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나서, 나는 많이 걸으러 다녔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을 때, 몸을 먼저 움직이는 쪽을 선택했다.
2023년 10월, 내가 걸은 길은 영덕 블루로드였다.
지난 코리아둘레길에서 같은 조였던 오빠가 영덕에서 청년 활동을 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함께 걷게 됐다. 부산에서 포항으로, 다시 포항에서 장사로 이동해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온 언니, 부산에서 온 나, 김해에서 온 오빠. 셋이서 1박 2일 동안 완주를 목표로 길에 올랐다.
영덕은 ‘대게’로 유명한 도시답게, 길 곳곳에서 대게 모양을 만날 수 있었다.
장사해수욕장에서 스탬프 도장을 찍고 출발했다. 영덕 블루로드는 해파랑길과도 연결되어 있어, 마침 가지고 있던 해파랑길 수첩에 도장을 함께 찍을 수 있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는 썩 좋지 않았다.
‘오늘 정말 걸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신기하게도 걷기 시작하자 하늘이 점점 파랗게 열렸다. 바닷길을 따라 걷는 영덕 블루로드는 생각보다 깊은 힐링을 안겨주었다.
원래 계획은 여유롭게 하루에 두 코스씩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늘 길 위에서 바뀐다.
결국 하루에 세 코스를 걷게 되었고, A·B·D 코스를 하루에 모두 걸으며 생애 처음으로 하루 40km를 넘게 걷게 됐다.
2박 3일치 짐이 들어 있는 가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를 짓눌렀다.
계획이 틀어지자 마음도 무거워졌고, 발바닥은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다. 가방을 그대로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 10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걷자, 몸은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해는 이미 졌고, 우리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결국 휴대폰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어두운 자갈길을 걸었다. 야맹증이 있는 나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옆은 절벽, 아래는 바다였다. 발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한 발 한 발 내딛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고, 표정도 사라졌다.
‘이렇게까지 걷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해냈다.
목적지가 거의 다 왔을 즈음에는, 실성한 사람들처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40km가 넘는 길을 쉬지 않고 걸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만큼 뿌듯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묵묵히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준 오빠 덕분이었다.
그날은 내 생애 최고의 기록이었고, 분명한 한계를 넘어선 날이었다.
퇴사 후 걸었던 수많은 길 중에서도,
영덕 블루로드의 하루는 아직도 가장 또렷하게 몸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