달라지면서 혹시나 겪게 될 혼란, 그리고 어제 타보았지만 꼴렉띠보 택시는 오래된 차량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보다는 비용이 조금 더 들기는 하지만 이렇게 한 차에 여유롭게 타고 매연 걱정 없이 그나마 새(?)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 것이 훨씬 나은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9시쯤 호텔을 출발했다. 어제 아쉽게 놓쳤던 말레꽁 근처를 차를 타고 슈웅~ 달려 나가면서 산타끌라라를 향해 길을 잡았다. 한 20분쯤 갔을까? 어제 무수한 발자국을 남기며 보고 다녔던 그곳들이 차창을 통해 보이기 시작했다. 혁명기념관, 요새, 까삐똘리오, 대극장 등... 반갑기도 하고 복습을 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대극장 아래 주차장에서 잠시 차를 세워 쉬길래 얼른 내려 사진 몇 장을 더 찍기도 했다.
국립대극장 앞을 지나는 마차(왼쪽), 대극장의 조각은 정말 우아하고 화려한 예술품이다(가운데, 오른쪽) 그리고는 어제 넘어가지 못했던 그 해저터널을 통해 반대편으로 넘어가더니 이내 고속도로(?)를 타고 딱시부는 속도를 높여갔다.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은 그 도로를 차가 고속 질주를 하는 것으로만 보면 분명히 이 도로는 고속도로가 맞는 것 같기는 한데 갓길에 자전거도 다니고 말이 끄는 수레도 다니고(심지어 역주행까지...) 하는 걸 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마차와 자전거와 올드카와 신형 세단과 낡은 트럭과 신형 버스가 함께 달리는 이곳, 1950년대와 2010년대가 중간의 시간은 생략한 채 공존하는 모습을 이 도로에서도 볼 수 있었다.
차 안에서 찍은 쿠바 고속도로의 풍경. 마차의 역주행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고속도로에선 역시 휴게소를 들러줘야 제 맛이지~
얼마 간을 달린 후에 딱시부는 길가에 조그만 가게(?)에 멈춰 섰다. 나름 휴게소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마 그 근처 동네에 사는 사람이 자그맣게 만들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가게 옆으로는 작은 집도 있었다. 내려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커피를 한 잔씩 하기로 했다. 현지인들도 이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화폐는 MN(CUP)이다. 직진님을 제외한 우리 일행 모두는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주문은 늘 직진님이다. 가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서 주문이 제대로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어제 햄버거 가게에서 그랬다.) 딱시부 기사 훌리오가 그 옆에서 도와주었다. 이건 뭐 단순한 기사가 아니라 우리의 든든한 가이드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우리 돈으로 약 70원쯤 되는 커피를 여유롭게 한 잔씩 했다. 커피맛은 꽤 괜찮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조그만 휴게소에서 현지인들이 마시는 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검은 점퍼를 입은 훌리오가 주문을 도와주고 있다. 휴게소 주인은 커피를 정성스레 만들어 내놓았다. 산타끌라라까지는 아바나에서 3~4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중간에 다시 한 번 휴게소에 들렀다. 이번 휴게소는 앞선 곳과 비교하면 꽤 규모도 있었고 깔끔해 보였다. 그곳에서 휴게소 입구 쪽에 있는 작은 가게를 발견했고 나무로 만들어진 컵받침이나 냄비받침을 팔고 있었다. 직진님이 사 온 것을 보니 꽤 괜찮은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이 조금씩 다른 나무를 모양대로 잘라 붙여 만든 나름 조각품이었다. 나와 유쾌님, 총무님 등이 그곳으로 갔다. 우리 많이 살 거니까 조금 깎아달라 흥정을 했다. 역시 흥정을 해야 제 맛이다. 냄비받침 3개를 사고 서비스로 컵받침도 하나를 공짜로 얻었다. 물건을 파는 청년도 웃으며 흔쾌히 장사를 하고 있었고 조각품(?)에 ‘Cuba’를 새겨 달라고 했더니 인두로 손수 나무에 새겨 주었다. 쿠바 사람들은 역시 흥 부자들이란 생각이 또 들었다.
