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콘텐츠 쓰는 게 좋은 이유

쓸 때는 죽을 것 같아도 끝나면 짜릿하다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그 어디에도 자신 있게 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 난 기술 콘텐츠를 쓰는 게 제일 좋다는 말. 별거 아닌데 그 말을 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기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를 잘 아는 건 아니다. 난 전문가도 아니고, 문송한 정치외교학과 출신. 기술 콘텐츠는 트래픽이 잘 나오는 아이템은 아니라서 그걸 쓴들 회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기술 콘텐츠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같은 주제로 썼으면 더 재미있고 잘 썼을지도 모른다. SNS 인싸라면 콘텐츠의 구전효과도 크겠지. 한편으론 기술도 어느 회사 기술이냐가 중요할 수도 있겠다. 아마존의 특급 기술이면 관심이 많이 가겠지. 근데 무조건 아마존이 주제에 들어간다고 해서 트래픽이 견인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럼 그건 글쓴이 문제? 어렵다.

아무튼 난 기술 콘텐츠를 쓰는 게 좋다. 그건 내가 온라인 미디어에서 IT 기자로 일하기 전에도 그랬다. 신문기자 시절 내 출입처는 유통업계였지만 수습 시절을 IT 부서에서 보냈다. 회사는 내가 다닐 때 스스로 경제지라고 주장했지만 닷컴 버블이 불던 시절 IT매체로 시작했다. 제호에도 그 색이 강하게 남아있다. 난 우리 회사 제호가 참 좋았다. 회사에 원서도 내기 전에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여기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잘 모르고 그랬을 수도 있지만 힘들어도, 싫고 미워도 난 그 회사를 사랑했다. 그래도 우리 회사인데. 내가 거기서 보낸 시간, 거기서 만난 인연, 거기서 했던 내 역할, 책임이 그곳을 사랑하게 했다. 거기서 보낸 힘든 시간도. 이렇게 과거는 미화된다.

이야기 삼천포로 흐르는 건 아무튼 최고다. 과거 IT매체 시절을 생각하고 입사 지원한 건 내 조사가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회사에 다니는 동안 IT부서는 중요했다. 현재는 부서가 많이 바뀌었는데 IT, 과학 부서만도 여럿. 인공지능에 대해 기사를 쓴다면 4개 부서는 달려들어서 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선지 돌이켜보면 출입처가 겹치는 부서도 있었다. 업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합종연횡의 시대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계속 삼천포로 빠지는데 급변하는 IT업계에 대한 추상적 환상을 갖고 지원했으며, 탈수습했을 때는 완전히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했다. 그 회사에서 IT업계를 경험한 건 수습 때가 전부였다. 쉽지 않은 나날이었지만 그때 보고 들은 게 좋았다. 선배들도 일 잘하고 똑똑하고 멋있는 분들. 그때도 단말기에 관심 많을 때라 전자책 단말기와 태블릿 PC를 들고 다녔는데 한 선배가 나더러 여기에 맞는 사람으로 봐주셔서 괜히 인정받은 기분이 잠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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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시절 선배들이 테크노마트, 용산전자상가나 판교,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 통신사 대리점, 직영점, 기술 세미나, 콘퍼런스, 개발자 행사 등에 많이 보내셨다. 기술 세미나는 외계어 투성이었다. 도무지 내 일상과의 접점을 찾기 어려운 언어의 향연. 어쩌다 귀에 걸리는 쉬운 이야기라도 있으면 반가웠다. 한편으론 그 어려운 이야기가 싫지 않았다. 잘 못 알아듣는 내 무식을 탓할 뿐. 멜린다 게이츠가 한 말 중에 와 닿는 내용이 ‘기술이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데 기술에 관심이 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정치를 공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 기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모두의 영역이다 보니 문이과 상관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잘 알아야 하고. 스마트폰이 나오고 모두가 호주머니에 작은 컴퓨터를 넣어 다니는 시대인데. 이를 구성하는 기반 기술도, 그것이 바꿀 우리의 미래도 알아야 한다. 기술에 관심 갖는 건 당연하다는 이야기.

