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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r 01. 2024

2024 미국 대선 지금까지 개괄

* 올해 초 미국 대선의 해를 맞아 아메리카노2024를 시작하면서 방송에서 이야기한 내용, 방송을 준비하며 찾아본 논문과 기사, 관련 법령을 브런치에도 정리해 올리려 합니다. 


2024 대선은 바이든 v. 트럼프 리턴 매치?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한국 총선보다 아직 아홉 달 가까이 남은 미국 대선 열기가 더 뜨겁게 느껴진다. 선거를 14일 앞둔 시점부터 공식 선거 유세를 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정해진 선거운동 기간이라는 게 없다. 한국은 선거일 법정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보통법/관습법 전통을 따르는 미국에서 만약 선거 유세할 수 있는 시기를 법전에 명시해 놓고 따르자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거다.

미국 대선은 11월에 투표를 하지만, 그 전에 각 당이 대통령 후보를 추대해야 하고, 후보를 추대하는 전당대회를 보통 여름에 여니까 그 전에 50개 주를 돌며 경선을 치러야 하는데, 또 모든 주가 한꺼번에 경선을 치르지 않으므로 일찌감치 선거 모드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2022년 11월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정치 뉴스는 곧바로 대선 모드였다. 2024년 대선 전망이 잔뜩 나오는데, 이게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에 경선에 참여하는 공화당 후보들 간에 첫 TV 토론이 열렸다. 아직 대선까지는 15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미국 대선에 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국에는 꼭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누가 이길 것 같나요? 트럼프가 이번엔 되나요? 아니면 바이든이 또 이길까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정말 동전 던지기 같아요. 50:50입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특히 8년 전에 트럼프를 진지한 후보로 여기지 않고 여기저기 "트럼프가 될 리 없다", "클린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떠들고 다니다가 선거가 끝난 뒤 잠적 아닌 잠적을 해야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더 신중해진다.


믿는 구석도 없이 그렇게 말하고 다녔던 건 물론 아니다. 2016년 선거를 앞두고 미국 언론에서 쏟아져 나온 예측들이 대부분 같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고, 그 전망을 별다른 의심없이 받아들인 나는 열심히 그 분석을 퍼다 날랐을 뿐이다. 미국 언론은 수많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분석을 내놓았다. 클린턴이 전체 득표에서는 트럼프보다 300만 표 가까이 표를 더 얻었으니 여론조사가 터무니없이 틀렸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쩌랴, 미국 대통령은 전체 유권자의 표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라 과반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사람이 당선된다. 규칙이 그렇다. 믿던 구석은 허망하게 무너졌고, 말을 더 얹고 보태봤자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최종 결과를 예측하는 건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꽤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예측이 하나 있다. 아직 경선을 치른 주는 3개밖에 안 되고, 전당대회에서 투표하는 대의원 표의 5%도 채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미 11월 본선 매치업은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다시 후보로 내세울 것이고, 민주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것이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95% 정도 확정적이다. 1만 원 정도는 흔쾌히 걸 수 있다.

왜 100만 원은 못 걸고 쪼잔하게 1만 원밖에 못 거냐고 물으신다면, 같이 사는 짝꿍의 표현을 빌려 내가 “짠돌이”라 그렇다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한 답변이 되겠다. 이유를 하나 더 보태자면, 99.99%에는 분명 한참 못 미치는, 95% 정도로만 확정적이라서 그렇다. 즉, 다른 변수가 끼어들어 매치업을 바꿔놓을 여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을 20번 돌려보면 한 번쯤은 일어날 법한 변수.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없지도 않다. 

벌써 한참을 달려온 미국 대선 경선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바이든과 트럼프가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혹시나 매치업이 바뀐다면 그 원인이 될 만한 암초, 변수는 이 글에서 소개하는 몇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다.


