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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이야기

루브르 박물관-개선문-샹젤리제 거리-에펠탑-세느강

by 딱정벌레
에펠탑. 사진=딱정벌레

여행 이야기는 확실히 정리하는 데 힘이 부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언제부턴가 에너지가 많이 쓰인다. 사진도 정리해야 하고, 선별해야 하고. 미친듯이 셔터를 눌러대다보니 클라우드에 사진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다. 거기서 2~3년 전 사진을 찾는 데 시간이 또 걸리고.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사진을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찍는다 싶기도 하다. 그래도 돌아보면 추억이고 다시 기억을 떠올리는 게 나쁘지 않긴 하다. 힘에 부쳐서 저번에 융프라우도 사진만 올리고 여태 글을 안 썼다. 급할 건 없으니 천천히 써야지.

파리에 간 건 서유럽 여행 2일째 되는 날이었다. 런던 세인트판크라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좀 넘어서 파리북역에 도착했던 것 같다. 런던에서 파리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간과 비슷한 듯했다. '파리에서 3일, 런던에서 4일'인가 하는 책이 있었다. 어떤 코미디언이 일주일에 3일은 파리에서 지내고, 4일은 런던에서 지내는 이야기였는데- 그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시도를 해봄직할 정도로 두 나라를 종종 오가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싶은데- 갑자기 세인트판크라스역에서 짐 검사하고, 여권 보여주고 탑승 수속 받던 절차와 긴 줄이 떠올라서- 역시 간단한 일은 아닌 듯하다.

파리북역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8~9시 사이였던가. 이것도 헷갈린다. 벌써 햇수가 3번 바뀌었으니. 아무튼 초저녁보다 좀 더 늦은 시간이었는데 하차하는 승객들 때문에 역이 붐비긴 했으나- 주변 동네는 무서웠다. 기차역도 마찬가지. 이런 대도시는 테러 위험도 있다보니 기차역 관계자도 일행에게 너무 많이 모여있지 말라고 그러고. 역을 떠나면서 둘러본 주변 모습도- 뒷골목이 연상됐다. 저녁이라 어두워서 그랬나. 몸도 많이 피곤하고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늦은 시간에도 차가 좀 밀렸던 것 같기도 하다.

파리북역. 사진=딱정벌레

파리에는 3일에 걸쳐 머물렀지만 여행한 시간은 달랑 하루였다. 전날 저녁에 와서 자고 다음 날 관광한 다음,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스위스 로잔으로 떠났다. 온전히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딱 하루였다. 돌아다니기는 알차게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가본 곳도 꽤 있지만- 주요 관광지 외에도 막간을 이용해서 애플스토어나 유니클로, 이브로쉐, 세포라, 라파예트 백화점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는 속도로 다 다녔다. 거기서 쇼핑한 건 없지만 매장 구성을 둘러보기만 해도 관광 효과는 컸다.

파리 여행 첫 코스는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건물 외관부터 화려하고 안구 정화되는 느낌. 많은 유물과 미술 작품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모나리자. 모나리자 사진을 첨부하고 싶었는데 클라우드에서 사진 내려받기가 잘 되지 않아 내 마음 속에 저장하기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도 모나리자 앞이었다. 한때 도난당한 적도 있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철저히 봉인했다. 그 주변에 몰려든 관광객은 모나리자를 알현하러 온 사람 같은 느낌. 난 구글 AI 카메라 클립으로 모나리자를 촬영했다. AI가 알아서 찍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그런지, 나머지 작품은 큰 감흥이 없었는지 다른 건 기억도 잘 안 난다. 보통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뭔가 사는 걸 좋아하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아무 것도 사지 않았다. 언뜻 둘러봤을 때 예쁜 게 많았는데. 아무것도 사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갈 길이 바빴다. 개선문도 봐야 하고, 샹젤리제 거리도 걸어야 하고, 백화점도 가야 하고, 에펠탑도 올라가야 하고, 세느 강에 가서 유람선도 타야 하니까.

루브르 박물관. 사진=딱정벌레

점심을 먹고 개선문에 갔다. 샹젤리제 거리와 연결돼 있어서 같이 구경하기에 좋았다. 개선문에 갈 때는 지하도를 걸어서 갔는데- 개선문도 위에 올라갈 수 있어서 전망대에 올라가려는 사람은 지하도로 가다 중간에 빠지는 길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올라가지는 않고 근처에서 건물을 구경하기만 했다. 파리에 있는, 유명한 개선문은 에투알 개선문이라고 하는데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전사자를 기리려고 세웠다고 한다. 개선문에는 전쟁에서 프랑스가 거둔 승전보와 지휘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개선문을 꼼꼼히 둘러보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려서 샹젤리제 거리는 걸으면서 눈으로 스캔하듯 구경했다. 다행히 이날 날씨가 좋아서 햇볕 받은 샹젤리제 거리도 운치있고 멋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관광객도 있고 현지인도 있을텐데 옷차림도 개성있고 세련돼 보였다. 혹시 파리 빨인가 싶기도 하고. 파리는 오래된 지역이고 재개발도 하고 있어서 난 깔끔하기보다 어지러운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전세계 젊은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멋진 도시이고. 곳곳에 살아 숨쉬는 문화유적, 오랜 역사를 생각하면 멋은 있다만.

