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5년 상반기 결산

그리고 하반기를 여는 마음과 소망

by San Baek 백산

들어가며


2025년 1-2월은 참 만만치 않았다. 온 나라는 온통 대통령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안에서 요동했고 그 여파는 내게도 왔다. 정치관련 해프닝이 생겨서 아버지와 거의 처음으로 언성 높인 다툼까지 벌어졌고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아내와의 갈등까지 생겼다. 내겐 가장 아킬레스건 같은 나의 "일하는 자아"가 아내와의 사소한 대화에서 건드려져서 꽤나 마음이 어렵게 다투는 일이 생겼다. 모두 2월 중순에 예정된 캄보디아 선교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온 가족이 캄보디아 선교를 다녀오고 나서 보낸 4개월여는 전혀 달랐다. 아내는 운동과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새 에너지를 냈고, 나도 여러 가지를 통해 회복하고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애들도 무럭무럭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분명 캄보디아 선교가 전환점이었다.


돌아보니 감사함이 참 많다. 이하 한국 온 지 3년이 되어가는 2025년. 완연한 40대로서, 이제는 유아기를 지난 세 어린이의 아빠로서, 풍성했던 2025년의 반년의 감사와 은혜들을 나눠본다.


가족

1. 운동을 시작한 아내, 공동체를 더 찾아가는 아내: 나의 삶이 평안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아내가 잘 지내주어서임을 안다. 가장 큰 변화중 하나는 아내이다. 언제부턴가 달리기에 맛 들여서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는 뛰고 6월 한 달에 60km 넘게 뛰었을 정도로 아내는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또 하나는 큐티모임, 워십팀, 달리기 팀 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이다. 올해 찾게 된 큐티모임이 얼마나 본인에게 영적으로 힘을 주는지 아내는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리고 캄보디아 사역에서부터 이어진 새로운 운동친구들과 함께 춤도 추고 달리기도 한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가정에서도, 맡겨진 직장과 사역에서도 아내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학교에서 유초등부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설교도 했고 어와나 디렉터도 감당하고 교회에서도 여러 부서를 섬기며 감초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가족과 친구, 주위사람에게도 늘 사랑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아내가 가는 곳에 웃음과 치유와 사랑이 꽃핌을 보는 건 참 멋진 일이다.


2. 무럭무럭 자라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루는 친구들과 노는 게 제일 중요한 나이가 됐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이런저런 친구들과 놀며 수영도 시작하고 피아노도 꾸준히 치고 있다. 그리고 캄보디아 워십팀 등을 통해 본인이 얼마나 무대체질이고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머리를 자르고 염색하고 나서 부쩍 커 보이는데 여전히 아빠한테 안기는 애교덩어리라 너무 다행이다. 요새 우리 아이들 중 가장 손이 덜 가는 첫째 딸. 케이팝 디몬 보고 완전히 꽂혀버린 이제 만 10살을 향해 달려가는 첫째 딸. 하율이는 읽기가 많이 늘었다. 여전히 영어든 한국어든 말이 술술 나오진 않지만 축구하고 수영하고 새로 선물 받은 카메라를 보물처럼 만지작거리며 씩씩하게 지내고 있다. 엄마 따라 5Km 달리기도 몇 번 뛰고 엄청난 지구력, 근성, 가능성을 보여줬다. 말도 안 되는 똥고집이 많이 늘어서 한 번씩 돌발행동을 하는 영락없는 초등학생 남자 개구쟁이다. 하임 이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잘 지냈다 - 생떼가 너무 는 것만 빼곤. 형 누나 하는 거 다 따라 하고 싶어 하지만 은근히 혼자서도 잘 지내는 참 신기한 녀석이다. 형 누나 친구들이랑 놀 때 은근 따돌림 당해도 멘털이 흔들리지 않는 게 너무 신기하다. 가끔씩 인생 두 번째 사는 것 같은 멘트를 보여줘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우리 집의 보배.


