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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Mar 31. 2017

#10, 수행의 도장 고치현에 들다

本当にごめんなさい (for #24~#25)

2015년 10월 23일 금요일 맑음


- 16km - 24 最御崎寺(Hotsumisakiji) - 6.8km - 25 津照寺(Shinshōji)


2박 3일을 꼬박 걸어 무로토 최남단 호츠미사키지에~


민슈쿠 도쿠마스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냉동실에 얼렸던 맥주랑 차를 우려 시원하게 냉장 보관한 찻물도 챙겨 7시에 길을 나선다. 어제의 동지들(?)도 거의 비슷비슷한 시간대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발한다.


어제와 같은 길을 16킬로 더 가야 하지만 3일만에 닿게 되는 수행의 도장 고치현의 첫번째 사찰 24번 호츠미사키지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2박 3일 걸려서 가는 절이다 보니 하루에 5~6개씩 스치듯 거쳐간 절보다는 기대가 되는 데 카메라가 손을 보지 않고는 사용을 못하게 되서 아쉬울 뿐이다.


도쿠마스에 묵었던 5명의 오헨로상들도 다 시야를 유지할 수 있는 거리에 앞뒤로 포진해 있다. 그중에서도 갓 은퇴했을 듯한 초로의 오헨로상, 이름이 기타야마상이라고 하는 데 배낭이 유난히 단촐해서 발걸음도 가볍게 걷는다. 결원을 목표로 한다는 데 짐이 너무 간소해서 물어보니, 지금 당장 불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일주일이나 열흘쯤 후에 묵을 숙소로 보내놓았다가 그곳에 도착하면 필요한 물품 챙기고 불필요한 것들은 다음 여정의 숙소로 보내놓는다고 한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나름 합리적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기회가 되면 사용해 볼 법도 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는 배낭이동서비스가 있다고 들었는 데 시코쿠에는 그것까지는 없으니 궁여지책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일 게다. 


3시간 가까이를 걸으니 무로토아난해안국정공원(室戶阿南海岸国定公園) 乱礁遊歩道入口라고 되어 있는 데 난석(?)이라는 검은 암석지대를 노닐며 걷는 바닷가 산책로일 듯. 

산책로 입구의 반대쪽 길 건너편에는 일본 유일의 무로토 청년대사 입구(日本唯一の室戶靑年大師 入口)가 있고 거대한 동상이 있어서 시선을 끌지만 이미 마음은 바닷가 쪽으로 가 있다. 목이 마르던 참에 산책로를 따라 가다가 공원 근처에서 이른 점심(적당히 녹은 맥주와 소세지)을 먹기로 한다. 5분을 걸어가면 코보대사가 목욕했던 연못도 있다고 하니 오헨로미치의 성격에도 맞다.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친구랑 통화를 하는 데, 친구는 마츠야마까지 오는 항공일정을 알아봐서 조만간에 3박4일간 와주기로 하고, 나는 카메라를 친구한테 보내서 수리 후에 가지고 들어오도록 부탁한다. 오는 김에 배낭도 기능성으로 사다 달라고 또 부탁!

카메라를 보내기 위해 구글맵으로 우체국을 검색하니 다행히도 24번 호츠미사키지와 25번 신쇼지의 중간 지점이 가장 가깝다. 오늘 안에 보낼 수 있겠어서 마음이 편해진다.




24번 호츠미사키지(最御崎寺)는 무로토시 최남단에 있다. 시코쿠의 최남단은 토사시미즈시(土左淸水市)의 땅끝에 있는 38번 곤고후쿠지(金剛福寺)다. 아~ 그러고 보니 23번 야쿠오지와 24번 호츠미사키지의 거리보다 37번 이와모토지(岩本寺)에서 38번 곤고후쿠지까지의 거리가 86.5킬로로 조금 더 길다. 앞으로 이런 2박3일 코스가 한군데 더 남았다니, 이리 기쁠 수가.


호츠미사키지가 코보대사의 젊은 날의 성지로 19세 시절 호츠미사키지 부근의 미쿠라도우에서 수행했다고 하니, 아까 본 日本唯一の室戶靑年大師 入口 어쩌구 했던 게 혹시 그 곳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도쿠시마현이 발심의 도장이었다면 고치현은 수행의 도장으로 불리는 데 역시나 고치현의 첫번째, 24번 호츠미사키지 부근에서 수행이 시작되었던 걸까.



