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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롱 Dec 26. 2021

그래서 독일에 산타는 언제 옵니까?

너희들의 추억을 지켜주고 싶은, 나는 엄마 산타

     산타는 무조건 24일 밤, 아무도 모르게 와서 선물을 두고 가는 거라고 믿었다. 들키면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말에 궁금한 마음을 참아가며 억지로 잠을 청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는데... 유치원에서 맞는 마지막 12 월 어느 날 겪게 된 산타에 대한 대혼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에 대하 이야기를 해보자면...


     때는 1986년 12월, 장소는 성심 유치원. 원장 수녀님은 나이가 지긋한 분이셨고, 어린이들이 실내에서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늘 "어린이들 조용히 하세요. 유치원 안에서 뛰어다니면 안돼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시셨다. 어느 오후, 자유 시간이라 교실 안에 있는 장난감이나 교구를 꺼내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원장 수녀님께서 양 팔을 휘적거리면서 종종종 뛰어오는 게 아닌가. 거기다 소리까지 치면서 말이다.


     "어린이들, 어린이들!! 여기 보세요! 누가 우리 유치원에 왔는지 좀 보세요!!!"


      손을 맞잡고 동동거리는 원장 수녀님 뒤로, 빨간 옷에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오는  아닌가. 신난 아이들은 우르르 산타에게 달려갔다. 나만 빼고 말이다. 작고 여린 두뇌로  상황을 이해할  없던 나는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오늘은 24일도 아니고, 깜깜한 밤도 아닌데  산타가 나타났지? 산타는 굴뚝이나 창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산타는 흰색 운동화를 가지런히 벗어두고 저벅저벅 들어왔다. 여느 인간처럼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산타는 커다란 자루에서 선물을 꺼내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나눠줬다. 어안이 벙벙해 갖고 놀던 털실뭉치를 손에  쥐고 있던 나는  이름이 불렸을 때야 겨우 일어나 선물을 받아왔다. 선물을 받고선  혼돈에 휩싸였다. 산타를 보면 선물을 받을  없다고 했는데... 산타를  버리고 말다니. 산타의 비밀을 나와 성심유치원 친구들이 까발린 건가? 이제 어쩌지? 산타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산타를 만난 ,  혼란스러웠고, 불안했으며   없는 죄책감도 들었다.  


     며칠 , 유치원은 방학을 했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머리맡에 하얀색 바탕에 군청색으로 테가 그어진 부츠와  여러 가지 색이 들어있는 크레파스 세트(였는지 색연필이었는지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놓여 있는  아닌가. 이상하다, 분명 며칠 전에 산타가 유치원에 나타나 선물을 주고 갔는데...   줬지? 선물을 살펴보고 있는데 엄마가 밤에 산타가 왔다   같다고 하신다. 진짜냐고 물어보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엄마가 밤에 물 마시러 부엌에 갔었거든. 근데 그때 산타가 와서 선물을 두고 가더라. 엄마가 부엌에서 몰래 다 봤어."


     엄마가 거짓말 할리는 없고... 산타가  번이나 왔다 간다는 소리를  들어봤는데...  말고 산타를  사람들이  있네... 그런데도 산타가 계속 선물을 주러 다니네... 아리송한   둘이 아니지만, 어쨌든 산타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하러 동네 친구네 집으로 향했는데... 웬걸 친구 선물이  부러워졌다. 미미의 ! 분홍색 2 집에다 미미도  개나 받은 친구를 보니 산타에 대한 아리송한 마음은 금세 서운함으로 바뀌었다. ‘저거 나도 갖고 싶었는데,  쟤한테만 미미의 집을 선물해준 거야? 산타는 나보다  친구를  좋아하나 . 흥칫뽕!’ 부럽고 샘나는 마음을 애써 숨기고 함께 미미의 집을 갖고 노는데 친구가 이상한 말을 했다. 산타가 너무 바빠서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 밤에 미리 갖다 줬다고! 지척에 있는 우리 집에는 어제 왔는데, 얘네 집에는 바빠서 하루 전에 미리 다녀갔다고? 뭐야? 유치원에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오더니...... 도대체 산타는 언제 오는 거야?


     똑같은 질문이 머릿속에서 뱅뱅 거리기 시작한 , 30 . 내가 낳은 아이가 성심 유치원 시절의  나이가 되었고, 독일로 이사   처음으로 맞는 12월이었다. 정확히는 12 6.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아이가  우리 집에만 니콜라스 할아버지가 오지 않았냐고 졌다. 이게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지?


     "니콜라스 할아버지가 누구야? 엄마는 모르는 사람인데? 그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왜 와?"


