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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Sep 04. 2024

시계, 좋아하세요? (1)

[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3편 '시계'


   남편의 취미가 '시계'라고 하면 많이들 이렇게 오해한다. '있는 집 자식인가 보다' 혹은 '돈을 잘 버나 보다' 등등. 아마도 고가의 명품 시계를 여럿 소유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하는 말인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명품이라 할 만한 시계는 아버지께 물려받은 그의 인생 최초의 시계 하나(이때부터 시계에 푹 빠졌다고 한다)와 결혼 예물 시계 정도이다. 유명 브랜드의 시계를 좋아한다기보단 오히려 시계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에 가깝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대상이 시계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면 놀라운 지점이다.      




   시계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으니 일화를 소개해본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영상엔 케이스백(뒷면)을 연 시계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시계의 태엽이 풀리는 순간(Unwinding)이 찍혀있었다. '아, 시계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구나. 신기하네.' 정도가 나의 최대치 감상이었다면, 남편이 보낸 이후의 메시지는 이런 식이었다. "죽어 있던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이 경이롭지 않아?"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기계식 시계(태엽을 감는 시계)를 새로 장만한 지인에게 남편은 혹시 시계를 장기간 차지 않고 보관하고 있더라도 가끔씩 꺼내서 태엽을 감아주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아무래도 시계도 기계니까 그냥 놔두면 녹이 슨다거나 고장이 나나 보다.’ 지인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남편의 이어지는 말은 의외였다. "자주 만져주면, 마음이 가거든요." 지인과 나는 동시에 빵 터졌다.     


   시계에 생명 운운, 마음 운운이라니! 시계란 자고로 시간만 잘 알려주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는 내겐 쉽게 이해되지 않는 차원의 이야기다. 배터리 시계든 스마트 워치든 내겐 크게 다르지 않은데 남편에겐 그렇지 않다. 남편은 태엽을 감아야 작동하는 기계식 시계를 특별히 애정한다. 사람의 에너지를 동력으로 해서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를 개발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냐고도 덧붙였다.     




   이런 사람이니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계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덜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이 정도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시계를 판매하는 일에서도 남들과는 무언가 다를 것 같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시계를 취미로 하던 남편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마이크로 브랜드 시계를 수입하는 딜러로 인생 제2막을 열었다. 


<시스루 케이스백과 무브먼트(Gruppo Gamma)>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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