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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l 31. 2024

고고학, 좋아하세요?

[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1편 '고고학'


고고학, 좋아하세요?


   첫 데이트에서 들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고학이라니, 아마도 엉뚱한 주제라고 생각했거나 독특한(혹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당시 나의 답변을 거절로 오해했다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훨씬 나중에, 지금은 남편이 된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안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일할 때도 고고학 다큐멘터리를 항시 틀어놓는 사람이었다(그때 그와 나는 같은 회사에 재직 중이었다). 평소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히스토리 채널을 즐겨 보고 앤드류 콜린스(‘누...누구요?’)의 <금지된 신의 문명>이나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과 같은 책을 읽는다고 했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좋아하는 걸 넘어 동경한다고 했고,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류의 3대 질문에 누구나 답을 구하고 싶지 않냐고 되물었다(‘헙,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만약에 신이 있어서 죽기 전에 딱 한 번 과거를 보여준다고 하면, 이집트 대피라미드를 건립하는 순간으로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어떻게 건설했는지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라며.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니,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아무튼 그날 그와의 대화는 내겐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고고학에 무지한 내 기준에서 그는 관련 지식을 빼곡하게 아는 것처럼 느껴졌고 새로운 발견과 온갖 루머(고대 문명의 외계인 음모설 등)까지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 나는 그의 오해와는 정반대로 ‘취향이 참 뚜렷한 사람이구나’라며 감탄했다. 고고학은 이전까지는 그저 회사 동료였던 그를 다시 보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그와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의 표현처럼 ‘스며들었다’가 적절한 설명인지도 모르겠다. 고대의 미스터리는 정말로 외계인을 들먹이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웠고(히스토리 채널의 <Ancient Aliens>라는 프로그램의 취지가 바로 이렇다),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고고학적 발견은 경이로웠다. 어쩌면 문명이라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동의하게 되었고, 기회가 된다면 그런 유적지에 가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체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러니 우리가 신혼여행지로 몰타(Malta)를 정하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몰타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지로 널리 알려졌지만, 또한 고대 거석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즈간티아(Ggantija), 하가르 임(Hagar Qim), 므나이드라(Mnajdra) 등 섬 곳곳에서 발굴된 거석 신전은 기원전 3600~250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도 무려 천 년 이상 앞선 것이다.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크고 무거운 돌을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쌓아 올렸단 말인가, 이 같은 건축물은 도대체 무슨 용도로 지어졌으며 이렇게 발전한 문명이 어쩌다가 갑자기 사라졌을까. 흠 아무리 생각해도 문명의 수수께끼나 소멸은 신혼여행에서 떠올릴 만한 주제는 아닌 듯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는, 다소 엉뚱하지만, 수레바퀴 자국(Cart ruts)이라 일컫는 흔적을 찾는다며 들판을 헤매고 다녔던 일이다. 유적지를 방문하는 걸로도 부족해 우리는 구글 맵을 켜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광활한 벌판을 돌아다녔다. 워낙에 넓은 공간이라 시간을 절약한다며 둘이 흩어져서 찾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두 줄로 길게 이어진 바퀴 자국을 발견했다. 오, 어찌나 반갑던지! 이런 관광객은 우리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외국인 노부부를 마주쳐 웃었던 기억도 난다(미래의 우리의 모습인가?!). 그렇게 몰타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돌과 흙으로 된 유적지를 열심히 찾아다녔고 파랗고 아름다운 지중해에는 정작 발 한번 담그지 않았다.


몰타의 'Cart ruts'


   지금까지 거의 십 년 전 이야기였다. 요즘도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OTT로 고고학 다큐멘터리를 본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없으면 이미 본 걸 또 틀어놓는다. 그러다가 남편은 소파에서 잠이 들고 결국에 끝까지 시청하는 건 나다. 



*이미지 출처: Google,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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