   아이가 한 말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보니, 1) 그 할아버지는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고 2) 어젯밤 그러니까 12월 5일 밤에 유치원 모든 아이들 집에 다녀갔다고 한다. 3) 아이들이 신발을 깨끗이 닦아놓으면, 그 안에 초콜릿이랑 젤리랑 장난감을 두고 가는데, 4) 자기네 반 최고 말썽쟁이 어린이도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단다. 5) 아침에 빙 둘러앉아 선생님과 아이들이 니콜라스 할아버지가 준 선물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는 못 받았다고 하니 모두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나 뭐라나...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면, 그건 산타잖아. 산타는 크리스마스에 오는 건데? 가만, 니콜라스. 세인트() 니콜라스, 산타 니콜라스, 산타 클로스? 산타 할아버지?!? 뭐야, 독일에는 산타가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니라 12 5일에서 6  사이에 다녀가는 거야? 선생님까지 아는 거면 진짜인가 본데... 더듬더듬 짧은 독일어로 선생님께 여쭤보니 참말이란다. 12 6일은 독일에서  니콜라스의 날이고, 그날 니콜라스가 밤에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고... 세상에! 이번 크리스마스는 망한 건가? 이제 아이가 산타를  믿으면 어쩌지? 혼돈과 미안함이 범벅이 되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이는 풀이 죽어있었다. 자기가 나쁜 아이라서 선물을 못 받은 거냐고, 니콜라스는 자기보다도 그 말썽쟁이 어린이들 더 좋아하는 거냐고 묻는데... 미미의 집을 부러워하며 산타에게 삐쳤던 내가 떠올랐다.


     "아니야, 우리 조슈아가 얼마나 착한데. 아마 우리가 독일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니콜라스 할아버지가 우리 집을 잘 못 찾아서 그런가 봐. 그 정도는 우리가 이해해주자. 내년에는 잘 찾아서 오실 거야."


     아이의 서운함과 죄책감은 이렇게나마 달래줄 수 있었는데, 산타를 둘러싼 문화충격에 내 머리는 아직도 얼얼했다. 그러니까 독일에서는 니콜라스가 산타고, 그가 이미 12월 6일에 선물을 주고 갔으면,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산타가 다시 안 오는 건가? 그래도 이제껏 24일 밤에 오던 산타가 갑자기 독일이라고 안 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산타 선물 없는 크리스마스 아침은 말이 안 되잖아...


     다음날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학원 선생님께 니콜라스와, 산타와,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여쭤봤다.


니콜라스가 12월 6일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 것은 독일의 전통이다. 단, 선물은 초콜릿과 함께 아이 신발 안에 들어갈 정도의 자잘한 것으로 준비한다 -->넵! 내년부터는 잘 챙기겠습니다!

니콜라스의 날 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아이들은 선물을 받는다. 이 날 받는 것이 메인 선물. -->역시. 선물 없는 크리스마스는 말이 안 되지.

선물을 가져다주는 존재와 그 시간은 지역마다 다르다-->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그리고 한가지 , 크리스마스에 선물 주러 오는 할아버지를 독일에서는 '산타' 하지 않고 바이나흐트만(Weihnachtmann: 직역하자면 성탄남자? 성탄맨?)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산타랑 바이나흐트만은 다른 사람인가요? 니콜라스가 산타고, 바이나흐트만은 산타가 아닌가요? 하는 일은 비슷한  같은데 도대체 누가 누구죠?


     말인즉슨,  지역에서 우세한 종교나, 과거 동독이었는지 서독이었는지에 따라 산타와 크리스마스에 대한 전통이 조금씩 다르다고. 가톨릭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크리스트 킨트(Christkind: 날개 달린 아기 천사) 24  몰래 성탄 선물을 가져다주는 편이고,  동독에서는 24 저녁에 바이나흐트만이 집으로 찾아와 아이들에게 직접 선물을 나눠주는 편이라고. 받은 선물은 보통 저녁식사  가족들과 함께 풀어본다고. 그런데 요즘에는 글로벌 추세에 따라 24  '산타' 몰래 선물을 두고 가면, 성탄 아침에 선물을 풀러 보는  대세인 듯 하다고 하셨다.


     대답을 들으니 알 것 같기도 하고, 더 모르겠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땅에서 딱히 따를만한 전통이 없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그래서 도대체 독일에는 산타가 언제 오는 거냐고요. 산타를 믿는 짧은 유년 시기를 독일에서 보내게 될 내 아이들도 여타 독일 어린이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추억을 가질 수 있게 해주 싶은 것뿐인데. 산타에 대한 어릴 적 옛 고민을 독일에서 다시 하게 되다니! 역시 미스터리 한 산타, 그는 쉽게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어!


     어쨌든 이번에는 결론을 내야 했다. 지금 한창 크리스마스와 산타를 굳게 믿고 있는 내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산타에 대한 기억이 뒤엉켜 있는 성심 유치원 시절 나를 위해서도. 남편과 장고 끝에 마음을 정했다. 우리는 글로벌 추세에 따르는 걸로. 우리집에는 바이나흐트만인 듯 한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고, 그 때 크리스트킨트도 서넛 함께 따라다니기로 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하루 일찍도, 하루 늦게도 아닌 딱 24일 밤에 와서 몰래 선물을 두고 가실꺼고, 아이들은 다음 날 아침 신이 나서 선물을 풀어보겠지. 엄마 산타가 되어 그렇게 지켜주고 싶어, 너희들의 크리스마스 추억.




이미지출처:

https://unsplash.com/photos/h3wtp_1cW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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