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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Oct 18. 2023

사천 탁구 대회를 다녀오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삼천포에서 탁구대회가 열렸다. 


늦여름, 8월 26~27일 삼천포 실내 체육관에서 이틀에 걸쳐 대회가 진행되었다. 토요일은 하위부수, 일요일은 상위부수 게임이 펼쳐졌다. 


나는 토요일에 간단한 음료를 들고 응원차 구경 갔다. 아무래도 하위부수가 더 친숙하기 때문이리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하위부수였으니. 물론 지금도 하위부수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하위부수 게임에 더 관심이 가는 면도 없지 않다. 과거에 속해 있던 남자 8부와 7부들의 게임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도 드는데 아~~ 나도 여기에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 여기서 게임하면 보다 맘 편히 게임할 수 있을 텐데, 가볍게 게임해도 입상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 최소 예선전에서는 편안히 임할 수 있을 텐데... 즐길 수 있을 텐데... 나는 어이하여 이리도 급히 승급했단 말인가. 


그간 함께 했던 7,8부 동료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면서 응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게임을 즐기며 32강, 16강에 잘도 올라갔다. 박빙의 점수차에서도 신바람 내며 착착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부럽던지, 그들의 부담 없어 보이던 표정... 쾌감을 느끼는 표정... 나도 느끼고 싶은 그 표정...


그들이 계속해서 하위부수 대회를 즐기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구장 소속은 아무도 입상하지 못한 채 대회 첫날을 마감했다. 일부러 입상하지 않는 촌극. 아아~  나쁜 사람들. 야속한 이들. 


이어서 일요일,

공포의 상위부수 대회 이틀째 날. 

나는 이른 아침 삼천포로 향했다. 긴장되는 날. 삼천포 체육관이 이리도 가슴 떨리는 공간으로 변할 줄이야. 우리 구장 6부 동생 찬우를 만나서 간단히 몸을 풀었다. 금세 땀이 났다. 이제 곧 예선이다. 대회 성적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공개된다. 경남탁구협회 홈피를 수시로 보면서 동료들은 톡이나 전화를 해댄다. 이중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 "역시 승급하더니 헤매고 있네, 상위부수에서는 힘을 못쓰네, 너무 빨리 올라갔어, 대회에는 뭐 하러 나가냐?" 뭐 이런 말들이다. 나름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실제로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했다. 뒤에서 수군대는 이들 때문에 신경 쓰였다.  


그렇다. 관건은 예선이다. 


예선을 어떤 성적으로 통과하는지, 혹은 탈락하는지가 문제다. 

이른 아침, 가장 몸이 경직되었을 때 최고로 긴장되는 예선전이 펼쳐진다. 탁구 대회 예선전의 룰! [셋 중 하나는 떨어진다.] 둘은 하나를 희생 삼아 본선 토너먼트로 간다. 나는 여태껏 예선에서 홀가분했을 때가 없었다. 하물며 6부로 승급하고나서부터는 매 대회 초긴장의 연속이다. 예선 성적이 곧 실력의 척도다. 강자를 만났건 약자를 만났건은 중요하지 않다. 강자들과 묶여 죽음의 조가 된 속사정까지 지켜보는 이들은 알지 못한다. 그저 '예탈이네, 2위로 겨우 턱걸이했네'라고 말할 뿐이다. 


거기다 이제 갓 승급했기에 여기 부수에 누가 고수고 하수인지를 알지 못한다. 예전에 함께 7부로 있다가 나보다 먼저 승급한 이들을 간간히 만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외 절대 다수인 상대가 어떤 구력의 소유자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 나는 대진표를 보고 폭풍 검색을 해보고는 했다. 예선에서 같은 조에 묶인 이들이 8부에서 7부로, 7부에서 6부로, 어떤 성적으로 승급했는지, 지난 대회에서 몇 강까지 갔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들이 좋은 성적으로 승급했거나 최근 대회에서 예선 1위로 본선에 가서 몇 강까지 갔는지를 알고 나면, 그때부터는 어떤 두려움의 싹이 피어났다. 이 사람은 개인 단식 우승으로 승급한 사람이구나. 그러면 최소한 토너먼트를 아는 사람일 텐데. 내가 그런 이를 이길 수 있을까. 지난 대회 예선에서 1등 했구나. 그러면 최소한 예선전은 가볍게 보고 들어올 텐데. 나 역시 그의 희생물이 되는 건 아닐까. 이것 봐, 16강, 8강까지 갔던 사람이네? 어라? 단체전에서 우승한 멤버네? 이런 선수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의문의 싹은 자라고 자라 덩굴이 되어 온몸을 칭칭 감았다. 난 상대할 수 없어. 이렇게 6부에서 닳고 닳은 사람들을 내가 어찌 이긴단 말인가. 난 다시 초보로 돌아가겠지. 초보취급을 받을 거야. 다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될 거야. 무슨 서브를 넣어야 하지? 어떻게 받아내야 하지? 네가 올 자리가 아닌데 왜 왔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신 차리자. 예선전이다. 

