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번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앞, 2번 DFDS 하차 전, 3번 DFDS, 4번 배에서 내린 사람들. 사진=딱정벌레
노르웨이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북유럽 여행 5일차 되는 날이었다. 오슬로 가르데모엔 공항으로 입국했지만 바로 스웨덴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스웨덴 스톡홀름-핀란드 헬싱키-덴마크 코펜하겐을 찍은 다음, 코펜하겐에서 DFDS 배를 타고 오슬로에 돌아왔다. 배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DFDS 기대를 자아내는 이야기는 엄청 들었지만 특별히 많이 누리지는 않았다. 이층에서 잤는데 잠자리는 불편했고 잠을 거의 설쳤다. 시차도 아직 적응 중이니. 또 휴가 중인데 회사 사람이 기자실 위치 묻는다고 카톡이 와서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이날은 이동하는 것외에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베르겐에 가야 하는데 오슬로에서 차 타고 가는 데만 7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대신 이동하는 중간에 유명한 곳에 들를 예정이었다. 노르웨이에 툰드라 지대가 있어서 그걸 볼 계획. 그리그가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가서 묵었다는 호텔과 근처 뵈링폭포에 들르기로 했다. 또 하당에르 피오르드를 관통하는 최장 현수교도 보고. 중간에 점심을 먹고. 이동하는 게 일정 전부라지만 난 이날 일정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다. 뵈링폭포를 보고 느낀 감흥이 커서 그랬던 듯.
베르겐을 향해 떠나기 전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에 잠시 들렀다. 관광하려기보다 출발하기 전 시간 있는 김에 잠깐 구경하는 정도 일정이었다. 오전 시간이라서 그런지 오페라 하우스는 한적했다. 내부는 크고 넓었다. 공연 있을 때 오면 다른 멋이 있을 듯. 기념으로 뭔가를 사고 싶어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고심 끝에 내가 고른 건 오르골. 근데 노르웨이 작곡가 쓴 곡이 흘러나오는 오르골이 아니었다.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나부코'가 있는데 거기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곡이 있다. 그게 더 마음에 들어서 그 버전으로 샀다.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내부. 사진 10번은 기념품 가게에서 산 오르골. 사진=딱정벌레
난 오페라 하우스라서 특별히 오르골을 파는 줄 알고 그걸 샀다. 그러나 현지 여행을 하다 보니 오르골을 파는 다른 관광지 기념품 가게도 많았다. 거기도 베르디 곡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그리그 곡이 나오는 오르골이 많았던 것 같긴 하다. 기념으로 하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지만 노르웨이 물가는 비쌌다. 오르골도. 굳이 오르골을 하나 더 살 이유는 없었다. 물가를 많이 의식해서 가족에게 줄 선물이 아니면 쇼핑을 잘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방금 코펜하겐 자석이 네 개나 있는 걸 발견해서 뭘 많이 산 것 같기도 하다.
3박 4일은 산속에 갇혀 피오르드나 실컷 볼 예정이었다. 너무 기대됐다. 그것 때문에 노르웨이에 온 거니까. 지리 수업시간에나 듣던 피오르드를 직접 보고 싶어서. 처음에는 멀리 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에 북유럽 여행을 결정했다. 그러나 북유럽은 유럽 중에서도 비행기 타고 가는 데 시간이 비교적 덜 걸리는 곳이었다. 정말 멀리 가고 싶으면 미국이나 영국을 가는 게 낫겠지. 여름에 시원한 지역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노르웨이에 피오르드가 유명하다는 점도. 조직개편 이후, 마음이 힘들던 차에 자연 속에 짱 박혀 있고 싶었다.
오슬로를 떠나니 곳곳에 산, 나무, 계곡, 호수, 피오르드 등 자연 풍경뿐이었다. 산과 물은 실컷 구경했다. 근데 그게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평소에 많이 못 보던 거라서 그럴 수도. 북유럽에 온 진정한 목적을 비로소 달성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중간에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는 미트볼에 감자를 주로 먹는다고 해서 여행할 때는 그 메뉴를 많이 먹었다. 자유여행이면 그래도 다른 걸 찾아먹었겠지만 북유럽 여행은 패키지로 갔기 때문에.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 고급스럽고 맛있었다. 휴게소에서 사과를 사서 차에 탔다.
사진 1~2번 점심 먹으러 들른 식당 근처 매장, 3번 점심으로 먹은 미트볼, 4번 점심 후식 아이스크림, 6~8번 툰드라 지대. 사진=딱정벌레
몇 시간 달려 툰드라 지대에 도착했다. 산 위에 있었는데 귀가 먹먹한 느낌도 들었다. 마침 여름이라서 그런지 툰드라를 상징하는 이끼가 엄청 많았다. 우리가 차에서 내린 곳에는 사슴 가죽을 벗겨서 뭘 파는 곳이 있었다.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그저 살벌하고 무섭다는 생각만 들었다. 툰드라 지대도 지리 수업시간에 주로 듣던 내용인데 실제로 확인하니 생태교육현장에 온 느낌도 들어 괜찮았다. 오랫동안 구경할 건 없기에 다시 차를 타고 포슬리 호텔이 있는 뵈링폭포로 갔다.
