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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an 19. 2024

고추튀김을 향해 뛰어라

오징어튀김도 같이 먹었다


갓 나온 고추튀김 한 입 베어 먹는 그 순간




고등학생 때였다.


쉬는 시간은 10분. 아침 1교시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릴락 말락 할 때, 교탁에서 수업 끝!이라고 외치며 선생님이 나가려 발을 뗀 순간, 실내화를 고쳐 신고 뒷문으로 냅다 뛰었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우당탕 내려가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교문을 지나 100여 미터 뛰어서 일빠로 도착했다.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분식점 가판대에는 이제 갓 튀긴 고추튀김과 오징어튀김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했다. 고추튀김과 오징어튀김은 유난히 컸다. 내 손바닥 두 개는 합쳐놓은 듯한 길이에 두께도 아이 손목만 했다. 거기다 하얀 김이 폴폴 나 뜨거웠다. 내가 첫 손님이다. "아저씨! 이거 먹어도 돼요?" "어라? 오늘도 1등이네? 어찌 이렇게 튀김 나오는 시간을 딱 알지?" "뭐 한두 번인가요 제가?" "그려 뜨거우니 조심히 먹거라." "네~"

저쪽에서 뒤늦게 뛰어오던 친구와 학생들이 속속 도착했다. 나는 집게로 고추튀김 하나를 집었다. 덥석 베어무니 아뜨뜨 불이 났다. 후후 부니 바사삭 튀김옷을 거쳐 사각사각 고추를 지나 입안 가득 튀김 속이 압안에 버무려졌다. 튀김 속은 잡채 같았다. 잡채 같은 속이 가득 고추옷을 입었다. 고추는 튀김 외투를 껴입고서 초롱초롱한 내 눈을 보고 있었다. 나는 튀김 외투를 벗기고 고추 속옷도 벗기고 잡채와 만났다. 뜨거웠다. 평소 다 식은 튀김만 먹다가 이렇게 갓 나온 걸 먹는 느낌이란...


그리고 오징어튀김에도 처음 눈을 떴다. 정말이지 너무나 컸다. 이렇게 큰 오징어 몸통이 존재한단 말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컸다. 한입 물면 튀김에 벌써 베인 오징어 향이 물컹 새어 나왔다. 쫀득쫀득한 오징어의 씹는 맛이란...


고추튀김과 오징어튀김을 번갈아 먹었다. 튀김 하나당 200원. 두 개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400원을 내고 다급히 교문을 향해 뛰었다. 교문을 지나고 강당 옆을 뛰는데 수업 종이 울렸다.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계단을 올라 교실로 우당탕 쿵쾅 뛰었다. 선생님들이 복도에서 교실로 제각각 들어가고 있었다. 교실 앞문으로 선생님이 들어감과 동시에 나는 뒷문을 통과해 내 자리에 앉았다. 휴우~ 쉬는 시간 10분을 이렇게 온전히 야무지게 쓰다니. 



지금도 간간히 튀김 가판대를 볼 때면 그때 그 튀김이 떠오른다. 

번개처럼 달려와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데 지글지글 끓는 기름통에서 달력종이 뒷면에 이제 막 놓인 고추튀김 오징어튀김. 둘은 경쟁이나 하듯 두껍고 길었다. 감격하며 튀김을 집어 들던 그때 그 순간이 생각난다. 요즘은 튀김 몇 개를 고르면 다시 기름에 담가 데워준다. 인위적인 온기에도 튀김을 덥석 물면 그때 그 장면이 자동으로 연상된다. 나는 이 튀김 하나를 먹기 위해 얼마나 빨리 달렸던가. 뜨거운 튀김을 급히 먹다가 돌아 뛰던 그때 어렸던 나날이 떠오른다. 튀김 하나에도 가슴이 뛰던 시절. 


그 뜨겁게 바삭바삭한 맛을 보고 싶은 아침. 

어떡하지? 어디 보자. 실내화를 고쳐 신어야 해. 그리고 종소리가 들리면 바로 뛰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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