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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커피 이야기

테라로사와 함께

by 돌바람
2012년 4월 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본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커피를 무척 좋아할 뿐 아니라 매일 커피를 몇 잔씩 손수 내려 먹는 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테라로사 커피가 마곡에 생긴다는 것이었다. 여름 내내 칸막이를 쳐놓고 여기가 테라로사 들어올 자리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공사를 진행했고 여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8월 말에 오픈을 했다. 오픈한 지 며칠 만에 매장을 찾았고 원두 하나를 신중히 골라 드립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테라로사 덕분이었다.

사실 내가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맛있는 커피를 찾아 취향을 만들어가게 된 첫 번째 계기는 테라로사였다. 그저 믹스커피 또는 봉지커피만을 수시로 타서 마시던 내가 커피가 이렇게나 다양한 맛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곳이 바로 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 본점이었다. 대략 15년 전쯤 우연히 소개로 알게 된 이곳에서 핸드드립 커피의 신세계를 맛보았다. 유럽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가정집 같은 곳이 테라로사 본점 카페였는데 직원들이 주욱 줄지어 서서 주문들이 들어오는 대로 한잔 한잔 정성스레 브루잉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12년 4월 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본점


나의 커피를 찾았다.

처음 갔던 날,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고 있었는데 직원이 "처음이시면 이걸로 한 번 해보세요." 하는 말에 믿고 덜컥 주문했다. 그랬더니 잠시 후 에스프로소용 작은 커피잔 세 개에 커피가 담겨 서빙이 되었다. 커피 샘플러였다. 그리고는 직원의 설명, "다 다른 커피입니다. 한 잔씩 맛보시고 취향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각기 다른 무늬의 잔에 담겼지만 똑같이 생겨 보이는 커피 석 잔은 그 맛이 서로 다른 색깔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직원의 질문에 가장 맛있게 느껴지는 커피를 지목했더니 "산미가 꽤 있는 걸 좋아하시네요~"하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다음에 오시면 아프리카 쪽 원두를 골라서 드셔보세요."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의 커피 입맛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강릉을 찾을 때에는 꼭 테라로사 커피공장을 들러 맛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오곤 했다.


예전 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본점의 카페는 이 건물이었다.


아늑하고 따뜻했다.

초기의 테라로사는 그랬다. 커피 바가 있어 손님이 바리스타(?) 직원과 함께 대화하며 커피를 즐길 수 있었고 가정집 같은 건물에서 아늑함과 함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소 허름해 보이는 카페 건물이었지만 참 인간적인 배려들이 돋보이기도 했으며, 소박한 치장으로 커피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작은 마당에는 겨울이면 화목난로가 따스한 불빛을 내고 있었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곤 했으며, 건물 벽을 따라 걷다 보면 입구를 알리는 벽화가 손수 그려져 있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다양한 원두들이 줄지어 전시되어 있고 커피 용품들이 벽이나 테이블에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테라로사는 나에게 커피가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사장님의 커피에 대한 관심과 열정, 진정성이 무척이나 높았고 그 사장님의 의도대로 사람들이 다양하고 풍부한 커피의 맛을 진정 알아가며 커피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고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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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본점


시간이 바꾸어놓은 것들

테라로사를 알게 된 지 얼추 20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사무실에서마저 커피를 브루잉해서 내려 마시기 시작한 지도 3~4년이 되어가고 있다. 커피 원두를 구독하면서 어차피 내가 마실 커피, 조금 더 내려서 주변 동료들과 나누어 함께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로스터리 카페들이 주변에 생겨나고 있어서 가끔씩은 무슨 순례자처럼 커피를 마셔보며 원두를 사 오기도 한다. 웬만해서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정형화된 맛이 이제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개성이 넘쳐나는 커피 가게들이 이제는 정말 많아졌다. 그래도 가끔씩 테라로사를 간다. 어쩌면 커피에 관한 한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 며칠 전에도 마곡에 있는 테라로사를 다녀왔다. 그런데 갈 때마다 무언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기계가 브루잉을 해서 그런 걸까? 커피에 담기는 여러가지의 농도가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다. 풍부하고 다채롭고 아늑하고 따뜻했던 그 맛이 예전처럼 포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덜하다. 시간이 세상을 바꾸어 놓고 있지만 그래서 아쉬운 것들도 분명히 있다.


2022년 4월 테라로사 경포호수점





강릉 본점을 다녀온 지가 한참 지났다. 지금처럼 대형 카페가 된 후에 딱 한 번 가보고 그 이후로는 다른 지점을 찾아간다. 이사 간 고향집을 찾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서울 마곡에 사는 테라로사는 너무 도시물을 많이 먹어 그런건지 고향 맛이 잘 안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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