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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13]세스림협곡 & 사막의 밤

협곡에도 사막에도 낮에는 태양이 밤에는 별이 쏟아진다

by 돌바람

세스림 협곡(Sesriem Canyon)을 찾아 나선 길

소서스블레이 지역과 듄45 투어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세스림협곡을 찾아 나섰다. 소서스블레이 입구 검문소 지역으로 다시 되돌아와서 차에 기름도 좀 넣고 화장실도 좀 이용하고... 그리고 다시 검문소를 통과하려는데 직원이 무언가를 요구했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어리둥절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에 들어올 때 발급받은 입장권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앞편에서 얘기했던 바로 그 이유였다. 검문소에 걸쳐있던 차를 다시 빼고 휴게소 비슷한 곳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입장권 구매를 다시 하고 나서야 검문소를 통과해서 나올 수 있었다. 들어갈 때 끊었어야 할 입장권을 나올 때에서야... 에피소드는 또 이렇게 하나 더 만들어졌다.

세스림협곡을 찾아가는 길은 여전히 비포장이었다. 특히 소서스블레이와 멀어질수록 바닥 상태는 거칠어졌고 앞서 지나간 자동차들이 남긴 바퀴 흔적 때문에 요철이 생기고 그래서 차가 비틀거리거나 요동을 치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 보니 큰 중장비 하나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이 비포장 도로의 바닥을 정비하는 중이었다.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도로 한쪽으로 남은 흙을 밀어내는 작업이었다. 이런 수고가 있었기에 비포장 도로이지만 속도를 많이 낼 수 있었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다.

이 중장비가 비포장 길을 도로로 잘 정비해주고 있었다.
정비된 길을 따라 세스림 협곡을 향해 시원하게 질주한다(3호차에서 본 앞 차의 모습)
세스림 협곡을 찾아가면 만난 풍경들. 기이한 나무와 표지판


그렇게 평평해진 비포장 도로를 마음껏 달리다가 내비와 표지판을 따라서 오른쪽 작은 길로 살짝 접어들면 세스림 협곡 방향으로 접어들게 된다. 입구 근처에는 주유소가 하나 보이고 그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약간의 시설들이 보이는데 그곳이 캠핑 사이트이다. 이곳 사막 지역에는 소서스블레이와 세스림 이 두 곳에 사막 캠핑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마련되어 있다. 아마 우리도 사전에 여행을 준비할 때 캠핑에 혹 했다면 이 두 곳 중 한 곳에서 사막의 밤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 밑으로 캠핑카들이 보인다.

하여튼 그 옆으로 난 작고 다소 험난한 길을 통해 5분쯤을 가면 세스림 협곡 주차장이 나온다. 차에서 내리면 만난 세스림 협곡의 첫인상은 평평한 사막이 아니라 약간의 산악지형이고 모래가 아니라 암석으로 된 곳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세스림 캐년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긴 했는데... 맞나...? 캐년이라고 불릴 만큼의 협곡이 여기에 있다고?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다들 에어컨으로 시원해졌던 차에서 내려 다시 뜨거운 햇살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세스림협곡을 알리는 표지판(왼쪽), 주차장에서 보면 사진 오른쪽의 푹 꺼진 협곡이 보이지를 않는다(오른쪽)


세스림 협곡은 캐년이 맞다!

주차장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평평한 듯 보이던 땅 밑으로 깊게 파인 협곡이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본 협곡의 깊이는 천 길 낭떠러지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무서움을 느낄 만큼 꽤 깊었다. 아차 해서 발을 헛디뎠다가는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의 깊이였다.

협곡을 내려가기 전 일행들이 손을 흔들며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협곡으로 내려가기 전 위에서 내려다본 세스림 협곡

세스림 협곡(Sesriem Canyon)은 트소우찹강(Tsauchab river)에 의해 만들어진 협곡으로 길이가 약 1km에 달한다고 한다. 연 강수량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비가 내리면 이 협곡으로 물이 흘러 연한 암석들은 그 오랜 시간 동안 풍화를 겪었고 그렇게 해서 이런 캐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려가서 걸어서 천천히 돌아보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기에 우리는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있는 그 길로 내려가 보았다.

