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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ul 23. 2024

한겨울 춥지 않다는 아이

평기마을 조그만 소녀



위풍당당한 수민이





겨울방학이 이제 막 시작될 때다.



사천시 평기마을 입구에 통학 버스를 세웠다. 몇몇이 타고 맨 끝에 수민이가 탔다. 학생들 저마다 두툼한 잠바를 입었는데 혼자만 반팔차림이다. 보호 탑승자 샘이 물었다. 

"얘 수민아~ 너 안 춥니? 왜 반팔 티셔츠만 입고 있는 거야? 잠바 없니?"

"네, 안 추워요. 오히려 더운걸요. 저는 추위에 강해요. 아유 더워~~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그 대답에 보호 샘이랑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겨울에 덥다고? 보호 샘이 다시 물었다.

"너 집에서 사고 치고 쫓겨난 거 아니지?"

"네, 아니에요."

"엄마가 어디 가셨니?"

"아니요. 엄마 집에 있는데요."

"근데 왜 옷을 이렇게? 엄마 주무시니?"

"아니요. 엄마 지금 동생 밥 먹이고 계세요."

"엄마에게 옷이라도 달라고 해보지."

"아, 제가 더워서 옷 필요 없다고 했어요. 아휴 더워."

수민이는 얼굴을 향해 손바닥 부채질을 했다. 그러면서 이내 두 팔을 몸통에 붙여 오들오들 떨었다. 내가 말했다.

"너 지금 떨고 있는데?"

"아니에요, 너무 더워서 떨리는 거예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녀석은 추위에 떨면서도 계속 덥다고만 했다. 본인이 더워서 옷은 필요 없다고 했다. 보호 샘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묵묵히 버스를 몰았다. 평기마을은 학교와 가까워 곧 도착했다. 학생들이 하나둘 내려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모두가 겨울 옷을 입고 있는데 수민이만 혼자 반팔티 차림이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자니 수민이의 작고 가녀린 몸이 유독 눈에 띄었다. 수민이는 2학년 여학생이다. 엄마가 베트남에서 와 다문화 가정이다. 수민에게는 이제 막 태어난 남동생이 있다. 엄마는 남동생을 돌보느라 수민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리라. 그렇게 보였다.



다음날, 보호 샘이 빨간색 모자 달린 파카를 가져오셨다. 

"우리 애가 어릴 때 입던 거예요. 조금 크겠지만 어쩌겠어요. 이거라도 입혀야지 도저히 안 되겠어요."

샘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날 하굣길.

수민이가 맨 마지막에 내려 다른 학생이 없을 때였다. 보호 샘이 옷을 꺼냈다.

"수민아~ 이거 우리 딸이 어릴 때 입던 거야. 한번 입어볼래?"

그러자 그렇게 덥다고 유난 떨던 녀석이 말없이 순순이 받아 입는 것이었다. 입으니 소매가 길어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 샘이 "이렇게 접어서 이러면 되지"라며 손목 부분을 당기자 조그만 손이 보였다.  

"앗, 손 나왔다" 하면서 녀석은 금방 웃었다. 

"그래, 조금 크지만 예쁘다. 잘 어울리네"라며 나도 너스레를 떨었다.


이튿날부터 겨울방학이 지나 3월 신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수민이는 줄곧 빨강 파카만 입었다. 

아이는 조그마한데 멀리 빨강만 보이면 수민인 줄 알게 되었다. 파카를 한 번도 빨지 않아서 검정 때가 덕지덕지한데도 수민이는 매일 입었다. 두툼한 파카 위로 조그만 얼굴. 홀쭉한 볼. 동그랗고 맑은 눈. 긴 머리칼. 수민이는 정말 예쁜 아이다. 가끔 말하는 게 과장될 때도 있었지만 예쁨이 과장을 덮었다. 

"저는 친구가 많아서 주말에 쉴 틈이 없어요."

"집에 음식이 많아서 밤새도록 먹었어요. 배 터질 것 같아요."

"다음 겨울이 오면 베트남에 여행 갈 거예요."

겪어본 바 대체로 허풍이 많았다. 평기마을에는 수민이와 동년배가 없다. 어디 놀러 갈 데도 마땅치 않다. 빼빼 말라서 제대로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의문이었다. 베트남이 외갓집이라며 아빠가 약속했다며 자랑했다. 



평기마을 입구에 갔는데 수민이가 보이지 않았다. 보호 샘이 골목안쪽 수민이 집으로 갔다. 가서 수민이 손을 잡고 데려왔다. 

