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바람 Feb 16. 2024

대관령 양떼목장

겨울에는 양떼들보다 눈 풍경이 더 인상적이다~


눈이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따뜻한 남쪽 나라 출신이라 그런지 난 눈이 내리는 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것은 싫지만, 눈이 내리면 새하얀 눈이 그 칼바람마저 포근히 덮어버리는 듯한 마법을 느낀다. 그래서 눈이 내리는 날은 몸에 이불을 감싸는 것처럼 옷을 두껍게 낑겨 입고서라도 밖을 나가보려고 한다. 사진에 취미를 갖게 되면서부터는 눈이 내린 날보다도 눈 내린 다음날 하늘이 맑게 개인 날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날이 되면 카메라를 챙겨 들고 눈 쌓인 풍경을 찾아 나서곤 한다.



겨울, 양떼목장에는 대자연이 있다.

그렇게 찾아간 몇몇 곳 중 하나가 대관령 양떼 목장이다. 사진 찍기에 성공(?)한 것은 그중 두 번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처음은 2008년 2월이었고, 두 번째 성공(절반의 성공이었다. 서울에서 대관령으로 갈수록 쌓인 눈이 점점 줄어들어 또 실패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은 2021년 겨울이었다. 무엇에 대한 것이든 첫경험이 오랜 시간 짜릿한 기억으로 남듯이 2008년 그 겨울의 양떼목장 풍경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언제든 다시 찾겠다는 다짐을 하기에 충분한 날이었다. 아침까지 내리던 눈이 점차 잦아들더니 오후에는 하늘이 깔끔하게 개인 날에 찾은 대관령 양떼목장은 그야말로 겨울의 대자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언덕마다 쌓인 하얀 눈과 햇빛을 받아 쌓인 눈이 녹으며 제 모습을 드러낸 목장의 여러 풍경들이 한 폭의 동화나라의 배경으로 쓰이는 곳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 했다.

(촬영: 2021년 2월)


사실 입구에서는 대자연보다 동화 나라의 느낌이~ 

티켓팅을 하고 입구를 통과해 목장의 언덕을 오르기 전까지는 대자연의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오히려 앞서 얘기했듯 동화나라로 입장하는 느낌이 강하다. 언덕을 오르는 초입에는 양떼목장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는데 그 글씨의 폰트부터 대자연보다는 동화와 가까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근처에는 우체통처럼 보이는 것 하나가 서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상상력이 발휘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은 아무리 봐도 우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왠지 뻐꾸기 한 마리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새집이었다. 새집을 보고 우체통이라 생각했다니~ 스스로 피식하고 웃음이 날 정도로 이미 난 이곳을 동화나라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기에 손으로 정성스레 쓴 편지를 두면 새가 날아와 그 편지를 물고 하늘을 가로질러 가져다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설경은 겨울을 배경으로 한 어느 동화 나라의 배경지가 되는 곳인 것 같은 착각을 품고 눈 쌓인 언덕 위로 향하게 된다.

(촬영: 2008년 2월)


언덕 위에 오르면 설경이 펼쳐진다.

양떼목장을 둘러싸고 있는 언덕을 향한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확 트인 설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울타리 너머 푸른 나무 하나가 서 있는 장면이 나타난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온통 새하얗게 바뀐 풍경 속에서 홀로 푸르게 서 있는 그 나무는 어딘가 모르게 나를 경건해지게 하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고요해지며 약간은 고즈넉한 고독감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계속 멍하니 바라보게 하는 풍경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하얀 눈밭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독야청청 빛나는 이 나무가 양떼목장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되었다. 

(촬영: 2008년 2월)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묻어 있다. 

고독한 나무를 뒤로 하고 언덕 위 산책로를 조금 걷자 벤치가 나타났다. 2008년 그때 족히 30cm 가까이 쌓인 눈길에 거의 파묻혀 있을 벤치였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깨끗이 눈을 치우고 의자 또한 깔끔하게 닦아 놓은 모습이었다. 산책로를 걷다 힘든 이들을 위한 벤치가 눈 속에 묻혀 있으면 안되겠기에 누군가 이리도 깔끔하게 치워놓고 닦아놓은 것일 게다. 그 깨끗한 벤치에는 그저 그들의 수고로움만 묻어 있어서 길 걷는 이는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자연이 도와주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사진들

벤치에서 고마움을 느끼며 다리를 잠깐 쉬고 오르락내리락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창고인지 초소인지 뭐 하여튼 그렇게 보이는 작은 목조 구조물이 하나 나타난다. 겉을 보나 그 안을 살펴보나 뭐 그리 대단한 건물은 아니다. 다만 마치 이 아름다운 설경을 완성시켜 주기 위해서 그런 것처럼 완벽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소품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더구나 맑게 개인 하늘과 붓터치처럼 생겨난 구름들을 뒷배경으로 두고 아래로는 하이얀 눈밭과 그 속의 작은 길, 그리고 길을 따라 이어진 목책이 있어 이 건물은 이곳을 겨울 동화 속 배경지로 완성시키고 있었다. 자연이 도와준 날씨와 풍경에 이 작은 구조물이 더해져 완벽한 겨울 동화의 설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촬영: 2008년 2월)

