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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Sep 18. 2024

시계, 좋아하세요? (3)

[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3편 '시계'


   독일의 시계 박람회(Watch Fair)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우리는 유럽 출장의 일정을 맞춰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두 곳의 시계 박람회를 방문했다. 남편은 출발 전부터 ‘어떤 시계들을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고, 나는 시계 박람회라는 게 처음이었기에 그저 모든 게 신기했다. 그중에서도 뮌헨(‘Euro Watch Fair’)은 규모가 커서 유럽 전역의 시계 리테일러와 개인 컬렉터들이 한자리에 모인 듯했다. 다양한 시계들이 진열장마다 가득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파가 몰려 열기가 대단했다. 엄청난 현금이 유통되는 곳이어서(현금 거래만 가능) 곳곳에 경호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방문객 중에는 양복을 점잖게 빼입은 나이 지긋한 신사부터 현금다발을 들고 온 부유한 패밀리(한껏 꾸민 아내와 아이들까지 대동한 대가족이었는데, 영화 <대부>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까지 다양했다. 새삼 시계 수집가들이 전 세계에 이렇게 많구나 싶어 감탄이 나왔다.   

   

   남편이 수집할 시계를 살펴보는 동안 나는 박람회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롤렉스, 오메가, 파텍 필립, 바쉐론, IWC, JLC 등 하이엔드 브랜드부터 빈티지 시계, 포켓워치, 그리고 탁상시계까지 정말 ‘없는 게 없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도 스트랩과 파우치 등 각종 용품, 브랜드별 핸즈와 다이얼 등의 부품들, 전문 서적까지 신기한 볼거리가 많았다. 다들 나만의 시계를 찾느라 분주했고 여기저기서 거래가 이루어지느라 소란스러웠다. 시계를 손목 위에 올려보는 사람, 케이스 백을 열어 부품을 확인하는 사람, 한쪽 눈에 루페를 끼고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 등등, 나는 사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남편도 나의 존재는 잊은 지 오래였고 어찌나 열심히 들여다보던지 저러다가 곧 시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어쩐지 그런 환상이 눈앞에 그려졌다).   


(메인) 뮌헨 시계 박람회 / (왼쪽) 프랑크푸르트 시계 박람회 / (오른쪽) 시계에 빨려 들어갈 듯 한 남편

  

   박람회를 둘러보다가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시계 셀러 부스들 사이에 보석상이 하나둘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보석에도 관심이 있는 걸까 생각했는데, 어느 커플을 보고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부부나 커플이 같이 온 경우에 남자가 자신의 시계를 사면서 아내나 연인에게 입막음용 혹은 뇌물용(?)으로 보석을 하나 선물하는 것이었다. 틈새시장을 노린 보석상도 그렇고 연인들의 미묘한 소비 심리도 재밌었다. (아, 나도 보석이나 하나 사달라고 할 것을.)    

  

   남편은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닌 빈티지 밀리터리 장르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전설적인 이름의 시계들도 만났고 컨디션이 NOS(New Old Stock)인 빈티지 시계도 발견했다며 놀라워했다. 셀러들은 전반적으로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친절한 편이었고, 어느 셀러와는 10분 넘게 해당 시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며 즐거워했다. 아무튼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박람회를 빠져나올 수 있었고, 마치 다른 시공간을 여행한 것 같은 비현실적인 감각이 긴 여운을 남겼다. 시계 애호가인데 유럽 여행 기간이 마침 박람회와 일정이 맞는다면, 하루쯤 투자해서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시계를 구매하지 않아도 입장료 10~15유로만 내면 참관할 수 있다).     


박람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시계들




   그렇게 발품을 팔아서 수집한 빈티지 밀리터리 시계는 남편의 매장에서도 시계와 잘 어울리는 빈티지 진열장에 모셔두고 있다. 빈티지 시계가 팔려나갈 때면, 남편은 좋으면서도 아쉬운, 복잡한 심경이 드는 듯하다. 하루는 인스타 계정에 시계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그토록 간절했던 마음을 기억한다. (...) 내 곁에 있는 것보다 너를 더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행복하게 지내렴.” 이렇게 절절한 연서라니…, 나와 남편이 헤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이런 편지는 받아보지 못할 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시계를 질투해야 하는 건가 싶다. 가끔은 좋아하는 시계를 실컷(사업 자본이 허락하는 한에서지만)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사 모을 수 있어서 시계 사업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인투와치(INTOWATCH) 매장의 빈티지 밀리터리 시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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