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부자와 살고 있습니다] 4편 '러닝'
시작은 자전거였다. 작년 7월, 한창 자전거 대회를 준비하고 있을 때 남편이 심폐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러닝을 제안했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려 할 때 달음박질조차 안 하는 사람이 러닝이라니, 역시 자전거에 진심이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러닝은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한 ‘폐활량 늘리기 훈련’의 하나였다(자전거=최종 목표, 러닝=수단). 아무튼 저녁에 소화도 시킬 겸, 운동도 할 겸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따라나선 일이 지금의 내 최애 취미가 되어 버렸으니 신기한 일이다.
러닝? 러닝이 취미라니…. 사실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는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운동 신경이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최초의 기억이 트라우마(?) 비슷한 것으로 남은 케이스라고 할까? 초등학교 운동회에선가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결승선에 들어온 내게 엄마가 달리는 폼이 너무 이상하다며 웃었다. 좋지 않은 기록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달리는 모습이 우습다니, 엄마는 지나가는 말로 던졌겠지만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됐나 보다.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러닝이 좋았을 리 없다. 달리지 않던 사람이 달리려니 얼마 뛰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고 힘들었다. 1km를 뛰고 3분을 걷다가 다시 1km를 뛰는 식으로(일명 ‘걷뛰’) 겨우 4km 정도를 달렸다. 혼자라면 진작에 그만뒀을 텐데 장비빨을 중시하는 남편이 러닝화와 스마트워치부터 덜컥 장만하는 바람에 계속 뛸 수밖에 없었다. 러닝이 좋아지기 시작한 건, 천천히 달리면서부터였다. 어느 날부터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훈련을 했는데, 달리기가 조금씩 편해지는 게 느껴졌다. 심박수가 치솟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니 달리는 거리를 점진적으로 늘려도 괜찮았다. ‘LSD(Long Slow Distance) 트레이닝’, 장거리를 천천히 달리는 훈련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8월 15일 즈음에 처음으로 8.15km를 뛰었다. 한국해비타트의 ‘815 기부 런’이라는 게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여할 때마다 인증하면 독립유공자 후손의 보금자리 짓기에 815원이 기부된다고 했다. 이왕에 달리는 것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면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동네 한 바퀴를 더 돌아 8.15km를 채웠다. 별것 아니지만, 이날이 내겐 한 단계 도약의 날이었던 것 같다. 장거리를 달리면서 나의 한계를 스스로 깬 듯해 뿌듯했고, 정해진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도 느꼈다. 긍정적인 감정이 보상으로 따라오자 러닝이 괴롭고 힘든 일에서 즐겁고 보람 있는 일로 바뀌었다.
그렇게 스마트워치에 마일리지(러닝 기록)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반대로 체중계의 숫자는 미세하게나마 내려가는 이중으로 기쁜 날들이 계속되자, 러닝은 건너뛸 수 없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우중 러닝이 시원하다며 뛰었고, 주위 풍경이 지겨워질 만하면 코스를 바꿔가며 뛰었으며, 남편이 뛰지 못하는 날에는 혼자서라도 나가 뛰었다. 어느새 남편보다 내가 더 러닝을 즐기고 있었고, 런린이(러닝 어린이)에서 어엿한 러너로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