25번 신쇼지(津照寺)까지는 6.8킬로다. 

이제까지 무로토시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하했다면 이제부터는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는 코스다. 

살짝 언덕에 위치한 호츠미사키지에서 해안도로 가까이로 내려가는 길이 완만한 경사면으로 크게 S자 곡선을 두번이나 그리고 있는 데 여길 내려가면서 바라다보이는 바닷가 풍경이 좋다. 

확실히 남쪽이라서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며 걷는 길이 덥긴 해도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재주가 있다.


가는 길에 우선 우체국에 들러 눈물을 머금고 카메라 바디를 돌려보낸다. EMS 요금이 2200엔인 데 도착까지 최장 일주일 정도 걸리겠단다. 친구가 수리 맡겼다가 찾아서 가지고 들어오려면 2주 이상 걸린단 말이야? 사진을 놓고 오헨로미치에만 집중하자고 최면을 걸면서도 완전히 놓지 못하고 사진때문에 힘들어한다. 정 안되면 친구 카메라를 잠시 빌려얄지도 모르겠다.


다시 55번 국도를 따라 3~4킬로를 더 걸어 25번 신쇼지에 도착한다. 우체국에 들러 볼일을 보고 했어도 1시 40분이다. 

절에서 기타야마상을 다시 만난다. 이 분, 박선생님과 다닐 때부터 나를 보아 왔는지 박선생님 안부도 묻는다. 안그래도 박선생님은 발에 물집이 악화되서 도저히 2박3일 동안 걷기가 힘들어 히와사역에서 기차를 탔었다고 확인이 되었다. 야쿠오지에서 만난 다른 오헨로상과 기차를 타러가면서 기차시간은 빠듯하고 다음 기차까지는 텀이 너무 길어서 나를 찾아 얘기하지는 못하고, 야쿠오지의 납경소에다가 한국에서 온 여자 아루키헨로가 납경을 받으러 오거든 먼저 갔다고 전해달라 했었다고... 근데 절에서 내가 젤 먼저 가는 곳이 납경소라 이미 받았으므로 다시 갈 일이 없으니 전달이 안 될 수 밖에 없었던 거다. 나보다 2박 3일 먼저 히와사를 출발했으니 지금은 어디쯤을 걷고 계실지 모르겠다고 기타야마상과 대화를 나눈다.


전설에 의하면 토사 성의 영주 야마노우치가 조난당했을 때, 한 승려가 나타나 배를 구했다고 한다. 심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동안 승려는 허우적거리는 배의 조타 장치를 가져와서 배를 안전하게 조종했다고 하는 데, 그 승려가 사라진 곳이 신쇼지였고, 본존 지장보살의 전신이 흠뻑 젖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신쇼지는 어부들의 수호신으로서 해상의 안전과 화재방지에 영험이 있다고 믿어진다.

신쇼지에서 내려다보이는 항구의 전망도 탁월하다.




오늘 23킬로를 채 못 걸었지만 안내 책자에 없는 코우신노야도에 예약이 되어 있는 관계로 숙소를 먼저 찾아가기로 한다.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니 다행히도 26번 곤고쵸지 방향으로 500미터 쯤 거리에 있다.

저만큼이 아닐까 하던 차에 웬 할아버지가 대문에 서서 내 쪽을 보고 손을 흔드는 데 그분이 주인장이란다. 마중까지 나와 계신 분을 따라 들어가니 일반 가정집이다. 따님으로 보이는 분이 내주는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데, 서고를 뒤적이더니 무슨 편지를 찾아서 보여주신다. 