나는 가위바위보에서 지는 바람에 먼저 심판을 보았다. 심판을 보며 두 선수의 기량을 가늠하리라. 그런데 이게 뭐지? 두 선수가 게임을 하는데 점수가 온전히 드라이브로만 나는 게 아닌가. 3구, 5구를 드라이브로만 점수 내는 수준. 이른바 고급 탁구. 나는 기가 죽었다. 심판을 보면서 든 생각.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야. 난 어제 하위부수 하는 날에 출전했어야 하는데. 7부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제 갓 6부로 2 연속 예선 통과한 실적도 이걸로 끝이구나. 드디어 예탈의 날이 왔노라. 넌 아직 멀었다는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듣게 되려나.

 

결국 3대 1로 창원 선수가 통영 선수에게 승리했다. 나는 승리한 창원 선수와 붙었다. 초반에 드라이브 몇 방을 얻어맞고 저 멀리 공 주으러 다녀오면서 든 생각. 좆 됐다. 망했다. 역시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역시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뭔 놈의 드라이브가 코스까지 완벽하냐? 젠장. 아놔. 짜증 나. 미치겠다. 그렇게 어두운 얼굴로 1세트를 내줬다. 그러고는 이것저것 여러 서브를 시도해 보았다. 그러다 오른쪽으로 횡회전이 섞인 훅서브를 넣었다.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돌아서서 드라이브를 걸었다. 공이 라켓 끝에 맞아 오른쪽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어라? 이 서브가 통하네? 그때부터였다. 나는 주야장천 횡회전 훅서브를 넣었다. 두 번에 한 번은 서브로 득점했고 간혹 반구 되더라도 3구를 가볍게 코스 뺀 드라이브로 득점했다. 차츰 앞서가기 시작했고 결국 3대 1로 승리했다. 이거 현실이 맞나? 의아하면서도 기뻤다. 믿기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이어서 통영 선수와 만났다. 이 분은 왼손 펜홀더다. 연세가 꽤 있어 보였다. 연세가 있다는 것은 구력도 그만큼 깊다는 거다. 내가 득점할 때도 나이스, 잘했다, 라고 소리쳐주었다. 감사하면서도 어쩐지 불안했다. 상대의 플레이에 나이스, 라고 소리쳐준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반증이다. 여유가 있다는 것은 언제라도 이길 수 있는 비책이 있다는 것일 테고... 역시 그랬다. 불안은 현실로 반영되었다. 내가 세트 스코어 2대 0으로 앞서다가 이 분의 튀는 서브를 못 받기 시작했다. 상대 선수도 이것저것 서브를 넣다가 내가 튀는 서브를 타자(서브 못 받는 것을 서브를 탄다, 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튀는 서브만 넣어댔다. 세트 스코어 2대 0으로 앞서고 3세트에서도 10대 6으로 앞서다가 거짓말처럼 잡혔다. 결국 3대 2로 졌다. 


세 번째다. 

6부로 승급하고 임한 대회에서 나는 3연 속 조 1위를 했다. 예선을 1위로 당당히 통과한 것이다. 내가 1위, 창원 선수가 2위, 통영 선수가 3위로 예탈. 하늘이 도왔다. 도저히 내가 통과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후 본선에서 나는 1회전 부전승, 2회전 승리, 3회전 8강전에서 3대 2 스코어로 김해 선수에게 패배했다. 최종 16강이 내 성적이다. 6부로 승급하고 나서 최고의 성적.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좀 더 나은 성적을 올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만족했다. 주위에서 칭찬도 많이 들었다. 뿌듯했다. 




이제 한 달 여가 지나고 가을이 왔다. 곧 밀양 대회에 도전한다. 내 목표는 아직 예선 통과다. 본선 성적은 관심도 없다. 그리고 단체전 성적 역시 1회전 통과가 목표다. 그 이상 입상은 꿈도 꾸지 않는다. 


대회에 나가다 보면 이렇게 예상외의 성적을 올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드는 만족감은 꾀나 크다. 해냈구나. 이겨냈구나. 수군거림을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반대로 예선 탈락의 쓴맛을 볼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예감은 곧 현실이 되겠지. 살얼음판을 걷는 6부의 대회 도전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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