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의 시선
올해 초 저녁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아는 교육위원님을 만나 뵌 적이 있었다. 술 한잔 하며 반가운 마음에 학교 상황을 이야기하며 질문을 드렸다.
IB학교에 대한 예산을 조금만 더 증원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럴 때 보통은 ‘생각해 볼게’ 혹은 ‘다른 시급한 예산 사용처가 있어서 힘들겠어.’라는 답변을 하기 마련인데 다소 충격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답변을 하셨다.
‘그렇게 돈을 많이 투자했는데 대입 실적이 그 정도 나와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IBDP 취득 학생수가 11명이던데 100명 중 10% 비율은 문제가 있지!’
이게 현재 IB를 바라보는 관리자들의 대표적인 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IB에는 예산 지출이 많다는 부담!
다음으로 IB는 대학입시결과에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마지막으로 IBDP 취득은 졸업만 하면 딸 수 있는 자격증이라는 얄팍한 인식!
이 세 가지 인식들에 대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반박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IB 학교 운영에 일반고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증과정에서의 가입비(약 3000만 원), 교사 연수에 대한 투자(연수 비용 1인당 100만 원), 인증 이후 매년 내는 회비 비용인 1000만 원, IB 외부평가 비용(1인당 약 100만 원) 등 외에도 IB에 걸맞은 활동을 위한 학교 운영 및 프로그램 비용이 많이 든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언론에서는 소위 귀족학교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는 과연 무엇을 위한 투자인지, 즉 투자 목적 대비 효율성을 따져봐야 한다. 만약 온전히 IB DP의 자격증(Full Diploma) 취득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효율성은 무척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일반학교에 대한 투자도 오로지 서울대, 연고대 등에만 한정 짓는다면 마찬가지로 가성비는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의 교육이 DP 취득처럼, SKY에만 한정되어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IB학교에서는 IB교육을 통한 학생들과 교사의 변화, 나아가 학교 문화의 변화다. 그리고 일반 학교 대상으로 각종 자율학교에 투자하는 비용(제주도의 경우 학교당 대략 2000 ~ 5000만 원 정도)을 생각하면 일종의 또 하나의 자율학교 혹은 시범학교로 보면 그리 큰 비용은 아닐 것이다.(그래도 비싸긴 하다.) 결국 해결방안은 우리만의 IB에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칼럼 시리즈의 최종 결론이기도 하다.(스포가 돼버렸군요.)
다음으로 입시결과와의 연관성은 이전에도 설명했기에 간단하게 만 재설명하고자 한다. 즉, IB 프로그램으로 대학진학을 생각하는 순간 학교의 정체성은 사라지며 또 하나의 자사고 및 특목고 같은 입시기관이 될 뿐이다. 더군다나 IBDP 점수는 대입에 반영할 수도 없다. 단, IB의 교과 핵심과정은 내년부터 시행하게 될 우리나라의 2022 개정교육과정과 상당히 유사하기에 이 부분이 대입시 학종에서 좋은 인상을 줄 수는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 두 개의 교육과정이 비슷하다는 건 굳이 IB 교육과정을 도입안해도 되며, 우리나라의 새로운 교육과정만으로도 충분히 IB스타일로 교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IBDP 취득은 세계적으로 인증받는 평가제도이다. 그러므로 그 취득 과정은 엄청난 노력과 교사의 헌신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대구의 모고등학교인 경우 30명 중 19명이 취득했다. (표선고는 100명 중 11명이지만 대구의 학교는 일부 학급을 대상으로만 IB과정을 이수하기에 어느 정도 상위권 학생들인 경우가 많고 표선은 전술했다시피 농어촌 학교이자 표선상업고등학교 이미지를 갖고 입학한 학생들이다.) 그 기나긴 취득 과정을 하나하나 나열하기에는 지면이 길기에 간단히만 서술하고자 한다.
우선 2학년이 시작되면 3학년 2학기까지 2년간 총 6과목을 이수하며 HL(High Level) 과목 3개와, SL(Standard Level) 과목 3개를 학습하게 된다.(물론 융합과학탐구, 수학과제탐구, 영어권 문화 등의 국내 교육과정의 과목들도 같이 배운다.) 각 과목들은 IB 기관에서 요구하는 학습 내용을 가르치게 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3학년 1학기에 내부 평가를 치르게 된다.(내부 평가는 교내 교사들이 출제하지만 채점은 교내 교사와 외부 IB 기관의 채점관들이 채점을 한다.) 교과목 외에 CORE program의 일환으로 지식이론(Theory of Knowledge), 창의체험봉사활동(Creativity, Activity, Service), 에세이 쓰기(Extended Essay)를 해내야 한다. 이 역시 학생들의 2년간의 누적된 활동에 대해 훈련된 교사들의 지도와 채점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중도 포기자들이 속출한다. 우리 학교 기준으로 2학년 초기에는 열정과 의욕으로 절반 가까운 인원들이 신청하고 도전하지만 2학년 말 무렵에는 약 40%만 남고, 3학년 초에는 30%, 3학년 중반에는 결국 10~20% 학생들만 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IB DP Certificate(자격증)을 졸업만 하면 자동으로 주는 국내 고교 졸업장과 같은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대학입시와는 하등 관계없는-심지어 외국 유학도 계획이나 관심이 없는-노력을 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오히려 대견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청의 시선을 살짝 엿보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현재 표선고를 방문했거나 방문할 예정인 학교 및 교육청들을 보면 16개 시도 중 10개 내외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교육부장관부터 서울시 교육청 교육감 이하 많은 손님들이 방문하셨다. 물론 그중에는 IB에 진심인 분들도 많았고 이제 막 배우려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일단 그분들의 주된 생각은 'IB 도입이 과연 우리 지역의 교육 문제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까?'이다. 그리고 도입하면 그 효과는 엄청날까? 마지막으로 도입하고 운영하는데 어렵지 않을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일이 그 질문들에 감히 답할 수는 없지만 우리 역시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 효과는 불명확하다. 작년 한 해 반짝한 성과일 수도 있고 IB 요인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는지도 불분명하다. 혹은 몇몇 학생들의 개인기에 의존한 결과일 수도 있다. 교육의 결과가 명확한 인과관계로 이루어지지 않고 대부분 결과를 보고 과정을 끼워 맞추며 분석하는 것이기에 그저 IB가 교육 현안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다만,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답할 수 있다.
무척 어렵다.
아니 육체적 힘듦은 예전 고3 입시 지도만큼이기에 그 생활을 했던 분들은 해볼 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IB 교육 분야는 참고할 자료가 없어 각자 독학하는 경우도 많고 교사 간 회의와 연수도 많다. 즉, 집단적 전문가로서의 교사의 역할이 없으면 해내기 어렵다. 그러므로 절대 쉬운 과정이 아니기에 감히 선뜻 권할 수는 없다. 단, 교육의 본질적 측면인 수업과 평가에 대한 성찰,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 그리고 교사들과의 연대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희망을 맛보고 싶다면 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