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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Jan 28. 2020

캣맘의 마음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일곱 번째 만남 : 박선영 님(上)

엄마가 성당 다녀오는 동안 어미 없이 혼자 울고 있던 새끼, 동생이 데려온 업둥이, 금순이, 유기묘 데려온 아이, 내가 데려온 ....”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읊조리더니 마침내 정리가 끝난 듯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살 때는 고양이만 최대 다섯 마리가 같이 살았던 적도 있어요. 고양이 말고 강아지도 한 마리 같이 키웠을 때는 집안에 동물만 여섯 마리가 같이 살았어요."


고양이 사랑이 각별한 어머니를 필두로 온 가족이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가족들에게는 남달리 고양이를 끌어당기는 기운이라도 있는 것인지,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만난 고양이를 가족으로 들였다. 그렇게 한집에 살아도 책임지는 '내 자식'은 각자 따로 있어서 독립해서 분가를 하게 되면 자기 고양이를 같이 데리고 나가는 식이었다.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집사 생활을 시작한 지도 근 20년이 되었으니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7년에 혼자 제주로 귀향하면서 그는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데려올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 당시 고양이의 나이가 16살 고령인 탓이었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0~15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백발노인 ‘어르신’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거나 환경변화가 생기면 체력적으로도 힘들뿐더러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제주에서도 시가지가 아닌 '읍 소재지'이다 보니 동물병원을 비롯한 반려동물 케어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혼자 살면서 일 때문에 서울에 가야 할 때도 많은데, 고양이를 며칠씩 혼자 둘 수도 없고 맡길 곳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이래저래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마침 동생이 자기가 키우겠다며 맡기라고 했고, 고심 끝에 동생에게 고양이를 부탁했다. 그나마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건 그의 가족들 모두 오래전부터 함께 고양이를 키워왔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키우던 고양이까지 동생한테 맡기고 귀향했으니, 그는 이제는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캣맘’으로서 동네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대신하기로 했다.


오늘 만나실 분은,
제주 조천읍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박선영 님입니다. 그는 2017년에 제주로 귀향한 뒤 지역의 캣맘으로 활동하며 길고양이 TNR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그의 할머니가 예전에 살던 집인데, 돌담 안쪽으로 작은 마당이 있는 구조다. 내가 찾아갔을 때 그 집 안마당에는 먼저 온 고양이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밥 먹으러 왔다가 낮잠 자고 반상회까지 하고 가는 동네 길고양이들이었다. 마치 제집인 냥 느긋하게 자리 잡고 있는 길고양이들의 모습에서 나른한 평화가 감돌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 돌아서는데 마당 한구석에 판자로 만들어놓은 집이 눈에 띄었다. 개집인가 했더니 그 안에는 얼핏 보기에도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관심을 보이는 내게 그가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이렇게 꼬질꼬질한 고양이는 생전 처음 보실 거예요. 고양이들은 그루밍하니까 원래 안 이렇거든요.”


꼬질꼬질 수준을 넘어서 움직일 기운도 없어 보였는데 그래도 밥 먹고 볼일 볼 때는 잠깐씩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대체 이 늙은 고양이는 어떻게 해서 여기에 눌러앉게 된 걸까.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은 제가 대부분 얼굴을 아는데, 얘는 원래 고정적으로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도 아니었어요. 근데 어느 날부턴가 하루에 한 번씩 밥 먹으러 오더라고요."


범상치 않은 몰골 때문에 한 번이라도 봤다면 기억했을 텐데, 동네에서 마주친 적 없는 고양이라 어디서 밥 먹으러 오는 건지 궁금해할 따름이었다.


며칠 뒤, 옆동네에 산책 갔다가 돌아오던 그는 폐가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다 죽어가는 몰골이었다.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그 고양이를 향해 잔소리하듯 외쳤다.


야! 너 왜 그러고 있어.
너 그냥 우리 집에 와서 자!


그저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혼자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다음 날 밥 먹으러 와서부터 돌아가지 않고 아예 눌러앉았다.


"그때 제가 동네 고양이들 비라도 피하라고 저 집을 만들어놨는데, 저기에 딱 들어가더니 꼼짝도 안 하더라고요."



이 늙은 수컷 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다.


"얘가 온 다음부터 원래 밥 먹으러 오던 다른 고양이 몇 마리가 발길을 뚝 끊었어요. 지금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들은 그 이후에 새로 오기 시작한 어린애들이에요. 늙은 고양이라 기운이 없다는 걸 눈치챈 건지 어려서 잘 모르는 건지, 얘네들은 신경 안 쓰고 계속 밥 먹으러 오더라고요."


