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다섯 번째 만남 : 전로사 님(上)
때는 2015년 2월.
계절은 아직 한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엉성한 지붕만 겨우 둘러져있는 오일장은 추운 날 쇼핑을 하기에 그리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는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시장 안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날도 시장 한 귀퉁이에서 강아지를 파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제주도민인 그에겐 이런 오일장의 풍경은 낯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으레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강아지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오일장에서 파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본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강아지들 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끼어 있는 모습은 그의 눈에도 꽤나 낯선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그의 시선이 고양이에게 고정되었다.
검은색의 작은 고양이는 좁은 철창 한가운데서 강아지들에 둘러싸인 채 옴싹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그 모습 때문이었을까. 그는 고양이가 마음에 밟히기 시작했다.
오늘 만나실 분은,
제주에 사는 전로사 님입니다. 그는 30대 직장인이자 고양이 2마리를 부양하는 집사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고양이를 흠모(?)해왔고, SNS나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이 올린 고양이 사진을 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면서도 직접 키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잘 키울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고, 좋아한다고 다 키우는 건 아니니까. 그는 눈에 밟히는 고양이를 애써 외면하며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시장 한 바퀴만 더 돌고 그때도 있으면 내가 데려가야지.'
이렇게 돌아서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마침내 시장 한 바퀴를 다 돌아보고 왔을 때도 고양이는 여전히 그대로 있었지만, 그는 또다시 그 앞을 지나쳐 걸었다. 그에게는 아직 생각할 시간이 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때 날씨가 추웠거든요. 처음에는 한 바퀴만 더 돌고 그때도 있으면 그냥 내가 데려가야지 했어요. 한 바퀴 돌고 왔는데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근데 막상 데려다 키운다 생각하니까 그게 선뜻 되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또 한 바퀴만 더 돌자 했죠. 그렇게 몇 번을 돌았는데도 계속 그대로 있으니까, 저도 계속 시장을 돌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어린 생명들은 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 걸까. 예쁘고 귀엽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얼마나 건강한지, 무얼 먹고 사는지. 이렇게 장터에 나와 소란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디에서 밤을 보내고, 내일은 또 어디에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생사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몇 바퀴를 돌았는데도 계속 안 팔리고 있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렇게 있다가 다 클 때까지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면 버려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나중에 어떻게 처리될지 모르는 거니까 짠하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에 한 바퀴만 더 돌자 하면서 계속 돌다가 다섯 바퀴 돌아보고서 그냥 걔를 데려왔어요.”
단돈 2만 원.
그가 시장 다섯 바퀴를 뱅뱅 돈 끝에 마음을 굳히고 품에 안은 고양이는 작지만 꽤 묵직했다. 보호자에게 뒤따르는 책임감의 무게가 더해진 탓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고양이를 보며 예쁘다고 부러워만 하던 그는 결국 이렇게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제주어 ‘고냉이(고양이)’에서 따 와 ‘냉이’라고 지었다.
몸집이 작아서 마냥 어린 줄만 알았던 냉이는 생후 5개월이었고, 집에 데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정이 났다.
“5개월 밖에 안 됐을 때여서 벌써 올 줄 몰랐거든요. 발정 나면 많이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진짜 계속 울고 힘들더라고요. 그때는 빌라에 살았는데 집주인 올라올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발정 끝나기만 기다렸다가 바로 병원 데려가서 중성화 수술시켰죠.”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이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집이 작다고 간과했다가 이처럼 웃지 못할 참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집사 생활이었지만 다행히 발정기를 지나고 중성화 수술을 한 후에는 특별히 문제 될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냉이는 뭇사람들이 알고 있는 고양이의 성격대로 무심한 ‘도도냥’이다. 불러도 안 오고, 만지려고 하면 곁을 주지 않고 빠져나간다. 이렇게 집사를 투명인간 취급하다가도 가끔씩 먼저 와서 쳐다보고 드러눕는다.
의외로 낯가림은 없어서 집에 손님이 오면 태연하게 다가가 냄새를 맡기도 하지만, 개냥이처럼 애교를 부리지는 않는다.
한편, 지역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한 둘째 ‘봄동이’는 이른바 ‘개냥이’ 성격인데 냉이와 달리 낯선 사람이 집에 오면 어딘가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만약에 둘째를 키우게 된다면 당연히 보호소에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봄동이를 입양한 건 평소 소신 때문이었다. 어느날 둘째 입양을 결심한 그는 지역 유기동물보호소로 향했다.
그가 둘째를 입양하기 위해 지역 유기동물보호소에 갔을 때 보호소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새끼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었다. 그리고 별도의 공간에는 피부병 걸린 삼색 고양이가 격리되어 있었다. 그 당시 체중 400그램 정도에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새끼였는데, 피부병 때문에 젖을 다 떼기도 전에 격리된 모양이었다. 대게 입양할 때 건강상태를 따지기 마련인데, 그는 주저 없이 이 고양이를 입양했고 봄동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양이 합사가 어렵다는 말은 익히 들었던 터라 첫날부터 한 공간에 두기는 조심스러웠다. 병원 진료 결과 봄동이의 피부병은 전염될 가능성이 낮아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직 분유와 사료를 함께 먹을 정도의 새끼 고양이였기 때문에 베란다 쪽에 철창을 세워 격리시켰다.
그는 봄동이의 피부병이 완치되면 철창을 치워줄 생각이었지만, 2주가 지났을 무렵 봄동이가 먼저 철창을 넘었다. 냉이의 반응은 냉담했다.
“합사에 대한 걱정이 좀 있었거든요. 오히려 봄동이가 적응을 잘하고, 냉이가 적응 못 하고 낯설어했어요. 지금도 둘이 사이가 좋지는 않아요. 다른 집처럼 같이 붙어서 자고 그런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물어요. 그래도 저는 둘이 싸우지 않고 이렇게 공생이 가능한 것만도 다행인 거 같아요. 가끔 둘이 붙어 있을 때가 있긴 한데, 어쩌다 서로 그루밍해주고 있으면 자식들이 서로 챙겨주는 거 같아서 보기 좋고 제가 괜히 흐뭇하더라고요.”
그는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듯 엄마 미소를 지었다.
글·그림 / 자유지은
▦알아두기
전통시장에서의 반려동물 판매는 불법?
오일장 등 전통시장에서 반려동물을 파는 건 오랜 관습으로 이어져 온 것이기에 불법이라는 걸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위 사례의 주인공도 이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긴 독자도 있을 텐데, 설명하자면 사족이 길어질 것 같아 아래의 기사와 관련 법 조문으로 갈음하려 한다.
동물보호법 제32조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개ㆍ고양이ㆍ토끼 등 가정에서 반려(伴侶)의 목적으로 기르는 동물과 관련된 영업을 하려는 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맞는 시설과 인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또한 제33조에는 ‘영업의 등록’에 관하여 ‘제32조 제1항 제1호부터 제3호까지 및 제5호부터 제8호까지의 규정에 따른 영업을 하려는 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등록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동물보호단체 등 반려동물 애호가들은 이러한 법 조항 등을 근거로 전통시장에서의 동물 판매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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