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풍광과 유적지로 호사 누린 노르웨이 여행 3일 차

피오르드와 1000년 넘은 목조 교회 지나 스키 점프대서 마무리

by 딱정벌레
사진 1번 게이앙에르 피오르드, 2과 4번 말로이 Thon 호텔 주변, 3번 나, 5번 조식, 6번 숙소 식당 풍경. 사진=딱정벌레

말로이에서 아침이 밝았다. 여행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다음 날 출국한다. 오슬로가 있는 남쪽으로 다시 가야 했다. 출국일에도 오전에 오슬로를 짧게 둘러볼 예정이지만. 오슬로 가까이 이동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했다. 노르웨이 여행 3일 차에는 게이앙에르 피오르드와 롬 교회, 릴레함메르에 들리는 게 일정이었다. 게이앙에르 피오르드는 얼마 걸리지 않고 다른 곳도 모두 돌아가는 길에 각각 위치해 있었다. 릴레함메르는 우리가 있던 곳에서 비교적 남쪽에 있는 편. 거기서 오슬로까지 거리는 2시간이 좀 넘지만 말이다.

Thon 호텔 조식은 괜찮았다. 먹을 게 많았는데 다른 곳보다 아침을 길게, 다양하게 먹었다. 와플도 만들어 먹고. 점심, 저녁이 미트볼에 감자를 먹거나 단출했기(?) 때문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으려 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피오르드가 있어서 풍경이 아름다웠다. 역시나 아침에도 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주변을 적당히 둘러보고 빨간 우체통 앞에서 그림자 사진도 찍었다. 한때 프로필 사진으로도 썼던. 난 그림자 사진 찍는 게 좋다. 다양한 풍경을 배경 삼아 여러 버전으로.

숙소에서 게이앙에르 피오르드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년 반이 넘어서 이제 기억이 잊혀 가지만 금방 도착한 것 같다. 다만 날씨는 흐렸다. 말로이는 맑고 햇빛도 쨍쨍했는데 게이앙에르 쪽은 산골마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흐렸다. 날이 서늘하고 이쪽은 더 춥다고 해서 파카 입으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북유럽은 사계절이 있는 곳이라 옷을 다양하게 챙겨야 했다. 난 파카를 가져가지 않고 그냥 재킷만 가져갔다. 그것만 입어도 나쁘지 않았다. 게이앙에르 피오르드에서도 원피스에 봄가을 재킷만 입었다. 적당히 서늘했다.

게이앙에르 피오르드 주변 마을과 배타고 감상한 피오르드. 사진=딱정벌레

게이앙에르 피오르드는 배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구경했다. 다른 피오르드는 지나가는 길에 보거나 아주 잠깐 배를 타고 내렸는데 여기는 더 오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이 기대한 일정이었다. 배를 타고 7자매 폭포나 산을 구경하고 갈매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름 모를 새 무리를 구경했다. 배에서는 한국어로도 안내방송을 해줬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디 앉아서 구경하기는 어려웠다. 사진 찍을 때도 다른 사람이 같이 찍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어디 잠깐 앉아 있었는데 다른 무리가 와서 혼자 앉기는 어려웠다.

조용히 고요하게 자연 풍광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노르웨이 여행은 다 그런 일정이었지만 게이앙에르 피오르드를 배 타고 구경할 때 이런 여유가 가장 크게 확보된 것 같다. 그리그가 묵었던 호텔 근처에서 폭포를 봤을 때 느낀 감흥처럼 여행 목적을 실감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정. 신기했던 게 구름이 낮았다. 산이 높은 건지 구름이 낮은 건지 모르겠지만. 구름이 산 봉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도 독특한 구경거리. 사방을 둘러보며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겼다. 배 안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콘을 사 먹었다.