샹젤리제 거리를 구경한 다음에는 백화점에 들렀다. 쁘랭땅 백화점에 처음 들렀는데 난 빠져나와서 약속 시간 전까지 라파예트 백화점과 주변 매장을 구경했다. 앞서 언급했듯 애플스토어, 유니클로, 이브로쉐, 세포라가 그 예. 많은 나라에서 애플스토어를 가본 건 아니지만- 애플스토어는 그 매장이 위치한 나라, 지역, 상권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 파리 애플스토어는- 파리는 모르겠고 런던 매장은 오래된 건물 안에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부는 최신 분위기가 나지만 외관은 고전적인 느낌이 들고. 파리 매장도 신구가 조화를 이룬 느낌적 느낌이었다. 외관보다는 내부가 그런 느낌이 없잖아 들었다.

사진 1~2번 개선문, 3~5번 샹젤리제 거리. 사진=딱정벌레

유니클로 매장이 그때는 흥미로웠는데- 지금은 너무 보편적인 키오스크가 그 매장에 있었다. 그냥 물건을 찾아보는 수준의 키오스크가 아니라 카드 결제도 가능한 키오스크라서 눈길이 갔다. 국내 유니클로에서는 이런 류의 키오스크를 못 본 것 같다. 유니클로에서 물건을 안 산지 꽤 돼서 요새 국내 매장 분위기는 잘 모르지만. 매장에 들어가서 진열된 옷을 보는데 특히 내 시선을 잡아끈, 내 스타일 니트가 있었다. 네이비색 트렌치 코트인지 재킷인지, 그안에 받쳐 입은 줄무늬 니트였는데- 줄무늬 성애자라서 그 니트가 사고 싶었다.

둘러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던 터라 그럴 짬은 안 나고 빨리 나와서 다른 매장을 돌아다녔다. 세포라 매장도 재밌었는데- 그때는 국내에 세포라가 진출하지 않아서 해외에서 본 세포라 매장이 신기하고 반가웠던 것 같다. 역시 거기서도 뭘 사지는 않고 구경만 했지만- 파리 세포라가 재밌었던 건 K-화장품 코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LG생활건강 브랜드와 닥터자르트, 투쿨포스쿨, 토니모리 등 국내 화장품 브랜드 제품을 한데 모았는데(왜 아모레는 없었을까?) 어떤 의도로 기획했는지, 누가 힘써 이런 코너를 우겨 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놀랍고 반가웠다.

놀라웠던 이유는 K-화장품 열풍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인기가 중국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고- 다른 나라도 인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선풍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였다. 특히 유럽은 K-화장품 브랜드가 아니라도 그 나라 자체 화장품 브랜드만으로도 차고도 넘치는데 굳이 K-화장품까지 관심가질 여력이 있을까 싶고. 우리나라도 전세계 각지에 진출해도 힘을 싣는 건 아시아 국가가 많았다. 유럽에 진출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있는 브랜드도 정리하기도 하니까. 요즘은 잘 모르겠다.

사진 1~2번 애플스토어, 3번 유니클로, 4~9번 세포라, 10~11번 세포라 K-화장품 코너. 사진=딱정벌레

그런 가운데 파리 번화가 세포라에서 K-화장품 브랜드 코너를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대기업, 중소기업 브랜드 모두 아울러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이브로쉐 매장에 넘어갔다. 이브로쉐는 국내에서는 올리브영이 일부 제품을 파는데 난 헤어식초만 써봤다. 브랜드 제품군을 잘 몰랐는데 단독 로드숍에 가니 역시나 제품 스펙트럼이 넓었다. 이 매장은 스파라고 돼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지만. 국내에도 다양한 제품군이 수입되면 좋겠다 싶고.

라파예트 백화점은- 유통 기자 시절에는 이름만 듣던 곳이라 실제 매장을 가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설렜다. 일단 백화점이 예뻤다. 내부 인테리어가 궁전마냥 화려하고. 백화점은 크게 넓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솔직히 좁았다. 난 안에서 파는 물건은 잘 안 보고, 인테리어만 구경했다. 역시나 시간이 얼마 없어서 그 구경도 피상적 수준이었지만. 유니클로도 그렇고 라파예트 백화점도 그렇고. 매장에 들어갈 때, 소지품을 항상 검사했다. 파리가 테러 위험이 높아서 그런지- 체격이 제법 있는 남성이 "마드모아젤"이라고 날 부르며 어떤 탐지기 같은 걸 내 가방에 갖다대고 가방 문도 열게 해서 안을 살펴봤다.

