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려보기
이번글은 얼마 전에 아내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다녀온 짧은 여행에서 있은 일에 대한 글이다. 아내와 함께한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려볼 수 있었던 시간
"오빠, 진짜 결혼 10주년에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유럽 간다고 그랬잖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결혼 10주년이었다. 결혼 10주년 유럽여행을 장담(?)한 결혼할 당시엔 10년후에 우리가 열살도 안된 애셋 키우는 외벌이 가정일줄은 미처 몰랐다. 가긴 어딜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걸 간신히 참고, 침착하게 가능한 방안을 생각하다가 문득 추석연휴와 맞춰 부모님 찬스를 쓰자는 기똥찬 아이디어가 나와서 바로 부모님께 전화하고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감사하게도 부모님 찬스를 쓰고 9년여만에 아내와 단둘이 결혼 10주년을 기념해볼수 있었다.
삿뽀로는 깨끗하고 맛있는것도 많고 아기자기 했지만 한편으론 조용하고 조금은 심심하기도 했다. 2박3일이 충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물론 시간이 많으면 더 많이 보고 즐겼겠지만). 오타루와 삿포로 두 곳을 여유롭게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10년을 그려볼 수 있었다.
먼저 지난 사진첩과 노트를 뒤적거리며 우리 가정에 있었던 지난 10년을 정리하고 나눠봤다.
가족:
가족으로 보면 세 아이 (하루, 하율, 하임)가 2015, 2017, 2020년에 각각 우리 가정에 선물로 태어났다. 중간중간에 조카들이 태어난 것도 생각났다. 그리고 가족이 같이 갔던 다양한 여행들이 많이 생각났다.
집:
어디에서 살았는지도 많이 생각났다. 거의 1-2년에 한 번씩 계속 이사 다니면서 살아온 지난 10년이었다. 8년은 미국 bay area에서, 그리고 지난 2년은 서울에서 살았다.
일터:
나는 4년은 스타트업 어웨어를 경영했고, 3여 년은 몰로코에서 빠른 성장과 테크 PM을 경험하고, 지난 2년은 쿠팡에서 광고사업 PM으로 일하고 있다. 아내는 둘째 낳기 전까지 실리콘밸리 코트라에서 일하다가 둘째 출산부터 일을 쉬었고, 그러다가 다시 셋째 임신할 때쯤 교회에서 유치부 전도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AWANA 디렉터 일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온라인으로 상담심리 석사도 취득했다.
만만치 않았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19년 9월여간 직업이 없었을 때:
내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스타트업을 나오고 다음 커리어를 찾기까지 수많은 거절과 어려움을 경험했던 2019년이었다. 자세한 건 이 시리즈에 썼지만, 이 당시 우리는 처갓집에서 얹히내며 소득과 없었고 저축도 다 까먹고 있었다. 두 어린아이의 아빠로서 타국에서 이런 일을 겪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큰 부부싸움도 이 시기였다. 그런 고난의 시기가 있었기에 정말 큰 은혜도 체험했지만 참 두고두고 기억날 짠한 시간이었다.
'17년 둘째 낳기 전후 부부상담:
너무나 만만치 않았던 첫째를 키우며 둘째 임신 중인 아내, 스타트업 경영하느라 눈코 틀새 없이 바빴던 나, 2017년 한 해 동안 우리는 부부상담을 받았다. 부부상담받고 아내와 이런저런 상처, 어려움, 다름을 끄집어내는 과정도 쉽지 않았고, 둘째가 태어나고 육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던 시기였다.
'21년 아픈 셋째와 바쁜 아내 (남편):
이 시기는 상대적으로 남편인 내게 더 쉽지 않았던 시기이다. 밖으로 보자면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난 그만큼 성장하는 것 같지 않아서 마음이 쉽지 않았고, 안에선 아내가 교회에서 일하면서 특히 금토일에 내가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시간과 의무들이 쉽지 않았다. 갓 돌을 지나는 셋째는 천식으로 툭하면 응급실에 갔고 (2021년에만 적어도 다섯 번은 입원했던 것 같다), 주말아침이면 일찍 나간 아내 없이 세 아이를 준비시켜 교회에 가야 했다. 평일 저녁에 짬이 나거나 하면 핸드폰만 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서 정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시기.
