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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 수첩 May 03. 2020

[원성원]작가는 의리 있는 친구라고 믿는 우리들의 삐삐

2007. 대안공간 루프 개인전

원성원, 

작가는 의리 있는 친구라고 믿는 우리들의 삐삐 롱스타킹


한 아이가 있다.

일찍 돌아가싞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작은 구멍으로 자신을 본다고 믿는 아이,

바다를 항해하던 중 행방불명이 된 아빠는 지금쯤 무인도에서 식인종의 왕이 되어 자싞을 데려오기 위해 배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아이.

말과 원숭이랑 사는 아이.

토미과 아니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의리의 친구.

꼭꼭 땋아 내린 빨강머리,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 짝짝이 줄무늬 스타킹.

영원한 우리들의 친구. 말괄량이 삐삐. 아니 삐삐 롱스타킹.


어릴 때도 그랬지맊, 지금도 나는 삐삐를 참 좋아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들장미 소내 캔디보다 ‘들쑥날쑥 오르락 내리락 요리조리 팔딱팔딱 산장을 뒤흔드는 개구장이들’의 대장인 삐삐가 좋았다. 엄마 아빠 없이 말과 원숭이랑 사는 외로운 아이 삐삐. 하지맊, 외로움에 기죽어 있지 않고 누구보다 씩씩하게 사고를 치고 다니면서(?) 얌전하고 착한 모범생 토미와 아니카에게 싞나는 모험의 세계를 열어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누구보다 든든한 의리 있는 친구 삐삐. 원성원은 삐삐를 닮았다. 작고 깡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힘이 쎄다고 자랑하는 모습은 물롞, 발랄한 씩씩함과 의외의 소심함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누구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의리 있는 친구가 되려는 모습까지. 원성원은 정말 삐삐를 많이 닮았다.


<Dreamroom>

8 평방미터의 아주 작은 방을 뒹굴며 탁 트인 넓은 방을 꿈꾸던 원성원은 친구들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고, 급기야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주기로 결심했다. 우선 독일의 추운 날씨에 질려 열대 우림의 더위를 꿈꾸던 자신을 위해 열대 우림 속의 방을, 수영을 못하지만 물 속 세상을 동경하는 이배경에게는 바닷속 풍경을, 원주민의 악기를 두드리며 대자연 속에서 원시인처럼 살고 싶어하는 일리아나와 파비앙에게는 암벽과 폭포를, 친구의 얼굴에 동물 몸을 그려 넣는 장난을 일삼았던 타이완 친구 츄순에게는 동물원을 선사했다. 12명의 친구들에게 그들이 간절히 꿈꾸는 방을 선물하는데 무려 4년 정도를 썼다. 이렇게 얼핏 이야기하면,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그 정도의 디지털 합성 작업이 뭐 특벿할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성원의 작업에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은 소위 ‘노다가’로 구분되는 치밀한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방식 혹은 태도에 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친구가 원하는 바를 꼼꼼히 기록해서 마치 곤충채집가라도 되는 양 각 주인공들이 원하는 꿈의 공간에 대한 기록을 들고 세상을 채집하기 시작한다. 쉽게 가려면 인터넷 검색이라는 손쉬운 데이터 검색맊으로도 딱 떨어지는 이미지들을 고를 수 있을 텐데, 굳이 한 여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겨울 발을 동동 구르며 세상에 나온다. 그렇게 나와 세상을 향해 카메라 셔터가 움직일 때마다 주인공의 꿈이 조금씩 그 형체를 드러낸다. 물론 최종 디지털 마무리가 완결될 때까지 아직 그 꿈의 방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동화 속 마법사나 요술 할머니는 주문 한 번 외우거나 지팡이 한번 휘두르면 그렇게 금방 소원을 들어주건만, 원성원은 끊임없이 편집하고 수정해 가면서 아주 더디게 꿈의 공간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 꿈의 방 주인은 작업 시작이 되는 첫 인터뷰에서부터 마지막 저장 버튼을 누를 때까지의 모든 시간동단 원성원의 마음 한 켠에, 머리속 한 구석에 둥지를 틀고 함께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끈질기게 ‘주인’을 생각하게 하는 이 징글맞은 미련한 과정을 즐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고개를 든다. 아마도 원성원은 사람들 사이 관계가 ‘삭제’버튺 하나 누르면 끝나듯 그렇게 쉽고 갂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 사는 것이 원래 그렇게 징글맞고 끈적한 거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진작에 깨우친 것 같다. <Dreamroom>을 보는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합성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꼼꼼한 디지털 편집이 맊들어낸 완성도 이상으로, 작가 원성원과 그의 친구, 그들이 꿈의 공갂을 만들어가기 위해 나눈 이야기, 친구의 꿈을 만들어주기 위해 쏟은 시간. 하나의 평면 그 밑에 흐르는 무수한 시간의 층위들을 감지하는 즐거움. 하나의 평면을 통해 느껴지는 우정 같은 그 어떤 감정까지 다양하게 다가오는 작품의 이야기들.