협곡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이 바위 틈새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내려가서 본 협곡의 모습은 위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밑에서 올려다본 캐년의 깊이는 위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깊이가 40~50m 정도는 되어 보였고 폭은 넓은 곳은 20m 정도, 좁은 곳은 3~4m 정도 되었다. 그런 폭의 바위 사이사이를 세찬 물줄기가 흐르면서 이미 형성되어 있는 퇴적암층을 침식하면서 거친 바위를 보드랍게 깎아 놓은 모습들이 쭉 이어져 있었다. 바닥은 물이 흐르다 말라 평평하고 단단하게 굳어 있었지만 해가 들지 않는 곳은 조금 덜 다져진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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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아래 계곡 속은 신비로운 모습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계곡의 양옆으로는 역암, 사암, 이암층이 시루떡처럼 층을 이루고 있었다. 단단한 지층은 남아있고 무른 곳은 물에 의해 침식이 되면서 여러 모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중간중간 거대한 구멍이 동굴처럼 뚫려 있기도 했다. 아마 두 갈래로 흐르던 물이 약한 곳을 뚫어 큰 계곡으로 합쳐지던 곳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찬찬히 협곡 내부의 속살들을 살펴보면서 신비한 모습에 감탄했다. 오랜 세월 모래와 돌들이 쌓이며 단단해진 이 지형에 어느 순간부터 비가 내리면서 약한 부분부터 물에 쓸려나가기 시작했을 테고 그런 일이 수백 수천 수만년간 이어지면서 이렇게나 깊은 협곡을 만들어낸 것을 생각하면, 오랜 시간 조금씩 조금씩 자연이 만들어낸 이런 웅대함 앞에 사람은 얼마나 찰나의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협곡 중간에 뚫린 큰 구멍(혹은 동굴?). 선비님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곳에도 생명은 있었다!

마른 계곡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계곡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만났다. 조금은 낮은 곳, 햇빛이 잘 드는 그곳에 노란 풀꽃들이 펼쳐져 있었다. 아~ 하는 짧은 감탄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일 년에 몇 번 비가 오지도 않고, 그나마도 수량이 많지도 않을 텐데... 물이 모여드는 이 낮은 곳에 언제 어디서 날아왔을지 모르는 꽃씨들이 움을 틔우고 이파리를 내밀고 끝내 꽃을 피워낸 것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면적이었지만 엄청난 넓이의 초원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들이 피워낸 이 생명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신비롭고 기특해 보였다. 아무리 살기 험하다 해도 분명히 살아갈 공간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 삶을 꽃피우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게 아니겠나. 이런 삶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소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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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막 한 가운데 깊은 협곡 아래에 노란색 꽃밭이라니~!!

협곡을 쭈욱 살펴보고 돌아 나오는 길. 앞선 여행자들의 기원이 담긴 돌탑이 있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어떤 기원을 하였는지는 우리가 알 길은 없으나 마지막에 만났던 노란 풀꽃들이 준 감동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앞선 여행자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이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이렇게 표현해낸 것은 아닐까 싶었다. 갖가지 모양의 돌들을 위태롭게 쌓아 올린 돌탑. 그 끝에 작은 돌 하나를 더 얹어보고도 싶었지만 그러다 혹여 무너질까 하는 마음에 시늉만 해보고 말았다. 대신 이곳에서의 감동과 이곳이 무사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만 얹어 두고 나왔다.

선비님이 돌탑에 돌을 올리는 시늉을 하고 있다.


협곡을 모두 보고 나와보니 먼저 나온 일행들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한낮의 사막은 정말 뜨겁다. 하지만 습도가 낮아 그늘에만 들어가면 충분히 견딜 만하다. 오히려 한국의 한여름보다 쾌적한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 일행까지 모두 협곡 투어를 마치고 이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협곡 투어를 마친 일행들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다.

여기서 한 시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을 달리면 숙소에 도착한다. 돌아오는 길에 엘림듄(Elim Dunes)이 있었다. 나미브 사막 명소 중 한 곳으로 특히 일몰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햇빛을 받아 더욱 붉어진 모래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일몰이 기가 막히다고 했지만 우리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사막 투어를 다니다 보니 더위에도, 일정에도 지쳐갔고... 그래서 차창 밖으로 쓰윽 지나가면서 보기로 하고 바로 숙소로 향했다. 어젯밤 숙소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퇴근도 못하고 우리의 저녁 식사를 챙겨준 것도 미안했다. 오늘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일몰은 우리 숙소에서 보아도 기가 막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 만난 숙소 주변의 풍경이 그런 믿음을 갖게 했다. 숙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씻고 조금 쉰 뒤 여유롭게 저녁을 즐기고 일몰을 즐기기로 한 것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우리 숙소의 모습. 산 중턱에 있어 충분히 멋진 뷰를 선사해 줄 수 있었다.