쿠바에서 만난 두번째 휴게소. 나름 규모도 있고 정갈했다. 주차장 한 옆으로는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나무로 만든 컵과 냄비 받침.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천연 나무의 색깔을 이용한 것이 이채롭다. 다시 이동~! 도로 옆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 지루하리만치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탕수수가 심어져 있었고 꽤 많은 밭에서는 이미 수확이 끝나 있었다. 전 세계 사탕수수 수확량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 만큼 쿠바는 사탕수수가 많이 난다고 도사님이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던 것이다. 넓디넓은 사탕수수밭을 지나면서 훌리오는 우리가 지겨워할까 봐 그랬는지, 본인이 졸려서 그랬는지(나중에 들었는데 직진님의 말에 의하면 진짜 졸았단다... 헐~) 쿠바의 전통 음악을 이동하는 내내 틀어주었다. 아~ 처음엔 좋았으나 점점 지쳐갔다. 잠을 좀 자려했도 음악이 너무 흥겨워서....ㅠㅠ 좀 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결국 나는 쿠바 한 복판 고속도로에서 이어폰을 통해 한국음악을 볼륨 높여 들으며 딱시부에서 잠이 들었다.
드디어 그를 만났다. 체 게바라!
얼마를 잤을까... 딱시부는 산타끌라라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쿠바의 상징 체 게바라의 도시이자 혁명의 도시 ‘산타끌라라(Santa Clara)’~! 앞서 가는 대형 버스 뒤에도 체 게바라의 그림을 붙여 놓았다. 이곳 사람들은 쿠바 혁명의 주인공들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한 듯 보인다. 마을 곳곳에서, 거리 곳곳에서 그들의 그림이나 조형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오후 1시 조금 넘은 시간, 우리는 ‘체 게바라 기념관(Museo Memorial Che Guevara)’에 도착했다. 훌리오는 가방과 카메라 등을 모두 차에 놓고 내리라는 말을 했다. 기념관 안에는 아무것도 갖고 들어갈 수가 없다.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그런 내용을 담은 표지판도 설치되어 있다.
체 게바라 기념관 외부의 풍경(왼쪽). 너른 광장에 우뚝 선 체 게바라의 동상이 인상적이었다. 기념관 내부로 가는 길에 서 있는 경고 안내판(오른쪽) 모든 짐은 차에 두고 카메라만 들고 나섰다. 너른 광장 앞에 체 게바라의 동상이 우뚝 서 있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기념관은 살짝 미뤄두고 일단 동상 앞으로 가서 기념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압권은 미리 준비해 놓았던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도사님과 총무님이었다. 티 앞면에 새겨진 체 게바라의 모습과 사람들 뒤로 우뚝 서 있는 체 게바라의 모습이 넓은 광장을 채우는 듯했다. 미국에 맞서 혁명을 만들어내었고 그들과 당당한 대결을 펼쳤고 지금까지 나름의 방식으로 국가를 유지하며 생존해왔던 쿠바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기념관 앞에서 우리 일행들의 단체 사진. (아빠가 찍은 가족사진에는 항상 아빠가 없다는 점 ㅋㅋ) 동상이 서 있는 뒤쪽으로 돌아가면 기념관 입구가 나온다.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직진님이 모든 카메라를 넘겨 받고 나머지 일행을 들어가라고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념관 출입문에는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인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모든 사람을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적정한 입장인원을 체크하고 순서대로 입장시켰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듯했다.
나는 직진님이 갖고 있던 카메라 석 대를 모두 빼앗고(?) 직진님을 들어가게 했다. 나는 원래도 박물관이나 기념관 내부 구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종료된, 죽은 역사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너무 강해서 그런 듯하다. 기다림에 지친 대박님도 기념관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나와 함께 다시 동상 앞쪽으로 돌아 나왔다. 체 게바라의 동상과 그 옆에 있는 조형물들 사진을 찍고 있었다. 꽤 많은 관광객들이 역시 그곳에서 기념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두 명의 외국인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니콘 카메라였다. 자신 있게 카메라를 받아 드는데 내 어깨에 걸려있던 다른 카메라들을 발견하더니 대단하다며 프로작가라며 한껏 나를 추켜세웠다. 시크한 웃음을 날려주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무거운 구름이 하늘에 잔뜩 내려앉아 있었고 간혹 빗방울도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쾌청하고 맑은 날씨보다는 이런 날씨가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30분쯤이 흐르고 기념관에 들어갔던 일행들이 나왔다. 혁명에 관한 자료들과 사진들을 보고 나온 일행들의 표정에는 무언가 감회를 느끼는 듯한 진지함이 흘렀다.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쓸 사진을 좀 찍어야겠다며 다시 동상을 배경으로 섰고 몇 장의 사진들을 더 찍고 우리 일행은 식당으로 향했다. 오후 2시, 조식을 아무리 많이 먹었다 해도 2시면 충분히 다시 배가 고파지기 시작할 때였다.