3. 한 걸음씩 하나 되어가는 가족: 여느 가족만큼이나 우리 가족에도 여러 어려움과 새로운 도전들이 있다. 작년 말부터 이어지는 정치 드라마가 아버지와의 관계에 어색한 기류를 만들기도 했고 (위에 썼듯이 폭발사건도 있었다), 서울에서 세 시간도 넘게 떨어진 농장에서 생활하시는 부모님과 계속 얼굴을 보고 함께하는 시간을 넓혀가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희수 77세 생신잔치도 잘 치뤘고 (관련글)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 내서 짧은 가족여행을 베트남으로 다녀왔는데 그게 참 기억에 남는다 (인스타릴스링크). 7년 만에 다녀온 해외여행. 비도 오고 비행기도 연착하고 만만치 않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함께하는 시간 내내 웃음과 감사가 넘쳤다. 기적같이 비행기를 같이 타게 되고 개일지 않을 것 같은 하늘이 개리는 역사도 있었다. 마지막 식사 때 하나님께 감사인사를 드린다고 이야기한 아버지의 멘트가 가슴에 많이 남고 잘 표현하지 않는 형이 보낸 카톡 메시지도 나를 울렸다. 미국에 있는 장인장모님 처남네는 한결같이 잘 지내주고 있어서 늘 감사하다. 처남네 둘째가 무럭무럭 잘 크고 있어서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교회

1. 형수님과 조카 주호가 교회에 정착하다: 교회를 생각하면 난 마을, 친척, 부족, 가족, 공동체와 같은 단어가 생각난다. 또 하나의 가족이랄까. 그 또 하나의 가족에 원 가족이 스며들어가고 있는 걸 목격하고 있다. 작년에 수줍게 교회에 한 번씩 나와보기 시작한 형수님과 주호가 올해는 완전히 교회에 정착했다. 형수님은 어머니기도회 등의 주중 모임도 나오면서 가정에서의 다양한 기도제목을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주호는 어와나 프로그램을 통해 교회생활의 재미에 점점 빠져가며 올여름 캠프를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셀에서 삶도 나누면서 매주 얼굴 보고 살 수 있는 게 참 감사하고 신기하다.


2. 올 상반기의 터닝포인트가 돼준 캄보디아 선교: 위에도 썼듯이 지나 놓고 보면 올 상반기의 터닝포인트는 캄보디아 선교였다. 그걸 계기로 일터에서의 기도제목도 해결됐고 아내와의 관계,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 개개인의 well-being도 완전히 바뀌었다. 캄보디아 선교는 우리 가족에겐 하나님이 준비한 천국잔치였다. 난 원 없이 축구하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아내도 워십 하면서 맘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아이들도 원 없이 뛰어놀며 더 사랑받고 자라났다. 아래 선교후기를 나눈다.


지난 2월에 약 60인의 드림교회 성도들과 다녀온 캄보디아 아웃리치 뒤늦은 후기. 다음번 카이로스의 시간을 또 기약한다…

1. 모두가 피어나는 시간: 먼저 캄보디아 아웃리치는 우리 가족 모두가 피어나는 시간이었다. 아내는 찬양팀 리더, 어린이 사역 프로그램팀의 모든 물자를 구입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역할, 공연팀 등으로 마르다처럼 일했다. 그러다가 막상 사역지에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녔다. 모든 사역팀이 아내가 반짝이며 피어나가는 걸 보고 감탄했다. 예배자로서 상대방을 섬기는 헬퍼로서 하나님이 아내에게 주신 여러 달란트와 기질이 온전히 피어나는걸 나는 알 수 있었다. 하루도 하율이도 하임 이도 너무나 잘 놀고 행복해했다. 하루는 공연팀에서 공연하는 걸 전심으로 좋아하고 열심히 했고 하율이는 한 살 위 형들과 아저씨들과 계속 놀면서 마음껏 즐겼다. 하임 이는 일도 곧잘 거들고 동생이랑 형이랑 딱 붙어 다니며 이쁨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나도 축구 실컷 실컷 하고 말도 안 되는 MVP까지 받으며 자아실현을 했다. 다녀와서 애들 모두들 다시 가고 싶다고 계속 노래를 부를 정도이다