숙소에서 즐기는 저녁 풍경

우리의 숙소 Moon Mountain Lodge는 아프리카에서 이용한 여러 숙소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물론 이곳보다 시설이 더 훌륭한 5성급 호텔도 있었지만 이곳을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이곳에서 만난 기가 막힌 풍경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산 중턱에서 남쪽을 향해 자리 잡은 이곳은 아침에는 왼쪽으로 멋진 일출을, 저녁에는 오른쪽으로 기가 막힌 일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막의 풍경과 함께 이곳에서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들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보는 사막의 일몰. 동그란 해가 지평선을 넘어가고 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약간의 시간 동안 자기 정비를 하며 쉬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 무렵이 되자 숙소 내 식당 건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시원한 생맥주 하나씩 들고 사막을 마주하는 식당 테라스에 나와 앉아 서쪽으로 저물어가는 태양을 즐기고 있었다.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은 별다른 안주가 없어도 맥주를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저녁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시원한 맥주와 뜨거운 일몰을 즐겼다.

태양은 하루의 일을 마치고 점점 서쪽 하늘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깨끗한 하늘과 높게 드리운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오늘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떠나려는 듯했다. 그리고는 사막 저 끝 지평선을 향해 묵묵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그 빛들에 우리 숙소의 지붕도 빛나고 하늘도, 구름도 마지막 빛을 내고 있었다. 이내 태양은 지평선에 맞닿았다. 마치 미세먼지라고는 1도 없는 곳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평선 바로 위에 동그란 그 형태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사실 일몰을, 그것도 이렇게 깨끗한 일몰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수 차례 일몰 또는 일출 사진을 찍으러 다녔지만 수평선이나 지평선에 맞닿을 무렵 그 형태를 온전히 다 보여주는 태양을 만나기는 너무도 어려웠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이곳의 기후나 날씨 덕분인지 정말 티 없이 깨끗한 일몰을 이곳에서 만났다. 그러고 보니 사막을 달려오면서 만났던 일몰도 그렇게 깨끗했었다.

숙소에서 만난 일몰 풍경(타임랩스 영상)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태양이 오늘의 마지막 빛으로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오늘의 태양은 그렇게 사막의 먼 지평선 너머로 내려갔지만 아직 남아있는 황홀한 하늘빛이 여전히 우리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잔에도 그 빛을 투영했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맑고 깨끗한 노을빛이 맥주잔에 담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답게 담기는 그 모습에 감탄한 일행들은 그저 감상만 하던 노을 풍경을 배경으로 놓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노을 그 자체, 혹은 그 노을을 배경으로 함께 어우러진 인물 사진들을...

기가 막힌 일몰이 만들어준 노을빛을 맥주잔에 담아 놓는 듯~

해는 완전히 넘어갔고 하늘빛도 서서히 어두워져 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식당 테라스에서 저녁노을에 흠뻑 취한 우리는 식당 안으로 들어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이날 사막의 한 복판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을 복기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했다. 친절한 직원들이 준비해준 맛난 음식들과 함께 저녁 풍경에 취한 채 다시 술로 또 취해가며 시끌벅적 저녁 식사가 이어지던 때, 무심코 쳐다본 바깥의 하늘빛이 너무나도 신비로워 나는 다시 테라스로 카메라를 들고나갔다. 이미 해는 지평선을 넘어간 지 꽤 되었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빛이 지평선 부근에서 아까보다 더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붉은 태양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되는 듯 태양이 남긴 마지막 빛은 땅의 경계선을 따라 짙은 붉은색으로 이어져 있었다. 사막에서 만난 저녁 풍경은 마지막 빛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여러 단계로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저녁식사 시작 무렵의 하늘(위), 마지막 몸부림을 하는 듯한 붉은 기운의 하늘(아래)