비달공원 근처에서의 맛있는 점심
비달공원 근처에서의 맛있는 점심
20분쯤을 이동해서 식당을 찾아갔다. 비달공원 근처에 있는 식당인데 훌리오에게 지도를 보여주었지만 공원까지 도착하고서 그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역시 훌리오는 가이드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공원 근처 현지인들에게 식당 이름을 물으며 차를 몇 차례 이동하더니 식당 앞에 정확히 도착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시간 여유가 없어 빨리 되는 음식을 주문하는데 훌리오의 가이드 능력이 또 한 번 발휘가 되었다. 여행 책자에 소개된 현지인들이 많이 찾고 가격 또한 저렴하다는 그 식당, 아마네쎄르(Restaurante Amanecer). 우리는 소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물론 맥주와 음료도 같이. 이미 어제 경험했지만 여기서는 식사 주문 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총무님과 나는 좀 전에 오는 길에 보았던 비달공원(Parque Leoncio Vidal)으로 향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와도 시간이 충분할 것 같은 생각이었다. 이제 이곳의 문화를 이해하고 슬슬 적응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네쎄르(Restaurante Amanecer)는 골목길에 간판도 없이 숨어 있다. 자신들의 홍보 사진(오른쪽)도 식당 안에 붙여놓아서 밖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비달공원이 주는 인상은 우선 편안했다. 다른 아바나의 공원이나 앞서 보았던 체 게바라 기념공원 앞 광장의 모습과는 대비되었다. 어린 아이들이 많았고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공원 안의 조형물들도 크지 않아 무성히 자란 나무들 앞에 포옥 쌓여 있는 느낌이었다. 비달이라는 이름은 쿠바 독립을 위해 이곳 산타끌라라에서 전투에 몸 바쳐 싸우다 1896년 스페인군이 쏜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 레온씨오 비달 까로(Leoncio Vidal Caro)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늑해 보이는 공원을 뒤로 하고 식당으로 다시 걸어왔다. 1~2분이면 되는 거리이다. 역시 아직 식사는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먼저 감자칩 같은 것과 함께 음료가 나왔다. 부카네로 맥주는 역시 맛이 있었다. 음료로 시킨 파인애플 주스도 파인애플 원액의 맛이 시원하게 났다. 잠시 후 메인 요리가 나왔다. 우리의 불고기와 비슷한 형태의 요리와 토마토를 바닥에 깔고 그 위로 야채를 채 썰어 나온 샐러드, 그리고 한 공기가 훨씬 넘어 보이는 양을 자랑하는 밥이 나왔다. 훌리오가 먹는 방법을 몰래 훔쳐보며 맛을 보기 시작했다. 살짝 국물이 도는 소고기에 밥을 섞어 샐러드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짠 양념이 살짝 강하기는 했지만 더운 나라에서는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하며 먹으니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총무님은 샐러드가 딱 자신의 취향이라며 무척 좋아해서 하나를 더 추가하기도 했다.
식당이 꽤 유명하긴 한 모양이다. 음식 맛도 괜찮았고 비용도 식사한 것에 비하면 괜찮았다. 또 하나!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쿠바 여행 전체를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을 만났다. 어쩌면 여행책자의 덕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 직진님의 조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왔을 때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우리의 모습을 본 한국인 아주머니들이 직진님의 조끼에 새겨진 한글을 보고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한국인은 둘째치고 동양인을 만나기도 어려운 이곳에서 즐거운 만남도 있었으니 꽤 괜찮은 추억이 될 만한 곳이었다.
