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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Sep 04. 2024

자전거, 좋아하세요? (번외 편)

[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2편 '자전거'

   

   지난해 나는 남편과 함께 자전거 대회를 세 차례 참가했다. 그중 두 번은 완주하고 한 번은 라이딩을 포기했다. 대회 출전 당시에 적었던 일기를 모아서 ‘자전거, 좋아하세요’의 번외 편을 올려본다. 일기 형식이라 아무래도 대회의 생생한 체험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어색한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2023.8.27 ( 

내 인생 첫 자전거 대회     


어제 장수 자전거 대회에 참가해서 무사히 완주했다. 89km를 무려 6시간 동안 달렸고, 2시 반까지 들어와야 기록 인정인데 2시 27분(겨우 3분 남기고!)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10위권 사람들은 3시간 안쪽에 들어왔다고 하니, 나는 2배가 걸린 셈이다. 중간에 사고나 부상으로 드롭한(DNF=Did Not Finish) 사람들을 빼면 거의 꼴찌나 다름없다. 어쨌든 사고 없이 완주해서 다행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게 뿌듯하다. '아름다운 꼴찌상' 같은 건 없냐고 남편과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마지막 고지에서 우리가 고군분투하는 걸 지켜보셨던 주최 측 관계자분이 경품이었던 장수 사과즙 한 박스를 선물로 주셨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걸 축하한다면서. 힘들어서 경기장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깜짝 놀랐다. 어쩐지 마무리까지 완벽한 대회였다.     


대회라는 걸 처음 참가한 나는 사실 경기 시작 전부터 겁을 먹었다. 너무 긴장했는지 밤새 거의 뜬눈으로 보냈고 아침 5시에 샌드위치를 먹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서 온 사람들,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 딱 봐도 자전거를 잘 타게 생긴 사람들이 속속 경기장에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아드레날린 뿜뿜했는지 초반부터 너무 빨리 달렸고, 이렇게 여럿이 한꺼번에 라이딩하는 경험이 없는 나는 양옆으로 빠르게 추월하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아예 뒤로 처졌다. 나 때문에 남편도, 함께 대회에 참가한 지인도 후미에서 달려야 했다. 오르막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힘들었고 남들은 신나게 속도를 내는 내리막길도 나는 무서워서 브레이크를 계속 잡으며 내려왔다. 손에 힘을 너무 줬더니 자전거를 다리로 타는 건지 팔로 타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무릉고개에서 내려올 때는 내가 마지막이라 바로 뒤에서 경찰차와 경찰 오토바이가 에스코트해 주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론 호위무사처럼 안심이 되기도 했다.      


MTB를 타는 몇몇 분들이 후미에서 우리와 엎치락뒤치락하며 탔다. 재밌는 건, 비슷한 실력이라 그런지 한번 만난 사람을 계속 만난다는 것이다. 서로 도움도 주고(다리에 쥐 날 때 마시는 음료도 나눠주고) 응원도 하면서 훈훈한 분위기에서 달렸다. 거의 마지막엔 남편이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가다 서기를 반복했는데 경찰분들이 그때마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천천히 가도 좋으니 안전하게 완주하라고 얘기해 주셔서 감동이었다. 주최 측 관계자 한 분은 보급소에서 뿌리는 파스를 구해 차량으로 가져다주시기까지 했다. 정상까지 800m밖에 안 남았고 나머지는 내리막이니 이제 다 왔다고 힘내라고 응원도 해주셨다. 정말 긴 업힐에, 더위에, 남편의 부상까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는데, 완주를 독려해 주신 고마운 분들 덕분에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장수 자전거 대회는 전반적으로 보급소도 준비가 잘되어 있었고(트럭 뒤칸에 얼음물을 받아서 생수와 코카콜라를 넣어 둔 건 기발했다.) 관계자분들이 참가자들 모두 안전하고 즐거운 라이딩을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다. 인생 첫 자전거 대회에서 비록 꼴찌를 기록했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좋은 추억을 얻었다. 장수 파이팅!!!   


  



2023.9.16 ()     