'22년 사역을 내려놓고 (아내):
이 시기는 상대적으로 아내인 민경이에게 더 쉽지 않았던 시기이다. 아내는 21년 힘들어하는 나와 자주 아픈 막내를 보면서 사역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고 22년부터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왔는데, 그 변화가 많이 힘들었다고 나눴다. 약한 우울증도 겪었더라고. 나도 나대로 힘들어서 아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만만치 않았던 시기.
힘들었던 순간들 이상으로 감사하고 행복했던 순간들, 기억들이 참 많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가족이 커져간 것: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건 우리에게 선물로 찾아온 하루, 하율, 하임이. 여행하는 내내 애들 이야기를 했고 애들 선물을 사고 애들을 생각했다. 애들 교육 이야기하다가 의견이 달라서 좀 맘 상할 정도로. 우리 가정에서 제일 잘한 일은 애들 셋 낳고 키운 거라고 나도 아내도 입을 모았다. 부모님이 다 건강하시고 형제들도 사이가 좋고 조카들도 몇 태어나고 하며 가족이 커져간 것도 많이 감사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명 한 명에게 세심히 마음 쓰는 정말 맘 넓고 착한 아내가 새삼 고마웠다.
아내는 우리가 갔던 다양한 여행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추억했다. 애들 어릴 때 사진도 이렇게 따로 나와서 보니 그렇게 이쁘고 짠할 수가 없었다. 밖에서 일하고 커리어 쌓아가고 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본인은 아이들을 케어하는데서 가장 큰 의미를 느끼고 내가 있을 곳에 있는 느낌이라고.
영적으로 깊어지기, 그리고 공동체:
영적으로 깊어진 것, 특히 초신자였던 내가 다양한 성장과 성숙의 경험을 한 게 또 하나의 큰 감사제목이었다. 2019년에 찐하게 만난 성령님, 회개/중보기도 체험, 일터사역, 다음세대 사역, 가정교회, 정말 다양한 성장과 성숙의 시간이 있었다.
교회공동체와 친구들: 그리고 늘 우리 가정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준 교회 공동체와 다양한 친구들과 멘토들이 생각났다. 청년부에서 만나서 성인 부부목장, 영어부, 청소년부, 유년부, 선교할 것 없이 정말 많은 공동체와 다양한 사역을 체험해 볼 수 있었던 교회공동체 - 실리콘밸리의 새누리교회와 서울의 서울드림교회는 우리의 또 다른 더 큰 가정이자 공동체였다. 우리 가정이 힘들 때마다 붙들어주고, 기쁠 땐 같이 기뻐해준 수많은 부부들과 멘토들도 생각났다.
일/커리어:
남편: 스타트업/GM/PM: 어웨어에 처음 합류하고 회사를 키워가며 경영전반을 할 땐 참 힘들고 돈도 잘 못 벌었지만 재밌고 뿌듯했다. 어떤 일이든 해결하는 근육을 기르고 다양한 직무를 통해 나의 장단을 확실히 알게 되기도 했다. 몰로코에서는 50명의 조직이 500명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하고, 기존의 제너럴리스트에서 광고/머신러닝 PM이란 주특기를 하나 가지게도 됐다. 그리고 테크 중심의 조직문화도 확실히 배웠다. 쿠팡에서는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어서 해결하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 그리고 큰 회사의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배우고 있다. 당시엔 아쉬움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던 커리어인데, 이렇게 돌아보니 새삼 감사한 게 참 많다.