부서 배치 후에는 IT와 결이 다른 분야를 담당했지만 접점은 없지 않았다. 전자상거래 기업도 사실 IT기업이고, 아마존이 기술기업이자 콘텐츠 플랫폼이자 유통기업인 것처럼 유통과 기술이 따로 가는 건 아니었다. 이마트도 자율주행 로봇 카트를 개발하고, 로봇 활약이 돋보이는 최첨단 온라인 물류센터를 운영했다. 유통업 혁신도 AI가 주도한다는 전망도 나왔고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이런저런 배경을 핑계(?) 삼아 유통과 기술을 연결지은 기사로 내 사욕(?)을 충족시키려 한 적도 있었다. 어느 기업이 빅데이터 추천 알고리즘을 어떻게 바꿨다거나 앱이 무겁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미지 파일 용량이나 캐시를 어찌어찌한다는 둥.

운이 좋았던 건 그때 있던 부서가 과학도 다루고 있어서 어쩌다 과학 관련 기획을 하면 내게도 기술 관련 기사를 쓸 기회가 있었다. 코딩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도 있었고, 메이커 페스티벌의 르포를 쓰거나, IBM 왓슨 자연어 처리 연구자나 AI 금융 스타트업을 인터뷰 하는 등. 평소 하던 것과 다른 분야이고 어려웠지만 재밌었다. 메이커 페스티벌 르포 같은 건 복잡한 조립 현장을 그림 그리듯 묘사하는 게 은근 쾌감이 있었다. 금융 스타트업의 경우, 그 회사 기술의 특징을 공부하며 쓰는데 자신들을 잘 이해하고 쓴 것 같다고 말해줘서 뿌듯했다. 그때 부장께서는 과학 분야를 오래 담당하셨는데 내가 외도(?)한 결과물을 좋게 봐주셨다. 과학 쪽도 나랑 잘 맞을 것 같다고. 연차가 더 쌓이고 주말에 좀 더 시간이 생기면서 소프트 에듀 페스티벌 같은 IT 행사에 가서 강연을 듣곤 했는데 그분께서 내가 그 분야에 관심 있는 걸 알아주셨다. 햇수로 4년 차가 됐을 때는 평일 저녁에 판교가서 블록체인 밋업이나 모 통신사 AI 사업단장의 강연을 듣곤 했는데 그런 식으로 기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혹시 유통과도 관계된 내용을 접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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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온라인 미디어에 와서 본격적으로 IT 콘텐츠를 썼다. 초반에는 적응 겸 커머스 콘텐츠를 조금 썼는데 너무 그걸 쓴다고 뭐라 한 사람이 있어서 그 뒤로는 나도 곁눈질을 안 했다. 거기선 글로벌 IT기업과 글로벌 스타트업, 기술 콘텐츠를 주로 썼다. 비중을 따지면 기술 콘텐츠는 3분의 1쯤 된 것 같다. 그 외에는 글로벌 IT 이슈나 해당 기업 실적이나 큰 벤처캐피털의 투자 포트폴리오 분석, 스토리텔링을 약간 담은 해외 스타트업 사업 분석 콘텐츠를 주로 썼다. IT라고는 수습 때 몇 개월 접한 게 전부인데 갑자기 이런 걸 쓰는 건 쉽지 않았다. 나보다 앞서 그 회사에서 일했던, 그 분야를 다뤘던 사람들은 그 전 매체에서 그 분야를 담당했고. 난 정말 근본 없는 IT기자였다. 삽질도 많이 했고, 어쩌다 겨우 겨우 일했다.