사막의 밤, 그리고 별

저녁 식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아프리카 여행이, 그리고 특히 사막 여행이 남긴 여운이 짙어 그랬던 것 같다. 특히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사막을 질주하는 자동차 운전(내가 이걸 직접 하다니~!!)과 그야말로 뜨거운 사막의 맛, 그리고 멋들어진 사막의 노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 갔다. 직원들이 일을 다 마치고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야 우리도 식당에서 나왔다. 주차장을 거쳐 작은 오솔길을 걸어 숙소로 가려하는데 그 순간 직진님이 무덤덤한 말투로 "하늘 좀 봐요~"했다. 하아~ 그 깨끗한 남반구 사막의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보름달을 향해 제법 차오른 달의 반대쪽 하늘에는 까만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 하늘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별들이 나름대로의 빛을 우리를 향해 보내고 있었다. 곧 여기로 쏟아질 듯,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후딱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찰칵 소리를 내어 봤지만 그 광경은 담기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다른 일행들의 휴대폰에는 찍혔다. 역시 좋은 휴대폰을 써야 한다ㅠㅠ. 부랴부랴 DSLR 카메라를 들고 세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삼각대가 없었다. 대충 주변의 돌들로 어떻게든 고정시켜 해보려고 했는데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무심한 구름들이 서서히 몰려오더니 그 맑던 하늘에 빛나던 별들을 가려가기 시작했다. 그저 눈에 담고 마음에 담을 수밖에... 사진은 일행들의 것으로 남기고...

남반구 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

사실 아프리카 여행, 정확히는 사막 여행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남반구 하늘의 별 궤적을 담아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무거운 DSLR 카메라도 챙겼다. 다만 삼각대를 챙길까 말까 생각하다가 짐이 너무 많아져 마지막에 뺐었다. 예전에 다른 곳을 여행할 때 무거운 DSLR 전용 삼각대 대신 이른바 똑딱이 디카용 삼각대를 갖고 갔다가 사진 몇 장 찍어보지도 못하고 DSLR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삼각대가 망가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고민하다 삼각대를 아예 뺀 것이었다. 그게 이렇게 뒤늦게 아쉬울 줄이야... 이런 얘기를 주워섬기다가 결국 별 궤적 사진은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쯤이었을까. 같은 방을 쓰는 직진님이 나를 깨웠다. "별 사진 찍으러 가야지?" 그 말에 눈이 떠졌다. 하지만 여전히 난 비몽사몽이었다. "구름이 사라졌어요. 사진 찍기 좋아~" 다시금 직진님의 말이 잠결에 들려왔다. "아니오. 그냥 잘랍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몇 분 뒤 이번에는 다소 멀어 보이는 곳에서 직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이 정말 멋지게 떴어요. 별구경 해요~!!" 독채로 되어있는 우리 숙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직진님이 우리 일행들을 깨우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몇몇 일행들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고 이내 "우와~~"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감탄사가 결국 나를 일으켰다. 문을 열고 숙소 방 테라스로 나가보니 어젯밤 본 그 광경보다 몇 배는 더 멋진 하늘이 황홀하게 뽐내고 있었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부지런히 카메라를 챙기고 별 궤적을 찍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의자와 난간을 이용해 카메라를 고정하고, DSLR에 릴리즈를 연결하고,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세팅하고... 그 새벽에 그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이는 스스로가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곤 동남쪽 하늘을 보며 촬영을 시작했다. 30초씩 끊어가며 백 하고도 수십 장을 2시간 가까이 찍었다. 그 사진들을 나중에 작업해서 합성해봐야 결과는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잘 되겠거니', '잘 될 거야', '잘 되어야만 해'라는 말들을 되뇌며 숙소 앞 발코니에 앉아 새벽 공기를 두 시간 가까이 느끼며 촬영에 몰두했다. 손은 기계적으로 30초마다 릴리즈의 셔터를 누르고 있었지만, 눈은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귀는 쏟아질 듯한 별 풍경에 감탄하며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가며 하늘을, 별을 카메라에, 눈에 담는 일행들의 감탄 소리에 쏠려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짙은 먹색이었던 하늘이 서서히 밝은 푸른빛으로 변해가며 새벽빛에서 동이 트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촬영을 멈추었다. 사실 좀 더 긴 시간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어젯밤 구름 탓에 밤 촬영은 못했고 새벽에는 자느라 그러지 못했고... 하지만 그래도 꿈꿔왔던 사막의 밤하늘을, 별 무늬가 잔뜩 들어간 짙은 색 이불이 내 눈 바로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의 그 밤하늘, 남반구의 별들을 일부나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사진의 결과물은 한국 복귀 후 해봐야 알 일이지만 이미 내 눈을 통해 마음에 저장된 그 멋들어진 광경은 사막에 대한 또 하나의 찐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나미비아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아 왔다.

별 궤적 영상(한 시간 반 정도의 촬영이 몇 초 안에 끝난다. 살짝 허무하기도 했다.)


나미비아 사막 하늘의 별 궤적 사진(원의 중심은 북극성이 아니다. 여기는 남반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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