2. 서로 하나 되며 가족이 커지는 시간: 지난번에도 그렇지만 이번팀도 엄청 끈끈했다. 가기 전부터 1박 2일 여행 가고 서로서로 알아가며 정말 친해졌다. 가정이 헤어지는 아픔을 경험한 사람도, 새로 교회에 정착하는 사람도, 몸이 아픈 사람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고 서로 놀고 하는 가운데 각자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 청소년, 선교사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말도 통하지 않던 현지 청소년들이 우리 공연팀의 지도를 따라 춤을 연습해서 몇 시간 만에 같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 건 감동 그 자체였다. 현지사역에 인생을 바친 선교사님들과 축구하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시간도 감동이었다. 기도와 찬양이 넘치고 같이 땀 흘리고 울고 웃는 가운데 어느새 가족이 커져갔다.

3. 나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사실 캄보디아 가기 전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기도제목이 생겼다. 아내와 나누는 가운데 다툼도 있었고 내 머릿속은 고민과 걱정으로 영 얼크러져 있었다. 캄보디아에서의 4박 5일 중에 그걸 온전히 잊을 수 있었다. 이 시간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온전한 안식이고 쉼표였다.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 나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4. 새로운 찬양을 발견한 시간: 이번 사역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공연이었다. 노래가 아닌 춤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인데 아내와 딸이 참여하여 온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걸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도 찬양하고 예배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awe를 경험하고 있었다. 새로운 찬양을 접했다.


3. 부름 받은 곳에 거하기, 드림틴즈 주일학교 교사: 올해도 꾸준히 청소년부 (드림틴즈) 교사를 섬겼다 (아내는 초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고 비교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전후 주어진 스마트폰이 유일한 안식처, 도피처, 친구가 되어온 삶, 살인적인 집값과 고꾸라치는 경제성장률 세계 최고의 노령화 속도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부담감만 앉고 시작하는 세대, 이런 환경을 다 뚫고 목이 터져라 예배하고 어떻게든 깨어 있으려 발버둥 치며 애들처럼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틴즈 애들을 보면서 난 하나님께 더 감사하기고 하고 질문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게 됐다. 불안이 아닌 믿음이 우리 다음 세대를 나아가게 하는 힘과 기반이 되기를. 아래 올해 초 틴즈 수련회 후기를 나눈다.


지난 1월 말 다녀온 서울드림교회 청소년부 드림틴즈 겨울수련회 (내 네 번째 수련회) 뒤늦은 후기

1. Theme 해쉬태그: 올해 수련회의 주제는 해쉬태그 - 정체성이었다. 한 가지 정답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각기 다른 개성과 역할로 창조하셨고 우리가 그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살아낼 때 각자도 공동체도 살아날 것이란 게 이번 주제의 배경이다. 이를 위해 강점테스트를 모든 청소년과 선생님들, 교역자가 진행했고 그걸 바탕으로 이름표도 만들고 자기소개도 하고 각 팀별로 팀즈에 필요한 동아리도 만들고 해서 발표도 했다. 강점은 “인류애, 절제, 초월, 정의, 지혜, 용기“ 의 큰 여섯 개 대분류 하에서 총 25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서로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강점을 찾고 계속 발견하고 인카레지 해주니 애들이 점점 더 살아났다(예: 한 친구의 강점은 신중성이었는데 평소엔 그게 우유부단한 본인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다가 자신의 기질적 강점일을 깨닫고 팀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 이 시대와 세대에 너무나 필요했던 시간. 스스로도 도움이 많이 됐다.