트럼프: Make America Great Again!!! *100,000

먼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부터 살펴보자. 트럼프는 2016년에 경선에 나선 순간부터 이미 여러 가지 기록을 갈아치우며 수많은 '최초'에 등극한 인물이다. 관행, 관례, 관습에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는 선거부터 집권, 통치, 그리고 선거에서 진 뒤 권력을 다음 정권에 넘겨주는 장면까지 일관되게 통념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를 했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시쳇말로 좀 더 솔직히 표현하면 '제 멋대로' 정치를 했다. 그 결과 충성심이 매우 높은 (사생팬에 가까운) 지지층과 그를 극도로 경계하고 혐오하는 이들이 모두 늘어났다. 또 너무 자유롭게 정치를 하다가 법까지 마구 어겨 전직 대통령 최초로 형사 기소돼 법정에 서는 운명에 처했다.

이미 잘 쓰이지 않는 말 같지만, 별걸 다 줄인다는 뜻에서 '별다줄'이란 말이 있던데, 영어야 말로 별다줄에 특화된 언어가 아닐까 싶다. 특히 미국 사람들이 쓰는 영어는 스마트폰, 소셜미디어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별걸 다 줄여서 단어의 앞글자만 따서 쓰곤 했던 것 같다. 2016년 트럼프 후보가 내세운 선거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Make America Great Again"은 전체 구호보다 앞글자를 딴 줄임말 'MAGA'가 더 유명하다. 미국 사람들도 '마가(MAGA)'라고 읽는 이 단어는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세상 사람들이 거의 다 아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마가는 그냥 공화당 지지자, 보수 성향 유권자보다도 트럼프와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를 열렬히 지지하는 새로운 우파 내지 극우 포퓰리즘을 신봉하는 적극적인 트럼프 지지층을 뜻한다.

21세기 들어 미국 정치가 낳은 슬로건, 브랜드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MAGA를 꼽겠다. 그 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Yes, We Can!"을 꼽았겠지만, MAGA는 사실 다른 구호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두의 뇌리에 박혔으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그 MAGA가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 2016년 선거는 트럼프와 그 지지층들에게 기념비적인,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모든 주류 언론과 세상이 개표가 시작된 뒤 몇 시간이 지난 뒤까지도 힐러리 클린턴이 이길 게 뻔하다고 여기던 선거를 극적으로 뒤집었으니 말이다.

전체 득표에서 표를 덜 받고도 선거인단에서 앞서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는 미국 역사에서 총 5번 있는데, 이 가운데 3번은 모두 19세기의 일이므로 제외하고, 2016년 선거 전까지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00년 대선이었다. 당시 표 차이가 너무나 적었던 플로리다주는 재검표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아직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디지털 투표 방식이 보편화되기 전이다. 후보 이름이 깨알같이 써 있는 투표용지에 돋보기를 대고 표를 다시 확인하는 장면은 2000년을 상징하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사진=게티이미지

이러다가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선거 결과를 비준하는 일정이 차질을 빚기라도 하면 1월 20일에 다음 대통령이 취임하지 못하게 생겼다며, 대법원이 개입했다. 재검표를 멈추고 지금의 결과대로 표 집계를 확정하라는 대법원판결이 나왔고, 조지 W. 부시가 플로리다주 선거인단을 전부 가져가면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미국 전체 득표에서는 앨 고어가 54만 표 정도를 더 받았지만, 중요한 건 선거인단이었다.


2016년 선거는 전체 득표와 선거인단 표가 훨씬 더 극적으로 달랐다.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무려 287만 표나 덜 받고도 선거인단에서는 306 대 232로 넉넉한 승리를 거뒀다. 선거인단은 크게 보면 인구에 비례해 주별로 배정되는데, 승리한 주의 선거인단을 승리한 후보가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 방식을 따른다. (메인, 네브라스카주는 예외) 트럼프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쉽게 말해 패배한 주에서는 화끈하게 완패하고, 승리한 주에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클린턴을 찍은 표 가운데 사표가 많았다.

