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구아빠 Feb 11. 2023

다 알고 결혼한 거 아니야?

번역 : 그냥 받아들여

며칠 전부터 아내가 웃으면서 “그래서 짱구 말고 내 얘기는 언제 써줄 거야?”라고 물어봤다. 한 42번 물어봤나? 그래서 오늘은 아내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써야만 한다).




결혼 후 아내는, 자꾸만 자꾸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이런 양파 같은 사람..). 그래도 신혼 초에는 각자 직장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특히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극도로 많아졌다.


이런 모습도 있었나, 이런 성향의 사람이었나, 흠칫 놀라며 불만을 토로하면, 아내는 놀리듯 말했다.


“다 알고 결혼한 거 아니야?”


아니 그걸 어떻게 다 알아? 아님 내가 알아채야 했던 건가? 아니면 시그널이 있었는데 내가 못 알아챈 건가?




결혼 전에, 아내는 자기 자신을 ‘독아’라고 표현했다.  ‘독립의 아이콘’이라는 뜻이란다. 혼자서 뚝딱뚝딱 일처리 잘하고, 외국에도 자주 나가봐서 새로운 환경에 그다지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녀의 직장 생활과 외국 출장을 곁에서 지켜봤기에 응당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데 결혼 후 같은 집에서 지켜본 아내는 독아와 쪼금 거리가 있어 보였다. 아내는 좌남편, 우장모님 시스템에서 최상의 안정감을 느끼며, 번갈아가며 연락을 했다(우리 장모님..). 해외에 와서도 아내는 분명 유학을 온 것인데 학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24시간 중 20시간을 같이 있으면서도 나를 본인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다고 했다(덜덜덜..)




반면 결혼 전에, 아내는 본인이 ‘소아’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소비의 아이콘’이라는 뜻으로, 나를 제외한 아내의 지인들은 다 알고 있었단다. 아내가 이직한 회사가 모 유명 백화점 본점의 옆에 붙어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가 걱정했다고 한다.


나는 몰랐다. 연애 전후에도 옷차림이 참 수수하구나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옷을 안 사는 내 입장에서는 기특하다고 여겨졌다. 브랜드 상표가 옷 겉면에 붙어있지 않을수록 비싼 거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나에게는 더 알면 위험하다고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곤 웃으면서 말했다.


“나 소아 인거 몰랐어?”




나는 무엇을 알고 결혼한 걸까? 뭘 알고 결혼한 거긴 한 걸까?


요래조래 생각해 봐도 결혼하고 같이 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었다. ‘결혼 전에는 두 눈 크게 뜨고, 결혼 후에는 한쪽 눈을 감으라’고 하지만, 두 눈 크게 떴던들 내가 얼마나 알았을까?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아내도 본인이 진심으로 독아 라고 생각했었다.


애당초 뭘 알고 결혼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닐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알겠느냐. 하물며 알고 있던 장점들도 시간이 지나면 죽기보다 싫어지기도 하는데 말이다.


톰은 썸머의 미소와 웃음소리, 치아가 너무 좋았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미소와 웃음소리, 삐뚤빼뚤한 치아가 싫어졌다.


너무 억울해하지 않아도 되는게, 아내도 나에게 적지 않게 속았다. 내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치우지 않고 요리조리 점프해가며 지내는 더러운 스타일인 줄 몰랐을 거다(장모님은 이서방이 깔끔한 스타일인 줄 알았다고 한다. 우리 장모님..). 주말에도 헬스장이나 대학원 다니며 자기계발의 최선봉에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휴직하고 1년 반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이렇게 잘 놀기만 할 줄 몰랐을 거다(이건 나도 몰랐다!). 금융회사 다니는 남편이 이렇게 경제관념 없고 수학을 못할 줄도 몰랐을 거다.


무엇보다 내가 떠오르는 소비의 요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돈 쓰는 게 이렇게 짜릿할 줄이야! 아는 브랜드 샵이 보이면 그 브랜드명을 읽어내는 나를 보며 스스로 감탄했고 아내는 좌절했다. 오히려 아내가 결혼 후 소비 수준이 급격히 낮아졌다. 딸린 식구가 많아지니 생각도 많아진 모양이다. 홍콩조조님으로부터 구매하는 상품이 많아졌다. 간혹 대단한 걸 사오더라도, 숨겨오거나 장모님이 대신 선수를 치며 말씀하셨다.


“이서방, 내가 사자고 했다. 내가!!”


아 우리 장모님..




결국 나만 억울한 게 아니었다. 아내도 속이고 나도 속였다. 스스로를 단단히 오해를 하기도 했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 것처럼 사람이 어떻게 변하기도 했다. 마치 내가 소비요정으로 거듭난 것처럼.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냥 결혼이라는 게 뭘 알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그저 결혼 후에 닥치는 것들에 그때그때 대처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어서도 어찌 될지 모르고,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아이콘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긴장을 늦출 수 없겠다. 그래도 아는 것 없이 결혼했는데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더 이상 억울하진 않다. 다 알지 못했지만, 괜찮다.


청출어람 소비요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