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성장공동체 나무학교의 2016년
1. '교사'와 '수업'
교사에게 ‘수업’이란 마치 끼니가 되면 밥을 먹듯이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다. 그래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나 역시 아무런 고민없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수업을 해 왔다. 내 인생의 중요한 고민은 늘 교실 밖에 있었다. 승진, 대학원, 취미, 건강, 해외여행 이런 것들. 수업에서 가르칠 내용과 방법은 이미 교과서에 있었고 아이들의 성장은 시험을 통해서 평가되었기 때문에 내가 끼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수업이 너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설명하고 졸고 있는 아이를 혼내고 시험 문제를 내는 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이 너무나 지겨워졌다. 나도 수업이 싫었고 아이들도 수업이 싫었다. 아무리 힘든 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들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순간 너무나 힘들어진다. 교실에서 우리는 이 무의미한 시간을 견디며 서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엎어져 자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세월호’의 비극이 있었던 날 나도 아이들도 여전히 그 지루한 ‘수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배가 가라앉고 한 달 동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며 나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선생님, 도대체 왜 구하지 못하는 거죠?”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잡담은 그만하고 우리 수업이나 하자.” 우리는 수업을 했다. 수많은 왜곡보도가 나오고 있는 때에 나는 ‘기사문’의 특징에 대해 가르쳤고, 서해 바다에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의 원혼이 묻혔건만 나는 ‘이성복’ 시인의 ‘서해’라는 시의 아름다움을 가르쳤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분통을 터뜨렸던 세상을 만든 사람 중에 하나가 ‘나’였다는 사실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그해 봄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수업을 바꿔야만 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꾸로교실’을 통해 나와 고민의 지점이 같은 충남의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2. '거꾸로교실'과 '수업나눔'
2014년부터 시작한 수업나눔 모임은 처음에는 ‘거꾸로교실’의 수업 방법을 교실에서 적용하고 학생들의 활동을 함께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학생들에게 사전영상을 제공하고 수업시간에는 활동중심 수업을 적용하는 ‘거꾸로교실’은 당시에는 너무나도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수업방법이었다. 천안 및 아산지역을 중심으로 매월 모이게 된 ‘거꾸로교실’ 수업나눔 모임에서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수업활동을 공유할 수 있었고 수업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강의식 수업으로 주로 수업을 운영하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수업에 대한 변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열명 남짓 시작한 수업나눔 모임은 달이 거듭될수록 스무 명에서 서른 명으로 늘어 2015년 5월 배방고등학교에서 열린 수업나눔 모임에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서쪽의 안면도에서부터 동쪽의 금산까지 충남의 선생님들까지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찾아오게 되었다. 당일 준비했던 1500원짜리 김밥이 모자라 서로 반으로 나눠 먹으며 온종일 선생님들은 수업에 대해 맘껏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과연 ‘거꾸로교실’ 때문에 이 많은 선생님들이 모일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수업을 채울 수 있는 무엇인가에 배가 고파 있었던 것이다. '거꾸로교실'은 그 허기짐을 달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새로운 교육방법론이 매년 새롭게 출시되는 스마트폰 광고처럼 교육현장을 뒤흔들고 지나가버린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거꾸로교실’이라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존버그만(John Bergman)처럼 우리도 자신의 교실을 스스로 뒤집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동안 교사는 시키는 대로 참 충실히 살아왔다. 교과서대로 가르쳤고 교육청의 지침대로 학교를 운영했고 수많은 연수를 찾아다니며 배우기 위해 그동안 너무나 시키는 대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목을 바꾸어 나오는 교육정책에서 개혁과 변화의 걸림돌이 ‘교사’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을 때 인솔했던 선생님들도 선장의 방송대로 학생들을 객실에 모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거꾸로교실’의 ‘거꾸로’가 우리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결국 우리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3. '배움의 숲'
2015년의 ‘거꾸로교실’을 중심으로 다섯 번의 수업나눔을 가지며 많은 선생님들이 수업을 화두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수업의 방법을 바꾸기 위한 모임을 가졌다. 매달 자신이 했던 수업사례를 가지고 와서 평일 저녁에 서로의 수업에 대한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놨다. 수업나눔을 마치고 뒤풀이 술자리에서까지 활동지를 꺼내놓고 밤늦게까지 난상 토론을 하며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니 하지 않았던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꺼내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기존에 해왔던 강의식 중심의 수업에서 학생의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한 고민은 끝이 없었다. 모둠을 만들고 꾸려가는 것, 학생들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수업활동, 교육과정의 재구성 방안, 활동중심 수업의 평가방법 등의 수업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에 대해 함께 의논했다. 그리고 수업을 바꾸는 것에 불만을 갖는 학교의 관리자, 여전히 강의식 수업을 고수하는 주변의 선생님들, 모둠중심의 활동수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항의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아픈 말들로 받은 상처를 함께 위로하고 다독이며 계속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모임을 통해 혼자였다면 갈 수 없었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자신의 수업을 뒤집어 학생들이 살아있는 수업을 경험한 선생님은 다시 강의식 수업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처음에는 ‘거꾸로교실’로 시작한 수업방법은 ‘협동학습’, ‘하브루타’, ‘배움의 공동체’, ‘학급긍정훈육법’, ‘프로젝트학습’, ‘비쥬얼싱킹’ 등 다양한 수업사례로 확장이 되었다. 그리고 매월의 수업나눔과 지역연수를 통해 ‘수업나눔’ 네이버밴드 커뮤니티는 어느덧 500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가입하여 자신의 수업 사례를 공유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온라인 공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수업나눔 모임이 거듭하며 우리는 다양한 수업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점차 ‘방법’을 넘어서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에 대한 본질에 대한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민은 결국 교육이라는 현상 전체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2016년 2월 ‘거꾸로교실 수업나눔’ 네이버밴드 커뮤니티를 ‘배움의숲’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형식적이고 도구적인 공부가 아니라 진짜 공부로의 의미의 ‘배움’과 ‘충청남도’이라는 지역의 이름에서 느끼게 되는 ‘푸른색’과 교사들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라는 의미에서의 ‘숲’을 합성하여 ‘배움의숲’이 되었다. ‘수업’만을 바꾼다고 해서 ‘교육’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은 교육의 변화는 단지 허상이고 구호에서만 끝날 것이다. ‘배움의숲’은 이렇게 수업 실천에서부터 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선생님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사공동체로서 거듭나게 되었다.
