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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Aug 04. 2018

우리는 약하기에 서로 연결된다

약점을 드러낼 수록 더 강해질 수 있는 이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그와 얘기를 나눌 때면 나에게는 불쑥 불안감이 찾아든다. 상대가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이미 알던 사람과 계속해서 친분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나면 내게 가졌던 호감이 실망으로 바뀌어버릴 것 같았다.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나의 장점을 보고 다가왔던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들고, 나를 좋게 봐주었던 첫 느낌을 뒤집어버릴 것 같았다. 숨기고 있는 나의 약점, 첫인상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내면의 단점은 그렇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나만 유독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가면 뒤에 숨고 싶었다.

 


행복한 사람들은 결핍을 인정한다

그런 나와 비슷한 두려움을 지닌 한 소년을 알게 되었다. 이름은 어거스트 풀먼이다. 가족들은 그를 ‘어기’라고 부른다.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원더>의 주인공인 어기는 실제로 가면을 쓰고 다닌다. 우주비행사들이 쓰는 두꺼운 헬멧이다. 아주 평범한 소년이지만 또래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얼굴이 좀 특별하다는 것이다. 선천성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나 스무번이 넘는 수술을 받았지만 평범한 얼굴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얼굴전체가 화상을 입은 듯한 모습이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얼굴은 열 살 어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 때문에 홈스쿨링을 하며 집에서만 지냈고 가장 친한 친구는 가족들이었다.


 나는 실제로 가면을 쓰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저 헬멧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헬멧이 있다면 나에게는 내 약점을 숨기는 연기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든 숨는 게 편해서인지 낮보다는 밤을, 햇빛 쨍쨍한 날보다는 각자 우산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비오는 날을, 어쨌거나 시야가 좁아지는 날을 좋아한다. 그런 내게 헬멧은 얼마나 간편하고 안전한 자기만의 은폐된 공간인가. 두껍고 단단한 헬멧 속에서 살고 있는 소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어기의 엄마는 그를 더 이상 집에만 둘 수 없다는 판단으로 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어기의 진짜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헬멧을 벗고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생활해야 한다니. 그에게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서, 나까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얼마나 떨릴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대놓고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니 얼마나 두려울까. 그냥 계속 홈스쿨링을 하는 편이 나은 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유대감은 없을 것이었다. 혼자서도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야 있겠지만 친구들과 장난을 칠 수도 고민을 나눌 수도 없을 테니까.


 

 익숙했던 가면을 벗고 학교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어기


어기의 일생일대의 도전을 지켜보며 그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국의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의 저서 <마음 가면>에서는 행복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연결(Connection)'에 있다고 보았다. 연결은 이어짐, 즉 타인과의 유대를 뜻한다. 우리에게는 타인과 이어지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인데, 이 연결을 만들어 내는 요인이 뜻밖에도 우리의 취약성에 있다고 한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약점이나 결점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타인과 연결되기가 쉽다. 조화로운 연결은 적절히 도움을 주고받게 하고,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한다. 약점 때문에 오히려 타인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타인을 알아갈 때 처음엔 재능이나 완벽해 보이는 모습에 끌렸다 하더라도, 신뢰가 생기고 가까워지게 만드는 요인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예상외로 허술한 면이나 빈틈을 발견했을 때 호감은 오히려 상승한다. 차가운 사람의 따뜻한 '반전매력', 그리고 '허당'같은 행동도 그렇다. 더군다나 우리가 깊은 관계로 발전할 때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약점이나 콤플렉스를 공유하기 마련이다. 


브레네 브라운 또한 자기를 노출시키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수천명의 상담사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는 사실. 스스로에게 관대하기에 나아가 다른 사람의 결핍에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결점을 온전히 드러낼 줄 아는 사람, 그들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용기라는 단어 'Courage'는 심장을 의미하는 라틴어 'cor'에서 파생된 것이라 한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를 온 마음을 다해 솔직히 이야기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저자의 표현대로 ‘온 마음을 다하여 사는 사람들’은 기꺼이 취약해질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며, 그 덕분에 사랑과 소속감을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이 느낌은 건강한 행복감과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렇기에 브라운은 약점을 드러낼수록 더 강해진다고 알려준다. 