약 1시간 지나서 선착장에 내렸다. 게이앙에르 피오르드를 구경하고 나니 큰 구경을 다 해치운 느낌. 차 타고 이동하면서 계속 피오르드와 자연 풍광을 보겠지만 공식적인 자연 관람(?)은 이게 마지막이다. 여행이 끝나가는 게 여기서 실감 났다. 아쉬워하며 배에서 내렸다. 이날 점심은 미트볼과 삶은 감자. 신기한 게 사진으로 보면 양이 되게 부족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고깃 덩어리가 내실 있다고 해야 하나. 요기가 됐다. 돌아보면 따로 군것질도 많이 하지 않았다. 물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진 1번 전기차, 2~4번 선착장 주변 마을, 5번 점심, 6번 점심 먹은 식당, 7번 길가다 우연히 발견한 피오르드. 사진=딱정벌레

게이앙에르 마을에서 눈에 띈 건 바로 전기차였다. 노르웨이가 유럽 최대 전기차 판매국이고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다고 들었다. 여행 다녀왔을 때도 자동차 업계 출입하는 동기가 그것부터 물었다. 마을에 전기차 여러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대여용인지 모르겠다. 신기한 게 노르웨이는 전기 대부분을 수력으로 생산한다고. 또 1990년대부터 전기차 보급 정책을 실시했다고 한다. 전기차를 많이 보급하기는 하지만 테슬라 차를 많이 타는 건 아니라고도 한다. 하긴 1990년대면. 갑자기 궁금해서 테슬라 설립연도를 보니 2003년이구나.

가는 길에 화장실에 가려고 어떤 높은 지대에 올랐다. 거기서 피오르드를 내려보는 데 장관이었다. 내가 배 타고 지나온 길이 이렇게 생겼구나. 게이앙에르 피오르드에 간 건 참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노르웨이 3대 피오르드이기도 하지만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그런 곳을 직접 와보다니. 노르웨이 여행을 돌아봤을 때 아쉬운 게 있다면 트래킹, 낚시, 자전거 타기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 게이앙에르 피오르드에도 그런 게 있다던데 나중에 트래킹만 따로 해보고 싶다.

롬에 가는 길에 피오르드 근처에서 잠깐 하차했다. 이곳 풍광이 장관이었는데 드라이아이스에 물 부은 것처럼 하얀 뭔가가 짙게 깔렸다. 그게 산을 감싸고. 사우나에 김이 잔뜩 서린 느낌도. 피오르드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이런 자연 풍광을 감상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지금 그때보다 체중이 20kg 빠졌는데 사진 보니 되게 복스럽게 나왔다. 그때 입은 재킷 지금 입으면 아빠 옷 같다. 살이 너무 쪘던 시절인데 그때 나를 싫어하고 싶지 않다. 살이 찌면서 있었던 일 생각하면 서글퍼서. 고생했다고 내게 말하고 싶다.

롬 스타브 교회. 사진=딱정벌레

이어서 롬에 도착했다. 12세기 바이킹 시대에 지은 목조 교회를 보러 왔다. 롬 스타브 교회라는 곳인데 나폴레옹도 이 건물을 탐냈다고 한다. 가져가고 싶어 했다나. 이 교회도 세계문화유산이다. 못 하나 안 쓰고 나무로만 지었다고. 건물이 예뻤다. 목조 건물이라서 그런지 고풍스럽고 동화에 나올 법한 건물 같기도. 교회 밖에는 묘지가 있었다. 비석 앞에 저마다 꽃을 놓아뒀다. 교회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다. 돈 내고 들어가 봤다. 영어로 된 안내 자료를 코팅해서 줬다. 의자나 그림에서 역사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겐 낯선 화풍.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서울신문 기사를 보니 이 교회는 1150년경에 지었다고 한다. 노르웨이산 소나무로 지었고. 교회 지붕에 세운 건 용머리 조각이라고 한다. 예전 바이킹이 용을 액막이로 삼았다고 했다. 이 건물은 기독교와 바이킹 문화를 융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바이킹 시대 기독교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의의도 있고. 노르웨이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로 꼽히는 듯. 롬이라는 지역은 작은 도시다. 노르웨이에 3박 4일 있으면서 작은 마을에 많이 갔다. 롬도 그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적한 농촌마을 이미지.

이어서 차를 달리고 달려 릴레함메르로 갔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때 썼던 스키 점프대를 보기 위해서. 노르웨이에서는 올림픽이 끝나고 부대시설은 철거했다고 한다. 스키 점프대를 기념으로 남겼다고. 릴레함메르에 동계 올림픽 스키 점프대를 보러 간 이유도 그때 올림픽을 기억하고 추억(?) 하기 위해서. 릴레함메르는 작고 낡은 도시라고 한다. 올림픽을 개최할 때도 주변 여러 도시와 함께 경기를 치렀다고. 평창 올림픽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창도 굉장히 작은 지역인데 강릉에도 경기를 나눠서 치렀더랬다.