"글쎄, 방 청소를 하고 있지 뭐예요?"

"통학버스 올 시간 됐는데 집에서 아무도 안 챙기니?"

아직 시간 개념이 서지 않던 나이. 겨우 2학년.



한 번은 통학버스 안에서 하도 시끄럽게 떠들길래 "조용히 좀 해줄래? 수민이가 제일 시끄럽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민이는 "기사 선생님 무서워"라면서 울먹거렸다. 그 말이 내내 가슴에 남았다. 내가 왜 그리 말했을까. 아직 어린아이인데...... 그때부터 나는 통학버스에서 특히 어린 저학년 아이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허허 웃기만 했다. 보호 샘이나 다른 샘들이 운전에 방해된다며 시끄럽다고 호통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괜찮아요. 학생들이 다들 마을에 혼자 살아서 방과 후나 주말이면 만날 친구가 없어요.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겠어요. 지금 여기서나 떠들 수 있지. 버스에서 내리면 떠들지도 못하잖아요."




2년이 지났다. 



수민이가 2학년, 3학년일 때 아침오후로 두 번씩 얼굴을 봤다.

겨울방학이 이제 막 시작될 때쯤 빨강파카를 입은 수민이가 말했다.

"기사 선생님, 제가 톡 할 테니까 답장 주셔야 해요. 그리고 다음에 꼭 만나러 오세요." 

"그래, 수민이 6학년 되면 그때 다시 올게."

"안녕히 가세요."



수민이와 헤어지고 1년 여가 지나 다시 겨울이 시작될 즈음, 아내가 옷정리를 하고 있었다. 겨울 옷을 꺼내고 여름 가을옷을 안쪽에 집어넣었다. 딸아이가 부쩍 커 어릴 때 입던 옷들을 버린다고 내놓았다. 나는 수민이 얘기를 꺼냈다. "진즉 말을 하지"라며 아내는 저 안에서 별의별 옷을 다 꺼내 한 보따리 짐을 쌌다. 거의 다 겨울옷이었다. 파카뿐만이 아니라 긴팔 셔츠와 카디건 등 그 또래 여자 아이들이 입는 옷들을 다양하게 챙겼다. 

아내는 "이거 비싸게 주고 산 건데" 하면서도 하나하나 꺼내 보따리에 넣었다. 그렇게 보따리를 차에 싣고 아내와 딸아이가 차에 올랐다. 아내가 "수민이가 너보다 동생인데 만나러 가볼래?"라고 하니 딸아이는 만나고 싶다며 차에 탔다. 한창 사춘기여서 주말에 엄마아빠 말고 친구만 찾던 시기에 웬일인가 싶었다.


수민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톡으로 친구네 집에 있어서 지금 옷을 받을 수 없다고만 했다. 엄마가 지금 삼천포 가게에 있는데 엄마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삼천포로 가 엄마가 일한다는 가게로 갔다. 가서 보니 엄마와 할머니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엄마에게 옷 보따리를 건넸다. 우리 딸아이가 입던 건데 실례가 안 된다면 수민이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엄마와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면서 인사했다. 



지난겨울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수민에게서 톡이 왔다.

"선생님, 우리 엄마에게 옷 줬어요?"

"응, 줬다. 왜?"

"아직 못 받아서요."

"뭐? 옷 준지 한참 지났는데?"

"네..."


수민이가 6학년이 되었지만 나는 돌아가지 못했다. 만나지 못했다. 생일이면 수민에게서 톡이 왔다. 

"생신 축하드려요. 힘내세요~"

"고마워~~"

"네."

"수민이 지금 몇 학년이야? 4학년?"

"5학년이요 ㅋㅋ"

"허걱 그렇구나^^"

"넵."



요즘은 수민이가 무슨 옷을 입고 있을는지 궁금하다. 여름이면 춥다고 하고 겨울이면 덥다고 한다. 6학년이 다 지나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은 마음. 이 글을 써야지 했는데 벌써 몇 해나 지났는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은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지도. 늘 씩씩하게 해맑은 웃음을 짓던 아이. 기사 선생님, 저는 정말 행복해요. 엄마 아빠가 저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요. 동생도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너무 걱정 마세요. 할머니께서 저를 많이 챙겨주세요. 기사 선생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따가 오후에 하교 때 봬요. 똑 부러지게 말 잘하던 아이. 눈빛이 초롱초롱한 아이. 



"수민아~~ 혹시 겨울패딩 필요해? 샘 딸이 입던 건데 깨끗해~~ 필요하다면 가져다줄게. 수민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 수민이 많이 커서 알아보지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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