2. 성동훈 선생님과의 만남: 같은 방을 쓴 몇 년 형이 있었다. 교사로서 봐오면서 흠모하던 차에 한방을 쓰고 한 팀에서 일하면서 많이 친해져서 형동생이 되고 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인도 젊은 시절 성령님을 뜨겁게 만나고 경험하는 신앙의 맛에 푹 빠져서 늘 그 시기를 추억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훨씬 더 탄탄하게 신앙의 기반이 다져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가 그립지 않다는 형의 말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초청으로 느껴졌다. “산아 너도 더 이상 과거를 그리워하고 싶지 않지? 더 깊이 있게 나를 알기 원하지? 너도 한번 해봐. 아주 잘할 거야” 이런…

3. 기타: 이번 조에는 내 학생이었던 친구가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참여하기도 해서 더 뜻깊었다. 이제 내게 이 친구들은 그냥 편안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카들, 학생들이 된 걸 느낀다. 입시지옥과 핸드폰 중독이 아무리 한국 청소년의 목을 죄어와도 이들은 그걸 뚫고 나아가 반짝이는 세대가 될 것을 믿는다.


4. 기타: 어느새 우리 가족은 주일은 하루 종일, 그리고 주중에도 이런저런 시간을 교회와 함께하고 있다. 난 주일학교 교사로, 축구부 멤버로, 셀원으로, 또 필리핀 선교를 준비하며 재밌고 신나게 공동체 생활을 해오고 있다. 어와나 교사도 했는데, 초등학생들의 에너지가 너무 귀엽고 신선해서 좋았지만 토요일 오전까지 레귤러 하게 뭔가 하는 건 체력적으로 많이 부쳐서 아마 하반기에는 그만둘 생각이다. 우리 틴즈는 여전히 나의 사랑이자 나의 자랑이고, 주일에 하는 축구리그는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선교를 통해 청년들과도 더 알아가고 우리 집에 교회 식구들을 몇 번 초대할 수 있었던 것도 참 감사하다.


그리고 조금씩이지만 F&W, 패러처치 사역도 이어나가고 있다. 상반기에는 Praxis 아시아 모임에 휴가를 내고 다녀왔는데 정말 큰 은혜를 받았다. 한국에서 뭔가 더 제대로 해보고 싶은 건 아직 못해봤지만 가끔씩이나마 영감과 도전을 주는 다양한 크리스천과 만나는 건 큰 힘과 울림을 줬다. 이런글을 쓰기도 했다.


올해 출범한 2045펠로우십 2기

1. 쿠팡일: 사실 올 상반기 가장 큰 변화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매니저가 왔고 팀에 변화가 조금 있었다. 작년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이슈들이 해결됐고, 올해 새로 온 매니저는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일터에서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자유로운 영혼과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이분이 오고 나서 일하는 게 정말 편해졌다. 혼자 끙끙 앓던 일을 나누어 하나씩 처리해 가면서 예전보다 훨씬 힘 덜 들이고 더 많은 성과들을 내며 일하고 있다. 같이 있을 땐 친구 같고, 일할 때 보이는 성숙함을 보면 선배 같은 이분을 보면서 나도 이런 리더로 더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감사하게도 실적도 매년 몇 배씩 성장해오고 있어서 팀도 계속 커져가고 있다. 새로운 다이내믹과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년까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듯한 답답함은 온전히 가셨다. 이제야 좀 정착한 느낌이다.


2. 한양대 강의: 작년부터 하던 한양대 강의를 올해도 했다. 한번 해보니 힘이 덜 들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했는데 나의 모티베이션과 열정도 작년 같진 않아서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편한 마음으로 임했다. 한 학기 잘 따라와 준 학생들 - 60여명의 한국학부에 온 외국인 학생들 - 이 눈에 많이 밟힌다.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특히 몇 팀, 몇 명은 너무 반짝거려서 조금만 더 도와주고 격려해 주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까 기대도 되고 이제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아이들이 강의평가에도 따뜻한 말을 많이 남겨줘서 감개가 무량했다. 이런 친구들이 많이 늘어나야 한국에도 더 미래가 있지 않을까. 이들을 잠시나마 품고 가르치고 축복할 수 있었음이 감사하다.


