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낯선 타지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읽을 수 없는 메뉴판에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정말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끼게 되고, 또한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시각도 넓어지게 되는 것 같다.
다만 문제는,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으로 일본에 갔던 건 2015년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L씨와 함께였다. 그 때는 해외여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라 L이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나는 몸만 따라갔었는데, 그 당시 아사히 맥주 공장에 견학을 가서 제조 공정도 보고, 본래의 목적이었던 맥주도 몇 잔 시음해봤던 것 같다. 그 때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그 때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보고 느꼈는지에 대한 기억은 사진을 봐야 겨우 더듬더듬 되짚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겪다 보니 이후에는 여행을 갈 때 메모장을 들고 가서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감정들을 적어놓곤 했는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파편화된 기록들을 구체적으로 엮어 기술해내지 않으니 항상 무언가 마음에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원을 그리다가 만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을 하면서 체계적으로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고, 여행을 갔다와서는 피곤하니까 내일 쓰자, 다음 주에 쓰지 뭐 하는 것들이 미루고 미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2023년 2월에 도쿄에 다녀온 여행기를 써 볼까 한다. 사실 도쿄야 워낙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고 하니 특별할 것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자전적 의미로서 써 보는 것이고, 또 하나 시도해보고 싶은 것은 갔던 음식점들의 메뉴판을 모조리 한글로 번역해 보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도 할 겸!
인천공항에서 2023년 2월 10일에 도쿄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매일 공항을 청소하시는 분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원래는 J씨, M씨와 함께 여행을 할 계획이었지만 M씨는 사정상 나중에 합류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공항에 먼저 도착해서 신청해두었던 유심칩도 받고, 환전신청해 두었던 엔화도 찾았다. 원래는 트레블월렛을 이용해서 현지에서 결제 및 출금도 하려고 했으나, 트레블월렛 카드를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현금을 환전했다. 동전지갑도 없는데. J씨는 출발 3시간 전쯤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기다려 탑승권을 받았다.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좀 애매한 터라 공항 내 입점해있는 '북촌손만두'라는 곳에서 북촌피냉면을 먹었다. 냉면을 선택한 이유는? '피'냉면이라는 어감이 독특해서.
하지만 사실 별 반 다를 바 없는 물냉면이었던 것이고, 오늘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해보니 냉면의 국물이 빨개서 피냉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 당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특별히 맛있었다거나 시원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던 것 같다. 9,500원의 피냉면.
롯데면세점에서 사전에 예약구매한 제품을 찾고 있는 J. 나는 면세점 쇼핑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면세점 일부에서는 상품을 예약구매한 후 출국 혹은 입국 시에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듯 하다. 롯데면세점에서는 프리오더샵이라고 해서, "출국일 기준 30일부터 7일 전까지, 일반샵에서 구매할 수 없는 1,000개 이상의 프리오더 전용 상품을 예약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것을 제공한다고 한다.
면세점 쇼핑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동행을 따라서 아이쇼핑만 했다. 이번에 J는 톰포드에서 향수를 구입할 생각이 있었는지 몇 가지 향을 시향하고는 향수를 구입했다. 향수에 큰 관심이 없으니 내게는 생경한 광경이었다. 아, 이렇게 향수를 사는군. ㅋㅋ
그리고 비행기를 탔다.
비상구 좌석 창가 쪽에 앉았다. 매우 넓다.어쩌다 보니 비상구 석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면서 비상구 석에는 처음 앉아보는데 확실히 넓다. 운행 중 다리를 펴고 쉬어도 전혀 무리가 없겠군. 알고 보니 비상구 좌석은 벌크석과 더불어 최고의 명당 자리라고.
이륙 이전에 승무원이 나를 포함한 비상구 석의 3명의 인원에게 비상시 행동 요령에 대해 들었다. 아,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위급 상황 시 물에 이렇게 착륙하고, 비상구 문은 이렇게 여는구나.
이제는 익숙한 이륙이지만 왠지 설레는 느낌은 여전하다. J, M과의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잘 맞을지 걱정도 되고, 도쿄의 복잡한 지하철에 대해 사전조사를 충분히 했음에도 다소 알쏭달쏭했던 것 같다.
