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비늘 Jan 07. 2020

우리는 왜 홀로 자연 속으로 떠나는가?

숲속의 은둔자

자연 속에서 혼자 놀기의 달인을 소개한다. 이 사람은 자그마치 27년을 미국 메인주의 혹독한 숲속에서 혼자 살았다. 늑대소년처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연 속에 버려진 것이 아니다. TV 프로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적당히 사회와 교류하면서 전원생활을 한 것도 아니다. 스무 살, 한창 사회적 활동을 시작할 나이에 돌연 자연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그동안 그가 다른 인간과 나눈 대화는 우연히 만난 하이커와 ‘안녕하세요’ 한마디가 전부였다.

나이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도저히 일반인이 찾아가기 힘든 숲속에 자신만의 캠프를 마련했다. 그의 캠프장은 나름의 체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수색 헬기에 발각되지 않도록 드러나는 모든 장비를 카모플라주 무늬로 위장하거나 녹색으로 색칠했다.

그가 그렇게까지 해서 숲속에 머무르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모르겠어요. 미스터리예요. 내 행동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떠날 때 아무런 계획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냥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관계에 익숙하지 않아 항상 불편함을 느꼈고, 숲속으로 사라지기를 원했다. 그는 편지를 배달하는 비둘기처럼 어떤 끌림이 느껴졌다고 한다.

“본능 차원에서 나온 겁니다. 동물에겐 귀소본능이 있잖아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의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혼자이기를 원하는 사람들

자연으로 홀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맨몸으로 가볍게 산책을 할 때도, 큰 배낭을 메고 먼 거리를 가는 경우에도 그들의 표정은 관광객과 다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표정도 없다. 묵묵하고 완고하게 보이는 표정으로 숲을 홀로 걷는다. 시간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얼굴을 보면 나는 흔히 건네던 인사도 하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지는 않지만,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사는 필요 없으니 각자 가던 길 갑시다.’ 때로는 나도 그런 표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홀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고, 웬만하면 방해받고 싶지 않다. 고개를 돌려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 뒤, 다시 활자에 초점을 맞추고 책의 흐름에 몰입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든다. 리듬을 깨트린 이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인생의 큰 변곡점 겪고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홀리듯 긴 호흡으로 자연에서 오래 머물기도 한다.

‘와일드’의  셰릴 스트레이드는 어머니의 죽음과 정신질환을 겪으면서 이혼을 했고 그 후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종주에 도전했다.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의 크리스티네 튀르머는 정리해고하는 일을 담당했던 직장에서 해고당한 후 PCT 등 미국의 3대 트레일을 모두 완주했다. 곰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는 지인의 죽음을 겪은 후 고등학교 때 방문했던 알래스카를 떠올렸고,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알래스카 툰드라에서 몇 개월씩 홀로 야영하며 야생동물의 사진을 찍었다.

사회적이거나 개인적인 어려움이 자연으로 피신하는 계기로 보이지만, 그런 계기를 찾기 힘든 경우가 ‘인투 더 와일드’의 맥캔들리스와 ‘숲속의 은둔자’의 나이트다.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은둔의 어떤 이유도 찾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그 계기는 필요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언젠가는 당겨질 방아쇠이지 않았을까? 자신의 의지로 당기던, 떨어트려서 당겨지건 총 안의 총알은 발사되기 마련이다


모든 관계에서 잠시 멀어지고 싶은 마음. 홀로 자연을 마주 하고 싶은 욕구.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경험하며 나를 싸고 있는 껍질을 떨어내고 싶은 욕망. 나도 모르는 나, 막연하게 그림자만 봤던 본연의 내 모습을 찾고 싶은 바람. 그리고 무언가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 아니면 그저 머리를 식히고 싶은 그런 것이 홀로 자연으로 떠나게 하는 이유이리라. 하지만 떠났던 무거운 이유와 달리 해답은 가벼울 수도 있다.


복잡한 질문, 단순한 해답

‘온 트레일스’의 저자 로버트 무어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우리 하이커들이 단순함을 위해, 즉 복잡다단한 길들로 나누어지는 문명의 정원에서 탈출하기 위해 하이킹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도시에서의 수많은 선택의 자유가 심리적 부담과 피로에 시달리게 한다고 했다. 반면, 숲길을 걷는 행위는 계속 걸을 것인지, 말 것인지의  두 가지 선택만 하면 나머지들 - 어디서 잘 것인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등과 같은 것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정해진다고 말한다.

와일드의 셰릴도 비슷한 말을 했다. “흘러가게 내버려 둔 인생은 얼마나 야생적이었던가”

온갖 욕망과 질문을 짊어지고 길을 떠나지만, 결국 버리고 버려서 단순함을 찾는다는 선문답 같은 결론이다.

내가 화엄사에 찾아갈 때도 그랬다. 지금은 그때 짊어지고 간 고민이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스님이 말씀하신 것 “여기서 답을 찾아봐야 안 찾아집니다. 그냥 편히 쉬다 가세요.” 그게 나에게 위로였고 해답이었다. 절간의 툇마루에 앉아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운무를 바라보며 진정한 휴식을 경험했다.

자신의 말이 선문답 같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계한 나이트도 야생에서 깨달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는 거요.”

진화의 결과로 우리는 동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차원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사회도 복잡해졌고, 결정해야 할 것들도 많다. 양자역학을 이해해 보려고 시도하고 오늘 SNS에는 무엇을 올릴지 고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물이다.

동물인 인간이 유일하게 이족보행을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고차원적인 무언가의 존재로만 인식하는 사이에 스트레스와 괴리감은 쌓여만 간다.

우리는 자연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원초적인 선택과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걷고, 달리고, 헤엄치는 반복적인 행동 속에 자유를 느끼게 된다. 자연 속의 내가 하나의 풍경으로 그려지는 일체감을 체험한다.

진정한 휴식을 찾아 자연 속으로 떠난다면 단순하기를 권한다. 꼭 필요한 장비(안전장비는 필수)와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단순한 음식을 챙기고 더 많은 자유를 느끼기를 바란다. 꾸준히 몸을 단련하는 것은 자연에서 느끼는 자유의 시간을 늘리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자연에서 가슴을 벅차게 했던 풍경과 고요하게 자신에게 침잠할 수 있었던 시간, 아무 생각 없이 호흡하며 움직였던 기억이 연료가 되어 우리는 다시 문명사회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자연은 그저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상상력이라는 풍요를 준다.” 는 호시노처럼.


참고 서적

숲속의 은둔자 - 마이클 핀클

와일드 - 셰릴 스트레이드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 - 크리스티네 튀르머

인투 더 와일드 - 존 크라카우어

온 트레일스 - 로버트 무어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 호시노 미치오

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 - 호시노 미치오

*이 글은 <GO OUT> 매거진 2020년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작가의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aMeX_s2nXZYRY2cCz8z1Dw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겨울 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