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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기가 실감 난다

부쩍 늙었다

by 머피


내 나이 오십.


2030은 이미 자식뻘이고 3040에도 낄 수가 없다. 그에 반해 4050에서는 중간이고 5060에도 무려 감히 미친... 낄 수가 있게 되어버렸다. 나는 아직 늙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육체의 늙기는 벼락같은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거울을 봤다.


눈밑에 거뭇하니 한층 시꺼메진 눈밑살이 불룩하게 나온 것도 부족해 처지기까지 하며 주름을 여럿 만들어냈다. 나는 이 눈밑살을 애써 못 본 척 무시해 왔다. 보이면 뭔가 그날만 피곤해서 그렇거니 다음날이면 없어지겠거니 했다. 거울을 보면서 지금은 아침이니까, 아니면 운동직후니까, 아니면 잠들기 직전이니까 한잠 자고 나면 괜찮겠거니 했다. 아무렴 여기 거울 주변 조명의 문제겠거니 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게 아니었다. 현실을 부정한다고 현실이 사라지거나 변하는 게 아니고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다. 눈밑살은 현실이고 사실이며 없어지지도 괜찮아지지도 않는다.


왜 이렇게 얼굴이 까매요?


부쩍 그런 말을 듣는다. 그러게, 얼굴이 왜 까말까? 낮에 햇볕을 보면서 걸어 다녀서 그런가. 아니면 속이 시커멓게 뭉그러져서 그런가. 설마 나이가 들어 늙어서 그런 걸까. 당장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어제 운동 많이 했잖아?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 늙어서 얼굴색이 칙칙해진 것이다. 칙칙해지다 못해 까매진 거다.


아침에 기운이 없다.


정녕 내가 푹 잔 게 맞을까? 잠든 시간을 보면 나름 괜찮게 잔 거 같은데 당장 느끼는 컨디션은 그게 아니다. 흡사 한두 시간만 자다가 깬 거 같다. 더 자야 하는데 중간에 깬 거 아냐? 시계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더 잘 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늙은 의식은 잠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누워 있어도 결코 편하지 아니하다. 그렇다고 일어나면 개운한가? 그것도 아니다. 머리가 띵하니 잠 못 잔 컨디션을 적나라하니 느끼게 해 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얼굴보기가 겁난다.


저리 늙은 얼굴이 내 친구란 말인가. 그 옆에 똑같이 늙은 내가, 나는 저리 늙지는 않았는데 친구는 왜 저러나 하는 망상에 빠져 친구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쳐다보는 나를 마찬가지로 안쓰럽게 보는 친구. 머리칼이 없구나, 나잇살이 쪘구나, 웃을 때 주름이 장난이 아니구나, 어쩌자고 이리 늙어버렸니? 관리 좀 하고 살지. 서로가 속으로 탄식한다.


동년배 친구가 웃을 때 전에 보이지 않던 눈가주름이 보인다.


살이 좀 빠졌나 했더니 그게 아니다. 얼굴 인상이 변했다 싶어 유심히 보니 주름이다. 주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 사람을 낯설게 한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다가 웃을 때만 보이나 하다가 어느새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을 드러내 인상을 바뀌게 한다. 그 사람은 인상이 바뀐 줄도 모르고 예전처럼 밝게 웃다가 문득 거울을 보고는 저 웃는 얼굴이 나인가 싶어 들여다보다가 슬픔에 빠진다.


옛 노래만 모아 듣는다.


현실 부정.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마음. 마법이 있다면 어릴 적 얼굴로 돌아가게 해 주오. 젊을 때는 나중을 기대하며 사는데 이제는 과거를 되짚으며 산다. 예전에 보고 듣고 느꼈던 나날을 생각하며 산다.


거울 없이 사는 삶에 익숙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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