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은사마을에서 6학년 주연이가 탄다.
그냥 일찌감치 가서 기다리는 게 좋다. 기다리면서 차에서 내려 동네 한 바퀴 둘러본다. 정자 쪽에 가서 느티나무도 보면서 아침 정취를 즐긴다. 우와~ 이렇게 우람한 나무라니? 대체 몇백 년이나 사셨습니까? 어쨌거나 잘 부탁드리옵니다. 제발 벼락부자 되게 해 주세요,라고 공손히 두 손 모아 본다. 그러고는 스트레칭하면서 논 풍경을 본다. 잔디처럼 쫙 펼쳐진 그림. 엊그제 심은 아기모가 벌써 저렇게나 컸구나.
은사마을 보건소 옆 건너편에는 선비상이 오뚝 서 있다. 선비상은 작지만 기상이 또렷하여 은은한 위엄이 드러난다. 가까이 가니 작은 선비가 크게 보인다. 선비님~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요? 은사마을. 이곳은 선비가 은둔한 마을이라 하여 은사마을이라 부른다. '은사'라는 어감자체가 되새길수록 근사하게 들린다. 은사~ 은사님~~ 은사아아~~~~~ 나의 은사~~~~ 이름마저 예쁜 은사마을은 통학버스가 가는 첫 번째 마을이다.
은사마을 입구 쪽 사거리에는 늘 같은 시간 같은 코스로 지나다니는 차가 있다. 민트색 레이가 하동군 옥종면으로 가는 길에서 내려와 좁은 농로로 접어든다. 통학버스 안에서 나와 도우미 샘이 지켜보면서 말한다. 아마도 저 레이는 베트남 부부인 거 같아요. 딸기 하우스에 일하러 가는 거예요. 짐작이지만 아주 성실한 부부가 틀림없어요. 지각 한번 안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부부가 탄 레이가 가는 데 가다가 맞은편에서 차가 나타나 멈칫 후진하여 비켜준다. 그러면 좁다란 길을 따라 차 한 대가 이쪽으로 온다. 주연이가 오는 것이다. 파란색 차가 오면 아빠가 태워주는 것이고 하얀색 차가 오면 엄마가 태워주는 것이다. 아빠는 파란색 차를 타고 엄마는 하얀색 차를 탄다. 아빠와 엄마가 번갈아 통학버스 있는 곳까지 딸을 데려다준다. 아빠는 으레 통학버스 정면 앞에서 주연이를 내려주고, 엄마는 통학버스 옆 타는 문 앞까지 친절히 우회하여 내려준다. 이따금 파랑차가 우회하여 통학버스 옆에 설 때가 있는데 가만히 보면 역시나 엄마다. 한편 하얀 차가 통학버스 정면 앞에 내려다 줄 때가 있는데 또 확인해 보면 아빠다. 같은 부모인데도 아빠와 엄마가 다른 점이 있고 다른 패턴을 꼬박꼬박 지킨다. 나와 탑승 도우미 샘은 차를 보고 아빤지 엄만지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려다 주는 위치를 보고 '오늘은 엄마네, 오늘은 아빠네'라고 말한다. 아빠는 주연이를 내려다 주고 유턴하여 온 곳으로 곧장 돌아간다. 엄마는 주연이를 내려다 주고 통학버스가 출발하면 그제야 돌아간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주연이가 통학버스에 올라 내게 먼저 인사하고 그다음 탑승 도우미 샘을 보고 인사한다.
그러면 나는
"안녕, 주연아~" 하고 크게 대답한다. 도우미 샘도
"어서 와, 주연아~" 하고 정답게 인사한다.
주연이와 약속된 시간은 7시 50분이다. 50분 전후로 1, 2분 일찍 오면
"오늘은 일찍 왔네"라는 인사가 뒤따르고
1, 2분 늦게 오면
"오늘은 늦게 왔네"라는 인사가 이어진다.