앞서 언급했지만 포슬리 호텔은 그리그가 영감을 얻으러 와서 묵고 간 호텔이다. 난 처음에 살던 곳인가 했는데 예전에 호텔이었던 듯. 그리그는 노르웨이 대표 음악가이고 '솔베이지의 노래'로 유명하다. 난 솔베이지 노래를 이미라 작가님의 만화 '인어공주를 위하여'에서 처음 접했다. 사연이 비극적(?)인 노래라서 등장인물과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곡이 특별히 좋지는 않았는데. 포슬리 호텔에는 그리그가 쳤던 피아노도 남아 있다. 피아노 쳐도 된다고 했던 듯. 여기서 초코칩 쿠키를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역사가 있는 호텔이라서 그런지 고풍스러운 느낌도 들고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곳곳에 비치된 소품(?)도. 피아노 외에도 옛날에 쓰던 물건이 기념으로 전시돼 있었다. 여력이 되면 한번 묵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뵈링폭포가 바로 옆에 있으니. 뵈링폭포는 높이가 182m에 달한다. 폭포수가 천둥처럼 쏟아져 내려가기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폭포 아래에는 모뵈달렌협곡이 있고. 폭포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말 아찔하다.
포슬리 호텔 외관과 내부, 사진 7번 그리그가 쳤다는 피아노, 13번 가이드님이 사주신 쿠키와 커피. 사진=딱정벌레
뵈링폭포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높이도, 규모도 엄청난 폭포라서 외관에 압도됐다. 눈이 크게 떠지고 입도 떡 벌어졌다. 세상에 이런 폭포가 있구나. 내가 살면서 본 폭포 중에 가장 거대했다. 폭포수가 시원하게 아래로 부서지는 모습은 위압감마저 줬다. 자연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없는데 뵈링폭포는 계속 지켜보는 동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때 마음이 힘들던 차에 휴가를 와서 그런 까닭도 있겠고. 돌아보면 세븐 시스터즈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인 듯도 하다. 살아서 이걸 또 볼 수 있을까.
높고 화려한 고층 건물에서 느끼는 감흥도 있지만. 역시 자연을 따라갈 수 없다.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 아름다움. 오랜 세월 동안 바람에 꺾이고 파도에 깎이는 고통을 이겨내고 지금껏 살아남은 자연물에 경외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문득 생각해보면 롯데월드타워 같은 고층 건물도 창업주 숙원을 이루기 위해 많은 이들이 건설과정에서 희생됐다. 그 아까운 목숨을 생각해보면 그 건물도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그 건물을 완성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수고한 노동자들. 신 씨뿐만 아니라 그런 분들에게도 그 건물이 소중했을 터.
뵈링폭포를 보면서 '아, 내가 이거 보려고 노르웨이에 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뵈링폭포까지 생각지 않았다. '자연을 보고 싶어. 근데 멀리 가고 싶어. 노르웨이가 좋겠네. 피오르드도 있고.' 피오르드만 실컷 봐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고 싶던 자연물, 자연물이 주는 감흥 그걸 뵈링폭포에서 가장 크게 느꼈다.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라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도 들었지만. 노르웨이에 여행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물 위용과 아름다움 때문에 내 밑에서 어떤 감정이 끓어오르고. 그게 오염되고 왜곡된 감정이 아니라 정말 위대한 걸 봤을 때 느끼는 순수한 감흥이라는 게 뵈링폭포를 보면서 실감 났다.
사진 1~3번 뵈링폭포, 4번 하당에르 다리 안내, 6번 하당에르 다리. 사진=딱정벌레
오랫동안 이 풍경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갈길이 머니 산에서 내려와서는 하당에르 다리를 보러 갔다. 근처에는 국립공원이 있고. 이 다리가 하당에르 피오르드를 관통한다는데 길이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당에르 피오르드가 200km라던데 다리도 그쯤 되려나. 먼발치서 다리를 바라보고 사진에 담았다. 다리 전체가 골고루 찍히지는 않아서 아쉽다. 영화 '겨울왕국'에서 배경으로 참고한 나라가 여러 곳인데 노르웨이도 그중 하나다. 노르웨이 특정 지역 한 곳만 아니라 여러 곳이 배경으로 활용했다고.
하당에르 다리를 뒤로 하고 베르겐 인근에 도착했다. 북유럽에서 묵은 숙소는 대체로 좋았다. 노르웨이에서 묵은 첫 숙소도 그랬다. 물가가 비싸서 그런가. 퀄리티 호텔이란 곳인데 로비는 도회적이고 세련되면서 젊은(?) 감각도 느껴졌다. '힙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한데 난 그 표현을 싫어한다. 대체할 표현을 찾는데 마땅한 게 없네. 호텔에는 '현금 없는 호텔'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셀프 체크인, 체크아웃할 수 있게 돼있고 주전부리를 파는 자판기가 눈에 띄었다.
늦은 저녁을 먹었다. 늦은 저녁이라고 해도 백야 때문에 밖은 대낮 같았다. 시간이 저녁 7시는 넘었던 것 같은데. 생선가스가 나왔는데 내가 먹어본 생선가스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난 생선가스 별로 안 좋아했는데 영국에서 먹은 피시 앤 칩스나 이런 여행에서 맛있게 먹은 생선가스 덕분에 인식이 좋아졌다. 디저트는 초콜릿 푸딩 같은 건데 달달하고 살찌기 좋았다. 로비에서 느지막이 있다가 밤 11시 넘어서 자러 들어갔다. 스웨덴-핀란드, 덴마크-노르웨이 오가면서 잠자리가 불편했는데 여기서는 마음 놓고 편하게 쉬었다.
사진 1~2번 호텔 내부. 3번 셀프 체크인 기계, 4~5번 객실 내부, 6~8번 저녁 식사와 후식. 사진=딱정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