3. 2045 펠로우십도 마찬가지다. 한번 해보니 힘이 덜 들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했는데, 역시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편한 마음으로 임했다. 펠로우십을 통해서 오래 알던 사람들도 새롭게 볼 수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만나게 돼서 참 좋았다. 허재형의 루트임팩트/소셜 생태계 조성의 역사를 들은 것, 행복연구소를 하고 계시는 조벽 교수님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우리 반짝이는 펠로우 한 명 한 명과 관계를 쌓아간 것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조벽/최성애 박사님의 행복연구소 사역은 나도 나중에 꼭 부부가 같이 이런 식으로 일하고 사역하며 섬기고 싶다는 꿈을 꾸게 만들어줬다. 정신없이 지내다가 또 주말에 펠로십 행사를 하려다 보면 힘이 붙일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4. 올해 새롭게 인연을 맺은 다른 곳도 있는데 아직 스텔쓰 모드 스타트업 ODD (링크)이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아직은 공개되지 않은 게 많아 말을 아낀다. 얼마 전에 제품론칭을 앞두고 제주도 워크숍을 떠나서 어드바이저 자격으로 함께하게 됐는데, 옛날 어웨어 스타트 업하던 게 생각나서 참 찡했다. 어웨어 함께 신나게 달린 지 정확히 십 년이 되는 시점에 또 다른 스타트업의 시작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응원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정말 멋진 팀이고 신기한 모멘텀이다. 앞으로가 너무나 기대된다.


개인

1. 건강: 올해 들어 이런저런 운동을 시작하면서 병원신세를 꽤 졌다. 역시 40대의 몸은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ㅎㅎ.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이러하다. 올해 초 건강검진에서 복부 CT도 한번 찍어봤는데 췌장 쪽에 살짝 음영이 보인다고 해서 저으기 놀랐다. 가장 빠른 교수님 스케줄이 5월이라고 해서 바로 잡고 5월에 교수님을 만나니 혹시 모르니 MRI를 찍어보자고 해서 또 가장 빠른 MRI를 6월의 어느 날 새벽 1시에 가서 찍었다. 그리고 2주를 기다려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데 아산병원 어플에 "전신골수스캔" 예약이 2주 후에 잡혀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였다. 도대체 내 건강이 어떻기에 MRI까지 찍은 마당에 전신골수 스캔이 잡혔단 말인가. 교수님을 만나니 MRI결과는 깨끗하고 피검사 수치 중 하나가 이상하게 높게 나와서 그거 확인차 골수스캔 잡은 건데 정형외과도 다니고 뼈도 다칠 수 있는 운동하고 있었던 거라면 충분히 설명된다고 걱정할 것 없다고 해주셔서 에피소드로 끝났다. 하지만 전신골수스캔을 어플에서 확인하던 그 순간의 덜컥 내려앉은 마음은 잊을 수가 없다. 최악의 순간까지 생각하며 생명보험은 들어놨는지,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주마등처럼 생기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체감하고 나니 일상이 더 선물처럼 감사해졌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꾹꾹 눌러 꽉 채워 살아야지.


2. 크로스핏 (축구): 올해 가장 잘한 것 중 하나, 나를 위해 한 가장 큰 투자는 "크로스핏"이다. 2월에 캄보디아 선교 전후해서 등록했고 중간에 부상, 출장 등으로 꽤 빠졌으니 이제 한 서너 달 했달까. 초반 여러 잔부상도 당했지만 이제 좀 정착한 느낌이다. 아직 RXD를 다 하진 못하지만 기본 동작들은 무리 없이 하는 수준까진 이르렀다. 특히 내가 좀 자신 있는 줄넘기 등의 와드가 있는 날에는 새벽반 일등도 한두 번 찍어봤다 ㅎㅎ. 나의 목표는 머슬업이다. 올해 중엔 반드시 머슬업을 성공해서 인증숏을 올리리라. 전에 헬스 할 때나 좋은 습관/F45 할 때와는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내 한계를 넘나드는 운동과 냉수샤워로 매일 아침을 열고 있다. 축구는 교회 축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기복이 너무 심하고 부상도 자주 당해서 참 복잡한 감정이다. 너무너무 잘하고 싶고 재미있지만 할 때마다 무섭달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꾸준히 공찰수 있었던 게 아주 큰 기쁨이었다. 그리고 아내와 친구와 가끔 달리기도 했는데, 운동 자체로는 크로스핏/축구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게 참 좋았다. 아내랑 같이 운동할 수 있는 게 참 좋다.