4. '나무학교'
‘배움의숲’을 열고 그동안 매월 모였던 수업나눔 모임의 내용을 체계화하고 공부의 깊이를 더하고자 ‘나무학교’를 개교했다. ‘배움의숲’ 커뮤니티에는 700명이 넘는 회원이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매월 수업나눔에서 모이는 인원은 30명 내외였다. 그동안 모임에서 자신의 수업사례와 고민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다음 모임에서 내용이 연계가 되지 않았고 또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도 정기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보니 모임의 선생님간의 관계형성도 깊이를 가질 수 없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우리 모임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움의숲’을 이루는 근간인 ‘나무’가 되는 선생님들이 스스로 자라고 함께 배우는 ‘학교’를 만들었다.
'나무학교'의 배움은 학교에 입학한 선생님들이 스스로 교육과정을 짜고 공부하며 배운 내용을 함께 나누고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을 원칙으로 2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2016년 나무학교 1기 선생님들은 모두 56명이 지원해서 그중 30명이 선발되어 2016년 4월 2일 개강식과 더불어 첫 번째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모임에서는 1기로 참여한 30명의 선생님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을 했다. 정년을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부터 이제 막 발령을 받은 신규선생님까지 충남 곳곳에서 지역도 과목도 다른 서른 분이 오늘 나무학교 입학까지의 삶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곧 배움이 될 수 있었다.
‘나무학교’ 1기 1학년의 첫 교육과정은 5명으로 구성된 6개의 모둠이 ‘어떻게 가르칠까?’의 교육방법론 중심으로 우선 ‘배움’을 만들어내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한 ‘학급긍정훈육법’을 시작으로, 활동수업의 질문을 이끌어내는 ‘하브루타’, 소통과 협업을 만드는 ‘토론/토의수업’, 함께 배움을 만드는 ‘협동학습’, 이미지와 맵을 통해 표현해보는 ‘비주얼싱킹’, 배움과 삶을 연결하는 ‘프로젝트학습’의 6개의 주제로 구성했다. 각 모둠은 자신이 맞는 주제를 중심으로 함께 공부하고 수업에서 실천하고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나무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수업나눔’을 진행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연수와 다른 점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 또는 성취를 이루어낸 선생님이 와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학교' 선생님들 스스로 공부하고 실천한 내용이 바탕이 되어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그달의 ‘수업나눔’을 맡은 선생님들은 몇 번의 사전 모임과 수업 적용을 하며 조금씩 자신의 배움을 완성해간다. 그래서 ‘수업나눔’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전문적이지 못하고 이론화되어 있지 않지 않다. 또한 수업의 성공사례만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교실에서 실천하면서 부딪치는 어려움 그리고 막상 수업에 적용해보았더니 실패했던 내용도 드러나게 된다. 교사에게 있어서 '수업'이란 원래 이렇다. 마치 한 사람의 삶도 완벽할 수 없고 모범적인 메뉴얼이 없듯이 교사가 접하는 수업상황은 너무나 다양한 것이다. ‘완벽한’ 수업은 아마 연구학교의 공개수업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완벽한 수업은 오히려 가장 완벽하지 못한 수업이 될 것이다. 다양한 학생, 다루어지는 지식, 교실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 등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 교사가 모범적으로 제시된 특정한 패턴만을 고집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나무학교’에서의 공부는 각 주제에 대한 서른 명의 교사의 다양한 생각과 실천이 함께 변주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배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 현장에서 실천하고 다시 ‘수업나눔’의 ‘수업이야기’를 통해 계속적으로 피드백 된다.
5. 나무학교의 미래
올 한해 동안 ‘나무학교’ 1학년 선생님들이 공부한 ‘수업방법론’의 6개의 주제는 12월 10일에 나무학교 수업나눔축제를 통해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수업에 관심있는 충남의 모든 선생님들을 초청하여 ‘나무학교’ 선생님들이 실천한 수업의 내용을 나누는 ‘배움장터’와 ‘배움이 일어나는 교실’의 수업방법을 함께 참여해서 직접 실천해보는 ‘수업채우기’, 나무학교 선생님들의 공부를 하며 읽은 책을 모은 '느티나무책방', 수업 때 사용한 기자재를 소개하는 '교실문방구' 등 다양한 부스가 운영되었다. 교실에 대한 선생님들의 진솔한 '교실토크', 충남교사노래모임 '햇볕한줌'의 감동이 있는 공연. 나무학교 1년의 성과를 모두 모여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제 나무학교 1기는 2학년으로 진급하여 자신의 교실을 만들어가는 1인 1수업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새로 입학하는 1학년으로 입학하는 2기는 실천을 통한 수업의 변화를 시도해 볼 것이다. ‘나무학교’는 어떤 외부 단체의 지원도 없이 단지 월2만원의 회비를 가지고 운영된다. 각각이 내는 월2만원의 회비는 우리의 독립성을 유지시켜 준다. 실천을 통해 수업의 ‘본질’을 고민하고 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선생님들의 학교는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부피에’ 노인이 황무지를 숲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나무학교’의 선생님들이 변화시킨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은 결국 교육을 변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