릴레함메르 스키 점프대와 주 경기장 주변. 사진=딱정벌레

릴레함메르 올림픽 경기장이 있던 곳에는 정말 스키 점프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성화가 놓였던 자리도 아직 있긴 했다. 다 없애고 그런 것만 남은 걸 보니 난 사실 릴레함메르 올림픽이 기억나지 않지만 짠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는 마을이 있고 스키 점프대가 있는 곳은 고지대에 있다. 그냥 둘러보면 여기에서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국제 대회가 치러졌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썰렁하고 허전하지만 20여 년 전 여기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고. 전 세계인 희로애락이 진하고 격하게 머물다 갔다고.

스키 점프대 근처에는 리프트가 있었다. 물론 돈 내고 타는 건데 이걸 타고 스키 점프대 위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었다. 스키 점프대 맨 위에는 공원이 있었다. 난 더 높은 곳에 편하게 올라가고 싶기도 하고, 릴레함메르를 멀리서 조망하고 싶어서 리프트를 탔다. 걸어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릴레함메르는 그동안 있었던 지역과 달리 기온이 높고 더웠는데. 걸어 올라온 분들이 많이 고생하셨다. 스키 점프대가 보니 높이가 엄청났고 올라가는 동안 뒷모습이 궁금해서 힐끔힐끔 뒤를 돌아봤는데 약간 무서웠다.

리프트를 탈 때 장관은 내려올 때 풍경인 듯하다. 날이 화창했고 눈이 부셨다. 높은 곳에서 릴레함메르 풍경과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 풍경이 너무 좋아서 영상도 찍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정말 좋다. 요즘 주말마다 산에 가는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더 멀리 볼 수 있고. 현실을 줌인하는 것보다 광각렌즈로 보듯 넓고 멀리 조망할 때, 즉 나무가 아닌 숲을 볼 때 평소 놓쳤던 걸 발견한다. 그런 맥락에서 산에 가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길 좋아한다. 마음도, 시야도 넓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리프트에서 내려다본 풍경도 그랬다.

조빅 숙소와 주변. 사진=딱정벌레

이때는 비로소 여행이 정말로 끝나간다는 게 실감 났다. 내가 발 딛고 사는 현실 무게도 느껴졌다. 돌아가면 어떻게 일해야 할지. 자괴감과 자격지심을 어떻게 잘 다룰지. 마음이 힘들어서 예년보다 일찍 휴가를 떠났는데 머리는 식혔지만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답도 찾지 못했고. 그냥 현실을 잊을 뿐이었다. 여행하면서 폭포를 봤을 때는 자연 풍광이 너무 거대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워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면. 리프트를 타고 풍경을 내려다볼 때는 현실은 거대하고 나는 너무 작아서 초라함도 느꼈다. 용기를 더 내고 싶었다.

아직 여행 일정이 조금 더 남긴 했지만. 정말 끝이라고 느낀 건 릴레함메르 스키 점프대였다. 올림픽 의미와 과거 추억,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내 마음가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두려움이 얽혀서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기억에 남았다. 긴 시간 있었던 건 아니지만. 차를 타고 조빅이라는 지역으로 향했다. 릴레함메르에서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숙소는 여기에 있었고 분위기는 베르겐 가는 길에 머물렀던 숙소와 비슷했다. 저녁을 먹은 뒤, 주변 호숫가를 산책했다. 세븐일레븐에서 물을 샀는데 이 나라는 물값이 참 비쌌다.

조빅은 조용하고 깔끔하며 다른 지역보다 도회적 느낌이 더 강했다. 역시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고. 백야라서 그런지 저녁 시간에도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카페나 바에도 사람들이 있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바깥 노천카페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길고 긴 백야를 보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짐도 미리 다 싸야 하고, 비행기 시간도 고려해야 하는 데다 오슬로까지 두 시간 넘게 가야 해서 다음 날은 무척 바쁠 예정이었다. 아침에 서둘러야 해서 겨우 겨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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