2012년 가을에 오헨로미치를 걸었던 한국 여성이 그 해 12월에 보내 온 편지다. 또박또박 글씨도 마음도 예쁘게 보내 온 편지가 너무 감동스러웠다고...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오랜만입니다. 벌써 꽤 시일이 흘렀네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10월 9일 이후네요. 기억하고 계신지요. 독일 사람과 함께 걸었던 한국 아이입니다. 귀국하자마자 인사 편지를 보냈어야 하는데, 발 치료랑 이래저래 경황이 없어서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날, 金剛상의 집 앞을 지나던 우리를 초대해서, 차와 함께 이런저런 들려 주셨던 얘기가 어제의 일처럼 생각이 납니다. '마음의 일부를 비워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세요'했던 말이 지금도 울립니다. 金剛상이 지금까지 얻어 온 경험이나 생각을 배청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훌륭한 말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야마모토상이라고 하는 유쾌한 분을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날 밤은 물론, 다음 날까지 야마모토상 댁에서 묵었습니다. 아, '미인이 되요'라고 가르쳐 주셨던 二十三士溫泉(타노타노온천이다)에도 다녀왔습니다. 미인이 됐는가는 모르겠지만 피로를 푸는 데 좋은 온천이었습니다. 온천에서 돌아올 때, 야마모토상에게서 '아까 金剛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들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야마모토상을 만나기 전에 전화를 넣어 주셨던 것도 무사히 도착했을까 염려되서 전화를 주셨던 것도 모두 감사하고 있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습니다. 나라가 다른 사람인데도 고국에 있는 할아버지같은 따뜻한 배려를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년 봄 쯤에 다시 시코쿠에 가려고 합니다. 실은 조금씩 나아가던 발이 다시 걸을 수 없는 상태까지 되어 버렸어요. 저는 51번의 이시테지를 마지막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래의 계획과는 달리 区切り打ち(단락 나누어 도는 오헨로)가 되었지만 마지막까지 분발해서 참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독일의 에릭씨는 무사히 전부 돌고 지금은 독일에 있다고 합니다)

그럼 추워졌으니 감기 걸리거나 컨디션을 헤치지 말도록 몸을 소중히 해 주세요.'


나이가 어린 친구 같은 데 내가 봐도 정말 마음 씀씀이가 예사롭지 않다. 존칭, 겸양어까지 일본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손 글씨로 그런 편지를 보낸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저는, 이런 편지는 보내지 못할 것 같다고 미리 金剛상한테 실토한다. 


저녁식사는 정말 수수한 가정집 음식 그대로다.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를 여러병 비운다. 

그리고, 따님 같았던 그 분이 놀랍게도 부인이다. 이 할아버지 젊어서 좀 노신 듯, 오사카, 교토, 큐슈를 거쳐 시코쿠에 정착했다고 한다. 교토 시절, 고급 요리점에서 일할 적에 한국 여성과의 짧은 로맨스도 있었는 데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고도 하고.  

부인은 이와테현 출신으로 남쪽 나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테현의 위치를 모르는 내게 지도까지 그려서 알려주는 데 혼슈의 최북단 아오모리현 바로 아래에서 서쪽은 아키타현, 동쪽이 이와테현이다. 

둘이 만난지 9년 되었다니까 서로 초혼은 아닌 것 같고 나이 차이가 열살에서 열다섯정도는 되어 보인다. 부인은 근처의 마트에서 파트타이머로 일도 한다는 데 할아버지는 집에서 놀면서 젊은 부인만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셋이서 맥주 3병도 모자라 오키나와사케를 섞어 마시면서 얘기를 하는 데 이 할아버지가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본인도 1944년생이니 전쟁은 모르지만 일본사람들이 과거에 너희 나라 사람들한테 몹쓸 짓을 많이 했다면서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이며 '本当にごめんなさい'라고 하는 거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해서 당황스럽다. 대한민국 성인치고 일본에 대해 응어리 없는 사람이 있으랴. 개인적으로는 그 응어리가 일본 국민 개개인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풀어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한밤중에 귀청을 때리는 사이렌소리 때문에 정말 깜짝 놀라서 잠을 설친다.

지진이거나 쓰나미거나 무슨 큰 일이 벌어졌는가보다 했는 데 다행히도(?) 근처에서 화재가 났으나 바로 진압이 된 모양이다. 한 번 놀란 가슴이라 잠드느라 애를 먹는다.




코우신노야도 (2식 포함) 1500엔

음료 150엔

EMS 2200엔

납경 (24~25) 600엔


총 4450엔

이동거리 22.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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