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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Oct 16. 2024

자전거, 좋아하세요? (4)

[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2편 '자전거'


    실외 스포츠의 변수는 날씨다. 봄의 황사와 미세먼지, 여름의 폭염과 장마, 가을의 태풍, 겨울의 폭설 등 야외 활동을 방해하는 환경적 요인은 무수히 많다. 게다가 장거리 라이딩이라도 즐기려면 휴일이어야 하니, 쉬는 날에 날씨까지 맞는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다. 따져 보면 1년 365일 중 밖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은 무척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자전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실내 라이딩을 찾게 된다. 가장 흔하게는 헬스장에서 볼 수 있는 실내 자전거가 있지만, 야외에서 즐기는 사이클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땀 흘리며 지방을 태우는 유산소 운동일 뿐, 도무지 흥이 나지 않고 지루하다. 게다가 여럿이 공용으로 쓰는 실내 자전거는 안장의 높이 등 자전거 피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부상의 위험도 있다.     


   라이더들은 대개 실내에서 라이딩을 하더라도 잘 피팅된 자신의 자전거로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자전거 로라(Roller)'다. 정확한 한글 표기는 '롤러'가 맞겠지만, '로라'가 라이더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호칭이다. 로라는 라이딩 훈련용으로 개발되었지만, 밖에서 라이딩을 즐기기에 제약이 있을 때 애용된다.     



    

   로라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평로라, 고정로라, 스마트로라. 평로라는 드럼이라고 부르는 3개의 원통 위에 자전거를 그대로 올려놓고 타는 방식이다. 자전거를 고정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페달을 밟아야 하기에 중심 잡기가 어렵다. 가끔 양옆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바(Bar)가 있기도 하지만 아슬아슬 넘어질 것만 같아 나도 아직 도전해보지 않았다. 자전거 아카데미에서 평로라로 훈련을 받았던 남편의 말에 따르면, 자세 교정과 밸런스 훈련에 적합하다고 한다. 

    

   평로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정로라를 이용할 수 있다. 보통 자전거 뒷바퀴에 로라를 고정해서 저항을 주는 방식이다. 고정로라의 장점은 밸런스를 신경 쓰지 않고 저항을 조절하며 파워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가 고정되어 있기에 실제 라이딩의 느낌은 덜 하며, 뒷바퀴 타이어가 마모될 수 있고 분진이 날린다는 단점이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건 스마트로라(Smart Bike Roller)다. 스마트로라는 자전거의 뒷바퀴를 빼고 로라에 거치하는데, 로라 자체가 뒷바퀴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기계다. 가장 큰 장점은 자동 저항 조절 기능이 있어 야외에서 타는 것처럼 업힐과 다운힐로 구성된 코스를 달리는 느낌을 생생하게 구현한다는 점이다. 특히 ‘즈위프트(Zwift)’와 같은 인도어 사이클링 앱을 연결하면 TV나 모니터를 통해 버추얼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전 세계 라이더들과 함께 그룹 라이딩을 하는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고, 페이스북의 ‘좋아요’ 같은 기능으로 서로를 응원할 수도,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게임처럼 일정 포인트를 모으면 아바타의 자전거 키트(Kit)를 업데이트할 수도 있다.   


  

(왼쪽부터) 평로라, 고정로라, 스마트로라


   우리 집 거실에는 스마트로라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닥에는 소음 방지 매트가 깔려 있고 앞에는 더위를 식혀줄 선풍기가 놓여 있다. 가끔 남편의 자전거 혹은 내 자전거가 거치되어 있기도 하다. 야외 라이딩을 하기에 날씨나 시간이 마땅치 않을 때, 우리는 집에서 버추얼 라이딩을 즐긴다. 즈위프트를 연결하고 코스를 선택하면 화면에 아바타 라이더가 나타난다.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화면 속 아바타도 페달을 밟으며 나아간다. 주위 풍경이 바뀌는 걸 감상하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나는 보통 25~30km 거리를 1시간 정도 타는데, 옷이 땀에 흠뻑 젖고 허벅지 근육이 타는 느낌이 든다.     


   즈위프트는 실내에서 자전거를 타지만 코스가 다양해 재밌게 즐길 수 있다. 평지 코스부터 산악 코스까지 총 거리와 획득 고도를 고려해 선택할 수 있다. '와토피아'라는 가상의 공간도 있고, 런던이나 파리 같은 실제 도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도 있고, 사이클 대회가 열리는 시기에는 대회와 비슷한 코스가 특별히 열리기도 한다. 가끔 유학 시절이 그리울 땐 런던 코스를 선택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트라팔가 광장과 빅 벤(Big Ben) 앞 도로를 자전거로 달려볼 수 있어 마치 여행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조금 더 강한 훈련을 해보자 할 때는 그룹 라이드를 선택한다. 그룹 라이드엔 정해진 페이스가 있어서 나에게 맞는 걸 선택하면 되고, 로봇 라이더가 페이스 메이커로 등장해 라이더들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페이스 메이커는 한 번 놓치면 따라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중간에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케이던스를 유지하며 타는 훈련에 큰 도움이 된다. 그 밖에도 다양한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트레이닝 기능도 있다.   

  

   스마트로라는 실내에서도 현실감 있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대안이지만, 가격이 비싸고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세 종류의 로라 중 가장 이머시브한(immersive) 라이딩 경험을 선사한다. 즈위프트 앱도 기능과 코스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고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과 같은 메타버스와 VR 가상현실이 적용되는 날이 머지않을지도 모른다. 


즈위프트 그룹 라이드 화면




   며칠 전에는 모처럼 남편과 내가 둘 다 쉬는 날이라 자전거를 싣고 야외로 나갔다. 춘천에서 출발해 북한강을 따라 라이딩을 했는데, 청명한 가을 하늘이 반사된 수면 위로 윤슬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바람까지 선선하게 불어서 '그래, 이 맛에 자전거를 타지!' 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이렇게 라이딩에 알맞은 가을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추워지고 눈이 내리고 길까지 얼면 야외에서 자전거를 타기는 힘들어진다. 스마트로라는 바로 그런 시기에 진가를 발휘한다. 처음 남편이 스마트로라를 사겠다고 했을 때 가격도, 부피(집안에서 차지하는 공간)도 부담스러웠는데 말리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라이딩 취미를 쉬지 않고 즐길 수 있다.


2024년 10월 8일, 춘천 라이딩



*이미지 출처: Google, 즈위프트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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