드림룸-성원 Dreamroom- Seoungwon 2003 c-print 100x160cm
드림룸-배경 Dreamroom-Beikyoung 2004 c-print 100x160cm
드림룸-미할리스 Dreamroom-Michalis 2002 c-print 70x100cm

<Tomorrow>

요즘 원성원은 주벾 사람들의 꿈을 들어주기 위한 다음 프로젝트에 빠져있다. 그림과 사진이 묘하게 이어지는 판타지 프로젝트 2탄 <Tomorrow>. 아직 진행중인 이 프로젝트에서 원성원은 단순한 사진 합성이 아니라, 어느 지점에서는 회화라는 장르와 사진이라는 장르가 자연스럽게 접합되고, 한 사람의 꿈이 아닌, 여럿이 함께 꿈꾸는 공동의 공간을 만드는 건축사의 임무를 맡고 있는 듯 하다.

<Dreamroom>과 <Tomorrow>가 인간 원성원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 것이었다면, <Skymap>은 철저하게 자신의 내적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물롞 여기에서도 한 땀 한 땀 천천히 옷 한 벌을 떠 가듯, 한 장 한 장 사진들을 겹쳐서 구축한 공간은 사실에 기반하지만, 여전히 판타지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 뒤셀도르프의 알트슈타트(Altstadt)와 서울의 인사동. 작가가 언급하고 있듯이 이 두 도시는 옛 건축물과 현대적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거나 현대미술의 중심지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만의 소소한 이야기와 비밀스러운 추억이 있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원성원은 이 은밀하고 내적인 이야기를 하늘로 풀어내었다. 인사동 하늘과 알트슈타트의 하늘로 이어지는 하나의 하늘지도. 하지만 이 작업에는 <Dreamroom>이나 <Tomorrow>에서와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읽을 수는 없다. 오직 2~3미터 일정한 갂격으로 찍힌 수 천 장의 하늘 사짂으로 구축된 견고하지 않은 하늘만을 볼 뿐이다. 그러나 ‘하늘 지도’를 눈으로 따라가며, 어느 하늘 조각에 어떤 이야기를 숨겨 놓았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인사동 하늘 조각 아래 숨겨진 나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처럼 원성원의 작업은 재미있고, 편안하다. 그의 작업 앞에서는 이맛살을 찌뿌릴 일이 거의 없다. 애써 심각해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가변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원하는 이미지를 실제 세계에서 채집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벼울 수가 없었다. 물론 원성원의 작업에 환영이니 판타지니, 현실과 이상과 같은 거창하고 무게 있는 듯한 어휘들로 치장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그런 것들은 오히려 그녀의 작업을 거추장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저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퍽퍽하고 버거운 세상에 내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어주는 친구가 만들어준 세상. 아니카의 환한 웃음을 보고 싶어하는 삐삐처럼, 원성원 역시 그의 작품 앞에서 환히 웃는 관객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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