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4편 '러닝'
가끔은 이렇게 좋은 취미를 더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그랬다면 회사에서 매일같이 최고치를 경신했던 스트레스도 건강하게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예 어릴 적부터 체육인으로 컸다면? 상상이야 자유니까... 계획형 인간이라 매일의 운동을 착실하게 해내야 잠이 들 수 있었을 테고, 의외로 독한 구석이 있으니 자신과의 싸움에서 순순히 포기 선언을 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의 흐름에서 나온 결론인지,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마라톤 대회라는 걸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지역에서 5km와 10km 코스로 구성된 소규모 대회(제9회 송파구청장배 한성백제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남편과 함께 10K에 덜컥 신청부터 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2023년 8월 15일에 기부 마라톤 8.15km를 달린 이후에 꾸준히 거리를 늘려왔고, 9월과 10월의 달리기 누적 거리가 150km였다. 10km 이상도 서너 번 달렸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11월 말의 추위였다.
2023년 11월 26일, 인생 첫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날씨가 쌀쌀한 정도를 넘어 꽤 추웠지만, 긴장한 탓에 처음엔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출발 휘슬이 울리고 러너들 무리에 휩쓸려 평소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달렸다. 대회 초반의 오버 페이스를 주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조절이 쉽지 않았다. 얼마 못 가 달리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먹은 게 체한 것도 같고, 몸 어딘가에 담이 온 것도 같았다. 속도를 늦췄지만, 추위에 잔뜩 긴장한 몸이 영 풀리지 않았다. 결국은 걷다 뛰다(‘걷뛰’) 하다가 중간에 멈춰 서기도 하면서 겨우 완주했다. 그것도 컨디션이 좋은 남편이 끝까지 격려하면서 같이 뛰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나의 첫 마라톤 대회는 꼴찌를 기록했던 첫 자전거 대회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역시 첫술에 배부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시합이 끝나고 찾아왔다. 참가자가 많아 외투를 맡긴 짐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땀으로 젖은 옷을 입은 채 기다렸더니 몸살기가 돌았다. 집에 돌아와 쌍화탕에 감기약을 먹고 잠을 청했지만, 역시나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일주일을 꼬박 앓았다. 마라톤 신고식을 톡톡히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게, 나이를 생각하셔야지~”라는 엄마의 말에 오기가 발동해 다음 해 봄에 열리는 하프마라톤을 또다시 덜컥 신청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10km도 겨우 뛴 주제에 하프라니, 무슨 배짱이었나 모르겠다.
하프마라톤은 접수부터가 난관이었다.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통제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제법 이름이 있는 대회(서울하프마라톤)여서 그런지, 트래픽이 몰려 홈페이지가 먹통이었다. 남편과 둘이 핸드폰과 PC로 동시에 접속해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등록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하프 모집 인원이 8천 명이었는데 불과 한 시간 만에 마감되었다고 한다. 러닝이 붐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10km 이상을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었지만, 4개월여 남은 기간에 어떻게든 열심히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마음은 그랬으나….
한겨울의 러닝은 쉽지 않았다. 방한용품을 갖추어도 야외에서 뛰기란 힘들었다. 눈이라도 내리면 길이 얼어 뛸 수가 없었다. 운동은 정직하다. 꾸준히 하면 확실히 늘지만, 오래 쉬면 원상태로 돌아간다. 따뜻한 봄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훈련을 재기했다. 하지만 대회 전까지 뛰어 본 최장 거리가 12km에 불과했다.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거리를 대회에서 뛰어야 한다니…, 그렇다고 무를 수도 없으니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그냥 도전했다. 초심자의 행운 같은 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2024년 4월 28일 대회 당일, 나는 오버 페이스를 하지 말자 다짐했음에도 출발 1~2km를 평소의 내 기록보다 빨리 달렸다. 큰 대회가 불러일으키는 흥분이 있었고, 사람들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져 혼자 천천히 달리기도 어려웠다. 그랬더니 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남편과도 헤어지고 속도를 확 줄였지만, 한번 치솟은 심박수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나머지 거리를 모조리 힘들게 꾸역꾸역 달려야 했다. 페이스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지만, 당장은 벌인 일을 마무리 짓는 게 중요했다. ‘천천히, 꾸준히’를 되뇌며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무수히 많은 참가자가 나를 스쳐 지나갔는데, 그중엔 특이한 코스프레 복장(공룡이나 스파이더맨 복장)으로 뛰는 사람들도 있었고, 유모차 부대(아빠나 엄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함께 달리는 것)도 있었다. 아니,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유모차라니…. 힘든 와중에도 신기해서 웃음이 났고, 저렇게도 뛰는데 나도 한번 힘내보자 하는 동기부여가 됐다. 10km 지점을 지나 양화대교로 들어섰던 때도 잊을 수 없다. 어느 순간 그 넓은 폭의 다리를 나 혼자 달리고 있었다(앞뒤로 멀리 다른 러너들이 점으로 보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한강 다리를 두 발로 달려보겠나', '무슨 전세라도 낸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달렸다.
그런데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렸을까, 16km를 지날 때쯤 하프 제한시간 2시간 30분이 지나 버렸다. 그러자 도로 통제가 풀리기 시작했고, 경찰차가 다가오더니 인도로 달리라고 안내했다. 후미에서 띄엄띄엄 뛰던 러너들이 갑자기 우왕좌왕했고, 나도 ‘이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 싶어 난감했다. 그리고 인도로 달렸더니 횡단보도 신호마다 걸려서 멈춰야 했다. 조금 달리다가 멈춰 신호를 기다리고... 다시 달리고를... 반복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 결국 회수 버스에 올라탔다. 아쉽지만 하프마라톤 21km 완주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마라톤 대회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마라톤은 내 인생과는 먼 남의 이야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러닝을 취미로 하면서 내가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좋다. 대회의 결과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10K부터. 올가을 마라톤 대회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