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3편 '시계'
지난 글에서 시계가 취미였던 남편이 시계 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썼다. 취미가 사업이 된 사연은 잠시 뒤로 미루고, 여기서 잠깐 시계의 종류를 설명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시계에 관심이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남편의 취미를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니 시계의 세계란 참으로 복잡하고도 흥미로웠다. 기계식 시계란 무엇이고, 매뉴얼과 오토매틱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남편이 수입하겠다는 마이크로브랜드 시계는 또 무엇인지 비전문가인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설명해 보겠다.
기계식 시계란 쉽게 말하면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고 태엽으로 움직이는 시계다. 기계식 시계는 다시 매뉴얼과 오토매틱으로 나뉘는데, 매뉴얼은 사람이 손으로 태엽을 감아야만 움직이는 시계이고 오토매틱은 시계를 팔에 차고 움직일 때 움직임에 따라 자동적으로 태엽이 감기는 시계를 말한다. 오토매틱 시계도 태엽을 감는 용두(손목시계 옆에 튀어나와 있는 부분)가 있어서 원하면 매뉴얼처럼 손으로 태엽을 감을 수도 있다. 기계식 시계가 아닌 시계로는 배터리를 넣어 움직이는 쿼츠 시계가 있고, 요즘 많이들 사용하는 스마트 워치도 있다.
남편이 수입하는 시계는 마이크로브랜드 시계다. 롤렉스나 오메가처럼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아닌 소규모 창업 시계 브랜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체로 합리적인 가격에 독창적인 디자인의 시계를 한정 수량으로 선보인다. 남편의 사업 취지는 이렇다. 명품 일색인 우리나라의 시계 시장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시계를 발견하는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 그래서 브랜드 네임도 ‘인투와치(INTOWATCH)’ - 시계에 푹 빠진 – 이다.
그러니까 ‘인투와치’는 시계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니치 마켓 브랜드이다. 남편처럼 시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다 보니 가끔 재밌는 일들도 있다. 언젠가는 시계 인플루언서인 분이 매장을 방문했다. 남편과 거의 세 시간을 시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났다. 이제 가는가 보다 했는데,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두 사람이 다시 그대로 매장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걸려온 전화에 “이제 가야지.” 했지만, 그 이후로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나에겐 신기한 일이지만 남편은 담담한 걸 보니 한번 방문하면 서너 시간씩 대화를 즐기다 가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다. 시계가 취미인 사람들을 위한 사랑방 같은 느낌이랄까.
남편이 수집, 판매하는 시계 중에는 ‘빈티지 밀리터리 워치’도 있다. ‘밀리터리 워치’는 실제 각 나라의 국방부가 발주해서 군대에 납품된 시계로 그중에서도 오래된 시계들 앞에 ‘빈티지’가 붙는다. 국내엔 판매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희귀한 품목인데, 남편은 역사와 스토리가 담겨 있는 시계라서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더티 더즌(Dirty Dozen)’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W.W.W(Watch Wristlet Waterproof)’가 유명하다. ‘W.W.W’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12개 브랜드에 발주한 군용 시계를 말한다. ‘더티 더즌’은 12명의 주인공이 나오는 60년대 2차 세계대전 영화 <더티 더즌(The Dirty Dozen,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제목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남편은 일부는 해외 옥션을 통해, 나머지는 독일에서 열린 시계 박람회(Watch Fair)에 직접 가서 12종 중 총 9개를 수집했다.
창업 초기 팝업스토어를 열었을 때, 이 ‘W.W.W’의 실물을 보겠다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분은 매장 입구에서부터 발을 동동 구르시더니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시계를 팔목에 올려보셔도 된다고 했을 때 그분의 감격에 겨운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나로선 이토록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고 해당 시계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다. ‘W.W.W’는 남편과 나에게도 특별하다. 빈티지 시계의 히스토리 위에 수집을 위해 갔던 독일 시계 박람회에서의 스토리가 한 층 쌓였기 때문이다.
(독일 시계 박람회 참관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더티 더즌' 이미지 출처: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