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테크니컬 라이터의 기술 접근방식 차이

대중적 관심사와 기술 효과의 가시성을 어디까지 고려해야 할까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지난번 이미지 인식 기술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 시의성을 반영하면서 읽고 싶은 느낌이 드는 도입부를 쓰는 법. 독자가 봤을 때 이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쓰는 법. 컴퓨터 비전과 이미지 인식의 관계를 해석하고 분류하는 법. 아직 POC 단계에 있는 그 회사 기술을 독자가 와 닿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명하게 그려내는 법. 기자가 아니라 테크니컬 라이터로 기술 콘텐츠를 쓰면서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 특정 기업의 기술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그 회사의 기술을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보이도록 쓰려고 많이 고심한다.

기자로서 기술 콘텐츠를 쓸 때는 그런 부분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는 기술 콘텐츠 아이템을 선정하는 기준이 이랬다. 일단 시의성이 있어야 한다. 요즘 뜨고 있거나 주목받는 기술. 양자컴퓨터나 RPA, 딥페이크, 감정 인식 등에 대한 글을 쓴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특히 양자컴퓨터의 경우, 구글의 양자 우위 달성 소식이 워낙 화제였기 때문에 당연히 써야 했다. 딥페이크는 포르노, 가짜 뉴스 등과 관련해서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선거 이슈와 맞물려서 사회 도처에서 문제의식도 크다.

그러나 화제가 된다고 해서 모든 기술을 다룰 수는 없다. 대중적 관심사, 조회수 유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뇌파로 컴퓨터를 작동하는 BCI 기술에 관심이 많고 수년 전부터 이를 연구해오고 있다. 지난해 관련 기업도 인수했다. 난 이게 대단한 기술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이 지난해 그 기업을 인수했을 때 외신에서도 많이 보도했다. 그러나 그 아이템을 발제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상대방은 다른 아이템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봤을 수도 있다.

나도 고집이 강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말로 에너지를 쓰면서까지 그걸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자라면 그런 고집도 있어야지. 다만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 알고, 파급력 있는 아이템에 대해 더 감각이 있으며, 배울 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우선 따르고자 했다. 누굴 탓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일단 기사를 많이 봐야 구독자도 생기는 거고. 특히 콘텐츠 회사는 독자가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조회수도, 구독도 견인할 수 있다. BCI는 대단하고 신기한 기술이지만 당시 그 회사 독자에게 필요한 콘텐츠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다뤄야 할 거다. 잠재된 이슈 기술이니까.

사진=픽사베이

아무튼 기자로서 기술 콘텐츠 아이템을 선정한 기준은 그랬다. 대중이 관심 있는 기술은 그들의 삶을 아이폰처럼 혁신적으로 바꾸는 기술일 수도 있다. 또는 플라잉 카나 딥페이크처럼 눈에 드러나는, 대단한 뭔가가 있는 기술일 수도 있다. 하늘에 차가 날아다니는 기술이 그렇다. 딥페이크도 신기하다. 내 얼굴과 목소리를 학습해서 내가 하지 않은 말을 한 영상도 만든다는 건 충격적이다. 기상천외하기도 하고. 그런 아이템을 제안하면 일단 신기하니까 통과율이 높다. 그냥 말하면 바로 패스다.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선 그게 아쉬울 수도 있다. 어쩌면 BCI도 가시적 효과가 부족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당장 대중의 관심이 뜨겁지 않아도 잠재적 가치가 큰 기술이다. 근데 당장 조명하기 어려워 야속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대중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만들든, 기술을 개발하든 그 기준을 사소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개발하는 이 입장에서는, 기술 덕후에게는 남다른 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은 상용화돼야 하니까 대중에게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예술하는 건 아니니까 작가주의에 빠져서도 안되고.

앞에서 언급한 이런 특징이 단점은 아니다. 아쉬운 점은 있을 수 있지만. 다만 기자로서 기술 콘텐츠를 쓸 때 좀 더 장점이 있다면 다양한 기업 사례를 다룰 수 있다. 테크니컬 라이터로 글을 쓸 때는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물론 나도 주제와 관련해서 다른 기업 사례를 언급한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언급' 수준이다. 누가 내게 지시한 건 아니지만 그 콘텐츠의 주인공은 글을 의뢰한 기업이다. 그래서 그 기업이 좀 더 부각되게 쓰려고 한다. 배경과 트렌드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기업 기술도 언급하지만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기자로서 기술 콘텐츠를 쓸 때 한걸음 더 들어갔다. 그 기업에 대한 자료를 더 다양하게 찾아봤다. 흥미롭거나 신기한 사례면 좀 더 길게 쓸 수도 있다. 영상도 첨부하고 쓰는 과정이 재미있다. 공부도 더 된다.

또 기자로서 쓰는 기술 콘텐츠는 기사이기 때문에 딴에는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려고 했다. 기술의 한계를 항상 짚고 넘어갔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기술은 이렇게, 저렇게 유용하고 편리하지만 아직 이런 한계가 있다. 저널리즘 글이기 때문에 기술 결정론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현재는 그 부분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쓰려면 쓸 수 있겠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걸 안 써도 분량이 너무 길기도 하고. 이 부분을 어떻게 소화할지 아직 고민 중이다.

