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띠아고데꼼뽀스뗄라
Santiago de Compostela
오늘은 제발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고 , 호텔 조식 마감시간인 10시 전에만 가서 아침을 해결하려고 알람도 끄고 잠들었는데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깬다. 까미노에서 생긴 bodyclock이겠지만 한국가면 곧 사라지겠지.
비가 오니 쌀쌀하다. 아침이 되니 비는 그쳤는데도 여전히 서늘한 날씨다.
2015년 가을에도 10/13부터 11/26까지 오헨로미치 1200km를 다 걷도록 늦여름이었다가 11/27부터 딱 겨울로 접어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40일 동안도 비라야 신발속까지 젖지 않을 정도만 서너번 내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 태풍 많은 동네임에도!
이번 까미노도 날씨요정은 비껴가지 않는다. 중간에 딱 한번 아따뿌에르까에 도착해서 저녁으로 요리하는 오므라이스를 기다렸던 그 늦은 오후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두세시간 내린 것 외엔 비다운 비는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
첫날 피레네를 넘을때에도 부슬비, 갈리시아 지방에서도 끝무렵에 이틀 부슬비를 맞은게 전부이니 정말 감사할 일이지 않은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지는 법인 듯, 억지로 잠이 깨서 억지로 8시에 호텔 식당으로 조식을 먹으러, 샌드위치에 커피를 내려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대만인 데비가 눈에 띈다. 서로 얼싸안았다. 산띠아고에서 못봐서 서운했는데, 서로 같은 호텔에 그것도 내일까지 같이 묵고 있단다.
어제 다녀온 삐스떼라 묵시아를 오늘 간다면서 다녀와서 저녁먹자고 연락처를 챙겨서는 바삐 나간다.
오늘 일정이라야 대성당가서 성야고보 무덤을 참배하는 것 뿐이다. 그가 걸은 길을 그를 따라왔으니 그에게 인사하고 가는게 예의가 아니겠는가⁉️
필리핀 아줌마인 웽과 만나서 기념품 좀 사고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이 아줌마 만나자마자 안달복달이다. 내일 아침 7시 기차로 마드리드를 가는데 기차역을 확인해봐야겠단다. 첨엔 이따 점심먹고 가보자 했는데 기념품샵 두세곳을 들르는 동안에도 계속 초조한 표정이길래 결국 손들고, 그래 기차역 먼저 가보자고 하니 그제서야 표정이 풀린다.
역이 어디 도망가는건 아니니 30분 일찍 출발해서 가도 될텐데 미리 1.5km를 왕복한다. 덕분에 기차역 옆으로 건너편에 있는 알사버스 정류장도 대략 어림해두긴 했으니 나도 오히려 좋은 일인가.
산띠아고 대성당은 오늘도 만원, 밖에서 긴 줄을 섰다가 입장을 했는데 웽은 다리가 아픈지 야고보무덤은 흥미가 없는지 앉아 쉬겠단다.
성당안에서 방향을 잘못알고 들어가서 오른쪽 줄 옆으로 가서 초에 분향하고 기도를 하고 보니 그 줄은 야고보무덤에서 나오는 줄이고 입장하는 줄은 반대편인거다.
인파와 대향로주변의 접근금지 라인을 피해서 쭉 돌아 반대편으로 가니 안전조끼를 입은 직원이 줄 끝에서 끝났다고, 한시간 후에 다시 오란다.
그 줄이 뱅글뱅글 성당안에서 2~30미터다. 최대한 불쌍한, 최대한 간절한 표정으로 쎄뇨르 뽀르뽜보르를 열번쯤 했더니 그 아저씨 겨우 줄 안으로 나를 넣어준다. 휴~~
그 후에도 내 뒤에서 줄에 서려는 사람들에게 끝이라고 한시간후에 오라는 말을 수십번씩 반복하셨다는...
정말 무챠스그라시아스다.
성 야고보 무덤을 정말 천천히 보고 싶었는데 안전요원께서 바로 뒤라 오래 머물진 못하고 성스러움을 사진에 담는다. 야고보님께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주신다니 걱정하나를 덜어낸다.
기념품샵을 돌아다니다보니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크게는 두배 가까이 차이나는 물건도 많다. 어제 묵시아에서 사온 묵주도 어느 곳에선 거의 두배다.
순례자사무소가 물건은 적어도 값은 제일 저렴하다길래 완주증명서를 받았던 곳으로 다시 가서 별건 아니어도 마그넷 몇개와 서너가지 모양의 뺏지를 좀 산다.
점심은 한달이상 한번도 못먹었던 스시뷔페로... 뷔페여도 무제한은 아니다. 20유로에 음료 하나 음식 5개를 기본으로 고르면 조리해다주는 시스템이다. 5개를 초과하거나 5개 중에서도 1~2유로 더 붙는 종류들이 있다. 내가 고른 것 중엔 연어를 주로 한 모듬사시미가 2유로 더 비싼 메뉴다. 간만에 삿뽀로 병맥주랑 날 것을 먹으니 기분도 날아갈 것 같은 건 아재들이나 할만한 개그지!
오후에도 성당주변은 만원이다.
1200킬로를 먼저 걸었으니 800킬로쯤은 시시해진건가. 난리죽이는 사람들 모습이 오버센스같기도 하다.
각자각자의 사연은 다 다를테니 그 특별한 사연이 넘쳐나는 곳일테니 이 수수한 산띠아고대성당은 천년의 세월을 넘어 고고하게 무심하게 초연하게 저들을 품어주고 있는건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저녁 8시에 삐스떼라에서 돌아온 데비한테 끌려 대성당 순례자 그림자투어?를 따라 나선다. 여기는 일몰이 아홉시라 덜덜 떨면서 기다리는데 포르투갈길을 리스본에서부터 걸은 포르투갈 아줌마 메리디에를 만난다. 둘의 폭풍같은 대화를 진짜 수능듣기평가처럼 집중해서 듣는데 그들의 대화가 얼마나 긴지, 종종 나한테도 넘어오는 뻔한 대화지만 쉽지않은 응답을 하느라 신경쓰다보니 일몰, 그림자투어는 시시하게 끝이 난다.
데비와 같은 호텔이라 나는 피자 한 피스에 맥주 두 캔, 데비는 피자 두 피스에 레몬맥주 한 캔을 테이크아웃해서는 호텔 식당에서 수다 삼매경, 데비가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지라 내년 여름에 같이 올레길 걷기로 합의를 본다.
산띠아고에서의 마지막 밤을 늦도록 좋은 친구와 보낼 수 있었으니 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