주연이는 6학년 전교회장이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36명이다. 주연이는 36명을 대표하는 학생이다. 나는 주연이가 전교회장에 당선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어딘가 범상치 않은 면이 있을 거라고 콩깍지를 쓰고 보게 되었다. 전교회장은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하는 고정관념. 주연이가 전교회장이 되었을 때부터 아하~역시 똑똑하게 보이더라니, 아하~역시 장난을 쳐도 어쩐지 고품격으로 치더라니, 아하~역시 말을 해도 강단이 있어 보이더라니. 뭘 해도 생각이 깊은 아이 같다느니, 뭐 이런 식이다.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도 같다.
주연이는 장난도 잘 치고 수다도 많이 떤다. 통학버스에 6학년은 제 혼자뿐이고 5학년 1명, 4학년 1명, 3학년 2명, 2학년 1명 등등 정적이 흐르면 먼저 나서서
"우리 끝말잇기 할래?" 하면서 재미있게 이끈다.
6학년 주연이가 불쑥
"아침밥"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5학년 시윤이가
"밥주걱"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3학년 채영이가
"걱정 마"라고 말했다.
그러자 4학년 수진이가
"마징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똑똑한 1학년 민서가
"가마니"라고 말했고 정적이 흘렀다. 누가 이어서 하지? 망설이는 아이들에게 6학년 주연이가 말했다.
"하진이가 해."
하진이는 7살 유치원생이다. 지목받고 어쩔 줄 몰라하던 하진이는
"니가 해"라며 동생을 바라봤다. 동생은 7살 지훈이다. 같은 나이지만 어엿한 남매다. 하진이가 연초에 태어났고 지훈이는 연말에 태어났다. 지훈이가 우물쭈물하니 잽싸게 5학년 시윤이가
"해질녘"을 외쳤다.
이어서 2학년 아영이가
"역마살"이라고 답했다. 주연이가
"역마살은 안돼, 녘이니까"라고 말하자 아영이는 고개 돌려서
"선생님, 역마살 하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 도우미 샘은
"역마살이라는 말은 어디서 배웠어?"라면서 되려 물었다.
생기 있는 등굣길 통학버스.
그래서 주연이가 고마울 때가 많다. 학생들이 멍하니 아무 말도 않고 있을 때 주연이가 나서서 말도 걸어주고 이야기를 꺼내 주니 활기가 돋아서 좋다.
근데 아영이는 역마살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하교 종이 울린다. 주연이가 저 앞에서 가방을 앞으로 맨 채 걸어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래, 주연아, 어서 와라~" 나도 정답게 인사한다.
통학버스가 은사마을로 향한다. 벚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꼬불꼬불 잘도 간다. 드디어 은사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안녕히 계세요"라며 맨뒤에 앉아있던 주연이가 내린다.
"잘 가~"라고 인사한다.
내리는 주연이 앞에 하얀 차와 파란 차가 번갈아 기다린다. 오늘은 아빠가 기다리는 날이고 내일은 엄마가 기다리는 날이다. 도우미 샘이 말한다.
"뒤에 차 안 와요~"
그러면 나는 통학버스를 후진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차를 돌리며 선비상과 눈 마주친다. 그러자 선비상이 작은 나무 가지에 얼굴을 숨긴다. 은둔한 선비님을 매일같이 찾아뵙는 통학버스.
"안녕히 계세요, 선비님~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떠나기 전 슬쩍 고개 돌리니 선비상이 통학버스를 내내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지켜보면서 선비상이 말한다.
"예끼 이놈아~ 은둔한 선비님 자꾸 찾는 건 실례이니라. 비 오는데 조심해서 가거라"라고 말한다.
모처럼 맑은 하늘. 맑은 아침. 하얀 트럭이 온다. 트럭이면 아빠가 데려다주시는 건가? 하는데 통학버스 우측으로 가까이 온다. 엄마구나? 싶어서 엿보니 엄마가 맞다. 트럭에서 내려 통학버스로 옮겨 탄다. 주연이가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그래, 주연이 어서 와~"
통학버스가 주연이를 태우고 우영이네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