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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Apr 25. 2022

개념보다 계산

연대와 협력을 글로 배운 도시 촌놈들을 위해

*필자는 제주 이주 9년 차인 제주 이주민.  도시인들에 대한 비판은 자기비판과 같다. 그러니 괜히 열 받지 마시길. 


계산이 확실한 제주 시골

내가 제주 사람인 남편과 아내, 둘 다 친구라면, 그들의 자녀 결혼식에서 부조를 두 번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에게 따로따로. 이것을 겹부조라고 하는데 제주도는 남편과 아내가 돈을 따로 관리하는 게 낯선 일이 아니다. 여성도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육지와 또 다른 문화는 '안거리 밖거리' 문화. 자식이 결혼을 하면 두 내외는 부모가 살던 안거리에 머물게 하고 부모는 밖거리에서 머문다.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자식 내외와 밥상을 함께 하지 않는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밥상을 차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해녀문화로 알려진 공동 생산, 공동 분배는 오해에서 나온 틀린 정보다. 철저하게 본인의 능력만큼 잡고, 잡은 만큼 수익을 가져간다. 다만, 어촌계의 공금이 필요할 때, 누군가 도울 일이 있을 때 공동 물질을 해 공동 재산을 만든다. 해녀들이 5미터 이내의 얕은 바다를 나이 든 해녀를 위해 남겨두는 것은 배려 있는 행동이지만, 공동 생산과는 관계가 없다. 

한 번은 제주에 엄청난 폭설이 와서 많은 구간의 버스가 중단됐을 때다.  내 차는 4륜 구동이라 천천히 눈길을 가고 있는데 여자 삼춘(나이가 많은 어른을 지칭하는 제주말) 한 분이 손을 흔드셨다. 저기 앞까지 태워달라는 말씀에 함께 800미터 정도 간 적이 있다. 그 정도면 고맙다는 한마디면 될 것을, 기어코 천 원짜리 지폐 2장을 버리듯이 주고 가셨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과 행동을 읽을 수 있었다. 


공정의 룰은 투쟁 속에 조율된다

시골에는 베푼 만큼 돌아온다. 시골 인심이니 정이니 하는 말로 뭉개지 말자. 

아내가 잡은 뿔소라를 이웃에게 나눌 때 고맙다며 받는 이웃들이 왜 그리 안절부절못했는지 지금은 알겠다. 뿔소라에 대한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그리고 친한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받은 만큼 주는 것은 이곳의 기본 정서다. 나만 그런 거라고? 의심되면 시골에서 한두 번 받기만 해 보시라. 마을에 어떤 소문이 도는지.

이런 계산적인(?) 문화는 척박한 환경에서 함께 살아온 ‘수눌음(육지의 품앗이와 유사한 문화)’의 효과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하는 협력에는 Give and Take가 기본인 것이다. 네가 나의 밭을 갈아줬으니 나는 너 밭의 김을 매 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상식이고, 땅을 파도 돌만 나오는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내가 도움을 받고도 돌려주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마을 공동체의 누구도 나를 도와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합의는 평화적이고 신사적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언제나 빌런은 존재하고 인간은 모두 얼마 큼의 이기적이고 사악한 본성을 갖고 있다. 마을 회의가 조용하게 끝나는 건 드문 일이고, 해녀들은 제주의 어떤 직종보다 목소리가 크다.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공정한 룰은 시끄럽게 주장하고 싸우면서 그 위치를 지킨다. 연대와 협력은 평화롭게 얻어지지 않는다. 각자의 투쟁 속에 조율된다. 

지난 주말, 마을 미화를 위한 나무 심기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 / 마을에서 보는 한라산 풍경(이건 그냥 자랑)


연대와 협력을 배운 적이 없는 도시인

거래처인 뭐시기 NGO 국장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과 함께 그 고생을 했는데, 연대한다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다른 NGO 단체들이 관련 법이 통과하자마자 자기가 한 것인 양 보도자료를 내고 떠들더라고. 이것과 토시만 다르고 동일한 스토리를 다른 NGO로부터 듣기도 했다. 

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조별 과제 빌런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경쟁의 시스템 속에서 협력을 배울 기회가 있었던가? 

시골 공동체에 속한 이후로 알게 됐다. 

‘아, 도시 사람들은 연대와 협력을 배운 적이 없구나.’

연대와 협력이 작동하게 되는 기본 - 계산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갔던 거지. 연대와 협력은 양보와 희생으로 생기는 것인데 계산적인 생각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아… 이런 도시 촌놈들.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기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갑자기 협력 과제를 하라고 하면 될 턱이 있나!


연대와 협력은 개념이 아니라 계산이다

‘네가 한 만큼 보상이 갈 것이며, 안 한만큼 외면당할 것이다. 이기적인 만큼 이 공동체에서 쫓겨날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공동의 시스템에 내재해야 하고, 이 룰을 어긴 자들과 싸워야 한다. 기여에 대한 보상은 명확하고 기여자의 타이틀을 공유해서는 안된다. 기여를 한 사람이 ‘나’인지 ‘우리’인지를 분리해서 칭찬하고 보상하지 않으면 ‘나’는 ‘우리’를 위한 기여를 지속할 수 없다. 하기 싫지. 내 공을 왜 우리로 희석해? 쟤는 한 게 없는데?

우리 마을의 운동장은 여러 토지 기여자들에 의해 조성되었고, 그 이름은 마을 한쪽에 비석으로 남아 있다. 마을을 위해 자신의 땅을 내놓은 사람들의 자부심과 의지는 확고하다. 공동의 토지가 부족한 우리 마을은 몇 차례 이 운동장의 일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자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은 기여한 사람의 것이다.


협동조합의 시작이 물건을 싸게 구매하기 위한 공동구매였듯이 연대와 협력의 중심에는 개인의 이익(or 심리적 보상)이 있어야 하고, 기여에 따른 정확한 계산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당연하게도. 

마을 운동장에서 2년마다 열리는 마을 체육 대회(코로나 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푸짐한 경품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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