3. 친구들: 남송이 드디어 결혼을 했다. 누구보다도 본인과 어울리는 제수씨와 정말 멋진 잔치 한 번을 벌이며 시원하게 결혼한 남송의 삶이 계속 피어나고 있음이 멋지고 감사하고 응원과 도전이 된다. 한편으론 중년의 무게에 신음하는 친구들도 주위에 보인다.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 삶의 무게가 참 누구에게나 가볍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돈과 경제적인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 직장 커리어적인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 등 암초는 어디에나 있다. 자기 힘과 노력으로 해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정말 많은 부분은 환경적으로 주어지거나 운에 좌우되기도 한다. 특히 내게 가장 와닿는 건 중년 남성의 고독이다. 주위에 그런 걸 겪는 친구들을 보면 맘이 많이 쓰인다. 그렇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지만 그냥 맘이 간다. 이제 10년씩 두 사이클을 지나면서 삶이 참 짓궂다 (?)는 생각을 한다. 다 비슷했던 우리들인데 10년이란 세월과 함께 많은 게 변해있다. 앞으론 더하겠지. 그런 걸 느끼면 좀 덜 일희일비할 수 있는 것 같다. 친구들에게 더 휴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상반기였다. 그렇지만 술자리는 정말이지 잘 못 가겠다. 분위기도 못 맞추고 술도 못 먹고. 다른 방식을 잘 찾아봐야지.


4. 책, 콘텐츠: 책을 아주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책을 아래 소개해본다.

-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 공무원 후배가 쓴 책인데 한달음에 읽었다. 내부고발을 뛰어넘는 인사이트와 혜안이 넘쳤다. 조금 더 포지티브한 쪽도 더 쓰면 좋겠다는 아쉬움만 빼면 백점짜리책

- 밝은 밤: 중년이 될수록 소설이 좋아지는데 이건 완전 여성들의 감정과 아픔과 서사로 가득한 책이다. 난 정말 에겐 남인 것인가 ㅎㅎ. 이걸 읽고 펑펑 울고 나서 중년의 우울증을 호소하는 다른 남자친구에게 줬더니 걔도 잘 읽었단다. 감정은 다 통하나 보다.

- 콜드케이스: 좋아하는 정치인이자 지식인 윤희숙 전 의원이 쓴 대한민국 경제도약을 위한 다섯 가지 과제. 뼈 때리는 혜안들이 가득했다.

- 트럼프시대 2.0, 세계경제지각변동: 최근 가장 믿고 보는 경제유투버이자 지식인 박종훈의 책. 둘 다 명저였다.

- 정서적 흑수저, 금수저: 이번에 알게 된 조벽교수님의 명저. 애착이 얼마나 아이의 정서발달에 중요한지 - 금쪽같은 내 새끼의 책 버전 같았다. 완전 반대의 결로 "부서지는 아이들"이란 책도 쓱 봤는데 (거의 반대의 주장을 하는), 난 정서적 흑수저 금수저에 훨씬 공감이 가더라.


5. 새로운 영감들 - 두바이: 올해 상반기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두바이에 다녀온 것이다. 처음 제대로 가본 중동이었는데 느껴지는 게 너무 많아서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땅은 대박이고 숨은 보배였다. 알고 보니 내 주위에도 여러 사람들이 두바이로 대표되는 UAE 등의 중동을 우연히 접하고 그쪽과 비즈니스를 하거나 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갈수록 조각화 되는 글로벌 정세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볼 곳도 두바이와 같은 곳이 아닐까 (싱가포르와 함께). 계속 접점을 넓혀가 보고 싶다.