트럼프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주들은 당초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승리할 것으로 점쳐졌던 주들로, 공교롭게도 중서부 러스트벨트 지역에 몰려 있다. 2012년에 오바마가 이겼다가 2016년에 트럼프가 이긴 주가 6곳인데 플로리다(FL)를 제외하면 아이오와(IA), 위스콘신(WI), 미시건(MI), 오하이오(OH), 펜실배니아(PA) 5개는 러스트벨트에 있는 주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제조업이 융성했던 곳이지만,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경기가 나빠지고 활력을 잃은 이 지역에는 제조업에 종사하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많이 산다. 양쪽 해안가나 대도시들에 비해 인종 분포를 봐도 백인이 더 많은 편이다. 이 러스트벨트에 사는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들이 압도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MAGA의 짜릿한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체 유권자 가운데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의 비중은 40%나 된다. 이들은 2000년 선거부터 공화당 쪽으로 기울었는데, 2016년 선거에서는 67%가 트럼프를 지지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클린턴은 이들에게서 28%밖에 표를 받지 못했다.) 펜실배니아, 위스콘신, 미시건 세 주에서 트럼프가 클린턴보다 더 받은 표를 다 합쳐도 10만 표가 채 되지 않을 만큼 박빙의 승부였다. 한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이렇게 단단한 지지층이 표를 몰아줬으니, 승리의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는 2020년에 다시 4년 전의 승리 방정식을 재현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가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덜 싫어하는 조 바이든이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경제 지표도 최악이었고, 트럼프가 잘 하는 대중 유세도 할 수 없었다. 여러모로 트럼프에게 불리한 상황이 11월 선거까지 반전 없이 계속됐고, 결국 바이든이 이겼다.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는 다시 한 번 "MAGA 2.0"을 꿈꾸고 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당신들의 삶을 망쳐놓았다, 도시의 엘리트들이 글로벌 엘리트들과 결탁해 미국인보다 외국인을 우선시하고, 이민자를 감싸고 돌면서 심지어 미국적인 삶을 무시하고 미국을 혐오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주장에 지지층은 열광하고 있다. 심지어 4년 전 바이든에게 진 선거 결과를 억지로, 부당하게, 법을 어기며 뒤집으려 했고,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방조하거나 부추긴 혐의로 검찰에 기소까지 당했지만, 그럴수록 MAGA 공화당원 사이에서 트럼프의 지지는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이들은 트럼프를 향한 수사, 기소, 재판 일련의 과정을 모두 부패한 기득권의 마녀사냥으로 볼 뿐이다.

트럼프는 지난 선거에서 졌다. 도전자로서 대선에 나서는 트럼프지만, MAGA 공화당원들은 그를 현직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때는 당 내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래서 트럼프에 맞서 경선에 남아 있는 니키 헤일리 전 UN 대사를 민주당 정치인 못지 않게 싫어한다. 심지어 트럼프는 선거에서 이기고도 부당하게 승리를 빼앗긴 피해자이며, 좌파 엘리트, 외국인, 월스트리트의 검은 돈, 음모론의 핵심으로 지목되곤 하는 딥스테이트가 합심해 트럼프를 마녀사냥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트럼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다.

트럼프는 이런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공화당을 장악했다. "무늬만 공화당원"이란 뜻의 "Rino(Republican in Name Only)"는 가라며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트럼프의 스타일에 따라 공화당은 점점 트럼프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공당이던 공화당은 트럼프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트럼프가 법적 곤경에 처했을 때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기구가 됐다. 공화당은 트럼프의 당이 됐다. 사당화가 성공한 셈이다. 

2024년 MAGA 2.0을 꿈꾸는 트럼프 캠프가 준비한 선거 전략의 핵심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선거 관련 규정을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바꾸는 거다. 공화당 지역당을 트럼프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 채우고, 공화당이 주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주에선 주 선관위에 해당하는 주무부도 최대한 자기 사람들로 채웠다. 자기한테 불리한 규정 탓에 2020년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트럼프는 이번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문제는 공화당의 당원과 주요 당직자를 자신의 지지자로 채우는 일과 연방 선거 과정을 장악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네바다주 공화당은 주 경선 규칙을 트럼프한테 유리하게 바꿔서 사실상 네바다주의 모든 대의원 표를 트럼프에게 안겼다. 니키 헤일리는 사실상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이런 일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도 과연 가능할까? 


앞서 말했듯이 트럼프 집권 4년과 선거 결과에 불복해 의사당 테러까지 일으킨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복수의 칼날을 노골적으로 갈아 온 4년을 거치면서 트럼프의 지지층도 단단해졌지만, 트럼프에게 다시는 권력을 줘서는 안 된다고 믿는 유권자들도 많아졌다. 공화당 내에선 사실상 현직 대통령 대우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트럼프지만, 본선에 투표하러 오는 유권자들 가운데는 2020년 트럼프가 억울하게 승리를 빼앗긴 게 아니라, 오히려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많다. 본선에 가면 트럼프는 적어도 지금처럼 승승장구하지는 못할 거다.