내가 갔을 때도 이 길고양이들은 서로를 본채 만 채 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귀향한 뒤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계속 챙겨주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동네 주민들 사이에 ‘캣맘’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마당 안쪽에서 고양이들 밥을 챙겨주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릇을 담장 바깥쪽에 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더니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고, 잘햄쪄! 동물도 먹어야지.”



밥 주는 장소를 안쪽으로 옮겼다길래 행여나 무슨 시비가 걸려서 그랬나 싶어 마음 졸이며 듣고 있던 나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여기가 시골이라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동네 어른들은 그래도 집에 들어오는 짐승은 먹어야 된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이웃들의 민원 때문이 아니었다면 왜 굳이 밥그릇을 안쪽으로 옮겨놨던 것일까.


“밖에 뒀더니 동네 개들이 고양이 사료를 다 뺏어 먹더라고요. 그래서 밥그릇을 안 쪽으로 들여놨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동네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다가 왜 이제 고양이들 밥 안 주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시골이라고 해서 마냥 인심이 좋은 것만도 아닌데, 이렇게 길고양이들 밥 주는 것 하나에도 관심을 쏟고 훈훈한 얘기가 오고 간다니, 어렴풋이나마 길고양이에게 친화적인 마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인심 좋은 마을에서 평화롭게 이어지던 캣맘의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 건, 대흘리에 갔던 이웃이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오면서부터다.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이 고양이의 상태는 일반적인 길고양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꼬리는 짧게 잘려 있었고 목걸이를 했던 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체중도 3kg 밖에 되지 않아 왜소한 편이었다. 몹시 굶주린 듯 보였다.

  

“아니,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요. 개도 아니고 고양이인데!”


우려 섞인 그의 말이 감탄사처럼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그의 우려는 명확했다. '길고양이 줍냥'은 누구도 쉽게 판단하기 힘든 조심스러운 문제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해 무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입양을 보낸 후 합사에 실패할 수도 있다. 사람 손길을 타면 다시 그들만의 생태계로 돌아가기도 힘들어진다. 그의 말 한마디는 이렇듯 여러 가지 메시지가 내포된 외침이었다.

 

고양이를 데려온 이웃도 그가 우려하는 부분들을 잘 알고 있었다.


“안 데려오려고 했는데, 얘가 막 비틀비틀거리면서 계속 쫓아오는 거예요. 목걸이 했던 흔적도 있고 아무래도 사람 손 탔던 애 같더라고요. 자꾸 따라오니까 어쩔 수 없이 데려오긴 했는데, 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무슨 말을 한들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사실이었고, 달리 도와줄 방법을 찾지 못해 데려왔다는 그 이웃은 본인이 직접 이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얼마나 불쌍하고 딱해 보였으면 덜컥 데려왔을까, 그 마음을 누구 못지않게 이해하는 그였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우선 굶주린 고양이에게 밥부터 주고 곰곰이 생각했다.


‘얘를 어떡하지? 우리 동네에 고양이 키울만한 사람 없나? 어떻게 입양을 보내지?’


개인의 홍보력으로 한 동물을 입양 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입양이 성사될 때까지 머물 임보처도 있어야 하고, 그 기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알 수 없으니 장기전이 될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 활동가들은 ‘최악의 경우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구조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웃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라 무슨 대책이라도 찾아야 했다. 그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 TNR이었다.


“가만있어봐. 어쨌든 얘 지금 길고양이 맞잖아. 그럼 일단 TNR을 보내자.”


시간을 벌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지만, 마을에 사는 다른 길고양이들처럼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건 썩 괜찮은 일 같았다. 때마침 그가 캣맘으로서 동네 길고양이들 TNR 사업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당자 연락처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TNR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TNR이란 Trap(포획)-Neuter(중성화 수술)-Retur(방생)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한 중성화 사업이다. 서울시에서는 2007년에 시범사업을 거쳐 이듬해부터 정식 사업으로 도입하였으며, 제주도에서는 2017년부터 TNR사업이 시행되었다.



TNR을 보내 놓고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주민 몇 명이 둘러앉아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그 가운데는 이미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인 동네 음식점 사장님이 있었다. 이 고양이를 업둥이로 입양하는 걸 고려하고 있었지만 집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앙숙이라 그 사이에 새로운 고양이가 끼면 어떻게 될지 예측불가였다. 게다가 아내하고 의논도 해야 돼서 당장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내와 의논해보기로 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확정된 것 없이 회의가 끝났다.


TNR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 고양이에겐 갈 곳도, 머물 곳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아내와 의논해 보겠다던 음식점 사장님으로부터 확답을 듣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며칠간 임시보호하기로 했다.


임시보호로 끝낼 수 있겠냥?



글·그림 / 자유지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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