사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쉽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추진하는 것도 어려웠고, 자세히 설명하기는 그렇지만 신변에 변화가 예정되어 있던 시기라서 난관이 많았다.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당시에는 심적으로 꽤나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시 바라보니 어차피 지나갈 일이었던 것. 그러나 지나갈 일이라는 것을 그 당시에 알고 있었음에도 그러한 시기를 올올이 견디는 것은 어떻게 보면 멘탈 수련의 기회가 되기도 했지 싶다.
비행기에서 J와 여러 가지 얘기를 했겠지만 지금에선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어느새 도착. 도착하고 나서 유심칩을 바꿔 주었다.
안녕~도착하니 맞아주는 쿠파와 로젤리나. 비지트 재팬 웹(Visit Japan Web)에 검역 절차를 사전 등록해 두었고, 입국하면서 QR코드를 보여줬다. 코로나는 언제나 끝나나? (이제는 한국에서는 거의 일상을 되찾은 것 같긴 하다.)
도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티켓을 사는 일이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도심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기에 반드시 지하철을 이용해야만 했다. 특히 일본은 택시 비용이 매우 비싸지 않은가! 조사를 해 보니 도쿄에서는 대표적으로 두 회사가 지하철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바로 도쿄 메트로와 도에이 지하철(도쿄 도영 지하철)이었다.
도쿄메트로는 9개 노선을, 도에이 지하철은 4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그러나 도쿄 노선도가 웃긴 게, 서울처럼 서울교통공사가 서울 내 모든 지하철을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니다. 두 개의 회사가 별도로 운영한다는 것도 헷갈리는 지점인데 더한 것은 이외에도 수많은 기타 노선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해하는 데 한참 걸린 도쿄 지하철 노선도.도쿄 메트로선과 도에이선 아래에 작게 보이는 JR야마노테선, JR선, 민영철도선 등등이 모두 다른 노선이다. 가능한 한 많은 노선을 포함하게끔 지하철 티켓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비용에 비해 활용도가 떨어졌다. 결국 결정했던 것은 Tokyo Subway 티켓. 이 티켓으로는 도쿄 메트로와 도에이 지하철의 전 노선을 이용할 수 있으며, 비용은 ¥800 (24시간권), ¥1,200 (48시간권), ¥1,500 (72시간권)으로 합리적인 편이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후 출구로 나와서 버스 티켓이라고 쓰여있는 곳에서 Tokyo Subway 티켓을 3, 2, 2일짜리로 3개 구입하였다. (총 ¥3,900의 비용이었다.) 8박 9일의 일정이었지만 이렇게 티켓을 구매했을 때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장벽이 더 있었으니. 구글 지도로 경로를 검색해보니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가는 방법이 무려 세 가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 세 가지는 아래와 같았다. (구글링을 더 해 보니 게이세이 본선과 JR선을 이용해서 시내로 가는 방법도 있는 것 같다.)
JR 나리타익스프레스 (NEx)
케이세이 스카이라이너: 한국으로 치면 스카이라이너는 서울-인천공항 급행 공항철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케이세이 스카이엑세스 특급: 한국으로 치면 스카이액세스는 서울-인천공항 일반공항철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므로 스카이액세스는 일반 지하철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을 해 봤는데 고려해야 할 옵션이 무려 세 가지! 비용도 꽤나 차이가 났는데 얼추 3:2:1의 수준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다이몬 역까지 가는 여정이었는데 위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타더라도 소요되는 시간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케이세이 스카이엑세스 특급 티켓을 구매했는데 인당 ¥1,350의 비용이 지출되었다. 스카이라이너는 2,750엔이었고 나리타익스프레스는 3,550엔 정도 했지 싶다. 케이세이 스카이엑세스 특급은 지정 좌석제가 아니라서 서서 가야 할 수 있다는 불편이 있었지만, 정작 이용해 보니 이용객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수월하게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5개월 가까이 지난 터라 글을 쓸 게 있을까 싶었는데 쓰다보니 길어진다. 호텔에 도착해서부터는 다음 글로 넘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