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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롱 Aug 27. 2021

자유로운 독일 호수, 내 사랑 코씨

    코씨(Cossi) 혹은 코스피(Cospi)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코스푸드너제(Cospudener See). 우리 가족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애정 하는 top 3 중 하나로 꼽는 곳이다. ( 다른 두 곳은 우리의 보금자리인 구스타브 말러 길 8번지,  그리고 8번지 집 바로 앞에 있는 요한나 파크) 한여름 물놀이를 즐기고 싶을 때는 물론이고, 탁 트인 물가에서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산책을 하고픈 봄가을이나 고독을 씹고픈 겨울에도 더할 나위 없는 곳. 그래도 물놀이가 가능한 여름이야 말로 자유로운 코스피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계절이다.  짭조름한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그려면 네댓 시간은 족히 운전을 해야 하는 독일 내륙이지만, 코씨 덕분에 아쉬움 없이 여름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요한나 파크를 거쳐 클라라 파크를 지나 숲 속 오솔길을 9km 정도 달리면 다다를 수 있는 코씨. 작은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 페달을 구르면 도심에서 금세 빽빽하게 나무가 우거진 정글 세계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자전거를 타다 아이들이 좀 지친다 싶을 때쯤이면 호수로 가는 길 중간 지점에 빌드 팍(Wildpark)이 보인다.  염소, 사슴, 낙타 같은 몇 가지 동물들을 구경하고 먹이도 줄 수 있는 지역 인기 명소.  진흙탕에서 뒹구는 멧돼지 가족을 구경하며 목도 축이고,  과자도 한 두 개 집어 먹으며 짧은 휴식을 즐긴다. 이렇게 우리가 오가는 길에 최적의 쉼터까지 마련해 놓은 코씨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에너지를 충전한 후 팔팔해진 아이들을 앞세워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싣는다.  한참 달려온 숲길을 빠져나와 포장된 도로에 진입하면 코씨로 향하는 자전거 부대에 합류하게 된다.  앞, 뒤, 옆,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코씨를 향해  페달을 구르는 사람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 실물 영접을 위해 열심히 뛰어가는 열혈팬 같다고나 할까. 무리 속에서 코씨를  향할 때면 잠시지만 내가 이방인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괜히 나 혼자서만 느끼는 거겠지만, 우리 모두 코씨 팬클럽 소속! 은근슬쩍 마음에 동질감이라는 게 차오른다.


    수명을 다한 노천 탄광에 물을 채워 2000년도에 탄생한 인공 호수, 코씨. 호수 둘레가 10km가 넘을 정도로 큰 데다  수질도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긴 모래사장은 물론이고 중소형 보트나 카누를 탈 수 있는 선착장도 있어 이름난 해수욕장이 부럽지 않다. 이토록 훌륭한 휴양지에 입장하는데 드는 돈은 무려 빵원!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호수를 즐기면 된다. 간단히 수건 한 장 들고 와 깔고 앉는 사람도 있고, 우리처럼 원터치 그늘막을 가져와 좀 더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 호숫가 식당에서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사 먹어도 되고, 집에서부터 궤짝으로 가져온 맥주를 마시거나, 숯불을 피워 소시지를 구워 먹는 것도 자유.  돈을 내야 여기에 엉덩이를 대고 앉을 수 있다며 파라솔을 강매하지도 않고, 취사금지라며 맛도 없는데 값만 비싼 음식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사 먹게 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가 머물렀던 자리는 깨끗하게 해 놓고 돌아가야 한다. 호수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코씨.

앗싸! 코씨에 도착했다!!


    호숫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자유롭지만, 얼얼할 정도로 시원한 코씨 속에 있는 사람들은 더 자유로워 보인다. 수영에 서툰 내 눈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인어.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새인 듯, 튜브나 구명조끼 없이 온전히 자신의 근육을 움직여 유유자적 수영하는 사람들.  무엇에 홀린 듯, 나도 저 자유의 물에 첨벙 몸을 맡겨보고 싶어 진다. 수영이라고는 실내수영장에서 킥판을 잡고 어푸어푸 거친 숨을 몰아치며 자유형으로 10미터 정도 나가는 게 전부인 나. 용기 내어 크게 숨 한 번 들이쉬고 물살을 갈라 본다.  이게 몇 년 만의 자유형이던가.  팔 한 번 휘적하고 숨 한 번 쉬고, 팔 한 번 휘적하고 숨 한 번 내쉬고는 포기. 너무 숨이 차다.  버둥거리며 일어서니 머리카락은 미역 줄기처럼  얼굴 여기저기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비 맞은 생쥐꼴을 하고 있는 내게 한 할머니가 괜찮냐고 물으신다. 머리까지 쏙 물에 잠겼다 아등바등하는 모습에 내가 익사라도 하는 줄 아셨나 보다.  사람이라면 자고로 수영을 할 줄 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독일인에게는 위급한 상황처럼 보였을게다.


"알레스 굿, 알레스 굿! (Alles gut!)"