쿠바 혁명의 변곡점이 되었던 그곳, 그리고 지금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무장열차 기념비(Monumento a la Toma del Tren Blindado)’로 이동했다. 쿠바혁명의 분기점이 되었던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1958년 혁명군의 기세를 잠재우기 위해 당시 바띠스따 정부군이 반격을 계획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무기와 병력을 실은 열차를 아바나를 향해 보내고 있었고, 이 정보를 입수한 체 게바라 군대가 12월 29일 산타끌라라에서 불도저로 선로를 끊고 열차를 탈선시킨 후 몇 시간의 교전을 벌였고 끝내 승리하였다. 그 결과 열차 안의 모든 무기들은 체 게바라의 군대로 넘어갔고 열차에 탑승했던 373명의 군인들이 모두 투항하고 체 게바라 혁명군에 가담하면서 이를 발판으로 혁명군은 승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의 흐름에서 변곡점이 되는 순간에는 항상 그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는데 여기가 그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당시 사용되었던 불도저와 열차, 기념비 조형물 등을 볼 수 있었다. 기념비 조형물에는 당시의 영웅들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출입구에서 조금 나오면 철로를 볼 수 있는데 그곳에는 60여 년 전 혁명 전투의 모습보다는 혁명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일상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념공원 옆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서는 네댓 명의 아이들이 그네를 밀고 타고 하면서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고, 열차 선로 옆에선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한 아저씨가 두 마리의 염소(?)를 풀어놓고 풀을 뜯는 모습을 고즈넉이 바라보고 있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것이긴 하지만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혁명 과정의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곳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여유 넘치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에서 한국에서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 표정은 어떠한가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이날 우리는 트리니다드까지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도 우리는 다시 딱시보에 탑승했다.
뜨리니다드 앙꽁으로~
3시 반쯤 딱시보는 뜨리니다드(Trinidad) 앙꽁(Ancón)을 향해 출발했다. 두 시간쯤 걸리는 여정이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원스레 도로를 달리던 딱시보가 주춤 했다. 훌리오 표정에 무언가 살짝 당황한 기색이 돌았다.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놓치고 지나친 것 같았다. 우리 같으면 대충 앞쪽 어디선가 유턴을 할 것 같지만 훌리오는 계속 직진을 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작은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이내 비포장도로가 나왔고 시골 농로를 연상시키는 그 길을 또 얼마간을 가더니 다시 큰 도로가 나오자 좌우로 쓰윽 눈치를 보더니 도로로 진입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금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운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헐~ 역주행이다! 그렇게 1분 조금 안되는 시간을 가더니 다른 도로를 만나 제대로 진입을 했다. 훌리오는 민망한 웃음을 한 번 싸악 날렸고, 우리 일행은 한 번 폭소를 터트렸다. 이날의 또 한 번 대박사건을 남기며 딱시보는 두 시간쯤을 달려 오후 5시 40분쯤 앙꽁의 호텔에 도착했다.
이날의 일정을 되돌아보면서 만약 원래의 계획대로 꼴렉띠보 택시를 이용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니 끔찍했다. 쿠바 도착 첫날 가이드 필리페에게 이동수단에 대한 질문을 참 잘 했고 어제 이 딱시보를 빌리기로 한 결정이 무척이나 잘한 선택이라는 데에 모두가 공감했다. 이동도 편했고, 길을 알아서 잘 찾아가 주었고, 순간순간 적절히 가이드 역할도 잘 해주었고, 무엇보다 우리 일행 모두가 함께 움직이면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여정과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이 무척이나 좋았다. 물론 중간에 길을 헤매며 시골길과 역주행의 추억을 대박 사건으로 남겨주기도 했으나 그 역시 이번 여행의 재밌는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호텔에서 저녁은 어떻게 먹지?ㅋㅋ
호텔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짐을 옮겨 놓은 후 본부방에 모두가 모인 시간이 대략 6시 10분쯤이었다. 본부요원들(ㅋㅋ 도사님, 직진님, 총무님을 말한다)은 저녁식사 대책회의가 한창이었다. 여행사에서는 앙꽁 호텔에서는 조식만 포함이라고 했고, 들어오면서 보니 이곳은 호텔들만 있을 뿐 주변에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또 한국식 저녁식사(그래 봐야 컵라면과 햇반 ㅎㅎ)를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방에 있는 물통에 보니 물도 없다. 아바나의 5성급 호텔과는 달리 이곳은 3성급 호텔이라 물도 안 준다며 투덜투덜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체크인을 할 때 우리 일행 모두에게 노란색 띠를 손목에 채워준 것이다. 이건 뭐 어디 놀이공원 갔을 때 자유이용권을 손목에 채워주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이 노란 팔찌가 혹시 그런 자유이용권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었다. ‘에이~’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여행사에서 말한 조식만 포함이라는 얘기가 다시 나왔다. 