하반기를 여는 마음, 소망

2025년 상반기의 삶, 특히 캄보디아 선교 이후의 삶에는 정말 감사가 넘쳤지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그건 여전히 나의 "일"과 관련 있었다. 한국을 오면서 내가 품었던 마음, 했던 기도는 기회 주시면 "원 없이 일하겠다"였다. 미국에서 마치 손발이 묶인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었고 코비드를 지나고 애 셋을 어떻게저떻게 키우면서 한이 맺혀서 이런 마음이 더 절실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뭐든 했다. 비영리단체를 만들었고 대학교에서 강의도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목마름이 크다. 더하고 싶고 더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일에 감사하지 않은 건 전혀 아니고 지금의 일이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것만도 아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기도 - 하나님 더 일하고 싶어요. 더 신나게 일할 기회들을 주세요 -라는 마음이 늘 가슴속에 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얼마 전에 청소년부 수련회에 가서 기도하는데 이런 마음이 들었다.


산아, 기도제목이 너무 작구나. 내 아들은 베포가 더 커야지. 다음 세대를 온전히 네 맘에 품는 기도, 이 세대를 향한 사랑, 이 세대의 회복과 성장과 부흥을 달라는 기도, 그런 기도가 듣고 싶구나. 그래 그래야 내 아들답지.

그리고 엊그저께, 친구의 초대로 월드비전 YLC (Young Leadership Council) 모임에 참석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유튜브로 접했던 현승원 의장이 리딩하는 모임이었다. 주로 유투버들, 인플루언서들, 개인사업하는 30/40 세대가 주축이었고 신사임당 전인구 등 유명한 유투버들도 보였다.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가 보다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예배하는가운데 마음이 뜨거워졌다. 현승원 의장이 이사야 55장 8-9절 (나의 길과 뜻은 너보다 높고 네가 헤아릴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 모임에 대해 받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데 성령님이 강하게 임하셨다. 그분은 이런 말씀, 소망을 주셨다.


산아, 내가 너에게 주었던 내 마음 - 한국의 다음 세대에 대한 마음들 - 을 같이 받은 친구들이 여기 이렇게 있다. 멋지지? 산아, 여기 사람들 말도 너무 잘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사업도 하고 네가 보기에 진짜 멋지게 일하고 있지 않니? 그래. 내가 많은 걸 주고 많은 걸 기대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단다. 이 사람들과 한번 제대로 일해보고 싶지 않니? 비교할 필요도 없고 너를 내세우거나 기죽을 이유도 전혀 없단다. 이들은 친구고 동역 자니까. 그리고 넌 내 아들,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백산이니까.

산아, 네 삶의 첫 막은 나를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지. 그때 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너 스스로도 힘이 붙이고 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었어. 그런 너를 내가 미국으로 불러내서 나를 알게 하고 여러 고난을 겪게 하며 지난 십여 년간 연단했단다. 네 삶의 두 번째 막이라 할 수 있지. 사도바울도 회심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나를 독대하고 연단하는 시간을 가졌고 모세도 미디안 땅에서 40년을 가축을 돌보며 지냈듯이 그런 연단의 시간은 꼭 필요한 거란다. 산아, 이제는 다시 한번 신나게 일해볼 준비를 하렴. 동역자들을 줄게. 나와 함께 세 번째 막을 시작하자꾸나.


상반기 내가 한것중에 잘한 게 있다면 꾸준히 운동한 것, 은혜의 자리에 가기를 사모한 것, 공동체에 거한 것, 기회주신 일들 마다하지 않고 해 본 것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아쉬운 건 개인의 영성이었다. 다니엘처럼 타협하지 않는 영성. 쩨쩨하게 고민하지 않고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습관과 거기서 나오는 힘. 더 담대하고 구체적인 기도생활. 그분이 주신 소망을 충분히 받고 살아내려면 나의 삶이 더 단단히 서야 하리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4년을 마무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