트럼프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암초는 사법 리스크다. 트럼프는 현재 4건의 형사 사건으로 기소돼 있고, 민사 재판도 여러 건 진행 중이다. 기소와 재판 내용에 관해선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여기선 간략히 정리하면,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 특별검사 잭 스미스가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방조하고 부추겨 선거 결과의 비준을 방해하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가로막는 내란을 공모하고 실행에 옮긴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고, 백악관 기밀문서를 퇴임 후에 자택에 가지고 있던 간첩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했다. 또 조지아주 풀톤 카운티 검찰은 2020년 가장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 조지아주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주무장관을 협박하고 투표용지와 문서 위조를 지시한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다. 또 뉴욕 남부지검은 포르노 배우와 성관계를 맺었던 사실을 2016년 대선 전에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입막음용 뒷돈을 지불한 뒤 이 돈의 용처를 회계장부에 정확히 기입하지 않아 선거법을 어긴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다.

전직 대통령이 형사 기소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인데, 트럼프는 이렇게 네 가지 사건과 관련해 총 91개 혐의로 기소돼 있다. 뉴욕 남부지검의 입막음용 뒷돈 사건의 재판은 다음달 말로 잡혀 있고, 기밀문서 유출 사건의 재판도 5월로 예정돼 있다.

소위 트럼프 사법 리스크로 불리는 일련의 사건이 선거에서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아닐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트럼프를 찍지 않겠다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 가운데 대부분은 어차피 트럼프를 찍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설사 유죄를 선고받고 형집행을 미루지 못해 감옥에 간다고 해도 대선에 출마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트럼프가 피의자 신문을 받고 피고로 법정에 설 때마다 마녀사냥 당하는 트럼프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트럼프를 향한 상당한 후원금이 모인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트럼프의 변호사 비용으로 쓰인다.)

어쨌든 니키 헤일리 전 UN 대사가 득표율에선 트럼프에 한참 못 미치면서도 아직 사퇴하지 않고 경선에 남아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코크 형제를 비롯한 슈퍼팩에서 넉넉한 후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 버티는 데 무리가 없다. (미국 선거는 돈이 엄청 많이 든다. 슈퍼팩과 정치자금,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판결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겠다.) 둘째,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로는 안 되겠다는 의견이 많아질 수 있다. 매우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지만, 헤일리는 그 때를 노리고 있을 거다. 


바이든: "4년 전 승리를 다시 한 ㅂ..." "? 또 나온다고?"

원래 미국은 관행, 관례, 관습이 꽤 완고하게 지켜지는 나라다. 트럼프가 장악하면서 많은 게 달라진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여전히 관행을 따르는 경향이 남아있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대표적인 관행이 있다. 바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경우 대통령의 당은 따로 후보를 내지 않는 거다. 대신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단합해 선거를 준비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일찌감치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들은 관행을 따랐다. 언젠가 대선에 도전할 것으로 평가받는 '잠룡'들도 맡은 일에 충실하거나 주지사나 상원 등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칠 만한 자리에 나설 뿐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이는 없었다. 4년간 더 잠룡으로 남기로 한 거다. (현직 대통령에게 도전하면 안 된다는 법이나 규정은 없다. 자기 정치 인생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 다들 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나 관행대로 흘러가는 와중에도 우려의 시선은 늘 있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그 시선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점점 더 짙어지고 늘어나는 듯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바이든의 나이와 건강이다. 1942년 11월 생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82세다. 바이든 대통령 전까지 현직 대통령으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건 퇴임하던 시점의 77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조 바이든은 취임할 때 이미 78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 됐으며, 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스포츠 선수가 현역으로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가는 거라면 '리빙 레전드'라고 칭송할 만한 일인데, 나이 든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무래도 칭찬일색이기 어렵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여 노련해지고, 완숙미를 바탕으로 잘 처리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지만, 동시에 기민한 대처나 순발력이 필요한 대응에 취약해질 수 있다. 물리적인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도 잘 못하게 되고,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회복하는 데 점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바이든은 눈에 띄게 느려진 반응 속도나 어떤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하게 되는 말실수, 또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듯한 모습을 벌써 여러 차례 보였다. 재선에 성공해 임기를 마칠 경우 86세에 퇴임하게 될 바이든을 바라보며, '4년 더...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단히 열정적이다. 반면에 바이든을 지지하는 이들은 대체로 뜨뜻미지근하다. 바이든이 좋아서 뽑는다기보다 트럼프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바이든을 찍겠다는 사람도 꽤 많다. 특히 민주당의 지지 기반 가운데 젊은 유권자, 유색인종 유권자들은 4년 전 "젊은 세대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세대를 잇는 마중물이 되겠다"고 약속했던 바이든이 재선에 도전하면서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마뜩찮다.

