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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Sep 25. 2024

시계, 좋아하세요? (4)

[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3편 '시계'

  

   시계 애호가에서 시계 딜러가 되었으니 누구나 부러워하는 ‘덕업일치(덕業一致)’의 삶을 누리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막상 취미가 일이 되면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수집한 시계를 소장하고 싶은 마음과 팔아야 한다는 마음 사이의 갈등은 차라리 가벼운 고민이다. 좋아하는 분야이니 열성을 다할 거라는 주위의 기대,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 현실적인 제약을 맞닥뜨릴 때의 좌절감, 불안정한 수입에서 오는 불안감 등등. 가끔 남편이 사업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면, 어쩌면 취미는 취미로 둘 때 가장 마음이 편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이왕 ‘좋아하는 일’이 ‘하는 일’이 된 이상, ‘잘하는 일’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좋아하는 일 = 하는 일 = 잘하는 일’은 한때 내가 꿈꿨던 삶이다). 남편은 우선 시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워치 메이커 교육’을 수료했다. 교육과정은 시계의 구조 등을 배우는 이론부터 무브먼트 분해 및 조립을 익히는 실습까지를 포함한다. 시계를 단지 수입해서 판매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수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남편은 집에서도 밤을 새워가며 시계의 분해와 조립을 연습했는데, 이때 나는 시계의 부품이라는 게 얼마나 작고 정밀한지 처음 알았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남편이 루페(볼록렌즈를 활용한 작업용 확대경)를 낀 채 시계를 수리하고 있었는데, 순간 부품 하나가 밖으로 튕겨 나갔다. 남편이 혼자 한참을 찾다가 도움을 청했고, 나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가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던 중 미세한 감각이 느껴져 봤더니, 정말 머리카락만큼 가늘고 자른 손톱만큼 조그만 조각이 있었다. 이런 조각 수백 개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때만 시간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계가 된다는 사실이 남편의 말대로 경이롭게 느껴졌던 순간이다.     


   남편이 사업을 위해 배운 또 다른 분야는 가죽공예다. 시계와 가죽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시계의 가죽 스트랩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언젠가 남편이 빈티지 여성용 시계 다이얼에 초록색 가죽 스트랩을 만들어서 선물해 줬었다. 직접 가죽을 고르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했다고 생각하니 그 시계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 중에 ‘줄질(스트랩 교체)’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남편을 통해 처음 알았다. 브레이슬릿, 가죽 스트랩, 나토 스트랩, 러버밴드 등을 이용한 ‘줄질’로 하나의 시계를 다양한 스타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이다. 시계 수집가들의 가죽 스트랩 ‘줄질’을 위해 남편은 지금도 가죽을 다루는 기술을 연마 중이다.     



 

   시계는 처음엔 남편의 취미였고 지금은 일이 되었다. 앞으로도 남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 같은 일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내게도 시계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나의 사물, 기계, 소품에 불과했던 게 이제는 누군가의 가치관, 정체성, 개성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시계 안에 과학이, 역사가, 스토리가 담겨 있다는 남편의 말에도 이젠 기꺼이 동의한다. 어쩌면 이러한 내 생각의 변화가 가장 신비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가죽 스트랩을 제작해서 선물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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