사진=픽사베이

테크니컬 라이터로 기술 콘텐츠를 쓸 때 장점은 대중적 관심사에 대한 부담이 기자일 때보다 덜하다는 것. 모든 테크니컬 라이팅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특정 기업의 기술에 대한 글을 쓰기 때문에 당장 트래픽이나 구독 유도 등 지표를 기자일 때만큼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대중적 관심도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괜찮다. 차가 하늘에 막 날아다니는 그런 기술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 기업의 기술에 대해 공부하고, 이를 쉽게 풀어쓰면 된다. 물론 그 과정은 되게 어렵다. 그래도 그 기술의 현재 의의와 필요성은 설득력 있게 써야 한다. 저번에도 그에 대해 글을 썼지만 이게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이게 세상을 어떻게 더 이롭게 하고, 우리 삶에 도움이 되며, 우리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게 해 줄지 그런 걸 논증해야 한다. 그게 선명하지 않으면 글 쓸 때 굉장히 어렵다. 난 그랬다.

아무튼 도입부와 필요성을 쓰다 보면 결국 대중적 관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19 때문에 이런 트렌드가 뜨고 이 기술이 거기에 부응할 수 있다든지, 기업에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 기술이 그걸 해결해줄 수 있다든지,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가 심각한데 이게 도움을 줄 수 있다든지 그런 식으로 도입부와 필요성을 풀어가야 한다. 그동안 쓴 기술은 그걸 풀어낼 수 있었다. 역시 과정은 어렵다. 글에 적용할 수 있는 사실의 조각은 많다. 다만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논리적으로 글을 써야 하니까. 그게 어렵고 많이 고민한다.

근데 이미지 인식 기술은 사실 그걸 풀어내는 과정이 가장 고민스러웠다. 솔직히 '이걸 왜 써야 되지?', '이게 왜 필요하지?' 이걸 자문했을 때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의성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컴퓨터 비전 전반에 대한 어느 기술 기업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길을 찾긴 했다. 다만 그건 도입부에 녹일 수 없었고 본론 어느 파트에 넣었다. 그걸 발견해서 안도하긴 했지만. 도입부는 정말 어려웠다. 사실 도입부에까지 활용할 정도로 내용이 풍부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최근 이슈와 연결 짓기에도 애매했다. 물론 그 기술의 활용가치와 효용성은 높다. 자율주행, 쇼핑몰 이미지 검색, 범죄자 신원 확인 등 다양하다. 근데 이미 많이 이야기된 거라 그걸로 서두를 열기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찾기는 했다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사실 아쉬움은 있다.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하면서도 내가 아이템에 대한 의견을 제안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자일 때처럼 내게 주도권이 있지는 않다. 일단 그 콘텐츠에서는 해당 기업에서 요즘 부각하거나 드러내고 싶은 기술이 그 주인공이 된다. 코로나 19로 비대면 트렌드가 떠오를 때는 챗봇을 최대한 미는 식으로. 사실 챗봇만 해도 쓸모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에서 콘텐츠를 쓸 수 있다. 챗봇을 만드는 방법, HR봇처럼 특정 분야에 활용하는 챗봇 등. 챗봇 기술 전반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가능하고.

사진=픽사베이

그러나 테크니컬 라이터가 쓰는 기술 콘텐츠도 결국 독자와 잠재적 고객에게 의미 있는 기술 콘텐츠여야 한다. 글의 종류마다 다르기는 한데 요즘 쓰는 글은 그렇다. 글을 요청하는 곳에서 자신들의 기술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길 바라고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대중적 관심사는 늘 고민해야 한다. 그것만을 기준으로 아이템을 선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잘 풀리면 글의 맥이 뚫리는 느낌이 들고, 잘 안 풀리면 변비에 걸린 느낌이 든다. 이미지 인식 기술에 대해 글을 쓸 때는 그걸 많이 고민했고, 길은 찾았지만 속이 시원할 정도는 아닌데 한편으로는 내게 과제를 많이 남기고 내 생각을 풍부하게 정리할 수 있게 해 줘서 과정은 나쁘지 않았다.

질의응답을 받는 과정도 괜찮았다. 공부가 많이 됐다. 연구위원님이 답변해주셨는데 나중에 글 쓰고 나서 검토를 받을 때도 많이 도와주셨다. 사실 어떤 문단의 내용을 새로 써서 주시긴 했는데 그게 더 나았다. 그 문단 내용을 읽으니 '아, 이걸 내가 좀 더 일찍 알아서 내용에 반영했으면 좋았을 텐데, 공부도 더 됐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스스로 들기도 했다. 어쨌든 질의응답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와 닿았다. 전후 맥락을 다 밝힐 수 없다. 문장만 따오면 이렇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아직 저희에게는 꿈입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는 현실이 될 겁니다."

그 회사의 기술 콘텐츠를 쓰며 드는 사명감이 내게도 있다. 일단 스스로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콘텐츠를 써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근데 그곳 구성원들, 특히 개발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좀 더 많이 한다. 난 프리랜서이고 거기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 애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정도 거리감과 긴장감이 내가 써야 할 콘텐츠를 잘 쓰는 데 도움될 수 있다고 보고. 어쨌든 그들의 기술이 더 관심받고, 그들의 차별점을 드러내는 데 콘텐츠의 방점이 있다.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갔기 때문에 그게 아깝지 않았으면 좋겠다. 콘텐츠로 그걸 잘 살리고 싶다.

회사 대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회사의 개미 구성원들에게 보람되고, 도움될 수 있으며, 그들의 성과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길. 저런 멘트를 보면 그런 생각이 특히 더 든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고 연구단계에 있지만 그들은 비전이 있다. 자신들의 차별점에 대한 신념도 분명하다. 그게 잘 구현되면 좋겠다. 새로워서 신기하기도 하고. 성심성의껏 설명해주고 글을 살뜰히 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커서 그렇다. 100%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쓰지 못했지만 내 생각과 고민을 풍요롭게 해주는 경험은 늘 좋다.

keyword
이전 01화기술 콘텐츠 쓰는 게 좋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