충주 그란폰도 포기     


오늘은 충주 그란폰도 자전거 대회 날이었다. 새벽 4시 반에 집을 나와 충주로 향했다. 비 예보가 있어서 바로 전날까지도 대회 개최 여부가 의문이었는데, 취소 문자가 없으니 남편과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할 때부터 내리던 비가 충주에 가까워질수록 더 거세졌다. 충주 경기장엔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비가 그치기는커녕 폭우로 변해갔다. 나중엔 바닥에 물이 고일 정도였다. 대회 주최 측에서는 회의 끝에 그란폰도 경기는 취소하고 코스가 짧은 메디오폰도만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의견이 갈렸다. 비가 와도 충주까지 왔으니 무조건 타겠다는 부류와 노면이 젖어서 위험하니 탈 수 없다는 부류. 우리는 후자였다. 안 그래도 내리막이 무서운데 비까지 오고 물이 고여 있다면 자전거가 미끄러질 것 같았다. 사고의 위험은 피하고 싶어 아쉽지만 우리는 출발하지 않고 포기(DNS: Did Not Start)했다. 날씨 변수 때문이라 그런지 출발하지 않은 참가자들에게도 기념품과 완주 메달은 줬다. 자전거를 아예 타지도 않고 완주 메달을 받은 게 웃기지만, 참가비도 내고 시간도 들여서 왔는데 빈손으로 가는 것도 실망스러웠을 것 같다. 나중에 들으니 약 800여 명의 참가자가 우중 라이딩을 했다고 한다. 진짜 의지의 한국인이다. 

    

충주까지 왔는데 그냥 서울로 올라가기 아쉬워서 수안보 온천에 들렀다. 온천 자체가 오랜만이라(코로나 이후 처음이지 않았나 싶다) 좋았다. 맛있는 점심도 먹고 드라이브도 하고... 비록 라이딩은 못했지만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좋았다. 대회에 나간다고 긴장해서 잠도 잘 못 잤는데 온천욕으로 몸도 나른하게 풀려서 집에 오자마자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 새벽에 쓴 일기)     





2023.11.17 () ~ 2023.11.18 ()     

섬섬여수 그란폰도 대회  

   

여수에 왔다. 내일 열리는 자전거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자전거 한 번 타겠다고 무려 400km를 눈, 비를 뚫고 내려오다니(정말로 비가 오다가 눈이 내리다가 그랬다), 남편과 둘이 얘기 나누며 웃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성이 뻗쳤다 싶다. 오늘 오후 3시부터 경기장에서 사전 배번표와 기념품을 나눠줬다. 기념품은, 몰랐는데 무려 ‘여수 갓김치’라고 한다. 지난번 장수 대회에선 쌀을 줬는데, 자전거를 타면 ‘쌀’과 ‘김치’가 나오니 가정주부로서 반가운 일이다.     


내일 9시에 경기 시작이다. 100km 정도를 타야 하는데, 중간에 컷오프가 있다. 너무 느리게 달리면 회수 차를 타야 한다. 날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걱정이다. 내일의 목표는 완주가 아니다. 사고 없이 타기, 무리하지 말기가 목표다.      


바람을 느끼며 완주     


여수 자전거 대회를 무사히 완주했다. 정말 다행이다. 추위는 단단히 대비해서 괜찮았는데(붙이는 핫팩을 양말 위에 붙인 게 신의 한 수였다), 문제는 바람이었다. 맞바람엔 속도가 나질 않았고 측풍엔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내리막길은 안 그래도 속도 때문에 바람이 강한데 오늘은 그 정도가 심했다. 바닷바람이 무섭다는 걸 이번에 경험했다. 특히 다리 위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너무 무서웠다. 자전거가 휘청거리다 못해 아주 옆으로 쓸려가는 위험한 순간도 연출됐다. 등골이 오싹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닌 듯, 돌풍이 불 때마다 여기저기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핸들을 꽉 잡은 채 자전거를 지면으로 누르면서 타야 했다.      


대회 이름이 왜 ‘섬섬여수’인가 했더니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통과하는 코스여서였다. 이렇게 돌풍이 부는 다리를 10번(5개 다리 왕복) 건너야 하는 코스였다. 꽤 많은 참가자가 강풍 때문에 중간에 대회를 포기한 듯하다. 다리 중간에 멈추어 서 있는 자전거가 많았다. 나도 '그만 탈까'하는 고비가 몇 번 있었지만, 그래도 참고 버텨서 메디오폰도 85km(강풍으로 코스가 짧아졌다)를 5시간 8분 만에 완주했다. 장수 대회와 달리, 이번엔 꼴찌는 아니었다. (휴~ 다행.)     


오늘 대회는 바람 때문에 난도가 높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우선은 풍경. 긴장한 채 힘들게 페달을 밟느라 풍광을 오래 눈에 담지는 못했지만, 살짝 고개를 돌렸을 때 양옆으로 펼쳐지는 바다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바람이 거세니 넘실대는 물결이 그림 같았고 경이감마저 들었다. 또 바람 부는 소리도 인상적이었다. 바람이 모든 소리를 앗아가서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다른 라이더들과 멀찍이 떨어져 홀로 달릴 때는 내 귀에 오직 강한 바람 소리와 내 숨소리, 둘밖에 들리지 않았다. 자연의 존재와 나의 존재를 몸소 느꼈달까, 신기한 경험이었다. 힘들고 무서웠던 순간들보다 이때의 여운이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사진 제공: 등대지기 님, Sophie 님)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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