많은 매장을 둘렀지만 쇼핑은 다른 데서 했다. 프랑스 쇼핑하면 약국 쇼핑이 유명하다. 약국보다 드럭스토어에 가까운데- 국내에 파는 상품도 거기서는 좀 더 저렴하게 많이 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해야 하나. 르네휘테르 샴푸는 국내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많이 살거면 거기서 사는 게 괜찮은 듯해서 샀다. 영양제는 그쪽에 파는 게 유명하다고 해서 루테인을 사서 부모님께 드렸다. 나도 비타민 B~D, 루테인, 맥주 효모, 비오틴을 매일 챙겨먹기는 하지만- 효과는 체감하기 어렵다. 그냥 습관적으로 먹어서 그런가. 위약 효과는 있는 듯.

에펠탑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파리 풍경. 사진=딱정벌레

쇼핑을 한 다음, 에펠탑을 보러 가기 전에 에펠탑 전경을 잘 볼 수 있는 어떤 공원에 갔다. 주변에는 가두 시위가 벌어져 있었는데 파리에서 이런 건 흔한 풍경이라고 하니. 먼 발치서 에펠탑 전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실제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에펠탑으로 향했다. 저녁을 일찍 먹긴 했는데 그게 에펠탑이 가기 전인지, 가고난 후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전망대 층도 여러 층이 있는데 가장 높은 곳에 가지는 못하고 중간 정도 되는 높이 전망대에 올라서 파리를 내려다봤다. 에펠탑 주변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있었다. 위험하긴 위험한가 보다.

전망대 코스는 어지간해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일단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자체가 마음을 벅차게 하고, 괜히 호연지기도 기르는 기분이고. 전망이 너무 멋있고. 높은 곳에 올라온 것 자체가 보람을 느끼게 하고. 높이 올라가면 멀리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깨달음도 있다. 이걸 내 삶에 적용하면- 나도 높이 날아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구나 싶고. 에펠탑이 좋았던 이유도 이와 관련돼 있는 듯하다. 그래도 에펠탑이 특히 좋았던 건 전망이 정말 멋졌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성당을 비롯해 각종 파리 유적지가 천장처럼 보이고. 파리 문화유산이 얼마나 알차고 풍성한지, 이 도시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에펠탑 입장권을 보는데 20여년 전 아버지가 유럽에 다녀오시면서 건네주신 당시 에펠탑 입장권이 떠올랐다. 그때가 2000년이었는데 새천년을 맞이한 밀레니얼 어쩌구 하는 표시가 새겨져 있었고, 티켓 색은 파란색이었다. 약간 싸이키한 느낌도 있고 그 티켓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가서 받은 티켓은 아니지만 그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티켓은 아니었으니까 아버지 티켓이라도 이렇게 대신 받아서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했다. 내가 파리에 가서 받은 입장권은- 그때만큼 멋은 느껴지지 않았다.

세느강 유람선 타고 본 풍경. 사진=딱정벌레

에펠탑에서 내려온 다음, 세느강 유람선을 탔다. 세느강의 무수한 다리 아래를 지나는데 관광도시라서 그런지 몰라도 다리 위에서, 강변에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람선 승객이 먼저 인사한 건지 모르겠지만- 강변에는 앉아서 맥주병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마침 저녁 시간대라서 그 모습도 운치있어 보였다. 세느강은 강폭이 한강만큼 넓지 않다. 탬즈강도 그런 듯. 그래선지 배를 타고 있어도 강변에 앉아있는 사람들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세느강, 탬즈강에서 멋있다고 생각한 건- 강변따라 주요 관광지, 유적지가 있다는 거다. 오르세 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이나. 그래서 유람선 관광 효과가 배가된다 싶기도 하고. 한강은 크고 넓은데다 한강변에는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이 잘 보이고, 당인리 쪽에는 예전 화력발전소가 보이고 중간에 선유도나 노들섬, 밤섬 등 섬도 있지만- 세느 강변만큼 관광지나 유적지가 많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강이 넓어서 약간 무섭기도 하고? 밤섬이 참 의미있는데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니 관광자원화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초저녁에 유람선을 타서 그런지 해질 무렵 세느강변과 노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날이 저물자 에펠탑에도 불이 들어오는데 점등한 에펠탑도 멋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파리 특유 감성도 느껴지고.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면 선물같은 일상일터. 유람선에서 내리니 오후 8시가 좀 넘었던 것 같다. 몸은 피곤하지만 봐야할 건 다 봐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르세 미술관을 못 가본 게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 되고. 이탈리아는 또 가고 싶지 않은데 프랑스는 더 알고 싶다. 건축 영향이 큰데 르코르뷔지에 때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파리 거리 풍경. 사진=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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