자율주행, 딥페이크, 감정 인식, 양자컴퓨터, 제스처 컨트롤, 안면인식, AI 알고리즘 편향, 스마트 스피커, 아마존이 미는 기술, 앰비언트 컴퓨팅, 스마트 시티, RPA, 클라우드 게임, 플라잉 카, 음성합성 등이 거기 있는 동안 썼던 기술 콘텐츠였다. 온전히 기술 콘텐츠인 것만 있는 것도 있고, 다른 사업과 연결해서 쓴 것도 있었다. 초반에는 나도 제대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어설프게 앞사람들 흉내 내는 얄팍한 콘텐츠를 썼다. 그 당시 콘텐츠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파버리고 싶은 기억만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완벽하지는 않아도 자리를 잡아가긴 했다. 기술이지만 흥미 요소가 풍부하고 이해하기 쉬운 기술은 그나마 쓰기 낫다. 딥페이크나 플라잉 카, 감정인식 같은 게 그렇다. 물론 쓰면서 죽을 것 같이 힘든 기술도 있다. 양자컴퓨터, RPA가 그랬다. 양자컴퓨터 콘텐츠를 쓰고 난 뒤에는 숫자 0과 1이 빼곡히 적힌 공간에 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 거기서 11월에 쓴 것들이 대체로 그랬다.

어쩌다 외신을 맡다 보니 주로 영문 자료를 많이 봤다. 기술도 마찬가지. 잘 정리된 기술 관련 한글 논문이나 보고서도 있지만 기업 사례나 기술동향을 살펴보려면 기술도 영문 자료를 봐야 했다. 우리보다 앞서 나가는 기술의 경우는 해외 사례를 당연히 봐야 하니까. 어떤 자료는 한글보다 영어가 차라리 이해하기 더 수월하기도 하다. 양자컴퓨터가 그랬다. 어쩌면 한글 자료를 엄청 봤기 때문에 영문자료를 보면 그나마 조금 느낌이 온 것 같기도 하다. 머리가 쥐 나는 일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평균 수준의 독해력을 지녔을 뿐인데. 근데 한편으로는 기술 분야 영문자료가 사회과학보다 낫기도 했다. 여기는 추상적이지 않고 실체가 있다고 해야 하나. 구체적 상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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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그런 콘텐츠를 쓸 때는 잠든 시간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월등히 길었다. 잠을 못 자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상태로 늘 일했는데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내 전공도 아니고, 기초 지식이 탄탄한 것도 아니고. 근데 쉽게 써야 되고. 그러나 이미 나온 콘텐츠와 차별화돼야 하고. 넓고 깊게 봐야 하는데 한편으론 그 과정에서 내가 많이 공부할 수 있고 나도 배우는 게 많으니까. 특히 기술의 작동과정이나 어려운 내용을 딴에는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고 풀어서 쓰고, 좋은 비유를 찾고, 편집과 퇴고를 거치면 묘한 쾌감이 있다. 복잡한 블록 장난감 조립을 해낸 느낌이랄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푼 기분도 들고. 마지막 찰나의 그 느낌이 좋아서 잠을 못 자 눈밑이 떨려도 쓰고 나면 그래도 좋았다.

다시 이런 걸 쓰는 거. 무모할 수도 있지만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물이 무서워도 내가 깊은 물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들어가고 싶었다. 사실 그 어떤 콘텐츠를 쓸 때보다 가장 만족도가 높고 성취감이 컸던 게 이 콘텐츠였기 때문에 난 그걸 하고 싶었다. 처음엔 드러내기 어려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걸 원했다. 내게 일을 권한 사람들은 그 속내를 알고 그런 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그걸 권한 사람들이 고마웠다. 내가 나를 못 믿고 반신반의할 때 '자신의 경력을 믿고 해 달라'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고마웠다. 몇 개월 전과 비교하면 두려움은 많이 희석된 듯하다. 그렇다고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나도 너무 벅차고 어렵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지금도 있다. 근데 이렇게 해보고 나니 다시 뭔가를 도전하려면 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은 생긴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목요연하게 쓰고 싶은데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말았다. 일단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기반해 기술 콘텐츠를 쓰는 걸 좋아하는 이유를 썼다. 원래는 필요성도 같이 써볼 생각이었는데 그건 다음에 따로 써야 할 것 같다. 오늘 조금 논하긴 했지만. 참 무질서한 글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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