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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ug 28. 2024

자전거, 좋아하세요? (3)

[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2편 '자전거'

  

   모든 게 이렇게 잘 맞기만 하면 참 좋겠지만, 남편과 내가 확실히 다른 게 있다. 바로 소비의 문제. 남편은 소위 ‘장비빨’을 세우는 스타일이다. 자전거라는 취미는 상식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 것 같지만(자전거 한 대와 내 몸뚱이만 있으면 되니까), 이것저것 다 갖추겠다고 들면 무척이나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다. 일단 자전거 전용 기능성 옷인 저지와 빕숏은 브랜드별로 차이가 있지만 한 벌에 20~50만 원 선이다. 계절별로 나뉘는 데다가 패션까지 따져 여러 벌 장만하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헬멧과 고글, 장갑, 클릿 슈즈, 라이트, 심박계, 자전거 속도계(가민) 등 용품도 하나씩 구비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무엇보다 그놈의 업그레이드. 어느 날인가 남편이 자전거 휠(바퀴)을 세일가에 구매했다며 자랑했는데 가격이 무려 299만 원이었다. 이미 본인의 자전거가 350만 원 이상(?)이었던 걸로 아는데(핸들 등 다른 것도 업그레이드한 상태였는데 가격을 숨기는 통에 정확히는 모른다), 휠까지 바꾸면 도대체 얼마짜리 자전거가 되는 건가. 휠을 바꾸면 무엇이 좋은 건지 물었더니, 알루미늄에서 카본으로 바꾸는 거라 자전거 무게가 몇백 그램 줄어든다고 했다(솔직히 속으로 본인의 몸무게를 빼는 게 건강에도 좋고 비용도 덜 드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그 외에도 장점이 있겠지만, 아무리 마음을 열어도 바퀴 두 개의 가격으론 납득하기 힘들었다. 한강을 달리는 자전거가 차 한 대 값이라는 말이 과장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나마 기변은 양심상 참고 있는 듯한데, 요즘도 옆에서 핸드폰으로 자전거 용품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자신의 자전거만 업그레이드하는 게 민망했는지 작년에 남편은 내 자전거를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좋은 핑곗거리도 있었다. 자전거 대회 출전을 위한 준비. 작년에 나는 라이더 10년 경력 처음으로 자전거 대회에 도전했다. 남편은 여러 차례 경험이 있지만, 나는 겁도 나고 실력도 부족해 꺼렸었다. 그런데 코스가 조금 짧은 대회가 있다고 해서 용기를 내 남편과 함께 출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핸들, 휠, 구동계(정확히는 스프라켓과 뒷 드레일러 케이지를 변경했다고 남편이 정정함)를 한꺼번에 교체하는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었고, 내 자전거는 1.5kg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자전거 무게를 줄이는데 10g에 10만 원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속도계와 심박계, 헬멧도 새로 장만했다. 내 장비를 사는 건데 남편이 더 적극적이었다. ‘장비빨’도 대리 만족 같은 게 있나 싶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장비빨’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때 깨달았다. 장비 교체 후에 내 라이딩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던 것. 그동안 대회를 준비한다며 석 달을 꾸준히 훈련해서 쌓은 실력보다 자전거 업그레이드의 효과가 훨씬 컸다. 오르막을 오를 때 힘이 덜 들고 속도가 붙었으며, 한 번에 오르지 못했던 오르막을 멈추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열심히 훈련한 게 조금 허무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자전거 대회를 기다렸다. 



     

   2023년 8월 26일, 고대하던 장수 전국 자전거 대회가 열렸다. 내 인생 첫 자전거 대회였다. 총 거리 89km에 누적 고도는 1,570m였고, 하나의 큰 오르막과 두세 개의 작은 오르막이 있는 코스였다. 내 목표는 '무사히 완주만 하자'였고, 오전 8시에 출발해 6시간 남짓을 달려 결승선에 들어왔다. 2시 반까지 들어와야 기록 인정이었는데 3분을 남기고 통과했다. 중간에 부상 등 여러 이유로 경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꼴찌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후미에서 달리는 바람에 내리막길에서 경찰차와 오토바이의 에스코트(?)를 받기도 했고(호위무사처럼 든든했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는가), 대회 운영하는 분들과 지역 주민들의 열렬한 응원도 받았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아름다운 꼴찌상’ 같은 건 없나 했는데, 고군분투하는 걸 지켜보셨던 관계자분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며 장수의 특산품인 사과즙 한 박스를 경품으로 챙겨주셨다. 완주의 뿌듯함에 깜짝 선물의 훈훈함까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이후로도 9월 16일 충주 메디오폰도, 11월 18일 여수 메디오폰도에 잇따라 출전했다. 충주는 우천으로 인해 포기(DNS=Did Not Start)했고, 여수는 추위와 바닷바람 때문에 고생했지만 85km를 5시간 8분 만에 완주했다. 그래도 첫 경기보단 기록이 조금 나아져서 꼴찌는 면할 수 있었다. 여전히 대회는 사고나 부상의 우려 때문에 겁이 난다. 그래도 통제된 도로를 두 바퀴로 실컷 질주하는 경험, 체력의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페달을 밟는 경험은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남편의 취미였던 자전거는 나의 취미가 되었다. 얼마 전 세계 3대 그랜드투어 중 하나인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가 끝났다. 매년 그래왔듯이 경기가 열리는 3주 동안 우리 부부는 밤마다 TV 앞에 앉아 있었다. 긴 경기에 남편은 지쳐 잠들고 오히려 내가 마지막까지 경기를 지켜보다가 선수들이 결승선에 도착할 때쯤 남편을 깨운다. 서로 응원하는 팀도 선수도 다르지만, 쫄깃한 심장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2023년 장수 한우랑 사과랑 전국자전거대회 (사진 제공: 등대지기 님)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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