결국 내가 프런트에 다녀오겠다고 일어섰다. 노란 팔찌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물어보고 석식이 포함이 안되어 있다면 물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라도 물어보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반전님과 유쾌님도 같이 가자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셋은 호텔 프런트로 갔다. 무엇보다 우선 노란 팔찌의 정체를 맨 먼저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 “It means ALL INCLUSIVE~!” 푸하하~ 대애~박!!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식, 석식뿐만 아니라 중식도, 게다가 Bar까지도 호텔 안에 있는 대부분의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 중 누구도 그걸 모르고 지금까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흥분한 마음을 안고 본부방으로 돌아오는데 유쾌님이 유쾌한 제안을 하셨다. 기다리고 있는 네 사람에게 장난을 한 번 쳐보자는 것이었다. 어젯밤 카페에서 대박님이 술을 한 잔 사셨으니 오늘 저녁은 반전님이 한 번 쏘는 것으로 하고, 이후의 술은 막내인 내가 감사의 의미로 한 번 쏘는 걸로 하자는 것이었다. 셋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깔깔 웃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흥분한 표정을 가라앉히고 심각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의 작전대로 진지한 표정을 하고 시나리오대로 말을 했다. 그랬더니 총무님은 그러면 안된다며 자꾸 우리를 말리는 것이었다.우리는 속으로 웃으면서 괜찮다고 그렇게 하자며 일행을 모두 데리고 호텔 뷔페 식당으로 향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괜스레 미안해하는 표정들을 하는 나머지 일행들의 모습을 보며 나와 반전님, 유쾌님은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러면서도 얘기는 오늘은 반전님이 저녁 일체를 쏘고 내일은 막내가 저녁 일체를 책임지자며 나름대로 일정(?)을 바꾸기도 했다.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고 마음에 부담을 느껴하는 일행들을 보며 유쾌님이 먼저 고백을 시작했다. 이내 모든 일행들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그렇게 한바탕 웃으며 즐겁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여유와 흥이 넘처나는 휴양지의 호텔
여유와 흥이 넘처나는 휴양지의 호텔
식사 후에는 식당 옆에 있는 바에서 칵테일을 한 잔씩 무료로(!!) 마시면서 작은 음악 공연(너무 거창한 표현일 수 있겠다. 바 옆 작은 공간에서 두 명이 기타 연주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도 즐겼다. 이어서 중년 남성이 그 덩치만큼이나 묵직한 목소리로 성악 공연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자유롭고 여유와 흥이 넘실대는 분위기였다. 카리브해를 마주한 휴양지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여행객들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옆에서 이런 분위기를 함께 즐기던 한 할머니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캐나다에서 왔다고 하는 할머니(70세라고 하기엔 너무 젊어 보였다)는 남편과 함께 이곳으로 휴양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 부부와 서로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면서 호텔을 여유롭게 즐겼다. 호텔의 여행객은 대부분 백인의 서양인이었고 그 중 80% 이상이 캐나다인이라고 했다. 2016년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인도 거의 없고 유럽인도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이때만 해도 US달러는 환전이 안되고 캐나다 달러가 외국화폐로 더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우리 팀도 캐나다달러를 들고 쿠바에 갔었다.
9시 반부터는 야외 무대에서 쇼를 한다고 해서 그곳으로 모두 함께 이동을 했다. 조명시설을 갖춘 무대에서 가수의 노래가 흘러 나왔고 흥겨운 음악에 맞춘 댄서들의 춤 공연이 있었다. 무대 앞 많은 의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채워져 갔고 뒤 편 카페에서는 술과 커피, 음료들이 무제한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우리 역시 그곳에서 맥주, 칵테일, 커피 등을 맘껏 주문하고 테이블 의자에 앉아 즐겁게 공연을 보았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흥(?)에 취한 반전님은 그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쪽에서 자꾸 춤을 추었다. 아바나 오비스뽀 거리에서 보았던, 살사 음악에 흥을 마음껏 펼쳐 보이던 쿠바 사람들에 못지 않았다. 평소 보이던 그 점잖은 모습을 완전히 반전시키는 모습이었다. 결국 쇼가 끝나고 무대가 비워지자 무대까지 올라가 음악도 없이 춤을 추는 대박 반전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셨다. 남아있던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여행이 시작되고 며칠간 쌓였던 피로가 다 날아가는 듯 여러모로 반전이 있었던 이날 밤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피곤은 잊고 쿠바의 매력에 점점 스며들고 있었다.
하루의 절반을 이동하는 데 시간을 보냈지만 체 게바라의 흔적을 만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쿠바를 찾은 이유를 다 채운 듯한 느낌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에 대해 공부했던 것들이 현장에서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게 해 주었다. 비행기에서 보았던 영화도 그를 이해하고 이곳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