'아니, 4년 전에 나올 때 암묵적으로 다음 번엔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자기 말고 다음 세대 정치인에게 바톤 터치하겠다는 거 아녔어? 또 찍어달라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거야?'

민주당 안에서도 이런 식의 찝찝한 의혹을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뭔가 속은 느낌이 드는 거다. 그러던 중 조 바이든의 고령과 건강 논란에 불을 붙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실 백악관에서 들고 나오지 말았어야 할 기밀문서를 가지고 나와 보관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건 트럼프만이 아니었다. 바로 조 바이든 대통령도 부통령 시절 접근 권한이 있던 문서들을 가지고 나온 사실이 알려져 특검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의 인사권이 대통령한테 있으므로, 대통령 수사는 보통 특별검사가 맡는다. '살아있는 권력' 바이든을 수사한 특검은 로버트 허(Robert Kyoung Hur)라는 사람인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다.

허 특검은 몇 달간의 수사 끝에 지난 8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은 바이든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이었다. 허 특검은 바이든 대통령이 기밀문서를 고의로 유출한 정황이 있긴 하지만, 문서 유출 사실이 알려지자 잘못을 깨끗하게 시인하고, 즉시 해당 문서를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반납했으며, 수사를 위해 개인 사무실은 물론 자택도 개방하는 등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보면 바이든 대통령에겐 분명 희소식이었을 거다. 이제는 트럼프와 차별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증거를 인멸하려 하고, 압수수색을 하려던 FBI 요원들을 협박하는 등 수사를 방해해 세 가지 혐의가 추가된 채 기소당했다. 바이든으로선 '둘 다 문서 유출한 건 마찬가지니 도긴개긴 아니냐'는 냉소적인 사람들에게 반박할 수 있게 됐으니, 잘 된 거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보고서의 전혀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허 특검이 밝힌 바이든을 기소하지 않기로 한 두 번째 이유가 문제였다.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하면 피의자는 재판에 넘겨 잘잘못을 가리는 대상인 피고가 된다. 그런데 바이든이 피고가 돼 법정에서 배심원단 앞에 서면 기억력이 오락가락해서 제대로 된 증언을 하기 어려울 거라고 허 특검은 우려했다. 정확히 수사 보고서에 쓴 단어를 그대로 옮기면, 특검은 바이든을 동정을 부르는 또는 호감 가는(sympathetic), 호의적인(well-meaning), 나이 많은 할아버지(elderly man), 기억력은 나쁜(with a poor memory) 사람으로 묘사했다. 의역하자면, "사람은 좋은데, 기억력이 워낙 오락가락해서 제대로 된 진술을 듣기 어렵다"고 한 거나 다름없다. 

허 특검은 바이든 대통령의 기억력이 부족했던 사례를 들며, 그가 자신이 부통령으로 재임했던 게 몇 년도였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심지어 큰아들 보 바이든이 몇 년도에 사망했는지도 깜빡깜빡했다고 썼다. (보 바이든은 2015년, 암으로 사망했다.) 기소하지 않기로 한 이유와 근거로 한 이야기라지만, 과연 그런 얘기까지 보고서에 다 적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바이든의 고령과 감퇴하는 기억력을 부각하는 건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었을 거라 짐작할 만하다. 바이든으로선 당연히 크게 화를 낼 만한 일이고, 실제로 보고서가 나온 날 밤 이례적으로 격분한 채 기자회견을 열었다. 트럼프 스타일로 기자들과 설전을 벌인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그래서 대통령님의 기억력에 문제가 없는 거냐"는 폭스뉴스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쏘아붙이기도 했다.