민낯으로 더 행복해질 기회

과연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오롯이 드러낼 수밖에 없는 ‘원더’의 주인공에게도 그랬을까. 자신을 보여주기가 너무나 두려웠던 어기 풀먼. 헬멧을 벗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당연히 철없는 10살 아이들은 그를 멀리하거나 놀리기 십상이었다. 오크라고 부르는가 하면, 괴물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그럼에도 다음날이면 또 꿋꿋하게 등교를 했다. 사람들의 시선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에게는 집을 벗어나는 매일매일이 엄청난 용기임에 틀림없었다.


 그 때문일까, 친구들이 하나둘씩 다가왔고 어기의 최고 매력인 유쾌한 성격과 유머감각을 알게 되면서 그를 더욱더 좋아하게 된다. 항상 혼자 밥을 먹고 엄마 손을 잡고 등하교하던 어기는 어느새 여느 또래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장난치는 평범한 소년이 되어 있었다. 헬멧 속의 세상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을 통해 그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어 간 것이다. 

출처. 영화 <원더>

 과거의 나는 어기처럼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내가 가진 약점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연연했었던 것 같다. 전공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하러 갔다가 ‘혜령씨는 다가졌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라는 말씀에 어쩐지 모르게 움츠러 들어 입을 꾹 다물고 나왔던 일. 만나면 늘 유쾌했던 친구들에게 정작 고민이 많은 시기에 연락을 주저하다 멀어져버린 일이 그러했다. 끝내 솔직해지지 못한 관계는 단절이라는 댓가를 치렀다. 결국 내게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애써 내가 정직해졌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어기는 내가 이제야 깨닫는 용기의 힘을 열살에 이미 깨달은 듯 하다.


물론, 자신의 결핍을 거리낌 없이 내보인다는 것은 무차별적인 자기노출은 아닐 것이다. 브라운 또한 취약성은 상호관계에 기초하는 것이므로 ‘신뢰’와 ‘경계’를 요구한다고 덧붙인다. 지나치게 많은 걸 털어놓거나, SNS에 정보를 함부로 올리는 것과는 다르다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정과 경험을 털어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을 부러워할지언정 그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자신 또한 실수담이나 결점을 솔직히 말하고 났을 때야 그 관계가 한결 편해지는 걸 느낀다. 그런 과정을 통해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몰랐던 자신의 장점을 찾게되기도 한다. 노래 한곡을 불러도,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안하던 실수도 저지르는 반면에, 누구보다 편한 사람들 앞에서는 혼자서 부를 때보다 실력발휘를 잘해내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간의 ‘연결’이란 이렇게 강점보다는 약함과 더욱 가깝다. 누구나 타인에게 잘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고, 좋은 면을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간절한 건 결점이나 실수, 부끄러운 경험들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다. 그 때문인지 마냥 자신을 좋게만 봐주고 잘하는 것에만 포커스를 두는 타인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졸업식날 어기가 마음을 가득 담아 엄마에게 한 말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학교에 보내줘서 고마워.
화날 때도 있었지만, 이젠 정말 행복해


 나또한 어기처럼 알게 모르게 용기를 내어왔기에 현재의 단단한 관계들이 있는 것일테다. 그러한 신뢰롭고 진솔한 관계 속에서 틀림없이 기쁨은 자라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렵다. 나의 모순을 보이는 건 여전히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나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감히 말해두고 싶다. 우리의 약점들이 솔직함을 만나서 강력한 힘으로 변화되는 마법. 그 마법을 위해 헬멧을 벗어던지자고. 민낯의 용기로 더 행복해질 기회를 마련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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