    쌍으로 엄지 척을 하고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해도 걱정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신다.  저벅저벅 물 밖으로 걸어 나가는 내 모습을 보고서야 겨우 안심하신 맘 좋은 할머니. 그제야 곱게 쪽진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은 채 유유히 멀어져 가신다. 독일 사람들은 고개는 수면 위로 내놓은 채, 팔다리는 평형 동작을 하는 수영을 한다. 일명 개구리헤엄. 수영만큼은 조기 교육과 사교육으로도 많이 배우고, 학교 정규 과정이기도 하기에 독일에서는 누구나 개구리헤엄으로 자유롭게 호수를 누빈다.  학교에서 수영을 배운 우리 아이들도 개구리 뺨치는 실력을 뽐내며 호수 저만치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그늘막에 앉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는데, 혼자 뭍에 나와 있는 내가 신경 쓰이는지 얼굴만 동동 내놓은 아이들과 남편이 물에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괜찮으니 걱정 말고 놀라고 말하지만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생각 하나. ‘아…… 부럽다.‘ 나도 개구리헤엄을 좀 배워야 할까 보다.  그럼 정성껏 올려 묶은 머리도 젖지 않고, 화장도 안 지워지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우아하게 수영할 수 있을 텐데…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수영 능력자 무리 중에서 중년의 커플이 물 밖으로 나오는데, 올 누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태초의 몸이다. 코씨에 올 때마다 접하니, 이제는 나도 당황하지 않고 제법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자유로운 코씨에서는 누드도 자유. 이게 바로 구동독 지역에서 우세하게 퍼져있다는 FKK문화다. 프라이 쾨퍼 쿨투어 (Freikörperkultur)의 약자인데 직역하면 ‘자유로운 몸 문화‘이다. 말 그대로 옷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육체, 즉 나체 문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지금이야 의연해졌지만, 이곳에서 처음 FKK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따끈한 햇볕 아래에서 선글라스를 끼신 채 책을 읽고 계시던 노부부. 옆엔 자전거 두대와 작은 라탄 피크닉 바구니가 있었다.  사랑과 교양이 가득해 보이는 두 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지를 훌러덩 내리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 얼어붙었다. 눈동자조차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낯선 이의 궁둥이를 이렇게 가까이, 이렇게 오래 본 적이 또 있을까?


    "우와. 저 할아버지 엉덩이 보인다."

    

    둘째의 외침에 얼음이었다가 땡! 다행히도 한국어로 말했지만, 독일어로 뭐라고 더 말할까 봐 얼른 입을 막았다. 아무것도 못 보게 눈을 가렸어야 하는 건가?  어쩔 줄 몰라하는 순간,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도 허물을 벗듯 원피스를 벗어젖히셨다. 전라의 몸이 되신 두 분은 손을 잡고 천천히 호수로 걸어 들어가셨다. 물이 그분들의 가슴까지 올라왔을 때는 걷는 것인지, 수영을 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독서에서 탈의, 탈의에서 걷기, 걷기에서 수영으로 가는 길이 그토록 자유롭고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경계라고는 하나도 없이. 경악해야 할지 경탄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모든 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눈앞에서 목격한 누드도,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의 노부부도, 의식할 시선조차 없는 자유로운 코씨도.


    뚫어져라 음흉한 눈빛을 던지는 사람도 없고, 슬그머니 핸드폰을 드는 사람은 더더욱 없는 모두의 호수 코씨.  아무리 그래도 비루한 몸뚱이를 내놓을 자신이 없는 나는 수영복도 입고, 그것도 모자라 얇은 원피스도 덧입는다. 옷은  벗지만 그래도 이젠 ‘원피스가 젖어 수영복이 비치려나?  갈아입을  혹시 백분의 일초 찰나라도 신체부위가  보였을까? 맨바닥에 앉아 있는데 속옷이 보이는 각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벗어던졌다. FKK F 자유(프라이 Frei). 이만하면 나도 쓸데없는 근심 걱정을 떨치고  나름의 자유로운  문화, FKK 즐긴다고   있지 않을까?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  '옷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은 옷으로 숨기고 싶은 것들을 가려서 자유를 얻으려 하나

오히려 옷이 거추장스런 갑옷이 되고 사슬이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옷을 덜 입고 맨살을 더 드러내어 햇볕과 바람을 만나야 하리니,

삶의 숨결은 햇살 안에 있고

삶의 손길을 바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옷에 혹은 관습에 속박당했던 것은 아닌지. 옷은 껴입을수록 그만큼 그 안에 가려야 할 것이 많아 자유롭지 못하고, 가볍게 입어 드러낼수록 숨길 것이 없다는 말.  코씨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맨살을 다 내놓아도 좋고, 조금은 덜 내놓아도 좋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유로운 이곳에서 햇볕과 바람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면. 그래서 타향살이로 알게 모르게 그늘졌을 내 삶에 환하고 따뜻한 햇살을 가득 불어넣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이미지출처

https://unsplash.com/photos/TpvmwwyUC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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