"아, 내가 기억력이 엉망이긴 하네요. 당신한테 또 말할 기회를 준 걸 보면요!"


로버트 허 특검은 공화당원이다. 미국 검찰에는 한국과 같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없다. 오히려 선거를 통해 지검장 등을 뽑는데, 그럼 인사권자가 주지사나 대통령이 아니라 나를 뽑아준 유권자이므로,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맞추는 게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한 번 더 하기로 하자. 특검을 임명한 건 바이든 행정부의 메릭 갈랜드 법무부장관이다. 갈랜드 장관은 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공화당원임을 알면서도 로버트 허를 특검으로 임명했을까? 

정치공세, 마녀사냥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를 이어오던 중에 바이든 대통령도 기밀문서를 불법으로 보관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보수 언론과 공화당은 즉각 공세로 전환하며, 바이든의 '내로남불'을 지적했다. 보수 진영도 수긍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내려면 바이든을 객관적으로 수사하고 심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로버트 허 특검을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수사 결과 말고 다른 요인 때문에 상황이 원치 않게 흘러가고 있지만...

어쨌든 "혐의 내용을 수사한 결과, 기소할 만한 사건이 아니다"라는 보고서가 엉뚱하게도, 어쩌면 공화당과 허 특검의 노림수 대로 바이든의 고령, 기억력, 건강 문제로 번졌다. 바이든이 자꾸 말실수를 하고, 기억력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대통령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치매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지만, 유권자들이 얼마나 여기에 귀 기울여줄지는 모르겠다. 이미 많은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들은 당적을 불문하고, 바이든이 대통령을 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지 정당에 따라 한쪽은 "나이도 너무 많고, 걱정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트럼프보다는 훨씬 나으니까"라고 생각하고, 다른쪽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대통령으로는 부적격"이라고 생각이 갈릴 뿐이다.


글머리에 바이든 대 트럼프의 재대결이 될 확률이 99.99%가 아니라 95%라고 썼다. 바이든이 재선에 도전하지 못하는 시나리오는 결국, 건강 문제가 발단이 된다. 바이든의 건강이 실제로 악화돼 바이든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민주당은 뒤늦게라도 부랴부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는 바이든의 건강을 지지자들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바이든이 큰 결심을 해서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도 있다.

물론 가능성이 상당히 희박한 시나리오다. 겉보기와 달리 바이든의 주치의와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건강 상태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적어도 지금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실질적인 경쟁은 없지만, 민주당에서도 대선 후보를 추대하는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인데, 3월 초 슈퍼 화요일이 지나면 산술적으로도 바이든이 후보로 지명되는 데 필요한 대의원 수를 무리없이 확보할 전망이다. 바이든이 스스로 물러나기로 마음먹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다른 후보를 추대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만약 바이든이 여름에 물러나기로 결심한다면, 전당대회에 모인 대의원들의 후보 지명을 수락하지 않고, 대신 다른 후보를 추천하면 된다. 그럼 민주당원들은 전당대회를 통해 아마도 바이든이 추천한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다만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고, 상대가 트럼프라면 민주당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는 바이든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바이든이 선거 전에 물러날 경우 가장 자연스러운 후계자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될 텐데, 해리스는 트럼프와 맞대결을 폈을 때 전망이 바이든보다 좋지 않다. 즉, 민주당으로서는 바이든의 건강이 염려되지만, 이제 와서 관행을 깨고 새로운 후보를 내는 것보다 바이든의 재선을 지원하는 쪽이 더 안전한 선택인 셈이다.

장황하게 이런저런 변수들을 살펴봤지만, 결론은 같다. 여전히 나더러 11월 5일 선거 결과를 예측해보라 하면, 누가 될지 정말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매치업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이냐고 묻는다면, 꽤 자신 있게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이 될 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매치업이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소!"라고는 할 수 없는 이유로,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 고령인 바이든의 건강 문제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없는 미국은 2024년 내내 모든 뉴스가 기승전'대선'으로 귀결될 거다. 새로운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이 일이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보며 뉴스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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