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4편 '러닝'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표현이 있다. 러너스 하이란, 달리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대신 쾌감이 차오르며 계속해서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상태를 말한다. 쓰러지기 직전에 불어오는 두 번째 바람이라고 해서,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고도 한다. 김연수 작가가 소설(<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소재로 썼고, 스티븐 킹도 주인공의 러너스 하이 상태를 묘사할 때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더 멀리 상승하는 감각’(<고도에서>)이라며 ‘고양(eleva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제는 러닝 2년 차인데 ‘러너스 하이’를 느꼈다며 경험담을 얘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어째 매번 그만 달리고 싶다는 생각과 싸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처음엔 몸 구석구석이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잠시 후엔 무릎, 정강이, 골반, 허리, 목 등이 힘들다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갑자기 등과 어깨가 아프다고 구시렁거리고, 왼쪽 정강이 앞부분이나 오른발 넷째 발가락이 소리를 내지르기도 한다. 평소엔 신경 쓰지 않았던 신체 부위가 자기를 좀 돌아보라고 외친다. 그러면 가장 먼저 달리는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긴장한 곳은 힘을 빼고 불편한 곳은 조심히 디디며 나아간다. 그렇게 1~2km 정도를 뛰면서 아픈 부위를 어르고 달래면 통증이 서서히 줄어든다. 통증을 돌보며 달린달까. 그러면 이제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나머지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된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좋은 날대로 그렇지 않은 날은 그렇지 않은 대로 나를(나의 몸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러닝을 하면서 좋은 건, 내 몸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점이다.
달릴 때면 몸은 죽도록 힘든 대신 머리는 가벼워진다. 나를 괴롭히던 고민이나 미래의 걱정은 사라지고 ‘지금 여기의 나’만 남는다. 내 몸의 움직임과 호흡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가 신체가 달리는 데 적응해 장거리를 일정한 심박수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생각이라는 게 돌아온다. 보통은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이런 순간을 <아무튼, 달리기>의 저자 김상민은 ‘고민의 본질만 남는다’라고 표현했는데 정확하다. 일정한 신체의 리듬이 아마도 생각의 리듬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가끔 써야 할 글을 생각하기도 한다. 글에 담을 내 생각을 정리하거나 글의 구조를 짜기도 한다. 그러면 ‘힘들다’, ‘멀다’와 같은 생각을 잊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혼자 달리기가 좋다. 남편이 러닝 파트너가 되는 것까진 괜찮은데, 여럿이 크루를 이루어 달리는 건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달리다 보면 러닝 크루를 만나기도 하는데, 남들과 페이스를 맞춰 뛰는 건 아직 내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팀으로 하는 운동보다 개인 기록으로 겨루는 운동이 내겐 맞는 것 같다. 자전거도 러닝도, 나 자신과의 싸움에 가깝다(물론 둘 다 팀으로 연습하면 기록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가끔은 라이딩과 러닝을 하루에 즐기는 날도 있다. 이럴 땐 운동을 멀리하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생활체육인(?)’으로 거듭났는가 싶어 황당하기도 하다. 남편의 취미 생활에 동참하다 내가 더 푹 빠졌다고나 할까.
비록 ‘러너스 하이’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지만, 꾸준히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러닝에 중독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달리기 중 불어오는 순풍(세컨드 윈드)’을 맞으며 중력을 거스르는 짜릿함을 느낄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