아내: 아내는 애 셋을 키우며 신학대학원에서 상담으로 석사를 취득했고, 그 과정 중에 교회에서 차세대 전도사로서 2년 넘게 사역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런 일이 바탕이 되어 지금은 교회가 아닌 학교에서 하나님 말씀을 바탕으로 다음세대 아이들을 키워내는 AWANA를 이끌고 있다. 백여 명이 넘는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이끌며 이 일을 멋지게 해내는 아내를 보면 참 하나님이 아내를 사랑하고 성장시키고 계심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10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타임라인을 그려보니, 2034년이 되면 첫째는 대학생이 되고, 둘째는 고3이고 막내도 고등학생이 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걸 깨닫자마자 아내는 "말도 안 돼. 애들이 다 커버렸잖아. 너무너무 아쉽다."라고 하고, 나는 "10년이 지나도 둘이 고등학생이라고. 나 돈 많이 벌어야겠다."라고 했다. 이렇게 달라도 참 다른 우리가 그려본 앞으로의 10년은 어떠한가. 아래 소개한다.
가정
가정을 교회로: 결혼 2년 차쯤, 친구의 추천으로 가정 미션, 비전 이런 걸 정해 본 적 있었다. 10주년이 되어서 다시 한번 체크인하며 미션과 비전, 우리 가정의 방향성을 다시 재정비해봤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우리 가정을 교회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목적이 이끄는 교회"에서 릭워렌 목사님은 교회에 꼭 필요한 다섯 가지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배 (worship), 교제 (fellowship), 훈련 (discipleship), 사역 (ministry), 선교 (mission). 우리 가정도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공동체로서 이 모든 게 필요하다는 것, 가정이 작은 교회라는 게 확 와닿았다.
DRAGON TIME: 이중에서도 가장 먼저 서야 하는 것이 예배와 교제라고 느꼈다. 훈련, 사역, 선교는 우리 가정이 먼저 바로서고, 가족 구성원이 하나 되어서 서로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주 1회, 금요일 저녁에 가족 예배/회의/모임/쉼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그걸 DRAGON Time으로 명명했다. DRAGON은 D: Dedicate, R: Respect, A: Abide, G: God, O: One, N: Neighbor의 약자이다. 첫 세 글자는 우리가 이 시간을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원칙이고 나머지 세 글자는 이 시간의 비전이다. 즉 우리 가족모두가 이 시간을 구별하여 준비하고 (dedicate) 서로를 존중/배려하고 (respect) 이 시간 가운데 온전히 집중 (Abide) 하는 것이 원칙이며, 그랬을 때 이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창조주이자 가정의 주권자 하나님 (God)을 더 알고, 우리 가정이 더 하나 되고 (One), 우리 가정이 우리 주위의 이웃을 돌볼 수 있게 (Neighbor)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걸 알리고 실천해보고 있다.
책 쓰기: 또 하나,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아내와 함께 책을 써보는 것이다. 시중에 보면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또는 이혼에 대한 콘텐츠는 가득하지만 부부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면서 가정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잘 찾기 어렵다. 우리 부부와 가정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에 부부블로그 이런 글에서도 썼는데 우리 결혼 20주년 되기 전에 같이 책을 써보자고 다시금 아내와 마음을 모았다.
커리어/재정
커리어와 재정은 참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래와 같은 비전과 소망을 세워봤다. 앞으로 10년간 민간 섹터에서 더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고, 50대 중반부터는 공공 (public)의 영역에서 가르치는 (교수 등) 영역으로 자리를 바꾼다. 민간에 나와서 10여 년간 일하다가 세계은행으로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김상부 선배형처럼. 그리고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의미 있는 자산을 축적한다.
미션
하나님이 내게, 그리고 아내에게 계속해서 주신 미션은 "한국의 다음세대"를 섬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계속해서 다양한 활동들 (2045 펠로우십, 한양대 강의, AWANA (아내), 교회 주일학교 교사 등)을 이어가고 계속해서 다음세대와 교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