게다가 그 건물 뒤로 나타나는 침엽수 숲은 추운 날씨에 앙상하게 남은 가지들로 인해 쓸쓸해 보일 수 있었지만 이웃한 다른 녀석들과 어깨를 맞잡고 서있어 외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 또한 이 건물과 어우러지며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내었고 해가 조금 더 넘어가면서 나무 끝에 걸리게 되면 마치 흑백사진처럼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촬영: 2021년 2월)
(촬영: 2008년 2월)


전경이 펼쳐지다.

언덕 위 산책길을 걷고 걸어 입구의 정반대편까지 걸어가면 양떼목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는 순간 이곳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움푹한 곳에 양들이 모여있는 집이 보이고 그 뒤 언덕 위에는 아까 보았던 작은 건물들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가 막힌 것은 이 양떼목장 너머로 펼쳐지는 산들의 모습이다. 강원도의 그 산들은 겹겹이 이어지며 능선들을 잇고 이어 아름다운 곡선미를 뽐내고 있었다. 2008년 그때는 눈이 더 많아서 더 멋진 풍경을 보였었는데 나의 카메라 기술이 부족해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지 못한 것이 뒤늦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하얗게 펼쳐진 산의 능선들이 파아란 하늘과 대비되면 외국 그 어디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산은 스위스나 뭐 이런 데와는 달리 곡선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웅장함보다는 포근함이 느껴져 더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딱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촬영: 2021년 2월)


눈밭에도 물결이 일렁인다.

전경을 한참이나 감상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찬찬히 내려오다 보니 자연이 빚어낸 또 다른 신기한 장면이 나타났다. 멋들어진 소나무가 하나 외롭게 서 있는 그 들판에 눈이 많이 쌓였고 거기에 세찬 바람이 불어 다시 눈을 가져다 쌓으면서 물결이 생겨난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바라본 어느 바닷가의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해안선으로 달려드는 듯한 느낌의 모양이 생겨난 것이다. 그 모양을 주변 사물들을 다 빼고 눈만을 찍어 보니 마치 어느 추운 행성의 표면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정말로 날씨와 시간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2008년 이후에도 몇 번 이곳을 찾았지만 그 이후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장면이다. 언제 또 이런 신비한 풍경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기야 가끔씩 듬성듬성 찾는 이에게 자연이 쉬이 내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촬영: 좌-2021년 2월, 우-2008년 2월)
(촬영: 2008년 2월)


아무리 추워도 양떼목장은 양들의 집이다.

외곽의 언덕 산책로를 다 돌고 내려와 양들을 찾았다. 목장의 정상부근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언덕으로 포근히 싸여 있는 중심 부근에 양들의 안식처가 있다. 지붕에서 내려온 고드름들이 위태롭게 달려 있는 그 안에 양들은 두터운 털옷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겨울에도 먹이 주기 체험 같은 것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날이 추워 사람이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양들은 제 집에서 아직 어린 새끼들과 함께 체온을 나누며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다. 


(촬영: 2008년 2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양떼목장은 그리 넓지 않다. 쉼 없이 걸으면 언덕 위 산책로도 채 30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이다. 주변으로 펼쳐지는 대자연과 동화 같은 풍경들이 곳곳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것에 비하면 이곳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더 매력이 있다.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 아름다운 풍경들이 신비롭고 끝없이 펼쳐지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을 찾는 가족들과 연인들의 알콩달콩한 모습들이 더해지면 이곳은 정말 꽤나 사랑스러운 공간이 된다. 2021년 찾았을 때 아마도 나보다 앞서 왔다간(아마 직전이었던 것 같다) 어느 커플은 폭신폭신하게 펼쳐진 하얀 도화지에 예쁜 하트를 하나 남겨놓고 갔다. 양떼목장을 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만난 그 하트 하나가 이곳의 느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촬영: 2021년 2월)


뜻밖의 만남이 있다. 

앞만 보고 걷지 않고 차분히 주위를 살펴 걷다 보면 뜻하지 않은 만남이 즐겁게 다가올 때가 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 여행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이다. 양떼목장의 입구 주차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풍력발전기 두 개가 있다. 하얀 눈 속에 서 있는 그 하얀 바람개비도 또 다른 풍경으로 새로이 다가왔다. 그리고 서쪽 산너머로 넘어가는 일몰은 어떠한가? 시간 가는 모르게 양떼목장을 즐기고 천천히 걸어 내려와 주차장에 다다랐는데 저렇게 아름다운 해넘이를 맞이한 것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뜻밖의 만남은 그래서 더 즐겁다. 

(촬영: 2008년 2월)
(촬영: 2008년 2월)




매거진의 이전글 부석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