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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sorim Nov 15. 2016

너에게.

_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러브레터.



_

오휘명 작가님의 <받는 이 미상의 러브레터>의 오마주.


<언젠가의 너에게 보내는 오늘의 나의 러브레터 一>


10.

너는 11월의 봄바람만큼이나 가늘고 희미하게 나에게로 날아들었으면 좋겠어. 나는 이제부터 아주 솔직한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까 나의 솔직함을 마주한다면 놀라지 않고 너도 솔직함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어.


9.

이유 없이 바람이 차던, 엊그제와 같은 그런 서늘한 밤, 그저 문득 한 줄기의 외로움이 너를 뒤척이게 해서 나를 떠올린다 해도 나는 괜찮을 것 같아. 너의 하얀 방의 커다란 매트리스에 누워서, 한 귀퉁이의 '너의 자리'에 누워서 텅 빈 반대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제야 문득 나를 떠올린다 해도 나는 괜찮을 것 같아.


8.

네가 너를 모른다고 해도 내가 '나'에 대해 분명하면 되는 거 아닐까. 오늘 아침 나는 말이야, 두려운, 새로운, 처음으로 맞이하는 오늘의 아침, 나는 하얀 시트 자락을 들어 올리며 너를 떠올렸어. 우린 이미 만났을지도 아니면 잠시 스쳤을지도 아니면 아직 만나지 못했는지도 모르지. 그리곤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너를 너무 그리워해 왔어'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 졌어. 

7.

네가 나를 만나게 된다면, 내가 너를 만나게 된다면, 행여 네가 너를 모른다고 해도 그건 내게 더 이상 중요치가 않을 것 같아. 왜냐면 이제 내게는 '너'보다는 '내'가 중요했고 그렇기에 내가 '나'에 대해 확실할 것이기 때문이야. 그렇게 너를 좋아하게 된다면,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된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마음을 아끼거나 낭비하지 않을 거야. 아끼지 않으려고. 좋아하는 마음이 애달파 곯아 버리지 않게 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이야.


6.

그저 내 마음이 있는 그대로 너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야 하겠지. 부담이 아닌 해맑은 미소 한줄기로 그 솔직할 내 마음을 받아주기를 바랄게.


5.

조만간 너를 만나고 싶다. 꼭 오늘이라거나 내일이라거나 이번 주 안이 아니더라도 괜찮아, 물론.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말이야. 마침내 너의 얼굴을 마주하면, 그 날이 오면, 평온한 미소로 내 마음을 받아주기를 바랄게.


4.

그리고 그러다 언젠가는 더더욱, 아-주 아주 솔직해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 더 솔직한 오랜 나의 마음까지 털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 실은 매일 밤 자리에 누워 희미한 너를 떠올렸다고. 늘 차지하는 '나의 자리'에 웅크리고 누워 몸을 뒤척이다가 텅 빈 반대편의 '너의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았노라고. 바로 그 자리에 네가 그저 고요히, 평온하게, 말없이, 가만히 있어준다면 이미 아름다운 나의 삶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리라 믿어왔다고. 오랫동안 이를 전하고 싶었다고.


3.

그러나 너무 애쓰지는 않을 거야. 너에게 목을 메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나보다 너를 더 앞으로, 우선으로 두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만 서운해하지는 않는 네가 되어 주기를 바라. 대신에 좋아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그립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그 모-든 말들을 아끼지 않을 거야. 그 모든 말들을 너에게 원 없이 말할게. 그렇게 아주 솔직한 사람이 되어줄게.


2.

끝으로 좋아해. 많이 보고 싶어. 그리워. 네 생각을 자주 해. 곧 만났으면 좋겠다.


1.

우리는 곧 만나야만 할 것 같아.



_

너에게.


내가 너의 마음속에 들어가 볼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을 거야. 어쩌면 너는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사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왜인지 자꾸만 네가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만 생각이 든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난 우리가 서로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너의 앞에 서면 내가 자꾸만 작아졌는데. 그러나 자꾸만 너에 대해 생각을 할수록 점점 더 너는 나와 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우리 모-두와 같이, 너도 그리고 나도.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이었겠지.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안쓰러운 마음마저 드는구나, 너에게. 너도 얼마나 슬펐을까. '네가 생각한 내'가 '내'가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 너도 문득 더욱 외로워졌겠지? 두 명의 '외로움이 닮은 사람들'이 만나도, 그러하더라도, 때로는 서로를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는 더욱 서글퍼졌을지도 몰라. 나는 그랬거든. 나는 그렇게 더욱 서글퍼졌거든.


그러나 나는 젊은 날의 특권이라고 생각해. '나'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을, 심지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을 열렬히 좋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말이야. 그렇게 나는 앞으로의 내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 어쩌면 나도 지쳐버릴지도 모르지. 어쩌면 내 생각이 모두 틀렸고 우리는 그저 너무도 다른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내게 스산한 한 줄기 찬 바람이 불면 네가 떠오르듯이, 너의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쌀쌀한 밤에 나의 얼굴이 얼핏 스쳐간다면. 우리는, 너와 나는, 일단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


너와 나는 일단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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