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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장배 탁구대회를 다녀오고

25년 가을

by 머피


2 연속 예탈은 아니 되오.


예탈(예선탈락)은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지만 그게 연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어쩌다 한 번쯤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물론 고수는 예탈을 잘하지 않지만 나처럼 초보와 중수 사이 어중간한 이들은 그 실력의 깊이와 멘탈의 결이 얄팍해서 내외부 환경이 조금만 흔들려도 감당하기 어려운 큰 파도가 쳐 무너지기 일쑤다. 파도가 치면 멘탈이 무너지고 평정심을 잃어 질끈 눈을 감는다. 그러면 완전히 쪼그라들어서 원래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른바 패닉 현상이다. 패닉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내가 뭘 할 수 있지? 뭘 할 수 있었지? 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실력의 회귀. 내 실력이 10단계까지 존재한다면 5단계로 후퇴해 버리는 거다. 예탈의 공포. 예탈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제 막 초보에서 중수로 성장해 가는 단계. 다시금 원위치로 돌아가게 되고 다시금 출발해야 한다. 내가 다시 출발할 수 있을까. 돌아가고 출발하고 돌아가고 출발하는 일상. 그럴 힘이 남았을까. 그럴 힘이 없다. 이제는 지겹구나. 성적이 꺾이면 성장이 꺾인 것이다. 성장이 꺾인 것은 이이상의 실력 발전이 없다는 거다. 발전이 없다는 건 어쩌면 노쇠화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민첩성, 순발력이 떨어져 대응 능력이 모자라 게임 실력이 하락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나이 든 분일지라도 얼마든지 성적을 내고 승급하는걸 심심치 않게 봤다. 그분들은 이미 특별하다. 이미 가진 게 많은 이들이다. 이미 실력의 바다가 평온하게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반드시 필요한 순간, 그들의 바다 수면은 고요해진다. 고요함 속에서 자신이 가진 무기를 하나씩 꺼내 든다. 승부를 하고 기술을 펼치며 훌륭히 자웅을 겨룬다. 그들에 비해 나는 자웅을 겨룰 틈도 없이 무너진다. 내게 자웅을 겨룰만한 기술이 있던가. 평정심이 있던가. 예선이 끝나고 우리 구장 코치가 하던 말 "형은 충분히 돌아설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도 돌아서지 않고 백쇼트만 하더군요. 돌아설 수 있으면 돌아서야죠. 백으로 버티기만 하니 승부가 힘들어지잖아요." 돌아서지 못하는 남자. 나는 왜 돌아서지 못하나. 멘탈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파도가 치기 때문이다. 돌아서기가 무섭다. 돌아서면 실수할 것만 같아서다. 물결이 일렁이니 이 공이 일반적인 공이 아닐 것만 같다. 돌아서지 않고 백으로 버티면 상대가 실수해 줄 것만 같다. 실수해 주면 득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먼저 실수해 주면 안 되지 않는가. 실수를 두려워하는 남자. 그래, 그렇게 버티면 상대가 실수해 주던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 가만히 서서 실수해 주는 사람은 없다. 최소한 이 부수에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가만히 누워서 입안에 떡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왜 그걸 알면서도 막상 예선이 시작되면 돌아서지를 못하나. 유독 예선만 그러하다. 본선에서는 이미 마음을 비우고 임하기에 얼마든지 돌아서고 다양한 작전을 짜는데 비해 예선에서만 나는 발이 묶여서 비지땀을 흘린다.


예선에서는 실력이 70프로 감소한다.


어찌하여 70프로나 감소하는가. 지면 안된다 라는 명제가 강박으로 가슴에 박혔다. 본선에서는 져도 된다, 라는 명제가 편안하게 가슴을 감싸는데, 예선에서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비스듬히 가슴에 박혀 옴짝달싹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지면 끝장이다, 라는 생각. 그간 예탈하고 숱한 놀림을 당했다. 놀림을 넘어 예탈 한 주제에, 예탈 했으면서 뭐라고? 예탈 했으니 단체전도 후보로, 예탈 했대 어떡해~, 예탈 했다고? 아무도 말 걸지 마, 혼자 냅둬, 예탈 하고 그러면 어쩌냐? 네가 예탈 할 줄 몰랐다, 예탈 하고 그렇게 누워있을 거 뭐 하러 대회장에 왔대? 편히 집에서 쉴 것이지. 가족과 알찬 시간 보내면 더 좋았을 텐데. 오래전 그러한 말을 들었다. 듣고서 모른 척 돗자리에 눈감고 누워있었다. 그러게, 뭐 하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집에서 편히 쉬면 될 텐데, 가족과 함께 나들이나 다녀오면 더 좋았을 텐데 내가 왜 왔지?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물었다. 묻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이제 대회는 나오지 않겠다 하는 생각. 그러다 이내 주먹에 부르르 힘이 들어가고, 나는 떨리는 느낌, 이것을 위해 여기에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 도전하고 쟁취하는 이 승부의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 뭐 엄청나게 거창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최소한의 떨림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고 대회에 임하는 것이다. 잘할 때가 있다면 못할 때도 있기 마련. 못할 때가 두려워 도전조차 못하는 것이 더 못나지 않나 하는 생각. 실패하고 아파하고 굴욕을 당하더라도 내게 부족한 틈새를 차곡차곡 메워 부족함을 줄이는 게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 그 생각에 나는 예선이 끝나고 긴 한숨을 내쉬는 것이리라. 이제는 예탈 하면 어떤가, 그저 게임을 즐기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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