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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VS 고맙습니다

         

 4월이면 내 생애 가장 빛났던 한 순간이 떠오른다. 32년 전 첫 아기를 출산하고 병원에서 퇴원해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3월25일 아기를 낳으러 들어갔던 계절엔 꽃이 아직 피지 않은데다가 미세먼지까지 끼어 칙칙했는데 아기를 품에 안고 나오는 4월의 첫 번째 주말엔 빛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꽃이 활짝 피어나 공기에서조차 향이 나는듯했다. 

그 생일을 다시 맞아 딸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딸에겐 ‘고마워’란 답이 돌아왔다.

‘축하합니다’ 곁에 있어야 하는 말은 ‘고맙습니다’ 이다.

‘축하합니다’ 뒷면엔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숨겨져 있다.     

 뭐든 뒤에, 혹은 곁에, 옆에 숨겨져 있는 맥락을 잘 헤아려 살펴야 한다. 아카데미상시상식이든 무슨 상이든 축하받는 자리에서 그동안 애썼던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는 일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의외로 축하하는 자리에 고마운 사람을 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은 어떤 분야든 현재 있는 사람 뿐 아니라 그동안 수고한 분들을 환대하는 문화가 서서히 생기고 있지만 과거엔 그러지 못했다. 건물의 개관식 경우 클라이언트 중심으로 진행되기 일쑤다. 건축가나 설계자, 혹은 기술 관련자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분들을 놓친다든가, 오랜 시간이 걸린 성과발표 자리에서 지난 시간에 앞서 공들인 기획자들은 보이지 않고 현재 관여한 사람들만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심지어 앞서 기여한 분들은 지나간 분이니 굳이 열거하지 않고,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만 거론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어떤 태도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그 품격이 달라진다. 한 집단의 생일인 창립기념일 경우 어느 곳은 아예 지나치고 마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현재 함께 하는 사람들 중심으로만 진행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곳은 초창기 멤버부터 초대하여 그간의 역사와 맥락을 공유하기도 한다. 축하의 자리에 당장의 눈앞에 보이는 과실을 나누는 이들 뿐 아니라 수 년 전 계획을 세우고 조사를 하고 이리 진행되도록 바탕을 깔아준 분들까지 불어내어 서로 치하하며, 모임 그 자체를 환대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서로 간에 우정이 쌓이고 신뢰가 무르익는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지만 어떤 집단의 조직문화에 사람의 마음이 무릇, 더 가는지는 분명하다.  

‘축하합니다, 환영합니다’ 라는 환대와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신뢰합니다’ 라는 우정이 존재하는 조직문화에 마음이 더 기울고 그런 분위기는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잘 전달되기 마련이다. 



 ‘문화’란 바로 ‘태도’와 연결된다. 흔히 ‘스펙’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하고 어느 때 보다도 태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개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곧 개개인의 문화가 더없이 중요해졌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경제적으로 먹고살기 어려웠던 근대시절엔 태도보다는 실력이, 문화보다는 먹고사니즘이 중요했지만 소득 삼만 불 시대를 넘어 고만고만한 실력을 두루 갖춘 저성장시대에 차별화되는 요소는 단연코, 태도이고, 그 태도가 차곡차곡 쌓인 그 사람의 문화가 변별력을 갖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최근에 베스트셀러 1위를 오래 동안 하고 있는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소설의 힘도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지갑을 잃어버린 편의점 주인은 지갑을 찾아준 서울역의 노숙인, 독고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노숙인이긴 하지만 그를 기꺼이 편의점 알바로 채용한다. 주인의 신뢰하는 태도에서 노숙인, 독고의 변화가 시작된다. 

겉으로만 보이는 노숙인을 보는 시선에서 멈췄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독고의 매력은 많은 사람을 대하며 빛이 난다. 

다른 시간대 알바인 아들과 불화하고 있는 이에게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어요 ? 들어줘요. 들어주면 풀려요 ’ 라며 소통을 이어주고 세상에 절망하는 단골 직장인에게는 소주대신 옥수수수염차를 권한다.

소설 속에서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 세상 모든 사람들은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말처럼 모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이고 정성을 다하는 일이 소중하다.     

이런 마음가짐이 태도가 되고 이것이 저마다 개개인의 문화가 된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 속 주인공인 독고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문화를 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겉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고정관념이 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헤아려주고 저마다 다 다른 상황과 특성을 믿어주는 문화를 너나없이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일 잘하고 성과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성과를 다른 동료들과 나누지 못하고 독점하는 이들은 동료들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두 번은 인정받을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결국, 삶의 총체적인 스타일인 문화가 어떻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사회생활을 비롯 인생살이가 결정된다


‘축하합니다’ 의 짝꿍말은 ‘고맙습니다’이다.

앞으로 생일 축하송 일절 후엔 생일 감사송을 이절로 부르고 

당장 눈앞의 축하할 일 뒤에 내가 미처 놓치고 있었던 고마운 분들은 없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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